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매 - 목은 이색

牧隱의 梅(94회)를 소재로 한 시

1. 牧隱詩藁卷之二

次韻葉孔昭江南四絶-4 섭공소(葉孔昭)의 강남(江南四絶)에 차운하다.

천원의 꽃나무엔 홍색 남색이 물들었는데 / 川原花樹染紅藍

다리 밖에 노는 이는 술이 반쯤 거나하네 / 橋外遊人酒半酣

내 집은 푸른 버들 깊은 곳에 주재하는데 / 家在綠楊深處住

우연히 꾀꼬리 따라 시내 남쪽 들렀노라 / 偶隨黃鳥過溪南

봄은 버들로

씻은 듯한 연잎에 푸른 연기 떠 있어라 / 新荷如拭綠浮煙

지관의 훈훈한 바람 오월의 하늘이로세 / 池館薰風五月天

창밖에 촉촉이 내린 가랑비 하 좋아서 / 自喜小窓微雨足

약초 밭에 김매고 또 와서 잠을 잔다오 / 藥畦鋤了又來眠

여름은 연잎

풍경이 서늘하여 더운 기가 걷히고 나니 / 雲物凄淸暑氣收

연꽃의 이슬 차가워라 강 가득 가을일세 / 芙蓉露冷滿江秋

문득 생각하니 거룻배에 술만 실어 간다면 / 便思載酒扁舟去

게 농짝 누런 감귤은 바로 거기 있잖은가 / 紫蟹黃柑不外求

가을은 감귤

갑자기 아침 내내 바람 불고 가랑눈 내려라 / 風吹小雪忽崇朝

깊은 방에 앉았노라니 술기운이 사라지네 / 深坐幽齋酒力消

묻노니 매화는 꽃을 곧 터뜨리지 않으려나 / 爲問梅花將動未

물 맑고 얕은 곳에 높은 풍치가 있으리라 / 水淸淺處想高標

崇朝는 새벽부터 朝飯을 들 때까지의 아침이다. 바람 불고 눈이 조금 날리는 아침에 간밤에 마신 술기운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면서 물 맑고 얕은 곳에서 매화가 언제 피어날지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의 매화는 기다림의 매화이다.

겨울에 매화를 노래한 것은 봄을 기다림에서이다. 매화를 春信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주D-001]물 맑고 얕은 곳 : 송(宋)나라 임포(林逋)의 〈소원소매(小園小梅)〉 시에,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그윽한 향기는 황혼 달빛 아래 부동하도다.[疏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한 데서 온 말이다.

2. 牧隱詩藁卷之二

淸明雪 次伯父韻三首 청명(淸明)에 눈이 오므로 백부(伯父)님의 시에 차운하다. 3수(三首)

찬 제비가 날아와서 바람을 못 견디어라 / 凍燕飛來不耐風

눈발이 텅 빈 초당에 냉기를 불어오누나 / 雪華吹冷草堂空

흰 모시를 재단한 게 쑥스럽기만 하여라 / 裁成白紵還羞澁

청명은 해마다 같은 줄 잘못 알았네그려 / 誤認淸明歲歲同

시내 다리 저녁 바람에 서 있던 그 옛날엔 / 憶昔溪橋立晚風

매화꽃이 수없이 찬 공중을 비추었는데 / 梅花無數暎寒空

깊은 봄에 문득 버들꽃을 만들어 보이니 / 春深却作楊花看

물태는 때에 따라 절로 이동이 있음일세 / 物態隨時自異同

피부가 눈빛같이 고운 일만의 옥비가 / 雪色肌膚萬玉妃

요대에서 잔치 파하고 해가 저물어 갈 제 / 瑤臺宴罷欲斜暉

응당 인간 세상의 봄 경치 좋음을 알고 / 應知人世春光好

청명일을 가려서 학을 타고 내려왔겠지 / 趁取淸明駕鶴歸

이 시는 제목에서 밝혔듯이 청명에 내리는 눈을 노래하고 있다. 요대는 아름다운 궁전, 또는 신선이 사는 곳을 뜻한다. 그 곳에서 잔치를 끝내고 내려오는 버들꽃에 비유하고 있다. 그 옛날의 눈은 아마 매화로 보였나 보다.

[주D-001]옥비(玉妃) : 설화(雪花), 즉 눈송이의 별칭이다

3. 牧隱詩藁卷之三

自詠-2 스스로 읊다.

날이 차가우니 섣달 눈은 내리고 / 天寒臘雪作

바람이 자니 저녁 구름은 짙은데 / 風定晚陰濃

낭랑히 읊조려 시 생각 끌어내고 / 朗詠牽詩思

고상한 담화로 취한 얼굴 펴노라 / 高談逞酒容

해와 달은 서로 달려 운행하는데 / 飛烏走兔

용과 범은 서로 섞여 지치었도다 / 困虎雜疲龍

소장들에게 영발한 기백이 없으니 / 少壯無英氣

돌아가서 늙은 농부에게 물으련다 / 歸歟問老農

해는 일 년 이 년 자주도 바뀌고 / 歲律頻移換

인정은 짙고 옅음이 섞이었도다 / 人情雜淡濃

바람 가벼워라 눈 올 기미 뽐내고 / 風輕驕雪意

구름 빽빽해라 날씨는 참담하네 / 雲密慘天容

추위 이기는 술엔 거품이 떠 있고 / 壓冷酒浮蟻

화사한 매화나무는 용이 누운 듯하네 / 鬪晴梅臥龍

큰 풍년을 진실로 기대할 만하니 / 豐穰端可冀

남묘에 가서 농사나 힘쓰고 싶구나 / 南畝欲明農

매화의 형상을 노래한 시이다. 묵은 매화의 가지는 흔히 용에 비유된다. 여기의 臥龍은 아마 밝은 미래를 꿈꾸는 화자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4. 牧隱詩藁卷之三

早春 이른 봄

이른 봄이라 천기가 차가워서 / 早春天氣冷

빙설이 해산에 깊이 쌓였는데 / 氷雪海山深

성시엔 사람 소리 떠들썩하고 / 城市人聲鬧

누대엔 기러기 그림자 비치네 / 樓臺鴈影侵

낙매의 바람은 물을 출렁이고 / 落梅風動水

방초의 햇살은 숲을 뚫는구나 / 芳草日穿林

화려한 광경에 눈이 현란하여 / 紅紫迷光景

소리 높이 읊으며 다시 모였네 / 高吟更盍簪

떨어지는 매화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바람에 이는 물결이 낙매를 통하여 인식하고 있다. 물론 다가 오는 이른 봄의 풍광을 보면서 시인의 마음도 흔들리고 있다.

