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문인화 정신과 대리 배설

  대망의 밀레니엄을 환호하며 신세기를 맞이한 지도 어언 3년이 지났다. 모든 일들이 황금의 행복 빛깔로 다가올 줄로만 믿었으나, 세계는 더 큰 전쟁으로 얼룩지고 국내는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을 동시에 겪고 있다. 지난해의 월드컵 축제로도 채워지지 않는 알 수 없는 허전함과 공허감만이 가슴을 채우고 있다.

  따라서 건축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것을 리모델링해야 한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급기야 인간도 리모델링해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들려오곤 한다. 노대통령도 대통령직을 리모델링하고자 재신임을 요청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우리 묵객들은 시대가 어려울수록 이른바 '문인화 정신'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난관을 지혜롭게 극복해 왔다. 문인화 정신이란 대상의 외형보다는 寫意性(사의성-그림에서, 사물의 형태보다는 그 내용이나 정신에 치중하여 그리는 일)과 象懲性(상징성-그림에서, 사물의 구체적인 형상보다는 그 사물이 지니고 있는 추상적인 개념을 중시하여 그리는 일)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문인화 정신이란 19세기 추사 김정희에 이르러 우리 민족 고유의 선비 정신이 실학사상과 만나 꽃을 피운 새로운 화풍이다. 그 힘찬 맥은 오늘날까지 우리 문인묵객의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중국과 일본에도 없는 우리만의 문인화라는 특별한 장르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문인화 장르는 서예의 굴레에서 벗어나 동양화와도 구분되는 독특한 예술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文字香 書卷氣(문자향 서권기)의 이념을 바탕으로 法古創新(법고창신)의 찬란한 열매를 맺고자 오늘도 많은 문인화 작가들은 창가에서 먹을 갈고 마음의 길을 잡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세간에는 스와핑이란 전대미문의 로마 말기적 엽기 섹스 현상으로 시끌하다. 더 즉흥적이고 좀더 말초적이고 더욱더 자극적인 문화로 빠져들고 있는 현실이 가슴을 도려낸다. 그대는 우리 후손들에게 어떤 이미지의 세대로 남고 싶은가.

  가을이다. 상큼한 햇살과 깨끗한 계곡물의 대화가 정겹다. 목욕재계하고 정갈한 차림으로 문방사우와 더불어 서재에 앉아 보자. 단단한 먹으로 깔깔한 벼루를 소리없이 애무해 보자. 변화무쌍한 붓으로 부드러운 화선지를 凌辱(능욕)?해 보자. 먹군과 벼루양, 붓군과 화선지양의 환상적인 만남. 굳이 대리 배설이라 말하지 않더라도 예술의 외설적 속성은 인정해야 한다.

  작품이라는 정신적 자녀를 낳아 후손들에게 문화 민족으로서 긍지를 깊숙히 심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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