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사군자

*<문장대백과사전>의 내용을 재편집하였음을 밝혀둡니다. Korean Calligrapher Kwon Sangho

 

---사군자---

 

매화(梅花)

 

⇒ 꽃 장마 봄 여름

 

【어록】

[1]고금에 매화를 노래한 시인이 그 얼마나 많으리오마는 임화정(林和靖)처럼 매화의 신수(神髓)를 미득(味得)한 이는 없다. 매화로 처를 삼던 그가 아니고는 소영횡사수청천(疎影橫斜水淸淺) 암향부동월황혼(暗香浮動月黃昏)의 진경(眞境)을 그려 낼 수 없을 것이니 이는 실로 매화 시(詩)가 있은 이래 천고절조(千古絶調)이다. 《문일평 文一平/호암전집 湖岩全集》 

 

[2]나부(羅浮)도 매화의 명소요, 향도(向島)도 매화의 명소이지마는 우리 나라에는 이러한 매화의 명소가 없다. 삼남(三南)의 난지(暖地)에 매화가 있기는 있으나 그는 동매(冬梅)가 아니요 춘매(春梅)이며, 경중애화가(京中愛花家) 사이에 예로부터 매화를 배양하였으나, 그는 지종(地種)이 아니요 분재(盆裁)뿐이다. 매화를 많이 재배하여 완상(玩賞)에 공함에는 일종의 난방 장치를 했는데 경성 방송국은 곧 옛날 김추사(金秋史) 옹의 선대 이래 별장으로 아주 이름 높은 홍원매실(紅園梅室)이 있던 곳이요 운현궁에도 매실이 있었고 이 밖에도 매실 있는 집이 흔하였다 한다. 《문일평 文一平/호암전집 湖岩全集》

 

[3]다산(茶山) 정 선생은 일찍이 매화를 품평하여 천엽(千葉)이 단엽만 못하고 홍매가 백매만 못하니 반드시 백매의 화판(花瓣)이 크고 근대(根帶)의 거꾸로 된 것을 선택하여 심으라고 하였다. 《문일평 文一平/호암전집 湖岩全集》

 

[4]매화는 그 끝덩으로 보면 괴벽한 노인을 연상케 하나 그 꽃은 아름다운 소녀를 생각케 한다. 속담에 흔히 꽃 같은 마음이라고 말하지만 아름다운 마음을 만약 꽃에다 비교한다면 그 꽃은 틀림없이 매화꽃이라야만 그 마음도 아름다우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매화를 청빈에 비겨 보고 수절에 비교하지마는, 나는 그 정결하고 고상한 점을 취한다. 《정내동 丁來東/수선(水仙)․매화(梅花)》

 

[5]매화는 한국 사람이라면 서재나 침실에 아정(雅情)과 고취(高趣)를 풍겨 주는 없지 못할 겨울의 애인이다. 《박종화 朴鍾和/매화(梅花)․설화(雪花)․해당화(海棠花)》

 

[6]매화가 조춘만화(早春萬花)의 괴(魁)로서 엄동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화하는 것은 그 수성(樹性) 자체가 비할 수 없이 강인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 동양 고유의 수종(樹種)이 그 가지를 풍부하게 뻗치고 번무(繁茂)하는 상태를 보더라도 이 나무가 다른 과수에 비해서 얼마나 왕성한 식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또한 매실(梅實)이 그 독특한 산미(酸味)와 특종의 성분을 가지고 고래로 귀중한 의약의 자(資)가 되어 효험이 현저한 것도 마땅한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김진섭 金晋燮/매화찬 梅花讚》

 

[7]매화라면 고금을 통하여 소인(騷人) 묵객(墨客)에게 가장 청상(淸賞)을 받아 왔으며, 근년 한토(漢土)에서는 모란 대신에 매화로써 국화(國花)를 삼았으니 말하자면 모란이 가졌던 왕좌를 매화가 앗은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한 인정의 변태를 보겠으니, 모란의 농염(濃艶)보다 매화의 냉염(冷艶)을 좋아하며 모란의 이향(異香)보다 매화의 암향(暗香)을 사랑하는 것 같다. 고려 시인 정지상(鄭知常)은 매화로 선화(善畵)하였고 어몽룡(魚夢龍)의 매화는 이조 제일의 칭(稱)이 있었다. 《미상 未詳》

 

【시․묘사】

 

[8]한 그루 매화가

그윽한 마을로 들어가는 시냇가에 피었네

물 곁에 있는 꽃이 먼저 피는 줄은 모르고

봄이 되었는데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았다고 한다.