5. 牧隱詩藁卷之三

赴松京途中 송경(松京)으로 가는 도중에

그 누가 이 호기가 신주를 뒤덮어서 / 誰敎豪氣蓋神州

원룡의 백척루를 압도하게 하였는고 / 壓倒元龍百尺樓

결단코 여우처럼 한 언덕만 지키지 않고 / 斷不一丘狐嘯夜

곧장 물수리처럼 가을 하늘을 횡단하리라 / 直從萬里鶚橫秋

동주의 예악은 제후국에 성대했거니와 / 東周禮樂諸侯盛

서한의 문장은 두어 사람이 뛰어났었네 / 西漢文章數子優

필경 이 몸은 하늘이 부여해 준 바이라서 / 畢竟此身天所賦

칠언시 네 구절에 생각이 한량없네그려 / 七言四句思悠悠

옷이 없는데 왜 남주를 생각하지 않으랴 / 無衣何不想南州

십 리 화려한 주렴에 영벽루도 빛나누나 / 十里珠簾暎碧樓

흰 매화 눈처럼 날려라 섣달은 다가오고 / 梅白雪飛初近臘

누런 귤에 서리 내려라 가을은 다해 가네 / 橘黃霜落欲窮秋

김장이야 풍공의 위대함을 부러워하랴만 / 金張肯羨馮公偉

등설은 조로의 유여함을 꼭 알아야 하리 / 滕薛須知趙老優

세도와 인정을 끝내 어찌 믿을 수 있으랴 / 世道人情竟何恃

객창의 비바람 속에 밤만 지리하구나 / 客窓風雨夜悠悠

눈에 휘날리는 매화 꽃잎을 눈으로 보고 있다. 왕안석의 매화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주D-001]호기(豪氣)가 …… 하였는고 : 원룡(元龍)은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의 고사(高士) 진등(陳登)의 자이다. 허사(許汜)가 일찍이 유비(劉備)와 함께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갔을 적에 허사가 진등의 인품을 평하여 말하기를, “일찍이 하비(下邳)에 들러 진등을 만났는데, 진등이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다가, 자신은 큰 와상에 올라가서 눕고, 나는 밑에 있는 와상에 눕게 하더라.”고 하자, 유비가 말하기를, “그대는 국사(國士)의 명망을 지녔는데도……아무런 채택할 만한 말이 없었으니, 이것이 바로 진등이 꺼리는 바이다. 만일 나 같았으면 나는 백척루(百尺樓) 위에 눕고 그대는 맨땅에 눕도록 했을 것이다. 어찌 와상의 위아래 차이만 두었겠는가.” 한 데서 온 말이다. 《三國志 卷7 魏書 陳登傳》

[주D-002]여우처럼 …… 않고 : 여우는 근본을 잊지 않아서 죽을 때도 반드시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고향을 그리워함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3]물수리처럼 …… 횡단하리라 : 남에게 천거(薦擧)를 받아 관직에 등용됨을 뜻한다. 후한(後漢) 때 예형(禰衡)이 젊어서 재능이 있었으므로, 공융(孔融)이 그를 천거하는 글에서 “사나운 새 백 마리를 합해 놓아도 물수리 한 마리를 못 당하나니, 예형이 조정에 들어가면 반드시 볼 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80 文苑列傳》

[주D-004]김장(金張)이야 …… 부러워하랴만 : 김장은 한(漢)나라 때 칠세(七世)에 걸쳐 고관대작(高官大爵)에 올라 부귀영화를 극도로 누렸던 김일제(金日磾)와 장안세(張安世)의 가족을 가리키고, 풍공(馮公)은 한 문제(漢文帝) 때에 직간(直諫)을 했다가 소외되어 벼슬이 중랑서장(中郞署長)에 그치고 끝내 등용되지 못했던 풍당(馮唐)을 가리키는데, 좌사(左思)의 〈영사(詠史)〉 시에, “풍공이 어찌 위대하지 않았으랴만, 백발이 되도록 등용되지 못했네.[馮公豈不偉 白首不見招]” 하였다.

[주D-005]등설(滕薛)은 …… 하리 : 등설은 춘추전국 시대의 등나라와 설나라이고, 조로(趙老)는 ‘조나라의 원로’라는 뜻으로, 춘추 시대에 덕망이 높았던 노(魯)나라 대부(大夫) 맹공작(孟公綽)을 가리킨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맹공작은 조ㆍ위의 원로가 되기에는 유여하거니와, 등ㆍ설의 대부는 될 수가 없다.[孟公綽爲趙魏老則優 不可以爲滕薛大夫]”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憲問》

6. 牧隱詩藁卷之三

諸公見和壺字韻。復作數首答之 제공(諸公)이 호(壺) 자 운으로 화답하므로, 다시 몇 수를 지어 답하다.

答胥有儀 서유의(胥有儀)에게 답하다.

