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以經得智(이경득지) - 경험으로 얻는 지혜

 以經得智(이경득지) - 경험으로 얻는 지혜


                                                               권상호


어린 시절에 읽고, 성인이 되어서는 여러 차례 가르치기도 했던, 내 영혼의 길라잡이 <명심보감>에 이르기를

“不經一事(불경일사)면 不長一智(부장일지)니라.”

라고 하였다.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못하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경험과 지혜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사람의 지혜는 경험을 통해 늘어난다. 배워서 아는 것 갖고는 만족할 수 없으며, 반드시 그에 대한 실천이 따를 때 그 지식이 산지식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연수 가운데에서도 앉아서 하는 이론 중심의 연수보다 몸소 겪는 체험 중심의 연수를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그 체험이 당대의 일이 아니라 시간 저편의 것이라면 더 좋아한다. ‘2005 선비문화체험 연수’가 바로 거기에 해당한다. 신청 경쟁에 뒤질세라 미리 전화와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나서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만사 뜻대로 되었다. 옛 선비처럼 文房四友(문방사우)를 갖추고 아침 일찍 구의동 시외버스터미널에 가 버스에 몸을 맡겼다. 새로 잘 뚫린 중앙고속도로를 경유하여 달리는 안동행 버스는 세 시간 만에 백두대간 라이브 관광을 끝마쳤다. 오후 1시에 안동 역전에 기다리고 있는 관광버스 안에는 이미 전국 각지의 선생님들께서 모여 앉아 표정 만들기에 들어갔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지리적 여건상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틈새의 분지에 해당하고, 바다가 멀고, 구릉이 많아 오직 공부밖에 해 먹을 것이 없는 척박한 땅 安東(안동), 공부만이 생의 편안[安]함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그래서 인지 819명의 과거 급제자를 낳고, 270명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땅이다. 이황 선생과 시인 이육사의 안동 태생이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도 추로지향 안동 도산서원을 방문했을 때, 생의 최고 보람을 느낀다고 찬탄하셨다. 전통문화와 선비문화가 없으면 나라의 기강, 곧 國紀(국기)가 흔들리고 종국에는 나라가 망하고 만다.


안동 시내에서 국도를 타고 50분 정도 달렸을까. 도산서원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길은 山水(산수)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잠시도 차창에서 눈을 땔 수가 없다. 게다가 주차장에서 도산서원까지 걸어서 들어가는 굽이 길도 울창한 숲과 낙동강을 끼고 있어 풍광이 시원스럽다. 이윽고 도산서원 홍보관에 들어가 도산서원 소개 영상자료를 시청하고 안내에 따라 분주히 움직였다.


조선 유학의 대표적 성현인 退溪 李滉(퇴계 이황;1501~1570)선생을 모시는 陶山書院(도산서원; 사적 제170호)은 그를 잇는 영남학파의 중심지이자 한국 유교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이다. 도산서원은 학문적,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경관이 수려하기로도 유명하다.

退溪(퇴계)란 선생의 號(호)인데 '退居溪上(퇴거계상)'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벼슬에서 물러나[退] 시내 위[溪上]에 집을 짓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물욕을 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인격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경내에 들어서자 눈앞에 들어오는 ‘陶山書院(도산서원)’이라는 힘찬 현판 글씨. 특히 陶(도)자의 갈고리 부분의 장쾌한 획이 두 눈을 사로잡는다. 1575년에 선조 임금께서 한석봉을 불러 '陶山書院'을 쓰게 하고, 이 현판을 하사하시어 賜額書院(사액서원)이 된 것이다. 옛날에 이 산속에 옹기를 굽던 가마가 있었기 때문에 옹기 굽는 산이라 해서 질그릇 陶(도)자, 뫼 山(산)자를 써서 도산이라 부른다.

李滉(이황) 선생은 학파의 구분을 넘어 이상적인 선비의 모습을 보여 준 분이시기에 도산서원은 영남지방뿐 아니라 전국적인 명소로 인정받는 곳이다. 그러기에 정부에서는 가장 사용빈도가 높은 천 원 권 화폐에다 전면에는 퇴계선생의 영정을, 뒷면에는 도산서원의 전경을 싣고 있는 것이다. 주머니에 있는 만 원 권 지폐의 세종대왕과 오천 원 권 지폐의 율곡 선생의 모습을 거듭 확인해 보았다. 