一樹寒梅白玉條

逈臨村路傍溪橋

不知近水花先昔

疑是徑春雪未消 《융호 戎昊/매 梅》

 

[9]백옥당 앞의 한 그루 매화가

오늘 아침에 문득 꽃이 피었네

한 계집아이가 문을 꼭 닫고 있으니

봄빛이 들어올 곳이 없네.

白玉堂前一樹梅

今朝忽見數枝開

兒家門戶重重閉

春色因何得入來 《설유한 薛維翰/춘녀원 春女怨》

 

[10]우뚝하고 품위 있어

철의 골격이던가

늠름한 빙설(氷雪)의 자세로

군목(群木)을 압제한다

이같은 꽃이 허다한 것 같지만

누가 그 진(眞)을 알겠는가?

천만 섬의 향기를 간직하여

천하의 봄을 먼저 피우네.

峰嶸突兀

茹鐵爲骨

漂然氷姿

氣壓群木

近似則然

孰知其眞

儲萬斛香

先天下春《홍경로 洪景盧/노매병찬 老梅屛贊》

 

[11]옥비(玉妃)가 보슬비 내리는 마을에 떨어진다

선생이 초혼(招魂)의 시 한 편을 쓰네

인간의 화목(花木)이 나의 상대가 아닐 것이다.

달이 계수와 만나 유혼을 이루네

그 향기 창 틈으로 스며들어 나의 꿈을 찾고

파란 열매는 주렁주렁 가지에 매달렸다

벗을 불러다가 밤새도록 술을 마실 때

땅에 떨어진 흰 꽃이 도리어 따스하다.

솔 불을 켜 놓고 앉아 있으니, 잠은 오지 않고

꽃 향내는 뱃속까지 스며들어

선생의 나이 육십에

도면(道眠)은 이미 불이(不二)의 문에 들었네

다정한 마음에 부질없이 미련에 젖어 애석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을 수 없다.

매화만 생각하는 것이 너무 지나친 것 같다.

백벌주나 몇 잔 더 마시고 싶네.

玉妃滴墮烟雨村

先生作詩與招魂

人間花木非我對

奔月偶桂成幽昏

暗香入戶尋短夢

靑子綴枝留小園

披衣連夜喚客飮

雪膚滿地聊相溫

松明照坐能不睡

井花入腸淸而暾

先生年來六十化

道眠已入不二門

多情好事餘習氣

惜花未忍都無言

留連一物吾過矣

笑飮百罰空壘樽 《소식 蘇軾/매화락 梅花落》

 

[12]남해의 신선이 사뿐히 땅에 내려

달밤에 흰 옷 입고 와서 문을 두들기네.

海南仙雲嬌墮喘

月下縞衣來叩門 《소식 蘇軾/매화성개 梅花盛開》

 

[13]고운 때를 씻고 씻어 흰 살더미가 보인다

오늘 앙가슴의 맺힌 맘을 씻기 위하여.

洗盡鉛華見雪肌

要將眞色鬪生枝 《소식 蘇軾/매화 梅花》

 

[14]나부산 밑 마을 매화는

옥설의 골격에 빙상(氷霜)의 넋이다.

처음에는 아른아른 달이 나무에 걸려 있는 것 같더니

자세히 보니 송이송이 황혼에 빛나네

선생(자신)이 강해의 위에 와서

병든 학처럼 황원(荒園)에 깃들인다.

매화가 나의 심신을 부축하여

술을 짜 마시고 시(詩) 생각이 맑게 하네

봉래궁중의 화조의 사자가

푸른 옷을 입고 거꾸로 부상(扶桑)에 걸려 있는 건가? 《소식 蘇軾》

 

[15]매화 가지를 꺾다가 역부(驛夫)를 만나서

몇 가지 묶어서 멀리 계신 그대에게 보내오

강남에 별로 자랑할 만한 게 없어서

애오라지 일지춘을 드리오.

折梅逢驛使

寄興嶺頭人

江南無所有

聊贈一枝春 《육개 陸凱》

 

[16]고향을 못 잊기는 옛 매화 탓이로다

담머리 달 밝을 제 그 꽃이 피었고야

밤마다 꿈속에 들어 잊을 길이 없어라.

千里歸心一樹梅

墻頭月下獨先開

幾年春雨爲誰好

夜夜豌頭入夢來 《이옥봉 李玉峰/매화 梅花》

 

[17]바람비 심한 탓가 매화꽃 수그렸네

아무리 땅에 떨려 이저리 돌아런들

그 향내 허탕(虛蕩)한 양화 미칠 길이 있으리.

寒梅孤着何憐枝

陟雨癲風困委垂

縱令落地香猶在

勝似楊花蕩浪姿 《운초 雲楚/매화 梅花》

 

[18]꾀꼬리 잠잠하고 실비는 내리는데

다시금 가는 봄이 너무도 야속하야

화병에 가매화 꽃을 꽂아 놓고 보나니. 《운초 雲楚/가매화 假梅花》

 

[19]이 몸이 한가하야 옛터로 돌아드니

매화꽃 송이송이 새봄에 피었고야

청향의 깨끗한 양은 비길 데를 몰라라.

