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原三國時代의 新羅 書藝考

原三國時代의 新羅 書藝考
權相浩(국어,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Ⅰ. 들어가며
특정 시대의 時代精神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당시의 文字 기록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 文字는 그 시대 사람들의 思想과 感情을 전달하는 道具이기 때문이다. 文字 중에서도 金石文은 時空을 초월하여 그 시대의 사상과 문화를 가장 정확하게 전해 준다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금석문은 그 당시 사람의 손에 의하여 직접 이루어진 것이므로 가장 정확하고 진실한 역사적 자료가 된다.
그런데 統一 이전의 原三國時代 新羅 金石文은 오랜 풍상으로 마멸이 심하고 難澁한 故事가 많아 해석이 어렵다. 아무튼 이 당시의 書風을 논하기 위해서는 그 때에 만들어진 金石文에 대한 漢文學的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三國 중에서 그나마 新羅의 金石文이 상대적으로 가장 많이 남아 있어서 객관적 書風을 살펴보기에 용이하다. 新羅의 금석문에 나타난 內容과 書風이 지리적 역사적 배경과 어떠한 상호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書藝는 문자를 媒體로 표현하는 造形藝術이다. 표현된 문자 속에는 書體로서의 形式과, 그 속에 담긴 內容이 유기적으로 융합되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書寫 內容에 따라 書體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書寫 내용이란 작가가 처한 객관 景物이나 상황에 좌우된다고 본다. 이를테면 流觴曲水의 蘭亭에서는 流麗한 行書가 제격일 것이고, 謹嚴肅然한 祖廟 앞에는 端雅한 楷書가 어울릴 것이다.
新羅는 신라대로 신라의 얼이 담긴 글씨를 썼을 것이고, 高句麗와 百濟는 그들 나름대로 그들의 넋이 어린 글씨를 썼을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新羅는 신라만이 갖는 사회적․지리적․풍토적 차이로 인하여 신라만의 독특한 서예 문화를 낳았을 것이다. 신라는 결국 自國의 빛깔과 향기가 우러나는 新羅書風을 이룩했다고 본다.
흔히 三國을 鼎立하여 논하는 것이 상례이나, 여기서는 그 중 신라만의 書風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의 의의는 신라의 개성적 書藝 精神을 찾는 데에 있다. 신라인의 가슴에 흐르고 있는 美的 原型은 무엇일까. 이 글은 신라만이 갖는 서풍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신라인의 정서적 뿌리를 조금이나마 알아보자는 데에 있다.
원삼국시대 신라의 金石 書藝資料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자료를 기준으로 연대를 추정해 보면 5세기 중엽에서 7세기 중엽까지 약 2백년 동안에 이루어진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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