선비수련원의 설립이념은 ‘道德立國(도덕입국)’이다. 그리고 연수 목적은 ‘선비문화를 계승 창달’하는 데에 있다. 비록 3일간의 짧은 체험이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세상의 번잡함을 잊고 타임머신을 타고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기분으로 선비정신에 沒入(몰입)해 보는 즐거움은 반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가슴 뿌듯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홍보관님의 판서가 이어졌다.


‘閼人慾(알인욕) 存天理(존천리)’


사람의 욕심, 이를테면 벼슬, 돈, 이성 따위는 막고, 하늘의 이치는 지켜나가는 것이 선비 정신이다. 理[다스리다. 옥을 갈다]라는 글자의 중요성은 國務總理(국무총리), 代表理事(대표이사), 理事官(이사관), 管理(관리)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우 중요한 정신적 가치이다.


홍보관님의 말씀은 분주히 계속되었다. 理(이)자에 이어 유아동 노랫말로 이어졌다.


엄마가 아이에게 처음 말을 가르칠 때, 가장 먼저 알려주는 말이 있다.

‘깍궁, 도리도리, 잼잼, 곤지곤지’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간단한 몸동작과 함께 재미있는 놀이처럼 아이들에게 알려주지만 정작 그 속에 담긴 뜻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비체험에 와서 아이를 쉽게 잠재우는 자장가와 함께 ‘도리도리, 잼잼’ 등에 숨겨진 심오한 뜻을 듣고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첫 상면한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런 말은 단순히 아이와 놀이를 하기 위한 말이 아니란다. 단군시대부터 내려온 이 단어들은 과거 왕족들의 교육 방식으로 이른바 ‘檀童十訓(단동십훈)’이라고도 한다는데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여기에서는 내가 어린 시절에 겪고 보아왔던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유아 동요를 추정하여 정리해 본다.

1. ‘覺躬覺躬(각궁각궁->깍궁깍궁)’은 어린 아이의 주의를 집중시킬 때 눈을 크게 뜨며 하는 말인데, ‘네 몸이 어디서 왔는지 깨달아라.’라는 뜻이다. 곧 부모로부터 네 몸이 태어났으니 孝道를 잊지 말라는 뜻이다.

2. ‘道理道理(도리도리)’는 머리를 좌우로 돌리면서 부르는 노랫말인데, 머리를 써서 세상의 道理(도리)를 깨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3. ‘理非理非(이비이비->어비어비)’는 만져서는 안 될 물건을 만질 때 하는 말이다. 理非(이비)는 是非(시비)와 같은 말로 옳고 그름을 가리라는 뜻이다.

4. ‘困知困知(곤지곤지)’는 한손 집게손가락으로 반대 손바닥을 찧으면 부르는 노랫말이다. 困窮(곤궁)하게 知識(지식)을 얻으라는 뜻이니, 어렵게 공부하여 세상의 이치를 깨치라는 의미이다.

5. ‘綽躬綽躬(작궁작궁->짝꿍짝꿍)’은 두 손바닥을 마주 치며 부르는 노랫말이다. ‘綽綽(작작)’은 ‘餘裕綽綽(여유작작)’의 준말로 ‘말이나 하는 짓이 넉넉하다’는 뜻이다. 곧, 두려움에 떨지 않는 ‘여유작작한 네 몸[躬(궁)]’이라는 뜻이다.

6. ‘潛潛潛潛(잠잠잠잠->잼잼잼잼)’은 손을 폈다 쥐는 동작을 반복하는 것으로 너무 요동치지 말고 潛潛(잠잠)하게 인내심을 기르라는 의미이다.

7. ‘虛虛虛虛(허허허허->헐헐헐헐)’는 두 팔을 흔들며 부르는 노랫말로 허허벌판이나 허허바다처럼 넓은 마음과 야심을 가지라는 뜻이다.

8. ‘他路他路(타로타로->따로따로)’는 도움 없이 혼자 걷도록 할 때 부르는 노랫말로, 너 갈 길로 가라는 의미로 독립에의 의지를 가르치고 있다.