世機忘却自閑身

匹馬西來再見春

東閣梅花今又發

淸香不染一纖塵 《죽서 竹西/매화 梅花》

 

[20]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이색 李穡/목은집 牧隱集》

 

[21]섣달 매화가 가을 국화 용하게도 추위를 침범해 피니

경박(輕薄)한 봄꽃들이 이미 간여하지 못하는데

이 꽃이 있어 더구나 사계절을 오로지 하고 있으니

한때에만 치우치게 고운 것들이야 견디어 볼 만한 것이 없구나.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22]청제(靑帝)가 풍정(風情)을 품고 옥으로 꽃을 만드니

흰옷은 진정 서시(西施)의 집에 있네

몇 번이나 취위(醉尉)의 흐릿한 눈으로 하여금

숲 속에 미인(美人)의 흰옷 소매로 착각하게 하였던고.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23]막고사산(邈姑射山)의 신인(神人)처럼 얼음 같은 피부에 눈으로 옷을 삼고

향기로운 입술은 새벽 이슬의 구슬을 마시네

아마 속(俗)된 꽃송이들의

봄에 붉게 물드는 것이 싫어서

요대(瑤臺)를 향해 학(鶴)을 타고

날아갈 듯하구나.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24]강중(剛中)은 내 친구인데 취미가 유다르네.

대[竹]에는 서리 내린 뒤 고요한 것을 사랑하고,

매화에는 섣달의 향기를 읊조리네.

물이 맑으니 깨끗한 줄기 흔들고[蓮],

바람이 나긋하여 화한 빛깔을 띠네[蘭].

한가한 가운데 내 흥으로 글씨 쓰니 황정경(黃庭經)의 한두 장(章). 《박팽년 朴彭年》

 

[25]옥매(玉梅) 한 가지를 노방(路傍)에 버렸거든

내라서 거두어 분(盆) 위에 올렸더니

매화이성랍(梅花已成臘)하니 주인 몰라 하노라. 《이후백 李後白》

 

[26]옥분(玉盆)에 심은 매화 한 가지 꺾어 내니

꽃도 곱거니와 암향(暗香)이 더욱 좋다

두어라 꺾은 꽃이니 버릴 줄이 있으랴. 《김성기 金聖器》

 

[27]빙자옥질(氷姿玉質)이여 눈 속에 네로구나

가만히 향기 놓아 황혼월(黃昏月)을 기약하니

아마도 아치고절(雅致高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안민영 安玟英》

 

[28]어리고 성긴 매화 너를 믿지 않았더니

눈 기약(期約) 능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고나

촉(燭) 잡고 가까이 사랑할 제 암향(暗香)조차 부동(浮動)터라. 《안민영 安玟英》

 

[29]동각(東閣)에 숨은 꽃이 척촉(唇塚)인가 두견화(杜鵑花)인가

건곤(乾坤)이 눈이거늘 제 어찌 감히 피리

알괘라 백설양춘(白雪陽春)은 매화밖에 뉘 있으리. 《안민영 安玟英》

 

[30]매화 피다커늘 산중(山中)에 들어가니

봄눈 깊었는데 만학(萬壑)이 한 빛이라

어디서 꽃다운 향내는 골골이서 나느니. 《무명씨 無名氏》

 

[31]매화 한 가지에 새 달이 돋아오니

달더러 물은 말이 매화 흥미 네 아느냐

차라리 내 네 몸 되면 가지가지. 《유심영 柳心永》

 

[32]매화 옛 등걸에 춘절(春節)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엄즉하다마는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신위 申緯》

 

[33]쇠인 양 억센 등걸 암향부동(暗香浮動) 어인 꽃고

눈바람 분분한데 봄소식을 외오 가져

어즈버 지사고심(志士苦心)을 비겨볼까 하노라.

담담중(淡淡中) 나는 낯빛 천상선자(天上仙子) 분명하다

옥난간 어느메뇨 인간연이 무겁던가

연조차 의(義) 생기나니 언다 저허하리요.

성긴 듯 정다웁고 고우신 채 다정할사

천품이 높은 전차 웃음에도 절조로다

마지못 새이는 향내 더욱 그윽하여라. 《정인보 鄭寅普/매화사 梅花詞》

 

[34]외로 더져 두어 미미히 숨을 지고

따뜻한 봄날 돌아오기 기다리고

음음한 눈 얼음 속에 잠을 자던 그 매화.

