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학교 서예 교육, 生死 확인서

-2000. 5 월간 <서예문화> 기고

학교 서예 교육, 生死 확인서


                                                                       도정 권상호


  인간은 문자를 사용하면서부터 글자를 보다 아름답게 나타내고자 노력해 왔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서체가 만들어지고, 우리는 각 서체의 연마를 통하여 정신의 풍요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옛날에는 六藝의 하나로서 서예를 필수과목으로 인식하여 비중 있게 가르쳤다. 그런데 지금의 초․중․고등학교에서도 명목상의 서예 시간이 있는 걸 보니, 그나마 서예란 인류문화의 자식 놈이 아직 죽지는 않고 식물인간으로 남아있는가 보다.


  현재 진행 중인 제6차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의거한 교과서 편찬의 기본 방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건강한 사람,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도덕적인 사람을 만든다.

  둘째, 인간성 회복을 위한 도덕성, 바른 역사관, 민주시민의식과 창의성을 등을 강조한다.

  셋째, 교육의 질 관리에 실효성 있게 활용될 수 있도록 교수․학습 자료로서의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넷째, 학생의 개성과 능력에 따른 다양한 지도와 생활 교육 및 자율 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서예 교과서의 집필상의 유의점의 대강을 살펴보면

  첫째, 중학교와의 연계성을 고려하여 내용을 선정하고,

  둘째, 한글 중심으로 지도하되(전체의 3분의 2정도), 혼서체, 반흘림, 진흘림 등은 감상 중심으로 제시하고, 한자의 경우는 여러 가지 서체의 기본적인 표현 활동을 다루되 행서와 초서는 우리나라 작품에 대한 감상 자료를 많이 제시하며,

  셋째, 전각은 한글, 한문으로 음각과 양각의 특징을 살려 표현하도록 되어 있다.


  현직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나는 공동저자인 김양동 교수님의 탁월한 서예 이론을 바탕으로, 나의 현장 체험을 살려 서예 교과서 집필에 들어갔다. 전통 예술로서의 비중 있는 서예를, 빠르고 자극적인 문화생활을 즐기는 학생들에게 정화 수단으로서의 서예가 매우 좋을까 싶어 의욕적으로 집필에 임하였다. 그리하여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순서를 세우고, 최근의 교육 공학적 접근 방법까지 생각하여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개설 운영하고 있다.

  생동감이 넘치는 글씨를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붓이 손에 익어야 하며, 붓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종국에는 붓을 이겨내야 한다. 손에 쥐고 다닌다 해서 핸드폰이라 하듯이, 비록 글씨를 쓰는 때만이 아니더라도 서예를 즐기려면 항상 손에 붓을 붙잡고(붓잡고) 다녀야 한다. 곧 핸드 붓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과서에서는 서예와 보다 친숙해 지기 위한 방법으로 자유로운 붓질을 강조하고 있다. 붓질을 통한 학습동기 및 흥미유발을 가장 우선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도1). 그리고 한국 서예 사적 지도를 국내 처음으로 작성하여 문화 여행 시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도2).

  각급 학교마다 서예 교과서는 선택적이어서 미술 교사의 의사에 따라 채택되지 않을 수도 있고, 또한 채택이 되었더라도 미술교사의 개인적인 무관심으로 인하여 수업시간으로부터 소외되고 가르쳐지지 않을 때가 많다. 대학 입시 경쟁이 상당히 완화되었다 하더라도 고등학생이 서예를 가까이 하기엔 현실적으로 너무나 거리가 멀다. 차라리 펜글씨나마 손 기능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 가르친다면 몰라도, 깔개 깔고, 먹을 갈아야 하는 등의 불편함을 이겨낼 만한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

  이상하게도 ‘조선 사람이 조선옷 입고 가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전통 문화를 사랑하고 생활에 실천하는 사람이 남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아름답게 비춰져야 하건만 오히려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는 일은 왠 일인가. 일회성의 자극적인 문화에 젖어든 젊은이들이 서예에 탐닉하기란 쉽지 않다. 다시 말하면 서예의 세대 단절이 눈앞에 온 듯하다.

  학교에서 졸업장이나 상장, 교훈이나 급훈 등을 붓글씨로 쓰던 시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이젠 이런 일의 대부분을 컴퓨터가 대신하고 있다. 길거리의 현기증 나는 간판의 대부분이 컴퓨터가 지원하는 글꼴들이다. 모든 여성들이 반드시 겪어야만 했던 길쌈하는 일이 지금은 인간문화제로 선정 보호받고 있듯이, 앞으로 몇 년 안 가서 붓글씨 쓰는 사람조차도 인간문화제로 지정될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서사 생활이 편리 위주로 바뀌면서 손끝에서 우려내는 서예는 실용성을 떠나 순수 예술로서만 남았다. 일상생활의 보조수단으로서의 서예의 위상은 이제 사라졌다.

  6차 교육과정에서는 서예가 교과서로나마 독립하였으나, 7차 교육과정에서는 미술교과서의 일부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니, 교육 장르로서의 서예 운명은 가히  風前燈火라 할 수 있다. 교과 내용이 축소, 전문화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제2외국어 선택 마냥 음악, 미술, 체육, 서예 등의 예체능 교과도 학교 재량으로 택일하여 교육할 수 있다면 오히려 내실 있는 서예 교육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대학 서예과 졸업생도 구재할 겸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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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靑禾
잘 읽었습다. 공감합니다. 그것이 구제 되면 나도 구제 되는건데 아쉽네요.
권상호
오래 된 글이지만 버리기엔 아까워 올려놓았지요.
올린 보람이 있군요. 감사함다.
이진숙
선생님!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가끔들러 많은것 배워 나가겠습니다.
권상호
고맙습니다. 덕분에 힘을 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