9. ‘達綱達綱(달강달강)’은 어린 아이를 좌우로 흔들며 부르는 노랫말인데, 어서 자라나 三綱五倫(삼강오륜)에 通達(통달)하라는 간곡한 부탁이다.

10. ‘施賞施賞(시상시상)’은 어린 아이를 앉혀 놓고 앞뒤로 끄덕끄덕 흔들며 부르는 노랫말인데, 나라로부터 상을 받으라는 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노랫말은 ‘도리도리 짝자쿵, 곤지곤지 재앰잼, 달강달강 시상달강’ 등과 같이 서로 덧붙여 부르면서 음악성을 높이고 있다.

영아기로부터 유아기까지의 이러한 노랫말은 한민족만의 전승유아교육용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보육의 고달픔을 잊게 해 주고, 아이에게는 삶의 최고 덕목을 은연중에 깨치는 것이다. 음악적 리듬감과 운동 신경을 길러주며 무엇보다 심리적 안정감 속에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소망이 깃들어 있다. 이러한 요람 속의 가르침은 인생 동안 생의 큰 에너지가 되어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살아간다.


陶山書院(도산서원)에 들자마자 정문에서 돌계단을 오르면 도산서원의 주된 건물이라 할 수 있는 전교당(典敎堂, 보물 제210호)이 나온다. 이 전교당 현판 글씨도 석봉 한호 선생의 글씨이다. 전교당은 유생들의 자기수양과 자제들의 교육을 하는 강당으로서, 전교당의 앞 마당 좌우에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이 典敎堂(전교당)에서 入校式(입교식)을 가졌다.

‘개식사 - 국민의례 - 내빈 소개(정관 원장-대구교대 총장, 이동천 부원장, 이용태 이사장, 박원갑 이사, 최윤덕 박약회 이사 등), - 경과 보고(735명 수료) - 원장 인사 - 내빈 축사 - 폐식사’의 순서로 이어졌다.

도덕이 피폐하고 교육이 난관에 부딪힌 오늘 ‘도덕 입국’만이 구국의 길이라 생각하여, 유림 대표와 퇴계 선생의 종손이 뜻을 모아 선비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단다. 영국에는 ‘Gentleman’이 있고, 미국은 ‘New Frontier’ 정신이 있듯이 우리 대한민국에는 ‘선비 정신’이 있는 것이다. 염천에도 불구하고 2박3일간의 빡빡한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의관을 선비 복식으로 정제하고 별유사의 안내로 서로 인사를 나누는 의식이 있었는데, 相見禮(상견례)라는 말 대신에 相揖禮(상읍례)라는 말을 사용했다. 유교적인 의례이니 揖(읍)이라함은 당연한 귀결이다. 左陽右陰(좌양우음) 원칙에 따라 왼손을 위에 오게 잡았다.

이어서 謁廟禮(알묘례)를 통하여 경건하게 퇴계선생 사당에 제사를 지냈다. 有司(유사)는 所任(소임)이라고도 한다. 향교·서원·이정(里政)이나 동계(洞契)·혼상계(婚喪契)·두레 등의 각종 모임에서 연락·회계·문서작성 등의 사무를 맡았다. 유사 가운데 우두머리를 도유사(都有司)라고 한다. 도산서원에서는 규모가 上有司(상유사)가 도유사가 되어 서원 원장님이 맡고, 제사를 맡은 祭有司(제유사)와 특별히 別有司(별유사)를 각각 두고 있는가 보다. 오늘 하루는 제유사가 望記(망기)를 맡은 자로서 아랫목 대접, 곧 최대 어른의 대접을 받는다. 제유사님의 守則(수칙)이 내려졌다. 行步(행보)는 달리지도 신발을 끌지도 말 것이며, 손은 뒷짐지지 말고 東階(동계)로만 오르내릴 것이니라. 우리는 제유사님의 안내에 따라 전교당의 왼쪽 계단은 사용하지 않고 오른쪽 계단을 이용하여 한 줄로 서서 드나들었다. 그리고 尙德祠(상덕사: 덕을 숭상하는사당)에 들어가서는 盥手(관수)하고 손을 잘 닦은 다음 선생의 영전에 揖禮(읍례)했다. 망기를 받은 자만이 謁廟(알묘)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절을 하지도 박수를 하지도 않았다. 45도로 절을 하는 것은 日式(일식)이라나.