손에 이아치고

바람으로 시달리다

곧고 급한 성결 그 애를 못 삭이고

맺었던 봉오리 하나 피도 못한 그 매화. 《이병기 李秉岐/가람 문선(文選)》

 

[35]매화꽃 다 진 밤에

호젓이 달이 밝다.

구부러진 가지 하나

영창에 비취나니

아리따운 사람을

멀리 보내고

빈방에 내 홀로

눈을 감아라.

비단 옷 감기듯이

사늘한 바람결에

떠도는 맑은 향기 《조지훈 趙芝薰/매화 梅花》

 

[36]꽃은 

멀리서 바라는 것이러니

허나

섭섭함이 다하기 전에

너 설매(雪梅) 한 다발

늙은 가지에 피어도 좋으리.

……

찬 눈 속에

점점이

염통의 핏방울 아롱지우듯

꾀꼬올…꾀꼬올…

꾀꼴새 깃들여 우는

매꽃이야.

끼울퉁

고절(苦節) 많은

늙은 가지에. 《구자운 具滋雲/매 梅》

 

[37]비와 이슬이 눈과 다 같은 은택(恩澤)이로되 농상(農桑)에 소중하고 복숭아․오얏이 모두 [매화]와 다 꽃이언만 부귀(富貴)에 마땅하네. 대관절 눈과 매화와 우리 스님이 정경(情境)이 서로 어울리고 침개(針芥;자석에 붙는 바늘과 호박에 붙는 개자)처럼 서로 따라 잠깐도 떨어지지 못함을 뉘라서 알손가. 게다가 한 가지[枝]가 백옥처럼 빛나고 천산(千山)이 온통 흰 빛, 나는[飛] 새도 끊어지고 노는[遊] 벌[蜂]도 아니 오며, 먼지 찌꺼기를 기화(氣化;만물이 생성하는 이치)에 녹이고 우주의 본체(本體;태극)를 심제(心齊)에 합하면 실로 공부에 도움이 있으리니, 높은 서재의 편(篇)을 삼음이 마땅하다. 《이색 李穡》

 

[38]누구를 위한 침묵인가? 참뜻을 품은 채 빛은 장중하다. 흰 비단 치마에 소매도 곱고 우의(羽衣)에 무지개 빛깔이 돋는다. 미녀와 같이 살갗이 희고 옥과 같은 얼굴에 몸이 풍만하다. 표연히 몸을 날려 은하수에 떠 있는 것 같고 군선(群仙)의 어깨 위에서 춤추는 것 같다. 《정도전 鄭道傳/매천부 梅川賦》

 

[39]으스름 달밤에 그윽한 매화 향기가 스미어 들어올 때 그것이 고요한 주위의 공기를 청정화(淸淨化), 신성화(神聖化)하며 그윽하게 풍겨 오는 개(槪)가 있다. 《문일평 文一平/호암전집 湖岩全集》

 

[40]해는 새로 왔다. 쌓인 눈, 찬바람, 매운 기운, 모든 것이 너무도 삼름(森凜)하여서 어느 것 하나도 무서운 겨울 아닌 것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을 깨치고 스스로 향기를 토하고 있는 매화, 새봄의 비밀을 저 혼자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감추고 있다. 그렇다, 소장영고(消長榮枯)․흥망성쇠의 순환이 우주의 원칙이다. 실의의 사막에서 헤매는 약자도 절망의 허무경(虛無境)은 아니니라. 득의의 절정에서 춤추는 강자도 유구(悠久)의 한일월(閒日月)은 아니니라. 쌓인 눈 찬바람에 아름다운 향기를 토하는 것이 매화라면, 거친 세상 괴로운 지경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는 것이 용자(勇者)니라. 꽃으로서 매화가 된다면 서리와 눈을 원망할 것이 없느니라. 사람으로서 용자가 된다면 행운의 기회를 기다릴 것이 없느니라. 무서운 겨울의 뒤에 바야흐로 오는 새봄은 향기로운 매화에게 첫 키스를 주느니라. 곤란 속에 숨어 있는 행복은 스스로 힘쓰는 용자의 품에 안기느니라. 우리는 새봄의 새 복을 맞기 위하여 모든 것을 제힘으로 창조하는 용자가 되어요. 《한용운 韓龍雲/선(禪)과 인생(人生)》

 

[41]매화는 본디 백매(白梅)를 상품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홍매에도 또 다른 화사한 멋이 있다. 그리고 나의 집 홍매는 아주 새빨간 진홍으로 빛깔이 희귀하다. 검붉은 용틀임의 기고(奇古)한 등걸과 청초하게 빼낸 성긴 가지에 드문드문 피어나는 빨간 구슬 같은 꽃잎은 아리따움이 겨워 매혹적이다. 《신석초 申石艸/사매화기 思梅花記》

