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아름다운 사람으로서의 선비

 

2. 아름다운 사람으로서의 선비

    - 현대적 의미의 선비 사례 -


                                                                                            서울     권상호

  ‘아름다운 사람’ 곧 ‘선비’란 처한 시간과 공간에 가장 잘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어떤 시간적, 공간적 배경에 자리매김하고 있을지라도 자신이 있음으로써 그 시간 즐겁고, 그 공간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선비라고 불러주고 싶다.

  철을 아는 사람을 ‘철든 이’라고 하나, 철을 모르는 사람은 ‘철부지’라 한다. 철든 이는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거둬들이지만, 철부지는 겨울에 파종하고 여름에 거둬들이는 식이다.

  선비는 철든 이이다. 선비가 없으면 그 시간 재미없고, 그 공간 아름답지 못하다. 그래서 선비는 어떤 자리에서든지 기다려지는 사람이다. 선비가 있어 즐겁고 아름다운 자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아는 대표적인 선비의 사례를 들어볼까 한다.

  우선 나에게 철학을 깨우쳐 주신 경주의 소천 박영호 선생이시다. 선생께서 자주 쓰시는 말씀 중 두 가지만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가난해도 좋다. 부자면 더 좋다 라고 생각하자. 만약 가난이 악(惡)이고 부자가 선(善)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뜨리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전쟁은 끊어질 날이 없다.”

  “남편을 왕으로 대접하면 내가 왕비 대접을 받고, 남편을 머슴 취급하면 나는 머슴의 아내가 된다.”

  전자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관용적 삶의 모습을 말하고 있고, 후자는 인간 만사가 모두 제 하기 나름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 분은 오늘도 나눔의 미학의 정점에 서 계신다.

  다음은 김진홍 목사를 선비의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1%의 흠 때문에 99%의 성한 것까지 버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경고하고 있다. 설교 교탁 밑 부분에 쥐가 구멍을 뚫어 볼품없다고 성도들이 모두 새것으로 바꾸기를 요구했으나, ‘구멍 하나 외엔 나머지 부분은 멀쩡한데 왜 버리느냐?’ 하고 도리어 반문하고 있다. 지구가 9개라도 모자랄 정도의 현대인의 과소비 풍조와 그에 따른 환경 파괴를 염려하시는 목사는 이 시대에 걸맞은 진정한 선비이시다.

  또 어렵사리 국회에 들어갔다가 상식과 너무나 다른 일 처리와, 당리당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소신과 정반대되는 사안에도 그냥 따라가는 집단 이기주의 행태를 여의도에서 보고 국회의원직을 기꺼이 사퇴한 서울대학교 박세일 교수도 이 시대의 보기 드문 선비라고 볼 수 있다.

  한자로 선비에 해당하는 글자는 ‘士’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一]에서 열[十]까지 다 아는 사람을 지칭한다. 선비는 결코 학덕(學德)만 높은 사람이 아니다.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이다. 선비는 순우리말이지만 이를 구태여 한자로 가차한다면 ‘선비(先備)’라고 표현하고 싶다. 곧 불확실한 미래를 내다보고 ‘먼저 준비하는’ 사람으로 풀이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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