다음은 ‘望記 쓰기’ 체험 시간이다. 望이란 원래 벼슬아치를 천거하는 일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서원에서 행하는 제반행사에 유생들이 천거되었음을 뜻한다. 幼學(유학)의 幼(유)자의 力(력) 부분을 ‘刀(도)’로 쓰고, 學(학)자의 속 부분을 ‘生支死爻(생지사효)’라 하여 支(지)자로 써야 함을 불문율로 삼음에서 선비들의 까다로운 성품을 읽을 수 있다. 준비된 많은 벼루와 붓에 짐짓 놀랐다. 먹은 갈 겨를도 없이 먹물로 대신했다. 붓글씨야 내가 밥 삼아 즐기는 것이니, 미리 쓰고 주변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모두들 멋지게 쓰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여기에 모인 선생님들은 적어도 우리 것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 생각하니 수긍이 갔다. 모두들 먹물이 튀지 않게 분위기에 어울리게 써서 추억 거리를 장만하였다.


사전과 같은 두꺼운 교재 ‘선비문화체험’을 펼치자 ‘感動(감동)과 尊敬(존경)’이라고 쓴 이용태 이사장님의 휘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퇴계 선생의 일상은 감동과 존경의 삶이었나 보다. 퇴계 선생의 학문과 행적을 살피고 거국적 숭모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본원의 목적이겠다. 見利思義(견리사의), 處人之道 (처인지도), 淸風明月(청풍명월) 등의 휘호도 많은 가르침을 준다.


경황없이 이어지는 수련 과정, 원로와의 대화 시간이다. 최윤덕 博約會(박약회) 이사님께서 맡은 순서였다. 학문의 목적은 德(덕), 知(지), 行(행)이라 했다. 먼저 덕을 쌓고 배우며, 배운 것은 행할 때에 학문하는 의의가 있다. 인간이 되고 학문이며, 학문은 실천수행이 뒤따라야 한다.


선비들의 아름다운 교유의 예를 하나 든다.

退溪(퇴계) 58세 때에 23세의 栗谷(율곡)이 처가인 성주에서 외가인 강릉에 가다가 퇴계 선생을 알현하고 3일간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 퇴계는 율곡에 대해서 ‘後生可畏(후생가외)’라 했다. 퇴계 선생은 과거에 3번 낙방한 후 4번째 합격하였고, 율곡 선생은 아홉 번의 과거 전 과정을 모두 장원 급제한 분이셨으니 퇴계가 율곡의 우수한 두뇌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이 때, 율곡이 퇴계에게 율시 한 수를 지어 바친 내용이 <栗谷先生全書(율곡선생전서)> 卷之十四(권지십사)에 나온다.


溪分洙泗派(계분수사파) 시냇물은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로 나뉘어 흐르고,

峰秀武夷山(봉수무이산) 봉우리는 무이산이 빼어났네.

襟懷開霽月(금회개제월) 마음속은 비 갠 후 달이 열리듯 거리낌이 없고,

談笑止狂瀾(담소지광란) 웃으며 이야기하니 어지러움이 멈추네.

活計經千卷(활계경천권) 살아갈 계책은 천 권의 경전이요,

行裝屋數間(행장옥수간) 행장을 꾸리니 두어 칸 집뿐이네.

小臣求聞道(소신구문도) 저는 도를 듣기를 구할 뿐,

非偸半日閑(비투반일한) 반나절의 한가함도 가벼이 하지 않지요.


이 율곡선생께서 쓴 시에 또한 퇴계선생의 화답시가 이러하다.


病我牢關不見春(병아뢰관부견춘) 병든 나는 문을 닫고 있어 봄이 온 줄을 몰랐는데,

公來披豁醒心神(공래피활성심신) 그대가 찾아와 내 마음을 상쾌하게 열어주네.

始知名下無虛士(시지명하무허사) 높은 명성에 헛된 선비 없음을 비로소 알았으니,

堪愧年前闕敬身(감괴년전궐경신) 몸가짐도 변변히 못해온 내가 부끄럽구려.