 

[42]매화를 완상용(玩賞用)으로 가꾸는 데에는 가지치기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가지치기에 따라 매화의 모습이 고(古)하고 아(雅)하고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등걸은 드러나야 하고 줄기는 구부러져야 하며, 가지는 성깃해야 하고 꽃은 드문드문 붙어야 한다. 이래야 비로소 매화의 격이 있다 할 것이다. 《신석초 申石艸/사매화기 思梅花記》

 

[43]나의 서재에는 매화 세 그루가 있다. 모두 분에 올려 책상머리에 두어 난(蘭)과 함께 예창(藝窓)의 청공(淸供)으로 삼았었다. 그 세 그루 중에 가장 작은 것이 벽매(碧梅)였고 둘은 백매(白梅)였다. 나는 특히 백매를 사랑하면서도 반드시 단엽(單葉)이어야 한다. 이들은 모두 단엽이었다. 매화는 원래에 눈[雪]을 상(像) 뜬 것인바 육화(六花)의 엽이 모두 하얀 빛깔을 지닌 것이 그의 색이다. 또 꽃 빛깔이 아무리 하얗다 하더라도 그 악(沂)이 붉으면 꽃의 빛깔도 따라서 삼분(三分)의 연분홍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세 그루에는 하나도 홍악(紅沂)이 없었으며, 특히 벽매는 새파란 청악(靑沂)으로서 겨울철을 맞이하여 꽃이 피면 저 창 밖에 달빛과 눈빛의 조화에 이루어지는 엄(嚴)과 현(玄)의 불가사의할 만큼 청(淸)․기(奇)한 경을 창조할 수 있게 된다. 《이가원 李家源/삼수매 三樹梅》

 

[44]매는 줄창 응달에 두면 넌출져서 꽃을 믿기에 절망이고, 지나치게 태양을 쬐면 말라죽음이 일쑤요, 풍상(風霜)에 알맞게 얼리지 않으면 꽃이 생기를 잃는 법이고, 얼리는 도수가 조금 지나치면 그 연약한 향혼(香魂)은 고기(古奇)한 본체(本體)와 함께 요천(遼天)의 학을 따라 나부끼곤 한다. 《이가원 李家源/삼수매 三樹梅》

 

[45]매화는 음력으로 섣달․정월 사이에 걸쳐서 아직 창 밖에 눈발이 휘날릴 무렵에 어느새 부풀어오른 꽃망울이 방긋이 입을 벌린다. 철골(鐵骨)의 묵은 등걸에 물기조차 없어 보이건만 그 싸늘한 가지 끝에 눈빛 같은 꽃이 피고 꿈결 같은 향을 내뿜는다. 그것은 마치 빙상(氷霜)의 맹위에 저항하려는 듯 의연하고 모든 범속한 화훼류(花卉類)와 동조를 거부하는 듯 초연하여 그 기개가 마치 고현일사(高賢逸士)를 대하는 듯 엄숙하다. 《장우성 張遇聖/분매 盆梅》

 

【격언․속담】

[46]매화도 한철 국화도 한철. (*모든 것은 한창때가 따로 있으나, 반드시 쇠하고 마는 데는 다름이 없다는 말) 《한국 韓國》

 

【고사․일화】

[47]옛날에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팔아 살아가는 영길이란 청년이 있었다. 영길이에겐 예쁜 약혼녀가 있었는데 그만 병 때문에 결혼 사흘 전에 죽고 말았다. 영길이는 매일 무덤에 가서 슬피 울었다. 어느 날 무덤 옆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돋아나 있는 것을 보았다. 영길이는 이 꽃이 죽은 약혼녀의 넋이라고 생각해서 집에 옮겨심고 그 꽃을 가꾸며 사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더구나 약혼녀가 죽은 후부터는 왠지 그릇도 그 모양이 슬퍼하듯 찌그러져 잘 팔리지 않아 고생은 점점 심했다. 세월이 흘러 영길이는 늙고, 매화나무도 자랄 대로 자랐다. 명절마다 꽃 그릇을 새로 만들어 매화나무를 옮겨심고는 산 사람에게 말하듯 내가 죽으면 누가 돌봐 주느냐고 슬퍼했다. 영길이는 더 늙어 눈도 잘 안 뵈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불쌍한 노인을 돌봐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후 동네 사람들은 영길이 노인집 대문이 잠겨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무슨 곡절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서 안에 들어갔더니, 아무도 없고 영길이가 앉았던 자리에 예쁘게 만든 그릇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뚜껑을 열자 그 속에서 휘파람새가 날아 나왔다. 영길이가 죽어서 휘파람새가 된 것이다. 아직도 매화꽃에 휘파람새가 따라다니는 이유가 여기 있다.

