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처벌에 대한 새로운 관점

處罰에 對한 새로운 觀點

  심리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은 도덕적으로나 과학적 근거에서 벌이라는 말은 싫어하고 반대하였다. 전자의 근거로는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다루는 것이고, 후자의 근거에서 보면 일시적 억압,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중지하라는 경고에 불과하며, 회피나 도피행동을 조장했고, 자발성과 융통성을 상실하게 하며, 용납할 수 없는 생동을 고친다는 것이 반대로 그르친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심리학자들은 벌과 같은 제재 방법이 적절하게 적용되기만 한다면 인간의 부정적 행동을 교정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Clarizio는 행동 수정을 위해서는 벌은 불가피한 도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Fritz Redl은 벌은 제공자와 받는 자 간의 역동적인 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유는 동일한 벌이라도 벌을 주는 어른과 벌을 받는 아동의 입장에서 그 의미가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1. 처벌에 반대하는 이유.
  벌이란 어쩌면 인간 교육에서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벌은 능률성과 효과성이라는 기준에 의하면 여전히 인간 행동을 수정하는 수단으로서 가히 감탄을 자아낼 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처벌은 도덕적이고 과학적인 이유에서 거부당하고 있다.

  ◉ 처벌을 반대하는 도덕적 근거
  우선은 처벌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살펴 보면 잘못을 나무라고 형벌에 처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어감부터 우선 기분이 매우 좋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도덕적 견지에서 처벌이라는 말 속에는 비인간적 대우, 부정적 태도, 적대적 행위 등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처벌이 성공적이라고 함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떤 일 강제적으로 하게 함을 뜻한다고 말한다.

  ◉ 처벌을 반대하는 과학적 근거
  전통적으로 행동 수정의 한 방법으로서 사용된 처벌에 대해 과학적인 입장에서 반대론이 제기되고 있다. 행동 수정의 한 수단으로 벌이 사용될 때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본다. 벌은 특히 남이 보는 앞에서 제공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다양하고 복잡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세심한 주의와 기술이 필요하다.
  ① 벌의 단기 효과 : 벌은 부적응 행동을 잠시 억제할 뿐, 장기적 안목에서 보면 부적응 행동을 제거하지 못한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부적응 행동은 재발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② 벌은 올바른 행도의 지도가 아님 : 벌은 좋지 못한 행동을 중지하라는 경고에 불과하기 때문에 벌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 가르쳐 주지 못한다. 학생들은 질책하는 교사가 자신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소란한 학습분위기를 바꾸는 방법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다.
  ③ 도피와 회피 행동 : 벌의 부작용 중 가장 큰 것은 도피 행동의 발달이다. 인간은 본래 불쾌감을 주는 사람이나 상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도피행동이나 회피행동(무단결석, 거짓말, 부정 행위, 복장 위반, 수업 시간의 소란행위 등)은 한번 형성되면 교사나 부모 등 벌의 제공자를 계속 기피하게 된다.
  ④ 행동의 위축 : 벌은 또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의 억제와 사고나 행동의 경직성을 초래할 수 있다. 가혹한 벌이 오랜 기간 지속될 경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억제하거나 또 자발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 처벌이 다른 측면의 행동에까지  과잉일반화되면 학생의 적응상태는 더욱 융통성을 잃고 만다.
  ⑤ 나쁜 본보기의 설정 : 교사의 말과 행동간에 혹은 직접적인 지도와 간접적인 지도 사이에 모순되는 경우가 많다. 부지불식간에 부모와 교사들은 아동들이 삼가하기를 바랬던 행동을 자기 자신이 행함으로써 아동들에게 나쁜 본보기를 보여주게 된다.