嘉穀莫容稊熟美(가곡막용제숙미) 좋은 곡식은 피가 잘 익어 아름다워도 용납하지 못하며,

遊塵不許鏡磨新(유진부허경마신) 떠도는 티끌은 갈고 닦은 거울을 두고 보지 못하네.

過情詩語須刪去(과정시어수산거) 정에 겨워 과분하게 표현한 시어는 깎아버리고,

努力功夫各自親(노력공부각자신) 노력하고 공부하여 각자 날로 새로워집시다.

  

안동에는 두 개의 내가 있다. 황지에서 안동으로 흐르는 洛川(낙천)과 임하댐 물인 東川(동천)이 그것이다. 그것을 공자가 살았던 수수(洙水)와 사수(泗水)에 비유하여 선생을 공자와 같이 찬양하니 선생은 겸양의 화답시를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선생의 마지막 尾聯(미련)의 노력 공부하여 각자 날로 새롭게 되자는 내용은 학문하는 朋友之間(붕우지간)에 최고의 귀감이 되는 말이다.


율곡이 하직하면서 퇴계에게 마음에 꼭 새겨 두어야 할 한마디를 청하니 퇴계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써 주었다.


持心貴在不欺(지심귀재불기) 사람의 마음가짐에 있어서 귀한 것은 속이지 않는 데에 있고,

入朝當戒喜事(입조당계희사) 벼슬하러 조정에 나가서는 공을 세우려고 쓸데없는 일을 만들기를 좋아해서는 안 된다.


생의 방향을 잡아주는 이 구절을 율곡은 일생토록 가슴에 담고 살았을 것이다. 퇴계는 35년 연하의 율곡이지만 그를 忘年之友(망년지우)로 맞이하였고, 율곡은 恭敬(공경)의 시를 선물로 올렸다. 이에 화답시를 주면서 선비의 도를 깨우쳐 주고 있다. 퇴계는 理(이)를, 율곡은 氣(기)를 강조하였지만 두 선비의 정은 두텁기만 하다.


원로와의 대화 시간에는 최윤돈 대구 ‘博約會(박약회)’ 회장님의 말씀을 들었다.

먼저 ‘박약회’ 소개부터 들었다. 《論語(논어)》 <雍也篇(옹야편)>에 나오는 말이다.

子曰(자왈) 君子(군자)가 博學於文(박학어문)이요 約之以禮(약지이례)면 亦可以弗畔矣夫(역가이불반의부)인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지키면, 비로소 어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주) 畔, 背也 (반, 배야) : 畔은 "배반함"이다.


흔히 博文約禮(박문약례)라고 줄여서 말하는데, 이 모임은 더 줄여서 ‘박약회’라고 하는데, 어감은 별로 좋지 못하다. 지식은 넓을수록 좋지만 그것이 단지 지식으로만 그치고 행실과 무관하지 않기를 경계한 말이다. 공자는 폭넓은 지식 추구와 예의 바른 행동을 아울러 강조하고 있다.


또 《論語(논어)》의 〈述而篇(술이편)〉의 가르침을 주셨다.

三人行(삼인행)에 必有我師焉(필유아사언)이니, 擇其善者而從之(택기선자이종지)하고 其不善者而改之(기부선자이개지)니라.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스스로 고쳐야 한다.


좋은 것은 좇고 나쁜 것은 고치니 좋은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고, 나쁜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 善惡(선악)이 皆吾師(개오사)이다.


* 三大選擇(삼대선택)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많은 선택 중에 특히 중요한 三大選擇(삼대선택)은 무엇일까.


