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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선생의 작품 내용은 ‘유불선(儒·佛·仙) 삼교(三敎)를 아우르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풍류지도(風流之道)’에 있다. 선생의 작품을 역람(歷覽)해 보면 묘하게도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오버랩 된다. 이는 고운이 자신이 쓴 난랑비서문(鸞郎碑序文)에서 ‘風流之道’를 처음으로 언급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라에 지극히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國有玄妙之道 曰風流)에서 풍류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뒤이어 ‘실로 이는 三敎를 내포한 것으로 모든 생명과 접촉하며 이들을 감화시킨다.’(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라는 내용이 뒤따르는 것으로 볼 때, 고운은 ‘三敎를 아우르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풍류지도(風流之道)’를 말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안타깝게도 서양식 사고의 틀에 갇혀 우리 고유의 風流를 잊고 지낸다. 풍류는 단순히 품격 없이 되는대로 노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風流 해석의 변곡점은 ‘삼교(三敎)’와 ‘접화군생(接化群生)’에 있다. 여기에서 三敎는 우리 민족의 신앙의 뿌리인 ‘유불선(儒佛仙)’을 두루 아우르는 개념이고, ‘접화군생’은 현대적 해석으로 ‘소통(疏通)’이나 ‘변화(變化)’의 의미로 다가온다.
선생의 작품에는 서당에서 서안을 마주한 유생(儒生)이 나타나는가 하면, 토굴에서 면벽하고 있는 선승(禪僧)이 나타나기도 하고, 더러는 세속을 벗어난 신선(神仙)이 등장한다. 그래선지 화폭에 나타난 주인공은 삼강오륜(三綱五倫)의 덕목을 수행하기 위하여 수신재가(修身齊家)하는 군자(君子)일 수도 있고, 사바의 질곡 속에서 번뇌하는 수도승(修道僧)일 수도 있으며, 더러는 껍질을 벗은 매미처럼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도인(道人)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우주는 ‘빛살’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지혜와 덕망이 뛰어나 성현(聖賢)이 되거나, 열반 득도하여 성불(成佛)하거나, 세속에서 벗어나 선객(仙客)이 될 수 있다는 갈망과 기대의 빛이 ‘빛살’로 형상화되고 있다. 三敎 중에서도 경중을 굳이 가린다면 작품의 수적인 면에서 불교 쪽에 더 가깝다고 본다.
그리고 선생의 작품에서는 접화군생을 위한 소통의 수단으로 화폭의 가장자리나 좌우에 한문으로 된 원문을 적고, 또 한글풀이를 친절하게 곁들이고 있다. 그런데 작가가 소통을 위한 노력에 이토록 공을 들임은 왜일까. 그림은 읽으려 하나, 한문은 회피하는 한글세대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점도 있지만, 한문과 한글의 조형적 조화미를 고려한 제작상의 기법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른바 문징(文徵), 물징(物徵), 사징(事徵), 언징(言徵) 등 김범부(金凡夫) 선생의 사징론(四徵論)에 입각하여 분석한 선생의 ‘빛살론’을 선생은 오랜 세월 동안 작품으로, 논문이나 저술 등으로 주장을 펴오고 있는데 작품의 형상화는 바로 거기에 따른 것이다. 불통(不通)은 고통(苦痛)이고 소통(疏通)은 대통(大通)이다. 그런데도 한민족의 문화적 시원을 광복 후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머리 빗는 ‘빗살무늬(櫛文)’ 란 틀에 가두어 놓고 문화맹목(文化盲目)을 만드는 안타까운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하루빨리 ‘빛살무늬’로서 시원히 소통하고 대통하여 생명의 기운이 펄펄 뛰는 세상이 오기를 작가는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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