소년 시절에 기발한 뜻을 품고 / 少年負奇志

슬피 노래하며 타호를 쳐 댔는데 / 悲歌擊唾壺

슬프다 내 훌륭한 젊은 친구가 / 慨我少良友

연산 한 구석에 배회하는 것이 / 躑躅燕山隅

호걸의 선비를 어떻게 알아보랴 / 焉知豪傑士

술집이나 도살장에 숨어 있으니 / 隱淪沽與屠

외모는 비록 초라한 차림이지만 / 外雖披短褐

가슴속엔 혹 보배를 품기도 하네 / 內或懷明珠

멀리 연 소왕을 사모하여라 / 遠慕燕昭王

어진 선비들이 기꺼이 몰려왔네 / 賢士來于于

황금대 곁을 조용히 배회하노니 / 徘徊金臺側

불룩한 집터가 엎은 사발 같구나 / 隆基如覆盂

그런데 어찌하여 자객 형가는 / 奈何荊軻子

독항도로써 재앙을 불렀던고 / 賈禍督亢圖

세속이 어찌 이런 사리를 알랴 / 流俗豈知此

유협객은 도박꾼이나 될 뿐이네 / 游俠競摴蒱

가장 기쁜 건 자네를 얻음이니 / 最喜得吾子

산택에서 여윌 사람이 아니로다 / 知非山澤癯

당로자들은 나를 아는 이 없는데 / 當路莫予識

시 읊는 벗으로 유달리 친밀하네 / 哦詩伴密殊

가을바람이 서륙에서 일어나니 / 秋風起西陸

찬 이슬이 갈대를 시들게 하누나 / 白露萎菰蘆

강 남쪽엔 차가운 매화가 있어 / 江南有寒梅

절구 시가 임포에게서 전해 오네 / 絶句傳林逋

복사꽃 오얏꽃이 왜 안 좋으랴만 / 桃李豈不好

우리 함께 가는 길을 신중하세나 / 與子愼趨途

매화와 임포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주D-001]슬피 …… 쳐 댔는데 : 진(晉)나라 때 왕돈(王敦)이 매양 술이 거나하면 위 무제(魏武帝)의 악부가(樂府歌) 가운데 “늙은 준마는 마판에 엎드려 있어도 뜻은 천리 밖에 있고, 열사는 늙은 나이에도 장대한 마음은 그치지 않네.[老驥伏櫪 志在千里 烈士暮年 壯心不已]”라는 노래를 읊조리면서 여의봉(如意棒)으로 타호(唾壺)를 쳐서 장단을 맞추다 보니, 타호의 언저리가 모두 깨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전하여 장대한 회포나 혹은 불평한 마음을 토로하는 것을 형용한다.

[주D-002]멀리 …… 같구나 : 전국 시대에 연 소왕(燕昭王)이 곽외(郭隗)를 위하여 역수(易水)의 동남쪽에 황금대(黃金臺)를 짓고 천하의 현사(賢士)들을 초빙(招聘)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자객(刺客) …… 불렀던고 : 전국 시대에 자객 형가(荊軻)가 연(燕)나라 태자 단(丹)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진왕(秦王)을 죽이려 하였는데, 연나라의 독항 지도(督亢地圖)를 진왕에게 바치다가 잘못해서 비수(匕首)를 들켜 마침내 진왕은 죽이지 못한 채 도리어 자신만 잡혀 죽고 따라서 연나라도 멸망하게 되고 말았음을 이른 말이다.

[주D-004]강 …… 전해 오네 : 송(宋)나라의 처사(處士) 임포(林逋)의 〈산원소매(山園小梅)〉 시에, “성긴 가지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은은한 향기는 황혼의 달빛 아래 부동하네.[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한 것을 이른 말이다.

7. 牧隱詩藁卷之五

雪後寄林椽名傑。江南人。눈이 온 뒤에 임연(林椽)에게 부치다. 이름은 걸(傑)인데, 강남(江南) 사람이다.

서호의 맑은 물에 청산은 거꾸로 비치고 / 西湖鏡淨倒靑山

화정의 매화는 물에 비쳐 차가울 텐데 / 和靖梅花照水寒

응당 곡봉 위의 밝은 달빛을 마주하여 / 應對鵠峯峯上月

아마도 성긴 가지 보며 평안을 물으리라 / 想看疎影問平安

물에 비친 매화를 노래했다. 매화와 화정의 관계를 빌려 시적화자가 달을 보며 임을 그리워하고 있다. 역시 매화와 달은 상관관계가 깊은 소재이다.

[주D-001]서호(西湖)의 …… 차가울 텐데 : 화정(和靖)은 송(宋)나라 때의 은사(隱士)로 시호가 화정 선생(和靖先生)인 임포(林逋)를 가리킨다. 임포는 서호의 고산(孤山)에 은거하면서 특히 매화와 학을 사랑하여 매처 학자(梅妻鶴子)라는 말도 있거니와, 그가 일찍이 지은 〈매(梅)〉 시에,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은은한 향기는 황혼 달빛 아래 부동하누나.[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한 것을 이른 말인데, 여기서는 곧 임걸(林傑)이 임포와 같은 임씨이므로 임포에 비유하여 한 말이다.

8. 牧隱詩藁卷之五

次林椽所贈詩韻 三首 임연(林椽)이 준 시운에 차하여 짓다. 3수(三首)

객지 벼슬살이에 지기는 절로 당당한데 / 宦遊志氣自堂堂

세모에 뜻을 잃고 먼 지방에 유체되었네 / 歲晚龍鐘滯遠方

도를 즐기기에 일찍 세리는 능히 잊었고 / 樂道早能忘勢利

경적 연구로 다시 문장은 즐기지 않도다 / 窮經不復玩詞章

만사에 마음 놀라 눈물 줄줄 흘러라 / 驚心萬事雙危涕

되돌아보니 중원은 하나의 전장이로세 / 回首中原一戰場

가장 이 서호가 꿈에 자주 나타나는데 / 最是西湖頻入夢

매화가 초췌하여 광휘를 다 잃어버렸네 / 梅花憔悴慘無光

전장터가 된 중원을 염려하며 빛 잃은 매화를 읊고 있다.

시끄럽고 번화한 곳에 강당을 개설하고 / 囂囂莊嶽闢鱣堂

생도들을 옳은 도리로써 잘 인도하누나 / 善誘靑衿納義方

세도의 계책은 응당 체통을 얻었거니와 / 策世只應深得體

사람 교화는 능히 문리를 성취케 하도다 / 鑄人能使斐成章

민공의 경학은 더 이상 미진함이 없고요 / 敏公經學無餘蘊

화정의 시명은 시단의 으뜸을 차지했네 / 和靖詩名獨擅場

알건대 그대의 집엔 숨은 덕이 있으니 / 知有君家潛德在

후일에 누가 은덕의 광채를 발휘할런고 / 他年誰爲發幽光

경학과 문학의 갈등을 노래하고 있다.

울타리도 아직 먼데 감히 당을 오를쏜가 / 藩籬尙遠敢升堂

스스로 헤아리매 무재가 대방을 만남일세 / 自揣無才見大方

세상일 논함엔 공문거에게 깊이 놀랐고 / 論世深驚孔文擧

손 칭찬엔 잘못 하지장의 대우를 받았네 / 賞賓謬被賀知章

나는 외로운 몸 이끌고 문명의 땅에 와서 / 靜携孤影衣冠地

한가히 문단에서 헛된 명성을 이루었건만 / 閑惹虛名翰墨場

오직 좌망만을 가장 즐거운 일로 삼아서 / 唯有坐忘爲樂事

때때로 심경을 다시 갈아서 빛을 내노라 / 時時心鏡更磨光

[주D-001]서호(西湖) : 특히 매화(梅花)를 몹시 사랑했던 송(宋)나라의 은사(隱士) 임포(林逋)가 살던 곳이다.

