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제39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심사평

제39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심사평

 

 

◈ 심사평

 

3차 전체 심사위원장 권상호

 

 

올해는 광복 75주년이자 6ㆍ25전쟁 7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입니다. 그 사이 우리나라는 크고 작은 정치경제적 질곡(桎梏)을 겪으면서도 민주주의 국가 건설과 선진국으로의 발돋움, IT와 문화강국으로서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제 서예도 한류문화와 함께 세계화를 위해 도약할 때입니다.

 

잠시 현대 서예의 흐름을 돌이켜 봅니다. 정부 수립(1948년) 이후 1949년에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가 개최되고, 6ㆍ25전쟁 발발로 3년간의 공백(1950~1952년)은 있었지만, 관전 성격인 국전은 1981년 제30회로 그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어 1982년부터는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주관의 민전 성격인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거듭난 공모전은 금년으로 제39회를 맞이했습니다. 그간의 총 69회에 걸친 공모전은 자장 권위 있는 서예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해오면서 훌륭한 서예가와 전각가를 배출해 왔습니다. 근년에는 서예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캘리그라피 작가도 배출하고 있습니다.

 

금년에는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한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재앙으로 행사를 치를 수 없을 줄 알았으나 오히려 서예 애호가의 열정적인 참여로 더 큰 성황을 이루게 됨에 감사드립니다. 코로나도 인간 본연의 창작 본능은 멈출 수 없나 봅니다. 아마 인간이 멈추자 지구의 호흡은 살아나고, 인간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붓과 함께하는 내면의 시간을 가져다주었나 봅니다. 가히 코로나의 역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어려운 가운데에도 국립현대미술관은 개관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덕수궁관에서 2020년 첫 전시로 ‘현대미술관에 書 - 한국 근현대 서예전’을 개최하여 서예 문화의 영역 확장과 새로운 서예 시대의 전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사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로 분초를 다투며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슬로우 아트인 서예 공모전에 출품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자문화권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난해한 한문이고,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부드러운 모필(毛筆)을 도구로 하여, 어려운 전예서(篆隸書)나 행초서(行草書)로 전문을 써 낸 노력 자체만으로 갈채를 받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고전에서 어렵사리 찾은 글감을 숨죽이며 써 내려온 유려한 한글, 방촌(方寸)의 싸늘한 돌 위에 뜨겁게 새겨낸 전각(篆刻), 짧지만 여운을 남기는 글귀에 감성을 실어 쓴 캘리그라피, 이 모든 열정에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전통적으로 서양에서는 글씨는 펜(pen), 그림은 붓(brush)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서화(書畵)는 물론 문사철(文史哲)의 모든 기록까지 오로지 붓에 의존해 왔습니다. 그 결과, 다행히 서예가 예술로 승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붓 대신에 펜이나 키보드, 키패드 등을 사용함에 따라 붓을 잡아보는 일 자체가 드물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작품 내용도 고전이나 한시 등에서 찾아야 하므로 지난한 작업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탈자(誤脫字)를 따로 심사해야 하는 촌극이 매번 벌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랜 수련과 진지한 학습이 만나 낳은 예술이지만 소통의 어려움에서 오는 관객의 외면 또한 하나의 후유증이 됩니다.

 

하지만 필자는 기록(記錄)을 남기는 자만이 영생(永生)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서예가 어렵기 때문에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락을 떠나 공모전에 참가하는 그 과정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시 싫은 일에는 변명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답답할 때면 서예 밖에서 서예를 찾아보세요. 말맛을 먼저 살리고 글멋을 부려 보세요.

 

심사 내내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첫째, 임서 작품은 상권에서 제외해야 한다. 둘째, 남의 글보다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쓴 글씨에 점수를 더 주어야 한다. 셋째, 시대성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넷째, 특심제는 훌륭한 아이디어이다. 여기에 선거처럼 시차를 둔 비밀 점수제를 도입하면 어떨까? 하지만 어떤 제도라도 인간 이상일 수는 없다. 사람 됨됨이가 우선이다.

 

마지막으로 행사의 시종을 맡고 끝까지 고생하신 양성모 이사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코로나 시국에 모두 건강 잘 지키시기를 기원합니다.

 

 

2020년 6월 일. 전체 심사위원장 권상호 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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