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학교 서예교육 진단서(월간 '서예문화' 2000년 6월호 기고 내용)

  인간은 문자를 사용하면서부터 문자를 보다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노력해 왔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서체가 만들어지고, 각 서체의 연마를 통하여 정신의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선인들은 이처럼 서예의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여 서예를 필수과목에 넣어 六藝의 하나로서 비중있게 가르쳤다. 그러나 지금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미술교과 속에  명목상의 서예 시간이 있기는 하나 학생들의 장래에 가시적인 도움이 안되어 천대받고 있다. 따라서 아직 형식은 죽지 않았으나 내용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이므로 식물예술이라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제6차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의거한 서예 교과서 편찬의 기본 방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건강한 사람,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도덕적인 사람을 만든다. 
  둘째, 인간성 회복을 위한 도덕성, 바른 역사관, 민주시민의식과 창의성을 등을 강조한다.
  셋째, 교육의 질 관리에 실효성 있게 활용될 수 있도록 교수·학습 자료로서의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넷째, 학생의 개성과 능력에 따른 다양한 지도와 생활 교육 및 자율 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서예 교과서의 집필상의 유의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학교와의 연계성을 고려하여 내용을 선정한다.
  둘째, 한글 중심으로 지도하되(전체의 3분의 2정도), 혼서체, 반흘림, 진흘립 등은 감상 중심으로 제시하고, 한자의 경우는 여러 가지 서체의 기본적인 표현 활동을 다루되 행서와 초서는 우리 나라 작품에 대한 감상 자료를 많이 제시한다.
  셋째, 전각은 한글, 한문으로 음각과 양각의 특징을 살려 표현한다.

  이상의 고상한 뜻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현직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나는 공동저자인 김양동 교수님의 탁월한 서예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나의 현장 체험을 살려 서예 교과서 집필에 들어갔다.
  서예는 전통예술 중에 가장 비중있고 격조 높은 예술의 하나이다.
빠르고 자극적인 문화에 젖어있는 학생들이 여유로움에서 나오는 예술의 하나인 서예를 톹하여 심성을 닦는다면 환상적인 정중동의 황금비율을 누리며 살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정서 순화의 최고 수단이 서예라는 확신을 갖고 고등학교 서예교과서를 의욕적으로 써 내려 갔다.
  그리고 n세대들의 기호에 맞게 서예 관련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개설 운영하여 '서예 교실'란을 마련하였다. 만나는 서예가들에게 인터넷을 통한 서예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또 홈페이지를 만들 것을 권장하였다. 많은 친구들 또는 단체에 서예 도메인 명을 나눠주거나 접근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우리 두산동아에서 출판한 교과서에서는 서예와 보다 친숙해 지기 위한 방법으로 자유로운 붓질을 강조하고 있다. 붓질을 통한 학습동기 및 흥미유발을 가장 우선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도1). 그리고 한국 서예 사적 지도를 국내 처음으로 작성하여 문화 여행시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도2). 

  생동감이 넘치는 글씨를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붓이 손에 익어야 하며, 붓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종국에는 붓을 이겨내야 한다. 손에 쥐고 다닌다 해서 동양에서는 핸드폰이라 하듯이, 비록 글씨를 쓰는 때만이 아니더라도 서예를 즐기려면 항상 손에 붓을 붙잡고(붓잡고) 다녀야 한다. 곧 핸드붓이 되어야 한다. 붓의 생활화, 그것은 우리들의 신념이었다. 

  각급 학교마다 서예 교과서는 선택적이어서 미술 교사의 의사에 따라 채택되지 않을 수도 있고, 또한 채택이 되었더라도 미술교사의 개인적인 무관심으로 인하여 수업시간으로부터 소외되고 교육되지 않는 수가 많다. 대학 입시 경쟁이 상당히 완화되었지만 고등학생이 서예를 가까이 하기엔 현실적으로 너무나 거리가 멀다. 차라리 펜글씨나마 손 기능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 가르친다면 몰라도, 깔개 깔고, 먹을 갈아야 하는 등의 불편함을 이겨낼 만한 학생은 흔치 않다. 

  이상하게도 '조선 사람이 조선옷 입고 가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전통 문화를 사랑하고 생활에 실천하는 사람이 남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아름답게 비춰져야 하건만 오히려 옹색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일회성의 자극적인 문화에 젖어든 젊은이들이 서예에 탐닉하기란 쉽지 않다. 다시 말하면 서예의 세대 단절이 눈앞에 온 듯하다. 

  학교에서 졸업장이나 상장, 교훈이나 급훈 등을 붓글씨로 쓰던 시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이젠 이런 일의 대부분을 컴퓨터가 대신하고 있다. 길거리의 현기증 나는 간판의 대부분이 컴퓨터가 지원하는 글꼴들이다. 모든 여성들이 반드시 겪어야만 했던 길쌈하는 일이 지금은 인간문화제로 지정 보호받고 있듯이, 앞으로 몇 년 안 가서 서예인도 그런 처지를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서사 생활이 편리 위주로 바뀌면서 손끝에서 우려내는 서예는 실용성을 떠나 순수 예술로서만 남았다. 일상생활의 보조수단으로서의 실용서예의 위상은 이제 사라졌다. 

  6차 교육과정에서는 서예가 교과서로나마 독립하였으나, 7차 교육과정에서는 미술교과서의 일부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니, 교육 장르로서의 서예 운명은 가히 風前燈火라 할 수 있다. 교과 내용이 축소, 전문화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제2외국어 선택 마냥 음악, 미술, 체육, 서예 등의 예체능 교과도 학교 재량으로 택일하여 교육할 수 있다면 오히려 내실있는 서예 교육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대학 서예과 졸업생도 구제할 겸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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