 

[48]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은 본관이 진주다. 그 어머니 꿈에 자라가 품속으로 들어가더니 태기가 있어 그를 낳았으므로 어릴 때 이름이 왕팔(王八)이었다. 어려서부터 기운이 남보다 뛰어났었다. 갑사숙위(甲士宿衛)의 직책으로 궁문에 숙직할 적에 때마침 동짓날이어서 상림원(上林苑;비원) 온실에서 가꾼 매화 몇 분(盆)을 궁문 곁에 옮겨 두려 할 적에, 공이 긴 가지 하나를 꺾어서 투구 위에 꽂으니, 꽃을 맡은 이가 크게 놀라 꾸짖으매 공이 말하기를, 「우리 집 울타리 가에 마소[馬牛]를 매는 것이 이 나무요, 꺾어서 땔나무도 하는 것인데 무엇이 귀할 게 있으리오.」 하며 조금도 굽히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두 그 추맹(駝猛)함을 웃었으나, 그 기절을 장하게 여겼다. 《서거정 徐居正/필원잡기 筆苑雜記》

 

【어휘․명칭】

[어휘] (1)설중매(雪中梅):눈 속에 핀 매화. (2)강남일지춘(江南一枝春):강남으로부터 매화 가지 하나를 친구에게 보냈다는 뜻/荊州記.

 

[이칭] (1)매실나무 (2)일지춘(一枝春) (3)청객(淸客) (4)경영(瓊英/宋璟․梅花賦) (5)목모(木母) (6)옥골(玉骨/竹坡詩話) (7)화괴(花魁) (8)빙기옥골(氷肌玉骨/竹坡詩話)

[꽃말] 아름다운 덕

 

 

난초(蘭草)

 

【어록】

[1]난초가 깊은 산 속에 나서 알아 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향기롭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람이 도를 닦는 데도 이와 같아서, 궁하다고 하여도 지절(志節)을 고치지 아니하는 것이다. 《공자가어 孔子家語》

 

[2]착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난초가 있는 방에 앉아 있는 것처럼 향기롭다. 《공자가어 孔子家語》

 

[3]난을 치는 데는 마땅히 왼쪽으로 치는 한 법식을 먼저 익혀야 한다. 왼쪽으로 치는 것이 난숙(爛熟)하게 되면 오른쪽으로 치는 것은 따라가게 된다. 이것은 손괘(損卦)의 먼저가 어렵고 나중이 쉽다는 뜻인 것이다. 군자는 손 한 번 드는 사이에도 구차스러워서는 아니 되니, 이 왼쪽으로 치는 한 획으로써 가히 이끌어 윗것을 덜고 아랫것을 보태는 것을 대의(大義)로 하되, 곁으로 여러 가지 소식에 통달하면 변화가 끝이 없어서 간 데마다 그렇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가 붓을 대면 움직일 때마다 문득 계율(戒律)에 들어맞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군자의 필적(筆蹟)을 귀하게 여기겠는가. 이 봉안(鳳眼)이니 상안(象眼)이니 하여 통행하는 규칙은 이것이 아니면 난을 칠 수가 없으니, 비록 이것이 작은 법도이기는 하나, 지키지 않으면 이를 수가 없다. 하물며, 나아가서 이보다 큰 법도이겠는가. 이로써 한 줄기의 잎, 한 장의 꽃잎이라도 스스로 속이면 얻을 수 없으며, 또 그것으로써 남을 속일 수도 없으니, 「열 사람의 눈이 보고 열 사람의 손이 가리키니 엄격할 것인저.」 이로써 난초를 치는 데 손을 대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김정희 金正喜/제군자문정첩 題君子文情帖》

 

[4]비록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난초를 모두 잘 치지는 못한다. 화도(畵道)에 있어서 난초는 따로 한 격식을 갖추는 것이니, 가슴속에 서권기(書卷氣)가 있어야만 이에 가히 붓을 댈 수 있느니라. 《김정희 金正喜》

 

[5]난은 그 화태(花態)가 고아할 뿐 아니라 경엽(莖葉)이 청초(淸楚)하고 형향(馨香)이 유원(幽遠)하여 기품이 우(優)함과 운치의 부(富)함이 화초 중에 뛰어나므로 예로부터 군자의 덕이 있다고 일컬어 문인 묵객(墨客) 사이에 크게 애상(愛賞)되어 왔다. 세인이 흔히 난과 지(芝)를 병칭하나 지는 선계(仙界)의 영초(靈草)로 그 실물을 목도(目睹)한 이가 드문 모양이다. 혹은 지(芝)에 자(紫)와 백(白)의 두 종류가 있어 줄기의 길이가 한 자가 넘는바, 바위 위에 나며 그 형상(形狀)이 돌과 같으며 사람이 먹는 고로 가을에 채취한다고 하나 잘 알 수 없는 바다. 그리고 흔히 난(蘭)과 혜(蕙)를 병칭하지마는 양자의 구별은 일언가변(一言可辨)할 수 있으니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 양화편(養花篇)을 보면, 「一幹一花而香有餘者蘭也, 一幹七花而香不足者蕙也」라 하였다. 한 줄기에 한 송이 꽃이 피어 향기가 넘치는 것이 난이요, 한 줄기에 예닐곱 송이 꽃이 피어 향기가 적은 것이 혜(蕙)니라. 《문일평 文一平/호암전집 湖岩全集》