  처벌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제한들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처벌과 같은 부정적인 제재 수단이 잘 운용되기만 한다면 아동의 부적응 행동을 제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2. 벌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벌은 학생의 현재의 행동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행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잘 배려해서 가해져야 한다. 벌은 교사나 부모들에게 감정으로 정화, 곧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의 행동을 수정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므로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또 벌은 벌은 힘을 가진 자가 다른 사람에게 행사하는 힘이나 권리의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事必歸正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벌은 자연적 · 논리적 귀결이요, 因果應報라고 인정하고 인식할 때 효과가 있다. 이러한 때에 벌의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다. 따라서 벌이 주어질 때에 교사의 태도나 역할은 마음 속에 아동을 위하고 아끼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교사의 진실성의 척도는 교사의 語調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만일 부모나 교사가 화를 내거나 이성을 잃었을 때는 벌써 벌을 줄 수 있는 자격을 상실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벌을 주는 자는 먼저 냉정을 찾고 이성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사가 처벌을 사용할 때에는 一貫性이 있어야 한다. 표적행동이 나타날 때마다 벌을 주는 것이 이상적이다. 또한 벌을 주기 전에 한번의 경고나 신호를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벌을 줄 필요 없이 한번의 경고만으로도 충분할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벌의 강도는 효과를 경정하는 요인이 되는데, 벌은 엄격할 때 효과적이다. 높은 강도의 벌을 단기간에 경험하는 것이 약한 벌을 장기간 받는 것보다 더 인간적이고 효과적이다. 물론 엄하고 강한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처벌의 합리성, 확실성, 즉각성 뿐만 아니라 처벌하기에 앞서서 조건을 다는 것도 중요하다.
  처벌의 시기 역시 그 효과를 가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쁜 행동이 시작되는 시초에 벌을 받은 아동은 그 행동이 끝난 후에 벌을 받은 아동보다 그와 유사한 휴혹에 저항하는 강도가 높았다.
  벌은 자기 통제력을 배양시킬 수 있도록 사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신의 행동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여 자기 통제 능력을 촉진시켜 주기 때문이다.
  끝으로 처벌의 사용이 교사의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빼앗아서는 안된다. 그런 경우 오히려 벌을 주기 전보다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도 있다.

  <의견> “良藥苦口而利於病”이란 말이 있다. 좋은 약이 입에는 쓰나 병을 낫게 하는 데에는 이롭다는 뜻이다. 벌을 받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될 때, 다시 말하면 설득력 있는 근거가 있다면 벌은 쓴 약과 같아서 우선은 처벌 제공자나 처벌 받는 자 상호간에 기분이 나쁠 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좋은 결과를 충분히 낳을 수 있다고 본다. 학생의 잘못을 보고 그냥 방치한다면 어쩌면 평생 부적응아로 전락하여 고통을 받을 지도 모르지만 성장과정에서 적당한 처벌을 통한 행동 교정을 기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벌이 비인간적이라면 왜 모든 나라에서 교도소를 만들고 사회적으로 범법을 행한 자들을 그 속에 집어 넣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선 一罰百戒의 효과가 크다고 본다. 주위의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그에 따른 적절한 벌을 받게 되는 것을 보고, 자신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하게 된다. ‘他山之石’이라는 관용어가 여기에 어울리는 말이겠다. 물론 ‘模倣犯罪’라는 역기능이 있음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지나치게 법망을 좁게 만들어, 범법자들을 많이 잡아들이는 것도 좋지 않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시인하기보다 오히려 사회나 정치에 대하여 혐오감만을 더 갖게 되고, 또 재삼 또 다른 죄를 저지르게 되어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그런데 교도소라는 호칭의 원래 어휘는 ‘監獄’이다. 감옥이라 하면 감시를 당하는 상황에서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의 개념이다. ‘獄’이라는 글자를 보면 말이라도 하면 개들이 양쪽 가에서 물어 뜯을 지경이다. 그리하여 새로 만들어 쓰던 말이 ‘刑務所’이다. 형무소 역시 어감이 썩 좋지 않다. 형벌을 지었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복역해야 하는 장소라는 개념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矯導所’라는 말은 바라잡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곳이라는 뜻이니, 어감이 상당히 좋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학습자가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교사가 사용할 언어를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되도록이면 長點을 伸張하고 短點은 감싸 주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하나의 自然石이 있다고 하자. 그 돌은 아무렇게나 생겼다. 그래서 울퉁불퉁하다. 어떤 곳을 튀어 나오고 어떤 곳은 쑥 들어가 있다. 돌의 튀어 나온 부분을 단점이라고 한다면, 돌의 들어간 부분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보면 돌의 뾰족한 부분은 사람에 비유하면 단점에 해당하고, 돌의 옴푹 들어간 부분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돌을 둥글게 만들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대개의 경우 뾰족한 부분(단점)을 갈거나 잘라서 둥글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다시 말하여 사람의 단점을 잘라서 둥근 원만한 인가으로 만들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역으로 돌의 들어간 부분(장점)에 흙이나 시멘트를 붙여서 쉽게 둥글게 만들려고 왜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게 하기는 전자보다 훨씬 더 쉽고, 다 만들어진 둥근 돌은 처음의 돌보다도 훨씬 더 크고 무거운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남의 단점을 척결하여 원만한 인간을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대로 한 인간의 장점을 신장하여 품위 있는 인간으로 만들기가 더 쉽고, 또한 원래보다 더 무게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는 되도록이면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눈으로 학생을 관찰하고, 학생의 장점을 찾아 인정해 줄 때 인간 교육의 효과가 더 크리라고 본다.
  일단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칭찬을 아끼지 말자.
  “See the bright 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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