[주D-002]공문거(孔文擧) : 문거는 후한(後漢) 때의 고사(高士) 공융(孔融)의 자인데, 공융은 준재(俊才)로서 매우 박식(博識)하였고, 특히 조정에서의 건의(建議)에 뛰어났었다.

[주D-003]손 …… 받았네 : 당 현종(唐玄宗) 연간에 이백(李白)이 장안(長安)에 갔다가 처음으로 하지장(賀知章)을 만났는데, 하지장이 이백의 문장(文章)을 한 번 보고는 대번에 “그대는 적선인(謫仙人)이다.”고 극찬(極讚)을 한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이색(李穡) 역시 이씨(李氏)이기 때문에 자신을 이백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4]좌망(坐忘) : 도가(道家)의 용어로, 물아(物我)를 다 잊고 도(道)와 합일(合一)하는 정신의 세계를 가리킨다.

[주D-005]심경(心鏡) : 불교 용어로, 거울처럼 청정(淸淨)한 마음을 가리킨다.

9. 牧隱詩藁卷之五

次金同年前後所寄詩韻 김동년(金同年)이 전후로 부친 시운에 차하다.

살아서 요순 같은 임금 만난 게 다행하여라 / 自幸生逢高舜君

하늘이 과연 사문을 없애려 하지 않음일세 / 皇天未欲喪斯文

그대는 재능 갖추어 장차 크게 쓰일 터인데 / 知君蘊玉將求價

무슨 일로 전원에 가서 농사를 배운단 말가 / 何事歸田便學耘

옛꿈은 비 오는 밤 함께한 게 늘 생각나고 / 舊夢每思同夜雨

새 시는 봄 구름에 부쳐 준 게 자주 기뻤네 / 新詩屢喜寄春雲

아무쪼록 삼동엔 학문 더욱 열심히 닦아서 / 更須努力三冬學

마침내 큰 명성 이루는 사업을 기약하게나 / 事業終期遠播芬

그 옛날 상종하던 곳을 생각하니 / 憶昔相從處

시단이요 취향 두 군데였었네 / 詩壇與醉鄕

어둔 구름 속에 산사는 예스럽고 / 暝雲山寺古

가을 이슬은 초당에 서늘했었지 / 秋露草堂涼

연구 지은 것도 능히 기억하는데 / 聯句猶能記

술잔 기울인 걸 잊을 수 있으랴 / 傾杯可得忘

언제나 한 등불 아래 담소하면서 / 何時一燈話

풍우의 밤에 다시 침상 마주할꼬 / 風雨更同牀

소장 시절에 많은 공을 수립하고 나서 / 樹立脩功少壯年

문득 백발에 좋이 전원으로 돌아갔네 / 却將華鬢好歸田

묻노니 그대 무슨 까닭에 먼저 돌아갔나 / 問君何故先歸去

남녘을 바라보면서 때때로 한탄하노라 / 南望時時一悵然

매화는 절로 이르고 국화는 절로 더디되 / 梅花自早菊花遲

일종의 맑은 향만은 각각 때를 얻는다오 / 一種淸香各得時

우주 안에 그대 있음은 하늘이 명한 바니 / 宇宙有君天所命

행장 가지고 행여 너무 깊이 생각 말게나 / 行藏且莫苦尋思

풍과 소는 탕진하여 소리 없이 적적한데 / 風騷蕩盡寂無聲

심송은 너무 부화하고 포사는 맑았도다 / 沈宋浮華鮑謝淸

고금에 시가로서 그 누가 가장 왕성했나 / 今古詩家誰健步

이백 두보만 이름을 가지런히 하게 했네 / 且敎李杜獨齊名

[주D-001]풍우(風雨)의 …… 마주할꼬 : 비바람 몰아치는 밤에 친구끼리 서로 만나서 즐겁게 담소(談笑)하는 것을 이르는데, 백거이(白居易)의 〈우중초장사업숙(雨中招張司業宿)〉 시에, “와서 나와 함께 자지 않으려나, 빗소리 들으며 침상 마주해 자자꾸나.[能來同宿否 聽雨對牀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심송(沈宋)은 …… 맑았도다 : 심송은 당(唐)나라의 시인(詩人)인 심전기(沈佺期)와 송지문(宋之問)을 병칭한 말이고, 포사(鮑謝)는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시인인 포조(鮑照)와 사영운(謝靈運)을 병칭한 말인데, 부화하다, 맑다는 것은 그들의 시격(詩格)을 이른 말이다.

10. 牧隱詩藁卷之六

復用前韻自詠 다시 앞의 운(韻)을 사용하여 스스로 읊다.

풍미는 원래 순주를 마신 듯 훈훈한 것이니 / 風味由來似飮醇

세정을 어찌하면 다시 진실을 향하게 할꼬 / 世情那得更趨眞

다만 구구한 일편단심이 있을 뿐인데 / 區區祇有丹心在

쇠한 백발 새로워짐을 금하기 어려워라 / 種種難禁白髮新

도 마음은 잠시 순수해질 수도 있거니와 / 道情時或蹔還醇

그림 품격은 너무 핍진한 것 상관치 않네 / 畫品非關太逼眞

한 폭 그림의 강산과 서로 마주한 곳에 / 一幅江山相對處

들 매화의 시 흥취가 다시 청신해지누나 / 野梅詩興更淸新

야매의 淸新한 매호의 이미지

11. 牧隱詩藁卷之六

借梅花詩 시로써 매화(梅花)를 빌리다.

봄이 오매 병든 몸이 더욱 고통스러워 / 春來病骨轉辛酸

동풍의 봄추위가 아직도 겁은 나지만 / 尙㥘東風料峭寒

맑은 흥취는 조금 남은 걸 스스로 알괘라 / 淸興自知餘少許

절구 한 수 읊어서 매화 빌려 감상하네 / 吟成一絶借梅

12~13. 牧隱詩藁卷之六

梅花 三首 매화(梅花) 3수(三首)

