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월간서예> 2022. 11월호 논단 - 설렘과 떨림으로

<월간서예> 11월호 논단

설렘과 떨림으로

 

도정 권상호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바 있는 폴란드의 여성 시인 비슬라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1923~2012)의 대표적인 시 중에 ‘두 번은 없다(Nothing Twice)’가 있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붓 길도 두 번은 없다. 얼핏 생각하기에 오랜 임서(臨書)를 통하여 똑같은 점획을 쓴다고 생각하겠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똑같이 반복되는 점획(點劃)은 이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수 없다. 이 얼마나 지엄한 서예 창작 세계인가. 실로 ‘설렘’으로 다가온다. 설렘이 없는 작업은 창의력이 없다. 사랑도 창작도 설렘에서 출발한다.

언어유희이지만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뜻으로 ‘할렐루야(hallelujah)’ 하며 부르짖듯, 서예를 찬양하기 위해서는 ‘설렐루야’라고 부르짖을 만도 하다. ‘불렐루야(불타 찬양)’ ‘놀렐루야(노자 또는 놀이 찬양)’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갈 수도 있겠다.

설렘은 ‘떨림’으로 나타난다. 떨림은 아스팔트나 바위도 깰 수 있고, 치석(齒石)도 제거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악수나 포옹에도 떨림이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고 굽이치지 않고 흘러가는 강도 없다. 돌 인장(印章)을 새길 때도 칼에 약간의 떨림을 주면 쉬이 새겨진다. 성악이나 기악에서도 비브라토(vibrato)라 하여 음을 떨어서 아름답게 울린다. 발레리나들이 발끝으로 서서 감동을 주는 동작도 몸의 잔잔한 떨림 덕분이다. 동요보다 성인의 노래에 떨림이 많듯이 노년의 노련한 떨림이 들어간 글씨에 자연미가 넘친다. 

 

군(軍)의 초기 의미는 군의 조직 단위였다. 따라서 군(軍)은 군(群)을 이루어 군(君)을 보필하기 때문에 모두 발음이 같다. 운(運, good fortune, luck) 자에 군(軍)이 들어있는데, 운(運)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군(軍)처럼 움직일 때 오는 것으로 본다. 자동차는 운전(運轉)하지만, 붓은 운필(運筆)한다. 떨림이 없으면 쓰러지는 자전거 운전법을 연상하면 운필법을 깨달을 수 있다. 다만 운전과 운필의 차이점이라면 음주운전은 불가하지만, 음주운필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연습 없이 태어난 인생이므로 하루하루를 신중하게 살아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연습 없이 태어난 운필이므로 점획 하나하나에 신중해야 한다. 단, 설렘과 떨림으로 운필하고 또 미래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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