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월간서예> 2022. 1월호 논단 - 예술의 옷을 입자

<월간서예> 신년논단

예술의 옷을 입자

도정 권상호(문학박사, 라이브서예가)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아 왔다. 인생(人生)이란 붓을 잡고, 새해에는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이다.

따지고 보면 서예는 ‘점(點)과 획(劃) 사이’에 있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서예가 힘들고 어렵다고 한다. 붓을 사용하는 서예로서 쓰기가 아니라, 키보드로 치는 쓰기조차도 힘들어한다. 왜 그럴까. 난이도를 기준으로 나눈 인간의 다른 활동 영역과 비교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보기’보다 듣기가 어렵고, ‘듣기’보다 말하기가 어려우며, ‘말하기’보다 읽기가 어렵고, ‘읽기’보다 쓰기가 어려우며, ‘쓰기’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붓으로 쓰기’이다. 인류가 말보다 글을 늦게 만들어낸 것만 보아도 ‘쓰기’가 어려운 작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 지구상에는 6천여 개의 음성언어가 있지만, 문자언어는 40여 개에 불과하다는 점도 말보다 글이 어렵다는 방증이 된다.

보는 것보다 듣기가 어려운 까닭은 보는 것은 눈만 뜨면 되지만, 듣는 것은 상대방이 말하는 뜻 곧, ‘말귀’를 알아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듣기보다 말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말은 항상 ‘생각’을 앞세워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말하기보다 읽기가 어려운 까닭은 읽기는 반드시 글을 깨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읽기보다 쓰기가 어려운 까닭은 읽기는 남이 써 놓은 글을 이해하면 되지만 쓰기는 내 ‘생각이나 느낌, 상상’ 등을 기른 연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쓰기에는 상당한 노동까지 요구된다.

경사자집(經史子集)의 전적에 남아있는 문사철(文史哲)은 모두 쓰기에 의한 결과물이다. 쓰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활동이지만 교육 정책 가운데 가장 우위에 놓아야 한다.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쓰기 교육’의 부재(不在)에 있다고 본다. 말만 무성한 한국 정치도 쓰기 정치로 바꾸어야 발전할 수 있다.

‘한국 : 일본 = 1 : 28’은 스포츠 결과가 아니라, 한·일 간의 노벨상 수상자 비율이다. 이러한 비극적 결과는 기록, 곧 우리의 쓰기 교육의 부재에서 비롯했다고 판단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쓰기 중에서도 가장 불편하고 어려운 ‘붓글씨’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그냥 쓰기에 의한 결과물인 문학, 역사, 철학 외에 붓으로 쓰기는 ‘예술의 옷’을 하나 더 걸쳐주기 때문이다.

習書雖難 不可放棄(습서수난 불가방기)

서예 학습이 어렵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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