맑고 얕은 작은 시내 여기가 강남인데 / 小溪淸淺是江南

달 뜬 황혼 무렵에 가서 구경하고파라 / 月上黃昏欲往參

늙은 목은은 아픈 뒤에 기량이 많아져서 / 老牧病餘多伎倆

은은한 향 성긴 그림자 청담에 들어오네 / 暗香疎影入淸談

暗香

매화는 시내 북쪽에 달은 남쪽에 있어 / 梅在溪陰月在南

달빛과 매화 그림자 옅게 서로 섞였는데 / 月華梅影淡相參

숨은 사람은 본디 빙옥처럼 깨끗하기에 / 幽人自是如氷玉

호리를 계교하느라 많은 말을 허비하네 / 欲較毫釐却費談

梅月

맑은 향기를 천하에 홀로 차지했기에 / 淸香獨占斗牛南

속인에겐 원래 구경을 허락지 않는다오 / 俗子元來不放參

일찍이 연산에서 한 번 얼핏 보았는데 / 曾向燕山叨半面

형극 속의 동타를 어찌 말할 수 있으랴 / 銅駞荊棘豈容談

淸香

[주D-001]맑고 …… 들어오네 : 송(宋)나라 처사(處士) 임포(林逋)의 〈산원소매(山園小梅)〉 시에,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은은한 향기는 황혼의 달빛 아래 부동하네.[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형극(荊棘) 속의 동타(銅駞) : 나라가 망했음을 뜻한다. 동타는 낙양(洛陽)에 세워졌던 동(銅)으로 만든 낙타(駱駝)인데, 진(晉)나라 색정(索靖)이 일찍이 나라가 장차 멸망할 것을 예견하고 낙양의 궁문(宮門) 앞에 서 있던 동타를 가리키면서 탄식하여 말하기를, “네 모습을 장차 가시덤불 속에서 보겠구나.” 한 데서 온 말이다.

14. 牧隱詩藁卷之六

自詠 스스로 읊다.

군자는 사람을 사정으로 사랑하지 않나니 / 君子愛人非徇私

조금만 치우치면 분명 속임을 받게 되리 / 少偏端的受他欺

위수 경수는 합쳐지면서 청탁이 구분되고 / 渭涇水合分淸濁

매화 국화는 피는 데 이르고 더딤이 있도다 / 梅菊花開有早遲

너른 조정 몰려 나가선 스스로 삼가야 하고 / 旅進廣庭當自愼

어둔 방에 홀로 있을 땐 하늘을 두려워해야지 / 獨居暗室畏天知

사를 막아도 꼭 참으로 막아지는 건 아닌데 / 閑邪未必眞閑得

당년에 시를 배우지 못한 게 후회스럽네 / 悔殺當年不學詩

[주D-001]사(邪)를 …… 후회스럽네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시경(詩經)》 삼백 편을 한마디의 말로 덮을 수 있으니, ‘생각에 조금의 사도 없다’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생각에 조금의 사도 없다.’는 말은 《시경》 노송(魯頌) 경(駉)에 있는 말인데, 대체로 《시경》의 말 가운데 선한 것은 사람의 선한 마음을 감발(感發)시킬 수 있고, 악한 것은 사람의 방탕한 뜻을 징계시킬 수 있어서, 끝내 사람으로 하여금 성정(性情)의 바름을 얻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論語 爲政》

15~16. 牧隱詩藁卷之七

有感 느낌이 있어 읊다.

늦겨울에 찬 꽃술 터뜨리는 것은 / 窮冬吐冷蕊

오직 아주 청결한 매화뿐이련만 / 淸絶唯梅花

매화도 또한 세속 티를 벗지 못해 / 梅花亦俗態

가난한 집엔 오려고 하질 않누나 / 不肯來貧家

이는 도리어 주인이 사나워서 / 却恐主人惡

빙설의 꽃송이 더럽힐까 염려함일세 / 浼彼氷雪葩

주인이 자못 부끄러움 알았으니 / 主人頗知愧

힘써 생각에 부정함을 없애야겠네 / 勉矣思無邪

부정함을 없앨 곳이 어느 곳이뇨 / 無邪定何處

비낀 그림자에 향기 부동함일세 / 香動影橫斜

[주D-001]비낀 …… 부동함일세 : 송(宋)나라 처사(處士) 임포(林逋)의 〈산원소매(山園小梅)〉 시에,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은은한 향기는 황혼의 달빛 아래 부동하네.[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한 데서 온 말이다.

17. 牧隱詩藁卷之七

朝吟 四首 아침에 읊다. 4수(四首)

나이 오십여 세가 되고 보니 / 行年餘五十

귀밑털이 점차 희끗희끗해지는데 / 鬢髮漸星星

지붕 모서리엔 찬 소나무가 푸르고 / 屋角寒松碧

담장 모퉁이엔 늙은 냉이가 푸르러라 / 墻隈老薺靑

먼지는 서책 속에 끼어 있고 / 素塵棲竹簡

눈 녹인 물은 다경에 적혀 있네 / 雪水紀茶經

맑은 흥취가 아침에 더하여라 / 淸興朝來甚

꽃병에 매화꽃이 비치는구려 / 梅花照膽甁

입으로 쌀은 씹어먹을 만하니 / 長腰堪咀嚼

닭 주둥이 되는 건 괜찮거니와 / 雞口亦容與

아 소 똥구멍은 되지 말아야지 / 咄咄無牛後

쥐가 남긴 묵은 쌀도 좋으리라 / 陳陳或鼠餘

평생에 그냥 먹고 마시기만 하니 / 平生徒哺啜

세상일이 참으로 한탄스러워라 / 世事足欷歔

마음속의 번민이 가장 두려우니 / 只怕心中悶

차라리 뱃속을 텅 비게 해야겠네 / 寧敎腹裏虛

시골 중은 참으로 허탕하여 / 野衲眞虛蕩

일미선에 정진하고 있는데 / 參來一味禪

시를 지어달라고 자주 찾아와서 / 索詩頻叩戶

지팡이 놓고 문득 자리에 오르네 / 釋杖便登筵

권선하는 글은 천 권이나 되고 / 勸善文千卷

공을 표창한 기문도 두어 편인데 / 旌功記數篇

붓끝에 남은 힘이 있어 / 筆端餘力在

분복이 인천에 가득하겠네 / 分福滿人天

고상한 회포를 어디에 부칠꼬 / 雅懷何所寄

높이 올라 봉처럼 훨훨 날아볼까 / 高逝鳳飄飄

당 뒤엔 얼음이 아직 쌓였는데 / 堂背氷猶疊

산 이마엔 눈이 이미 녹았구나 / 山顔雪已消

연래에 조롱은 스스로 해명하나 / 年來嘲自解

늙어 가매 은자는 누가 불러줄꼬 / 老去隱誰招

이제 중흥송을 초하고자 하여 / 欲草重興頌

조정에서 정히 민요를 채집하네 / 朝廷政採謠

[주D-001]입으로 …… 좋으리라 : 닭은 작아도 그 입은 쌀을 주워 먹지만, 소는 아무리 커도 그 똥구멍은 똥만 나오므로, 강대한 사람의 종속(從屬)이 되느니보다 차라리 작은 두목(頭目)이 되는 게 낫다는 것을 뜻한 말이다.

