논단

흙의 노래, 불의 춤이여 - ‘흙다지 자기전’에 부쳐

 

흙의 노래, 불의 춤이여

- ‘흙다지 자기전’에 부쳐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예교수 권상호


  굽이치지 않고 흐르는 강물이 어디 있으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마찬가지로 물과 불의 난리를 겪지 않고 이루어지는 도자기 또한 있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인간에게도 아픔과 시련이란 보다 큰 성공을 위한 약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필요의 악도 물난리와 불난리이다. ‘재앙 재(災)’자가 바로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瓷器)는 물의 반주에 흙이 노래하고, 불이 춤을 추면서 빚어낸 예술이다. 부스러기 질흙(胎土)이 물과 불을 만나 인조 옥(玉)이 되는 묘한 이치는 진정 우리 삶의 최고 귀감이다.

  이러한 자기의 정신을 본받고 실천하며 생을 걸고 작업에 몰두하는 작가 한 분을 늘 지켜보며 저 또한 몰입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 분이 바로 빈정경 선생님이시다. 예술은 환경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빈 선생님은 항아리 형상의 바위가 많은 불암산 자락의 문화 1등구 노원에 거쳐하며 작업을 하고 계신다. 노원의 천기와 지기가 좋기 때문인지, 그의 작품에는 태릉의 솔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중랑천에 비친 달그림자가 흐르는 듯하다. 빈 선생님은 여러 제자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도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백자(白磁)를 고집하고 있다. 구하기 힘든 미세한 태토를 엄선하고, 모양 만들기가 어렵고 균열이 많이 가며, 성공률이 가장 낮은 백자와 씨름을 하는 이유는 어려움에서 오는 성취감이 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자기는 생필품의 하나로서 실용성에서 출발하였으나 빈 선생님의 경우, 완상의 대상으로서 예술성만을 추구하는 치열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갈채를 보내고 싶다.


  하늘에는 별, 땅에는 꽃, 가정에는 도자기가 있다. 인간의 시간을 잊고 흙과 불의 시간만으로 살아가는 빈 선생님의 ‘흙다지 자기전’을 지켜보면서 영원불변의 인조 옥인 자기를 우리 가정에도 하나 마련해 두고, 이 그릇에 길들여지고 싶다.




추가해도 되는 내용입니다. 


1. 우리말로 그릇을 /그릇/이라 발음하는 이유는 여기에 담긴 음식을 먹고, ‘그릇’된 짓을 하지 말라는 경계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고대 원시인은 그릇의 재료로 나무를 사용했다고 볼 때, 그 어원은 나무라고 할 수 있다. 한 그루(株), 두 그루(株) 할 때의 그루와 어원을 함께 한다. 한자로 ‘그릇 器’자를 보면 개 犬과 네 개의 ‘口’로 이루어진 글자인데 여기에서의 口는 입이 아니라 그릇의 상형이다. 따라서 器자의 형상을 보면 귀한 그릇을 명견이 지키고 있는 형상이다.


2. 기원전 6천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그릇은 인류 역사와 그 궤를 함께하고 또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용어에 있어서도 土器에서 陶器, 그리고 瓷器로 발전해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불을 다스리는 기술이 늘면서 그릇 만드는 기술도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유약을 바르지 않은 상태로 구우면 토기, 유약을 바르고 구우면 도자기가 되는데, 도기는 8~900도의 열을 받아 구워진 장독과 같은 것이요, 자기는 1200~1300도의 열을 받아 구워진 찻잔이나 백자, 청자 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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