 

[6]간단히 말해 난은 꽃이 적고 향기가 많으니 「문향십리(聞香十里)」라고 함이 반드시 턱없는 한문식의 과장만이 아니다. 난화를 향조(香祖)라 또는 제일향(第一香)이라 이름함이 어찌 이유가 없음이랴. 동국(東國)에 진란(眞蘭)이 없다 하나, 호남연해(湖南沿海)의 명산에는 방란(芳蘭)이 있다는바, 제주 한라산 속에도 글자대로 유곡방란(幽谷芳蘭)이 흔히 발견된다 하며 또 제주읍 서쪽으로 이십 리에 청천(淸川)이 흐르는 도근촌(道根村)에는 진란이 있는데 꽃빛이 하얀 것이 더욱 아름답다 한다. 청천(淸川)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 「生湖 南沿海諸山者品佳 霜後勿傷垂根 帶舊土依古方 栽盆薦妙 春初花發 張燈置諸案上 則葉影印壁膳膳可玩讀書之餘 可滑睡眠…」이라 한 것을 읽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난실(蘭室)의 유향(幽香)이 심신에 배는 듯한 느낌이 생기게 하는 바 있다. 난(蘭)에는 춘란(春蘭)과 추란(秋蘭)이 있는데, 전자는 꽃과 잎이 아결(雅潔)하기 짝이 없다. 《문일평 文一平/호암전집 湖岩全集》

 

[7]수선(水仙)을 기르기 까다롭다 하지만, 한 달쯤 공을 들이고 보면 꽃을 볼 수 있지마는, 난은 한 해 또는 몇 해를 겪어도 꽃은커녕 잎도 내기가 쉽지 않다. 난은 싱싱하고 윤이 나는 그 잎이 파리똥만한 반점도 없이 제대로 한두 자 이상을 죽죽 뻗어야 한다. 난은 종류에 따라 대엽, 중엽, 세엽(細葉)과 입엽(立葉), 수엽이 있다. 대엽 입엽인 이 건란(建蘭)은 다른 난에 비하여 퍽 건강한 편이고 보통 소심란보다는 윤이 덜하고 더 푸르되, 대엽 춘란같이 짙지는 않다. 난은 잎만 보아도 좋다. 수수하고도 곱고 능청맞고도 조촐하고 굳세고도 보드라운 그 잎이 계고(溪菰), 창포(菖蒲), 야차고(野次菰)와는 같은 듯해도 전연 다르다. 이걸 모르고 난을 본다든지 그린다든지 하면 난이 아니요, 잡초다. 《이병기 李秉岐/건란 建蘭》

[8]모름지기 난과의 대화는 바로 참선과도 통한다. 가만한 가운데서 주고받는 상간이불염(相看而不厭)의 품앗이가 바로 난과의 호흡이자 정의 오감이다. 《이병도 李丙燾/난 蘭》

 

【시․묘사】

 

[9]봄을 붙잡으려면 먼저

꽃을 머무르게 해야 한다

봄바람은 꽃을 데리고 가는 것이니

그러나 누가 알랴 이 난초의 향기를

이월에도 삼월에도 오래도록 한결같은

유춘정 아래 난초를. 《양차공 楊次公/유춘정시 留春亭詩》

 

[10]춘란은 미인과 같아서

꺾지 않아도 스스로 향기를 바친다.

春蘭如美人

不採香自獻 《소식 蘇軾/춘란 春蘭》

 

[11]눈이 녹지 않은 오솔길 꽃 생각이 많아서

난초 뿌리가 얼음 속에서 솟는다

자라서 복숭아꽃처럼 호화스러운 것은 없으나

그 이름은 항상 산림처사(山林處士)의 집에 있다.