[주D-002]일미선(一味禪) : 문자나 언어를 통하지 않고 갑자기 도를 깨닫는 선(禪)을 가리킨다.

[주D-003]조롱은 스스로 해명하나 : 한 애제(漢哀帝) 때 양웅(揚雄)이 곤궁하게 들어앉아서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하는데, 어떤 사람이 양웅에게 도(道)가 아직 깊지 못하다고 조롱하자, 양웅이 〈해조(解嘲)〉 1편을 지어 그것을 해명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은자(隱者)는 누가 불러줄꼬 : 한(漢)나라 때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박식하고 성품이 고상하여 천하의 숨은 현사(賢士)들을 불러들였던 데서 온 말이다.

18. 牧隱詩藁卷之七

雪 눈

수다하게 눈 읊은 시가 그 몇천 편이련만 / 紛紛詠雪幾千篇

한 글귀인들 누가 장차 만고에 전해줄꼬 / 一句誰將萬古傳

부들 삿갓은 저문 고깃배에 홀로 돌아가고 / 蒻笠獨歸漁艇暮

버들 꽃은 주막집 하늘에 사람을 시름케 하네 / 楊花愁殺酒樓天

청류가 도리어 탁류에 던져질까 의아스럽고 / 揚淸却訝還投濁

도가 미숙하니 어찌 다시 태현경을 초하랴 / 尙白寧敎更草玄

병든 몸 추위 무서워 깊이 문 닫고 앉았노니 / 病骨㤼寒深閉戶

매화 구경할 흥취가 아득한 데에 떨어졌네 / 觀梅野興墮茫然

사씨가 일찍이 설부 한 편을 지은 것이 / 謝氏曾題賦一篇

지금까지 독보적으로 세상에 전하고 있네 / 至今獨步世相傳

삼천장의 귀밑털 위에 어지러이 날리고 / 亂飄鬢上三千丈

성남의 척오천을 촉촉하게 적셔 주누나 / 低濕城南尺五天

이 물로 차 달여 불타는 심장에 붓고자 하나 / 煎茗欲澆心地赤

산을 마주해도 눈 흐림은 제거하기 어렵네 / 對山難刮眼花玄

나의 시 생각 극도로 찬 것을 누가 알리요 / 詩腸冷極誰能識

나귀 타고 읊던 맹호연이 거듭 생각나누나 / 重憶騎驢孟浩然

[주D-001]버들 꽃은 …… 하네 : 이백(李白)의 〈맹호행(猛虎行)〉에, “율양의 주막집 삼월 봄 하늘에, 버들 꽃이 아득하여 사람을 시름케 하네.[溧陽酒樓三月春 楊花茫茫愁殺人]”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 버들 꽃은 눈을 상징한다.

[주D-002]청류(淸流)가 …… 의아스럽고 : 당 소종(唐昭宗) 때에 역적 주전충(朱全忠)의 무리들이 조정의 명사(名士)들을 모조리 죽여 황하(黃河)에 던지면서 말하기를, “이 무리들은 청류이니, 탁류(濁流)에 던져야 한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 청류는 눈을 의미한다.

[주D-003]도(道)가 …… 초하랴 : 한(漢)나라 때 양웅(揚雄)이 집에 들어앉아 곤궁하게 지내면서 《태현경(太玄經)》을 초하고 있을 적에 혹자가 그에게, “도가 아직 미숙하다.[玄尙白]”고 조롱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 상백(尙白)의 백은 눈을 상징한다.

[주D-004]사씨(謝氏)가 …… 것이 : 사씨는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을 가리키는데, 그가 일찍이 〈설부(雪賦)〉를 지었다.

[주D-005]성남(城南)의 …… 적셔 주누나 : 척오(尺五)는 일척 오촌(一尺五寸)의 약칭으로, 당(唐)나라 때 성남의 위씨(韋氏)와 두씨(杜氏)가 모두 임금을 가장 가까이 모시어 부귀영화를 누렸던 것을 이르는데, 여기서는 눈이 지세(地勢)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내린 것을 의미한다.

[주D-006]나귀 …… 맹호연(孟浩然) : 당(唐)나라 때 시인 맹호연이 일찍이 눈 속에 나귀를 타고 시를 읊었던 고사인데, 소식(蘇軾)의 시에, “그대는 보지 못했나. 눈 속에 나귀 탄 맹호연이, 눈썹 찌푸리고 시 읊을 제 어깨가 산처럼 솟은 것을.[君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이라고 하였다.

19. 牧隱詩藁卷之七

用前韻自詠 앞의 운을 사용하여 스스로 읊다.

