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서예는 왜 세로쓰기를 하는가?

왜 한문은 구라파 제어와 달리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쓰는가? 이런 질문을 이메일로 받은 적이 있고, 우리 대구서학회 모임에서도 의견을 타진해 본 적이 있습니다. 본인의 넉두리라 생각하고 다같이 생각해 봅시다.

1. 고기에 비늘에 방향이 있듯이, 사람 머리카락에 조차도 결이 있듯이 갑골문의 재료가 되었던 거북의 배뼈나 소의 견갑골에도 결이 위에서 아래로 있다. 따라서 칼질을 할 때에 자연히 가로 그어 나가는 것보다 세로로 그어 나가는 편이 쉬었을 것이다. 그것이 일차적 세로쓰기의 이유라고 생각된다.

2. 획일화된 橫書文化의 홍수 속에서도 서예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 청람 전도진 선생의 경우 한자 및 한글의 횡서 쓰기 연구가 깊음 - 전통적인 종서쓰기로 일관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東洋哲學的인 견지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3. 天地의 운행과 上下尊卑의 개념상으로 左보다는 右를 下보다는 上을 높게 생각해 왔다. 이는 동양철학의 근간인 干支의 개념과 理數 철학과도 무관하지 않다.

4. 동양철학의 개념상 縱은 經이요, 天이며, 橫은 緯요 地이다. 따라서 縱書 곧, 세로쓰기가 橫書 곧, 가로쓰기에 우선한다. 그러므로 종서로 글씨를 쓰거나 책을 펴냄은 天尊地卑인 순서를 밝힘이다.

5. 右始左終 곧, 오른쪽에서 글을 시작하여 왼쪽에서 끝맺음은 天道左轉의 순리에 따른 것이다. 주역의 근간인 元亨利貞의 四時循環도 이와 같이 右始左終이다.

6. 광복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양에서 발달한 편의위주의 횡서문화가 물밀듯이 들어와 오천년 동안 사용하던 세로쓰기의 전통이 사라져 버렸다. 이는 조선 사람이 조선옷 입고 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이치와 같다고 본다.

7. 가로쓰기 문화에 젖은 오늘의 교육현실은 결국 동방예의지국의 아름다운 수직윤리를 땅에 떨어뜨리고 長幼有序의 천리가 사라진 기막힌 세상을 만들고 말았다. 이 땅에는 가로쓰기 일색으로 인한 水平倫理만이 팽대해져서 上下尊卑의 위계질서는 이제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8.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다는 말도 이러한 사회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나아가 동료는 있어도 상사는 없는 무례천지가 되어 버린 이유는 횡서문화가 끼친 해독이 크다고 볼 수 있다.

9. 가로쓰기 책을 읽으면 고개가 부정적으로 가로저어지며, 세로쓰기 책을 읽으면 자연히 고개가 긍정적으로 끄덕여짐을 보아도 예절교육상 세로쓰기가 올바르지 않겠는가?

10. 일간스포츠에 청소년 악필 문제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내용 중에 가로쓰기로 인하여 세로획에 신경을 덜 쓰게 되어, ㅣ, ㅏ, ㅐ, ㅑ, ㅒ, ㅓ, ㅕ, ㅖ, ㅘ, ㅙ, ㅝ, ㅞ, ㅟ, ㅢ 등의 세로획이 있는 모음자를 쓸 때, 자음보다 작게 쓰는 현상을 흔히 볼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자음을 모음보다 크게 씀으로 인하여 부모보다 자신을 더 크게 보는 고약한 인식이 은연 중에 몸에 배어 나타난 것이다.

11.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니, 오른손과 가까운 곳에서 시작함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하지만 오른쪽에서 쓰기 시작하면 문제는 먼저 쓴 글자가 내 오른손에과 팔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右始左終은 미리 쓴 내용이 오른팔에 가려서 시각적으로 방해받지 않고 쓰는 순간은 항상 깨끗한 지면을 대하게 된다는 잇점이 있다.

12. 우리말에서, 오른쪽(손, 팔, 일)'의 '오른'은 '옳다'는 뜻에서 왔다고 본다. 상대적으로 '왼쪽'의 '왼'은 '그르다'는 말에서 왔다. 그렇다면 '옳다'는 것이 '외다'는 것보다 선행할 것이고, 따라서 오른쪽 위에서 시작하여 왼쪽 아래로 쓰는 일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13. 한문의 '右(오른 우)'자는 '口'자가 붙어있으므로, '밥먹는 손'이란 뜻이 있고, '左(왼 좌)'자는 '工'자가 붙어있는 것을 볼 때, '일하는 손'이란 뜻이 있다. 그러면 일보다 먹는 일이 응당 우선이라고 본다.

14. 또 '右'자에는 '위, 숭상하다'는  의미가 있고, '左'자에는 '아래, 멀리하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右가 左보다 선행하지 않는가?
15. 그리고 소중한 일은 대개 왼손보다 바른손으로 한다. 그러니 바른손쪽에서 글씨를 쓰기 시작함은 당연한 사실이 아니겠는가?

16. 소학 책에도 글씨를 바른손으로 쓰도록 가르치고 있다.

17. 더러는 右始左終의 근거로 竹簡說을 들고 있기도 하다. 1번 항목의 이유와 상통한다고 보지만 그 원초적인 이유는 앞선 시대에서 근거를 찾아야 하리라고 본다. 갑골문에서 어디 가로쓰기가 있던가?

두고두고 생각해 볼 일이다.
江湖諸賢의 고견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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