첫째, 직업 선택이다.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직업이 없을 수는 없다. 서양에서도 ‘Living is working.’이라 했고, 당나라 때의 고승 백장선사(百丈禪師)는 ‘一日不作 一日不食(일일부작 일일불식)’이라 했다. ‘不勞不食(불로불식)’의 냉엄한 철학이다. 일단 선택한 직업에 대하여는 召命意識(소명의식)을 갖고, 실력(實力)을 쌓아야 하며, 使命感(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내가 아니면 내 직장, 내 분야가 잘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


둘째, 배우자 선택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선택일지 모른다. 좋은 배우자를 얻으면 一生豊作(일생풍작)이다. 同苦同樂(동고동락)의 내조자만큼 소중한 분신은 없다. 남편과 아내는 각각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열 명의 선생보다도 더 소중하다. 신사임당과 맹자의 어머니는 솔선수범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심성 교육에 있어서는 부모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셋째, 人生觀(인생관)의 선택이다. 삶의 유혹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초연해질 수 있는 인생관을 찾고 또 고민하며 肉化(육화)하여야 한다. 왕이 滿朝百官(만조백관)에게 ‘인생이 무엇이냐?’에 대한 해답을 얻어 오라고 했더니, 수레 가득이 담긴 해답의 결론은 ‘生老病死(생로병사)’이었단다. 인생관은 삶의 근본이다. 《論語(논어)》의 〈學而篇(학이편)〉에

‘君子務本(군자무본) 本立而道生(본립이도생)’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서야 도가 생겨날 것이다.


라고 했다. 군자는 근본에 힘써야 한다. 本(본)이 곧 인생관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건전한 인격이 형성되면 아름답고 가치 있는 도덕적 삶의 실현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본다.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사회를 지탱할 기본적인 가치 구조가 올바르게 형성되면 사회 구성원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회 정의도 저절로 실현될 것이다.


* 身言書判(신언서판)

이미 중년의 교사라면 대부분 위의 세 가지 선택에는 여지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어떤 일에 종사하든 사람과의 만남은 피할 수 없다. 그 사람의 판단 방법은 역시 전통적인 기준이 합당하다고 본다. 곧 身言書判(신언서판)이다. 身(신)은 매무새에서 맵시이다. 개인적으로는 ‘맵씨’라고 표기해야 옳다고 본다. 맑고 단정해야 한다. 言(언)은 말씨로서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표현해야 한다. 書(서)는 글씨로 지식의 척도가 된다. 判(판)은 판단력으로 지도자 자질로서 중요한 덕목이다. 


* 觀人八法(관인팔법)

그리고 身言書判(신언서판) 외에도 제왕이나 고위직의 인물 됨됨이를 볼 때 그 기준으로 觀人八法(관인팔법)이 있었다. 威(위엄 위), 厚(두터울 후), 淸(맑을 청), 固(굳을 고), 孤(외로울 고), 薄(엷을 박), 惡(악할 악), 俗(속될 속)의 여덟이다. 앞의 네 부류는 취해야 할 것이지만 뒤의 네 부류는 버려야 할 것이다.

威(위)는 은연중에 따를 수 있는 威嚴(위엄)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厚(후)는 후덕(厚德)하게 베풀어야만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淸(청)은 깨끗한 정신과 사심 없는 자세를 가리킨다.

固(고)는 굳은 意志(의지)로 옳다고 믿으면 끝까지 관철시키는 신념이다.

孤(고)는 홀로 외톨이가 되어서는 그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다.

薄(박)은 생각과 행동이 신중하지 못하여 실망을 준다는 것이다.

惡(악)은 심성이 모질고 사나워 남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다.

俗(속)은 기품이 저속하여 모든 이에게 실망만을 안겨 줄 뿐이다.


* 매슬로(A. H. Maslow)의 欲求階梯論(욕구계제론)

이는 매슬로의 욕구계제론에 의하면 제1단계는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 제2단계는 안전의 욕구, 제3단계는 소속의 욕구, 제4단계는 자존의 욕구, 제5단계는 自我實現(자아실현)의 욕구의 다섯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잘 먹고 잘 싸자는 생리적 욕구와, 담에 철조망을 하고 SECOM 장치를 하는 등의 안전의 욕구 및 동창회, 계, 학회 등의 소속의 욕구는 동물적 욕구에 해당한다. 나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는 존재의 욕구와 돈, 아내, 직업, 사회 봉사 등의 가장 고차원적인 자아실현의 욕구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욕구이다. 우리는 욕구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삶의 질을 고양할 수 있다고 본다.


인생의 목적을 확립하고, 고차원적인 욕구 실현을 통하여 삶의 질을 고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率先垂範(솔선수범)이 뒤따라야 한다. 百聞不如一見(백문불여일견)이요, 百見不如一覺(백견불여일각)이며, 百覺不如一行(백문불여일행)이다. 行(행), 곧 솔선 실행이 중요하다.

