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자유의 옷을 입은 글씨 - 김영애 석사학위청구전에 부쳐

자유의 옷을 입은 글씨

- 김영애 석사학위청구전에 부쳐

서예는 아름다운 詩句를 생각하는 머리와, 진중하면서도 때로는 열정적인 가슴을 가진 유기체와 같다. 붓이 붓걸이에 걸려 있을 때는 그냥 장식에 지나지 않지만 붓이 먹물을 머금고 화선지와 만나는 순간에는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꿈틀거린다. 잠시도 멈출 수 없는 격정의 물결이요 음악이다. 붓을 놓는 순간 지나온 발자취를 되새기면서 잠시 회한에 젖기도 한다. 글씨의 好不好 간에 열정의 끝은 아름답다. 서예를 통한 열정의 끝은 필획 속에 땀이 어리어 있어 더욱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오늘 소운 김영애씨의 작품에서 느낀다.

소운은 어려운 시공적, 심신적 여건 속에서 전문가 과정에 입학하였다가 아쉽지만 한 학기를 접고, 다시 석사과정에 들어와 진지하게 2년 반을 연찬하여 이제 석사학위 취득을 위한 졸업작품전을 펼쳐 보이게 되니, 우선 축하인사부터 드린다.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과 출신으로, 도타운 신심을 삶의 에너지로 삼아 오랫동안 봉사활동에 주력해 온 소운의 글씨에는 순수하면서도 다부진 의지가 엿보인다. 書歷이 남처럼 그다지 길지도 않은 상태에서, 오직 計白當黑의 묘리에 빠져, 짧은 기간이지만 자신의 심성 그대로 뽑아낸 작품들이라 차라리 당당하다고 할 수 있다. 본성이 澹泊하기에 明志할 수 있었고, 마음 씀이 寧靜하기에 致遠을 기대해 본다. 다시 말하면 소운의 경우, 마음이 깨끗하기에 서예에 진솔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뜻을 밝힐 수 있었고, 요즈음처럼 세계적 경제 위기에서도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하기에 앞으로 흔들림 없이 원대한 예술적 포부를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적어도 내가 아는 소운은 명상적 분위기의 서예가이다. 그래서 한글 호를 ‘생각의 싹’이라는 개념의 ‘혜움’이라고 지어준 적이 있다. ‘헤아리다(생각하다)’의 고어는 ‘혜아리다’로 여기에 ‘싹’을 뜻하는 ‘움’자를 붙였다. 혜움은 작품을 위한 選文 과정에서도 서정적인 시문보다도 성경, 불경, 노장에 이르기까지 사상적 종교적 명상세계를 즐기고 있는 편이다. 아직은 운필과 결구가 마음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각만큼 완성도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서예의 여러 분야에서도 소운의 관심 분야는 서예교육론에 있다. 졸업논문도 고령화 사회에서의 노인교육프로그램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서예 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도 서예는 최고의 ‘실버 도우미’라고 생각한다.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모두 충족시켜 준다.

소운의 自警文은 <臨濟錄(임제록)>에 나오는 ‘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 있는 그 자리가 모두 진실하다는 의미이다. 밀린 일로 밤을 지새울지언정 본인이 가야할 자리는 분명히 참석하고 또 실천적 역할분담을 잘 하고 있다. 학과 대표를 맡고서도 훌륭한 리더십으로 동료들을 창의적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에 모두가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또 한 가지 소운의 큰 에너지는 <논어>에 나오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이다. 배우는 자체를 큰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다. 행복과 기쁨의 두 개 키를 갖고 살아가니 창조적 생활인이 될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 바깥지역에 살면서도 유대적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던 유대인,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켜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한다. 가슴이 뜨거운 소운은 앞으로 언제 어디서든 디아스포라 정신으로 서예를 지키길 바라며, 더한 작가적 분발과 노력으로 흑백의 앙상블인 붓연주, 곧 奏筆의 삶을 기도한다.

끝으로 자신의 글씨에 무한한 자유의 옷을 입히길 소망한다.

2008. 12.

삼각산 浮休室에서 지도교수 權相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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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
-작품목록-
한문
1.  般若心經
2.  寫樂毅則怫
3.  갈라다아서 2: 20
4.  노자사상 16字(무위자연, 겸하부쟁, 청정염담, 장생불사)
5.  眞空妙有

한글
6.  성숙과 익숙함
7.  만남(사람은 만남으로 자란다)
8.  길(믿음이 있어 사는 것이 아니다 살다보면 믿음이 나나타는 것뿐이다)
9.  하루살이(사람은 어제를 사는 것도 아니고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고 내일을 사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하루를 산다.)
10. 신발(인생은 신발과 같다~)
11. 문제(인생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없어지는 것이다~)
12. 진선미(앎의 참된 열미와 삶의 넓은 잎새와~)
13.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도종환의 시)
14. 창작1
15. 창작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