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미리내 (경희대학교 대학원보)

   * '경희대학교 대학원보'에 기고된 내용입니다.

미리내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한번은 국어사전을 뒤적이다가 ‘미-’로 시작하는 부분에서 꽤 오랜 동안 눈을 붙인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토박이말의 예로 흔히 쓰이는 ‘미리내’라는 단어의 ‘내’라는 음절을 ‘네’로 쓰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옳았다. 미리내는 하늘에서 흐르는 전설상의 내[냇물]이니까 미리내로 쓰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은하수(銀河水)라는 한자어에 대하여 이에 상응하는 토박이말이 미리내이다. 은하(銀河)란 서울의 흐린 하늘과 밝은 야경의 조건 하에서는 잘 볼 수 없다. 그나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비가 뚝 그치고 산뜻하게 갠 날 밤이라면, 하늘에 흰 구름 띠 모양으로 길게 남북으로 펼쳐져 있는 은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수많은 행성의 무리라고 과학 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는 터이다. 그런데 그 모양이 마치 은빛 나는 강물처럼 보이니까 한자어로는 은하(銀河)에 水자를 덧붙여 은하수(銀河水)라고 하는가 보다. 실은 河자만 가지고도 강물의 의미를 충분히 나타낼 수 있는데, 강물을 강조하다가 보니 水자를 덧붙인 셈이다. 따라서 토박이말에서도 역시 냇물이라는 뜻의 내자를 붙여서 쓰려니 했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내의 문제가 아니라 미리내의 첫음절 ‘미’자에 쏠리기 시작했다. ‘미-’로 시작하는 다른 몇몇 단어들을 살펴 본 바 ‘미’도 혹시 물이라는 말의 원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미’자로 시작하는 토박이말들을 일일이 메모하고 그 의미의 공통성을 유추해 보기로 하였다.

 

이를터이면 ‘물에서 자라는 나리’이므로 ‘미나리’, 물을 휘젓고 다니는 말썽꾸러기이니까 ‘미꾸라지’, 물에 타먹는 가루이기에 ‘미숫가루’, 하늘에서 흐르는 강물이라서 ‘미리내’라고 부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더욱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물의 본성이 미끄러우므로 ‘끌거나 끌리기 쉽다.’에서 ‘미끄럽다·미끄러지다·미끄럼·미끄럼틀·미끌미끌·미끈미끈·미끈하다’ 등의 낱말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물에서는 잘 미끄러지므로 ‘미루적미루적’ 또는 ‘미적미적’과 같은 부사가 나타나고, 그처럼 ‘미적거리거나 미루적거리는 사람’을 ‘미련쟁이’라 부르며, 그런 미련쟁이라면 일을 온통 미루다가 말 것이다!

 

물은 미끈하여 흠이나 거침새가 없다. 그리하여 물은 매우 길다. 길다는 뜻의 ‘永’자가 ‘水’자에서 만들어졌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永자의 윗점[]은 물의 근원을 나타내고 물이 길게 흘러가니까 水자의 머리를 구부려 놓았을 뿐이다. 혹시 이런 물의 성질에서 밋밋하다는 말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그윽이 흘러가는 물과 밋밋하게 자란 대나무의 이미지는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해물잡탕을 먹다가 ‘미더덕’을 건져 먹어 본 사람이라면 속에 고였던 뜨거운 물이 찍 하고 터져 나와서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미역 역시 미끌미끌한 바닷말의 일종으로서 물과는 떨어질 수 없는 낱말이다. 미역은 말렸다가도 물에 불려서 먹는 게 보통이다. 우리는 ‘시험에 떨어지거나 직장 같은 데서 떨리어 나가는 것’을 통상 ‘미역국 먹었다’고 표현한다. 왜 하필이면 미역국 먹었다고 그럴까? 미역은 물과 같이 미끄럽게 생긴 식물이고, 미역국은 미역에서 우러나온 국물이다. 미역국이란 말의 속성에는 ‘미끄러지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역국 먹었다’는 말은 물보다 더 미끈미끈한 미역의 속성 때문에 생겨난 말이라고 짐작된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어린 시절 냇물에 뛰어 들어가 미역을 감던 추억을 모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때의 ‘미역·미역감다·멱감다’도 강물에 몸을 담그고 씻거나 노는 짓을 일컬으며, 따라서 미는 물이라는 말의 원형이라는 사실이 더욱 뚜렷해진다.

 

물의 중세 표기는 ‘믈’이다. 이기문씨는 물을 뜻하는 신라어의 ‘勿()’과, 고구려어의 ‘買()’는, 이웃하고 있는 몽골어, 퉁구스어, 만주어 등에서 물을 의미하는 여러 말과 더불어 그 계통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 중종 때, 최세진이 지은 한자 학습서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3360자의 한자를 사물에 따라 나누어 한글로 음과 뜻을 달아 놓았다. 이 책에서 龍자를 ‘미르 룡’이라 적고 있는데 이는 용이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감안할 때, 미라고 하는 말은 물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해 준다. 일본어에서 물을 ‘미즈’라고 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지구 표면의 4분의 3을 물이 차지하고 있다. 인간의 몸도 3분의 2가 물이다. 물은 지구와 우리 몸을 정화해 주는 동시에 갑작스런 온도 변화를 막아 준다. 물의 역할과 그 기능은 실로 엄청나다. 인류 문명의 발생도, 오늘날의 도시 형성도 물을 떠나서는 불가능하다. 인간이 사는 마을을 동네라고 쓰고 있는데, 물 없이 동네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감안할 때, 동네는 동내로 써야 옳지 않을까 한다. 마을 동()자를 살펴보면 지나친 발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동()’은 ‘동굴’을 나타내며 그 옆에는 ‘물[]’이 붙어서 흐르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중요한 물이기에 우리 선조들은 정화수(井華水)를 떠 놓고 치성을 드렸고, 용왕님께 물의 풍요를 기원하기도 했다. 물을 생명의 기원으로 보고 신으로 받들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물이 죽어가고 있다. 문명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물을 기원의 대상이 아니라 물을 오직 이용의 대상, 가치 창조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이는 곧 물에 대한 인간의 공경심에 변화를 가져 왔다. 공경은커녕 물로써 욕하고, 물로써 많은 죄를 짓고 있다. 하는 짓이 싱겁고 야무지지 못한 사람을 가리켜 맹물이라 하고, 줏대가 없는 사람을 지칭하여 ‘물 같은 놈’이라 일컫는다. 이러한 얘기를 대만서 온 유학생에게 일러주었더니 중국말에서도 바람난 여자를 일컬어 ‘화수(禍水)’라고 하는 등 물을 나쁜 쪽으로 표현하는 예가 있다고 했다.

 

이러한 언어 습관의 변화는, 물을 신으로까지 극진히 받들었던 조상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분명히 水神에 대한 절대 모독이다. 水神님을 아예 맹물로 보는 것이다. 큰일이다. 머지않아 수신님의 진노(震怒)함을 받고 인류가 고생깨나 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물을 물 쓰듯 해서야 어디 쓰겠는가? 이러다가는 인류의 멸망도 밤에 불 보듯 빤한 일이다.

 

따스한 물에 몸을 담그자. 그리고 마음 문을 열고 차분히 생각해 보자. 어머니 뱃속 양수 속에서 평화롭게 유영하던 때를.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