雪徑偸開淺碧花

氷根亂吐小紅芽

生無桃李春風面

名在山林當士家 《양정수 楊廷秀/난화 蘭花》

 

[12]옥분(玉盆)에 심은 난초 일간일화(一間一花) 기이하다

향풍(香風) 건듯 이는 곳에 십리초목(十里草木) 무안색(無顔色)을

두어라 동심지인이니 채채 백 년 하리라. 《이수강 李洙康》

 

[13]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이병기 李秉岐/가람 문선(文選)》

 

[14]한 송이 난초꽃이 새로 필 때마다

돌들은 모두 금강석(金剛石)빛 눈을 뜨고

그 눈들은 다시 날개 돋친

흰 나비 떼가 되어

은하(銀河)로 은하로 날아 오른다. 《서정주 徐廷柱/밤에 핀 난초(蘭草)꽃》

 

[15]홀로 외로이 어우러져 향을 내뿜는 난초 잎이여 《구자운 具滋雲/귀가 歸家》

 

[16]진실로, 난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한 십리쯤 떨어진 밖에서라도 그 자우룩한 향기를 알아들을 수 있는 어질고 밝은 귀를 가졌을 것이 아니겠는가. 

내 잠 안 오는 어떤 새벽에 베개를 고쳐 머리맡에 남루한 이불을 무릅쓰고 돌아누우며 백설(白雪)이 덮인 산등성이에 추위 타 떨고 있을 어린 뿌리의 싹수를 생각하고 뜬눈으로 밝힌다. 《김관식 金冠植/아란조》

 

[17]건란(建蘭)은 줄기 끝에 한두 송이 남기고는 죄다 벌어졌다. 약간 붉은 점과 선이 박힌 누르스름한 그 모양이 담박은 할망정 요염치 않고 이따금 그 향은 가는 바람처럼 일어 온다. 단향처럼 쏘지도 않고 수선․매화처럼 상긋하지도 않고 정향․백합처럼 맵지도 않고 장미처럼 달지도 않고 그저 소리도 않고 들린다. 가까이보다 멀리서 더 잘 들린다. 《이병기 李秉岐/건란 建蘭》

 

[18]난은 잎이 그리는 선의 멋이 아름답고, 비집고 오르는 촉의 아망과 대공이 자라는 우아와 자줏빛 꽃대에 달린 봉오리의 맺음과 벌음, 그리고 꽃바대에 갈무린 암팡진 꽃의 미소가 볼수록 좋다. 더구나 은은하되 짙고, 짙되 맑은 내음의 풍김이 그윽해서 값지다. 그것이 귀하다 보니 매양 우러러지고, 그것이 값지다 보니 한결 부러워져 난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단골이 불어나는 오늘이다. 수수한 춘란은 흔한 만큼 그런 대로 초심(初心)의 반기이고, 한란은 아무래도 손이 자주 간다. 반출을 말리니까 귀해서다. 소심(素心)은 진한 향기에 맛이 다셔지고, 십팔학사(十八學士)는 빳빳한 잎에 어울려 오르는 새 촉의 밋밋과 꽃대의 앙상한 몸매가 사뭇 샌님처럼 의젓하다. 한편 건란(建蘭)은 헌칠한 학의 목처럼 우뚝해서 휘어진 잎이 수려하고, 엄전한 갈색 대공에서 풍기는 청향은 키다리의 싱거움을 감춰서 좋다. 그리고 보세(報歲)는 싱싱한 넓은 잎에 자르르 흐르는 윤기가 왕성한 향수를 자아낸다. 거기에 미욱하게도 지루한 꽃대의 자람이 보는 눈마저 조바시게 하지만, 그러나 일단 솟아오른 대공에 달린 오동통한 꽃봉오리, 흡사 금붕어 조동아리 같은 꽃과 초롱 같은 꽃망울에 조랑조랑 맺혀진 이슬방울이 눈짐작을 어기고 밤새에 벌어진 꽃술을 적시면, 멀리서까지 그 향이 번져 온 집안이 향기다. 이른바 청초한 문향(聞香)의 운치가 다북한 난의 울력이다. 《이병도 李丙燾/난 蘭》

 

[19]난초처럼 자기의 본분을 잘 지키는 꽃도 드물다. 똑같은 봄꽃이면서도 다른 꽃들처럼 그 색채가 야단스럽지 않고 그 모양이 요염하지 않다. 어딘지 모르게 찬 듯하면서도 덥고, 소박한 듯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렇기 때문에 그 향기가 유난스럽고 믿음직스러운 것이다. 난향사시(蘭香四時)란 말이 있다. 춘하추동 그 방향(芳香)이 사시(四時)에 떨친다고 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미덕을 두고 하는 말이랴! 흔히 난초의 꽃말은 「미인」이라고들 한다. 그것은 곧 은근한 여성의 미를 단적으로 들추어내는 말인 듯하다. 쪽 곧은 줄기는 만고의 절개를 은은히 말해 주고 있다. 《이숙종 李淑鍾/난초 蘭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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