병으로 시 못 읊어 마음 산란할까 두려워라 / 病不吟詩恐亂心

수년 동안 길이 누워서 오늘에 이르렀네 / 數年長臥到于今

동고에서 휘파람 부는 건 팽택을 생각하고 / 東皐舒嘯思彭澤

곡수에 술잔 띄우는 건 무림을 상상하노라 / 曲水流觴想茂林

흰 물결 벽에 불어라 길이 그림을 대하고 / 吹壁白波長對畫

밝은 달 창에 가득해라 홀로 거문고를 타네 / 滿窓明月獨鳴琴

개중에 나의 즐거운 곳을 누가 능히 알랴 / 箇中樂處誰能識

예로부터 깊은 우물에 두레박 줄이 짧다오 / 短綆由來古井深

온갖 변화는 모두 마음에서 이뤄지나니 / 萬化皆從方寸心

문득 고금에 광채 나는 것을 알겠도다 / 便知耀古更光今

삼엄한 무고는 두 공부에 연하였고 / 森嚴武庫連工部

광대한 문장은 이 한림을 압도했네 / 浩蕩詞源倒翰林

화씨는 불우하여 옥을 세 번이나 바쳤고 / 和氏不逢三獻玉

종자기는 거문고 한 번 탈 때 지기를 만났네 / 鍾期旣遇一彈琴

연래엔 이미 분화의 싸움을 그만두었는데 / 年來已罷紛華戰

해진 거적문 앞에 눈이 다시 깊구려 / 弊席門前雪更深

예부터 계절 경치가 인심을 변화시키어라 / 由來節物變人心

가을 모습 완연히 지금에 있는 듯 기억나네 / 記得秋容宛在今

이미 거센 바람 보내어 낙엽을 불어 대더니 / 已遣狂風吹落葉

다시 저녁 볕이 성긴 숲에 걸리게 하였지 / 更敎斜日掛疎林

유슬에서 나는 북비성은 매우 꺼리거니와 / 深嫌北鄙爲由瑟

순금에 들어온 훈풍은 멀리 생각나누나 / 緬想南薰入舜琴

근일에 매화 뜻 움직인단 소식 듣기 좋아라 / 近日喜聞梅意動

매화 한 가지의 봄빛이 십분 깊어졌구려 / 一枝春色十分深

봄빛

[주D-001]동고(東皐)에서 …… 생각하고 : 팽택(彭澤)은 진(晉)나라 때 일찍이 팽택 영을 지낸 도잠(陶潛)을 가리키는데, 도잠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을 불고, 맑은 물을 임하여 시를 짓는다.[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곡수(曲水)에 …… 상상하노라 :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가 지은 〈난정서(蘭亭序)〉에, “이곳에는 높은 산, 험준한 봉우리와 무성한 숲, 길게 자란 대나무가 있고, 또 맑은 시내 여울물이 난정의 좌우에 서로 비치는지라, 이를 끌어들여 굽이쳐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운다.[此地有崇山峻嶺 茂林脩竹 又有淸流激湍 映帶左右 引以爲流觴曲水]”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흰 물결 …… 대하고 : 두보(杜甫)의 〈봉환엄정공무청사민산타강화도(奉歡嚴鄭公武廳事泯山沱江畫圖)〉 시에, “타수는 중좌에 임하고, 민산은 북당에 이르니, 흰 물결은 하얀 벽을 불어 대고, 푸른 산봉우리는 아로새긴 들보에 꽂히었네.[沱水臨中座 泯山到北堂 白波吹粉壁 靑嶂揷雕梁]”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밝은 달 …… 타네 : 진(晉)나라 때 완적(阮籍)의 〈영회(詠懷)〉 시에, “밤중에 잠을 이루지 못해, 일어나서 거문고를 타노라니, 얇은 휘장엔 밝은 달이 비치고, 맑은 바람은 내 옷깃에 부는구나.[夜中不能寐 起坐彈鳴琴 薄帷鑑明月 淸風吹我衿]”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예로부터 …… 짧다오 : 짧은 두레박 줄로는 깊은 샘물을 길을 수 없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학식이 얕은 자와는 도리(道理)를 논할 수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6]삼엄(森嚴)한 …… 연하였고 : 삼엄한 무고(武庫)란 진(晉)나라 때 두예(杜預)가 박학 다통(博學多通)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으므로, 그를 무고의 병기(兵器)가 없는 것 없이 삼연히 늘어서 있는 데에 비유한 말이고, 두 공부(杜工部)는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을 지낸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주D-007]광대한 …… 압도했네 : 이 한림(李翰林)은 당(唐)나라 때 한림 공봉(翰林供奉)을 지낸 이백(李白)을 가리킨다.

[주D-008]화씨(和氏)는 …… 바쳤고 : 초(楚)나라의 화씨란 사람이 산중에서 박옥(璞玉)을 얻어 여왕(厲王)에게 바쳤는데, 왕이 옥인(玉人)을 시켜 알아본 결과, 박옥이 아니라 돌이라는 판명이 나와, 왕이 화씨가 임금을 속였다 하여 그의 왼쪽 발꿈치를 베었다. 그 후 여왕이 죽은 뒤 무왕(武王) 때에도 화씨가 또 박옥을 바쳤다가 역시 돌이라고 하여 또한 여왕 때처럼 임금을 속였다고 해서 그의 오른쪽 발꿈치를 베었다.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여서는 화씨가 그 박옥을 안고 산 밑에서 밤낮 3일 동안 통곡하였는데, 왕이 그 까닭을 물은 다음, 다시 옥인을 시켜 자세히 살피게 한 결과 마침내 보옥(寶玉)을 얻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韓非子 和氏》

[주D-009]종자기(鍾子期)는 …… 만났네 : 옛날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탔고, 종자기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는데, 백아가 뜻을 고산(高山)에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다, 험준함이 마치 태산(泰山) 같도다.” 하였고, 백아가 또 뜻을 유수(流水)에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다, 광대함이 마치 강하(江河)와 같도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0]분화(紛華)의 싸움 :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밖에 나가서는 성대하고 화려한 것[紛華]들을 보고 좋아하고, 들어와서는 부자(夫子)의 도를 듣고 즐거워하여, 이 두 가지가 마음속에서 서로 싸워서 스스로 결단할 수가 없었는데, 결국 부자의 의리가 이겼기 때문에 내가 살이 찐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1]유슬(由瑟)에서 …… 꺼리거니와 : 북비성(北鄙聲)은 북쪽 변방의 살벌한 소리를 뜻하는데, 자로(子路)는 용맹이 지나치고 중화(中和)가 부족한 탓에 비파 타는 소리가 살벌했던 데서 온 말이다. 공자가 이르기를, “중유의 비파를 왜 나의 문에서 타는고.[由之瑟奚爲於丘之門]” 하였다. 《論語 先進》

[주D-012]순금(舜琴)에 …… 생각나누나 : 순 임금이 처음으로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타면서 남풍시(南風詩)를 노래했는데, 그 시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성냄을 풀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이 풍부하리로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 한 데서 온 말이다.

20. 牧隱詩藁卷之七

春日卽事 二首 춘일(春日)의 즉사(卽事) 2수(二首)

소년 시절엔 병 많던 나그네가 / 少年多病客

만년에는 일개 노쇠한 늙은이로다 / 晚歲一衰翁

도를 들음은 형체의 밖이 없고 / 聞道形無外

말을 잊으면 맛이 그 속에 있다네 / 忘言味在中

강산은 적현을 에워쌌고 / 江山圍赤縣

일월은 푸른 하늘에 빛나도다 / 日月耀蒼穹

또 기쁜 것은 문 앞의 버들이 / 又喜門前柳

실 드리워 바람에 한들거림일세 / 垂絲裊細風

시구 찾자니 장차 누구와 말하랴 / 覓句將誰語

문 두드리는 소리 손이 왔는데 / 敲門有客臨

읊조리다가 얻음이 있는 듯할 제 / 吟哦如有得

문 두드리던 손은 이미 사라져 버렸네 / 剝啄已難尋

눈 올 기미는 매화 동산에 넘치고 / 雪意餘梅塢

봄 경치는 버들 숲에 움직이네 / 春光動柳林

고향 산엔 죽순 고사리가 많기에 / 故山多笋蕨

돌아가고픈 흥취를 금하기 어렵구나 / 歸興浩難禁

21. 牧隱詩藁卷之七

詠雪餻 설고(雪餻)를 읊다.

