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겨울의 시작인 입동이군 그래. 그 동안 별고 없었는지 궁금하군?
겨울은 정신적으로 성숙을 가져다 주는 고마운 계절이라고 생각하네. 성숙의 아픔을 겪고 있는 자네에게 나는 서예를 권했었고, 자네는 쾌히 승락했었지. 내가 자네에게 서예를 자신있게 권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공학을 통하여 어렵게만 느껴지던 서예를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찾았기 때문일세. 사실 자네는 여러 차례 붓을 잡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무거운 벼루와 먹을 오래 갈아야 하는 번거러움이 있고, 글씨가 잘 쓰여지질 않아서 도중 포기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쟎아.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준비하기 쉽고, 글씨쓰는 일 그 자체가 즐거울 일이 될 수 없을까 하고 여러날을 고민했다네. 친구, 옛 선비들에게는 여섯 가지 교육 과목으로 육예라는 게 있었는데, 곧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가 그것일세. 이 중에서 서예는 독립된 한 교과로 여길 만큼 조상들의 정신 수양에 있어서 필수적인 교양이자 학문이었다네. 우리의 선인들이 남긴 문화 유산 중에서 가장 고귀한 혼이 담긴 전통예술의 하나가 서예일세. 서예의 우수성을 알고 익힘으로써 민족의 우월성과 자긍심을 깨닫고, 나아가 인격의 완성을 도모하세 그려. 그리고 점획을 마음먹은 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붓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붓을 이겨내야 하네. 그래서 여기에 글자를 쓰기에 앞서 흥미를 돋울 여러 가지 모형을 제시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익혀 보게나. 어때? 획기적인 방법이라 생각되지 않나? 그리고 글씨를 쓰다가 지루할 때는 비디오를 통하여 의욕을 불살라 보게. 이문열 원작의 ‘금시조’와 ‘서예 실기 강좌’ 테이프 3개를 소개하네. 먹가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먹물도 생산되고 있으니 사용해 보게나. 서예 학습 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나의 생각을 도표로 그려 첨부하네. 혼자서 익히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을 걸세. 흰 종이를 보고 마음을 정화하고, 먹을 갊으로써 마음밭을 갈며, 붓을 움직임으로써 중심을 잃지 않고, 글씨를 한자한자 정성스럽게 써 나감으로써 마음의 때를 씻는 이치를 깨우치기 바라네. 환절기에 몸조심 하게나. 새봄에 훌륭한 붓글씨로 달라진 자네와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이만 줄이네.
을해년 겨울의 문턱에서 상호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