그리고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 긍정적 안목을 가질 때, 비전이 생기고 생의 의욕이 넘치는 법이다. 또한 一責(일책) 二讚(이찬) 三敎(삼교)라 했다. 꾸짖기는 한 번 하고, 칭찬은 두 번 하며, 가르치기는 세 번 하라는 뜻이다.

실천 의지와 긍정적 안목 및 많은 가르침이 있을 때, 개인에게는 발전이요, 사회적으로는 미래가 있는 것이다.


* 선비문화 事例(사례) 發表(발표) 및 討論(토론)

저녁 식사는 悅話齋(열화재: 기쁘게 대화 나누는 집)에서 간이 부패 자율배식으로 이루어졌다. 밀도 높은 일정이다가 보니 식사 시간만이 서로 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나 할까. 저녁의 선비문화 사례발표 및 토론도 열화재에서 계속되었다. 전교당보다 넓고 현대적인 시설이 갖춰져서 이곳에서 진행되는가 보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의 전통예절원장이신 이동후 선생께서 진행을 맡으셨다.

선비 정신이란 무엇이며 선비 정신을 근무 현장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에 대한 토론 형식으로 이어졌다. 30여 명의 교사 중에서 12명의 교사가 사전에 준비한 유인물을 통하여 소논문을 발표했다. 이에는 7차 교육과정과 선비정신, 현장에서의 구현 방법, 현대사회와 선비 정신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선비문화의 대강은 實踐(실천) 위주의 인성 지도, 他律性(타율성)을 배제하고 自律性(자율성)을 기르기, 劃一化(획일화)에서 多樣化(다양화)로, 孝悌忠信(효제충신: 효도, 공경, 충성, 신의)와 禮義廉恥(예의염치: 예절, 의리, 청렴, 부끄러움), 學藝一致(학예일치), 學行一致(학행일치), 修己治人(수기치인), 先公後私(선공후사), 公平無私(공평무사), 時空之適(시공지적), 克己復禮(극기복례) 등으로 귀결되었다.  

사례 발표에는 안동 출신의 서애 유성룡, 퇴계 이황, 이육사 등을 비롯하여, 다산 정약용, 성호 이익, 매천 황현 등을 선비의 예로 들었다.


* 退溪宗宅(퇴계종택)에서 하룻밤

잠은 열화재와 퇴계종택으로 나누어 잤다. 나는 퇴계종택으로 배정되었다. 깜깜한 밤길을 걸으니 어린 시절 밤길을 걸으면 별을 바라보던 기억이 새롭다. 선비의 나라 한국, 대유학자의 종택에서 잠을 자 본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이다. 첫날이라 피곤한 가운데 동료들과 적당한 대화를 나눈 뒤에 잠을 청했다.


* 活人心方(활인심방)으로 심신 수련

아침 6시에 일어나면 이른바 활인심방 교실이 열렸다. 충북대 이동한 교수님의 지도 아래 퇴계 선생께서 건강을 위하여 수련하신 심신 수련 방법을 익힌다. 心身不二(심신불이)이다.  호흡을 통하여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다. 활인심방은 五臟六腑(오작육부)에 인간의 감정과 사고가 다 들어있다고 보는 데서 시작한다. ‘4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을 보면 장기와 감정은 상호 작용을 하며 깊은 관계가 있다.

활인심방 실습은 朗讀(낭독)과 運動(운동)과 靜坐(정좌)의 3가지로 이뤄진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소리를 듣고, 운동을 통하여 기혈을 돌리며, 고요히 앉아서 자신이 호흡을 의식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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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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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살며시 들어와 좋은 공부 하고 들어갑니다
좋은 글귀가슴에 다시 한번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권상호
술이란 마셔주는 주군이 있어야 술 다워지며
글 엮시 읽어주는 서생이 있어야 글값을 하는 거지요.
장지영
퇴계 선생님을 흠모하며 저도 선비이고 싶습니다.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는 말씀도 이렇듯 기록하면 글이 되고 문학이 되고 철학이 되는군요.
선생님 덕분에 지난 시간이 다시 살아나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