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丹陽赤城碑(545~550년)

 

8. 丹陽赤城碑(545~550년)

  이 비는 忠北 丹陽郡 丹陽邑 下坊里에 있는 545(眞興王 6년)~550년(眞興王 11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시대의 古碑로 國寶 198호이다.

  1978년 1월 6일 단양읍 하방리 뒷산인 성재산 赤城內에서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하여 발견, 조사되었고 그리하여 丹陽赤城碑로 이름 붙여졌다. 花崗巖 自然石의 곱고 판판한 면을 이용하여 비문을 새겼는데 얕게 음각하였으나 오랫동안 땅 속에 묻혀 있었으므로 비면이 깨끗하여 字劃이 생생하다. 전체의 명문은 도합 430자로 추산되는데 지금 남아 있는 글자는 284자로 거의 판독이 가능한 상태이다.

  글자는 자경 1.5cm, 2cm, 3cm 크기로 각 행의 명문은 가로와 세로의 줄을 잘 맞추고 있는 편이다.

  이 비의 字體는 隸書風이 있는 楷書로서 서예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중국 南北朝(439~589년) 초기의 것과 유사하며, 굴곡을 지닌 율동적인 글씨로 隸書에서 楷書로 옮겨가는 과정의 餘韻이 그대로 나타난다. 생생한 劃質에서 붓을 움직인 선율의 산뜻한 감각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文體에 있어서는 新羅古碑 중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吏讀式도 아니며 그렇다고 漢文體로도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삼국시대 新羅碑로는 가장 긴 글이다.

  丹陽赤城碑文의 내용은 缺落된 銘文이 많아 비문의 완전한 해독은 더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대체적인 윤곽은 진흥왕이 이사부 등 10인의 고관에게 하교하여, 신라의 拓境事業을 돕고 목숨까지 바쳐 충성을 다한 적성인 也尒次(야이차)의 공훈을 표창하고, 장차 야이차와 같이 신라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국가정책이 포고인 것 같다. 곧, 새로 개척한 지방의 有功者의 功績을 새기고, 동시에 장차 신라에 忠誠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褒賞을 하겠다고 선언한 점에서 巡狩碑의 선구적 형태로 拓境碑의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건립 연대는 비문 첫머리 연대부분의 4자가 缺落되었으므로 절대연대는 알 수 없고 다만 추정 연대뿐인데, 이 추정에는 당시 赤城 지방을 중심한 역사적 상황과 비문에 보이는 인물들을 분석해 보면, 丹陽赤城碑 건립연대는 545년(眞興王6년)에서 550년(眞興王 11년) 사이로 추정된다.

  丹陽赤城碑는 신라가 죽령을 넘어 북쪽의 고구려세력을 축출하고 첫발을 디딘 요충지에 세웠다는 점에서 또한 의의가 있다. 北方經略에 있어 죽령 너머 최초의 기지인 적성에 유공자의 공훈을 새기고 충성을 다하는 자에게 포상을 약속한 拓境碑를 새운 것은 새 영토에 대한 신라의 국가시책의 천명인 것으로, 뒤에 세워진 巡狩碑 정신의 최초 표현인 것이다. 따라서, 적성비는 비록 국왕의 직접적인 巡幸碑는 아니나 拓境碑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巡狩管境碑의 선구적 형태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金世豪는 ‘백제 武零王陵買地券1)의 글씨가 완전히 위진남북조시대의 글씨를 따르고 있지만, 赤城碑는 隸書의 조형의식을 갖고 있어 예서에서 위진남북조시대 楷書로 넘어가는 過渡期에 있다’2)고 하였으니, 곧 隸楷의 과도기에 해당하는 금석문으로 보고 있다.

  이 글씨의 특징은 약간 옆으로 퍼져 있어 진흥왕 때에 세운 다른 비문의 正方形體와는 다른 취향을 보이고 있다. 중국 北朝의 비가 대체로 方筆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圓筆을 사용하여 南朝의 영향을 받았음을 곧 알 수 있다. 가로와 세로의 간격을 맞추어 썼는데도 글자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自由奔放한 맛을 풍기는 것도 더욱 높은 품격을 보여주어 書藝史上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비문에 보이는 많은 異體字들은 그대로 중국 남북조 초기에 이루어진 碑碣들의 글자와 일치하여 그 시대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文體가 아직도 완전한 한문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고 俗漢文體에 머물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서체에 있어서도 외국의 영향력보다 자생적 뿌리가 더 강하다고 보는 쪽이 타당하리라 본다. 왜냐하면 원삼국시대의 新羅書에서 이전 隸書의 흔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예서에서 해서로의 과도기 형태라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1) 본고에서 말하는 ‘武零王陵誌石’과 ‘武寧王碑誌石’ 및 ‘買地券’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2) 金世豪, 󰡔韓國美術事典󰡕, 「丹陽赤城碑」, 大韓民國藝術院, 1991,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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