늙은 목은이 연래엔 비린 것이 싫어서 / 年來老牧厭羶腥

맑고 찬 것만 가지고 성령을 기르노라니 / 但把淸寒養性靈

옥 기름이 흰 달처럼 뭉쳐진 게 이미 좋은데 / 已喜瓊膏團素月

옥 가루가 하늘에서 떨어졌나 의심도 나네 / 却疑玉屑落靑冥

버들개지보다 가벼워 자리엔 바람이 일고 / 輕於柳絮風生座

매화처럼 차가운데 물은 병에 가득하여라 / 冷似梅花水滿甁

손 흔적 없이 천연으로 된 게 가장 좋아서 / 最愛天成無手澤

배불리 먹고 졸려서 창문 앞에 앉았노라 / 飽餘和睡倚窓櫺

22. 牧隱詩藁卷之七

즉사(卽事)

때로 행하거나 그침에 경권이 있는 건데 / 時行時止有經權

스스로 판단할 걸 왜 하늘에 묻는단 말가 / 自斷何煩更問天

세상을 분개할 땐 풍백송을 펴고도 싶고 / 憤世擬申風伯訟

안심하다간 야호선에 빠질까도 염려되네 / 安心恐墮野狐禪

물결에 댓잎 흔들려라 낯이 먼저 어른거리고 / 波搖葉顔先纈

눈을 짝한 매화는 신선 골격이 되어가누나 / 雪伴梅花骨欲仙

개중에 좋은 소식을 기억할 만한 것은 / 記取箇中消息好

진세와의 인연이 한 점도 없는 거로세 / 了無一點是塵緣

[주D-001]풍백송(風伯訟) : 풍백은 바람을 맡은 귀신이므로, 즉 바람 귀신에게 세상을 깨끗하게 소제(掃除)해 달라고 하소연함을 이른 말이다.

[주D-002]야호선(野狐禪) : 선학(禪學)을 닦아 아직 진리를 증오(證悟)하지 못한 처지에서 마치 진리를 증오한 것처럼 속여 행세하는 자를 야호(野狐)에 비유하여 욕하는 말이다.

23. 牧隱詩藁卷之七

절구(絶句)

앞으론 늙은 눈이 다시 안 젊어지리니 / 從今老眼更難靑

매화를 꺾어다가 담병에 꽂지 않으리 / 不把梅花照膽甁

백화가 만발했으니 실컷 취해야 하는데 / 紅紫迷人宜爛醉

도리어 새가 사람 불러 깨울까 걱정일세 / 却愁啼鳥喚人醒

[주D-001]담병(膽甁) : 목이 길고 배가 불룩하게 생긴 화병을 가리킨다.

[주D-002]새가 …… 깨울까 : 한유(韓愈)의 〈동도우춘(東都遇春)〉 시에, “아침해가 창문

을 뚫고 들어올 제, 새가 울어 불러도 깨지를 못했네.[朝曦入牖來 鳥喚昏不醒]” 한 데서 온 말이다.

24. 牧隱詩藁卷之七

自詠 二首 스스로 읊다. 2수(二首)

오랜 병에 그대로 늙으려 하노니 / 久病仍將老

회포는 다시 논할 것도 없고말고 / 情懷不復論

행장은 큰 절의를 보존시키고요 / 行藏存大節

어묵은 사람 본성을 변동시킨다오 / 語默動眞源

일찍이 만촉의 전쟁을 들었는데 / 蠻觸曾聞戰

오히려 주진의 마을도 있다네 / 朱陳尙有村

광대한 천지에 큰소리로 노래할 제 / 浩歌天地遠

매화 달빛은 정히 황혼 때로세 / 梅月政黃昏

새그물 친 골목은 조용키만 한데 / 雀羅窮巷靜

성긴 버들은 벌써 봄을 흔드네 / 疎柳已搖春

붓 가지고 범조를 제하여라 / 把筆題凡鳥

찾아와서 가인을 모욕하누나 / 敲門辱可人

대창살문은 눈을 마주해 환하고 / 筠窓明對雪

비자목 책상은 먼지 없이 깨끗하니 / 棐几淨無塵

상쾌한 기분으로 책을 뒤적이며 / 快意翻書卷

조용히 읊는 맛 또한 새롭구나 / 沈吟味更新

[주D-001]만촉(蠻觸)의 전쟁 : 달팽이 뿔 위에 사는 만씨(蠻氏)와 촉씨(觸氏)가 서로 전쟁을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사소한 일로 쓸데없이 다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莊子 則陽》

[주D-002]주진(朱陳)의 마을 : 서주(徐州) 고풍현(古灃縣)에는 주진촌(朱陳村)이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에는 주씨와 진씨 두 성씨가 살면서 대대로 자기들끼리 서로 혼인을 하며 화목하게 산다고 한다.

[주D-003]매화 …… 때로세 : 송(宋)나라 처사(處士) 임포(林逋)의 〈산원소매(山園小梅)〉 시에,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은은한 향기는 황혼의 달빛 아래 부동하네.[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새그물 …… 한데 : 문밖에 찾아오는 이가 없는 썰렁한 집을 비유한 말이다. 한(漢)나라 때 책공(翟公)이 정위로 있을 적에는 찾아오는 빈객이 많았는데, 파관(罷官)을 당한 뒤로는 찾아오는 빈객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뒤에 정위에 복직(復職)되자 빈객이 다시 찾아오므로, 책공이 분개하여 자기 집 문에다 크게 써 붙이기를, “한 번 죽고 사는 데에서 사귀는 정을 알 수 있고, 한 번 가난하고 부유한 데에서 사귀는 태도를 알 수 있으며, 한 번 귀하고 천한 데에서 사귀는 정이 이에 나타난다.[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범조(凡鳥)를 제(題)하여라 : 봉(鳳) 자를 파자(破字)하면 범조가 되는데, 범조는 평범한 새란 뜻으로, 진(晉)나라 때 혜강(嵇康)과 여안(呂安)이 서로 매우 좋게 지냈던바, 한번은 여안이 혜강의 집을 찾아갔으나 혜강은 없고 그의 형 혜희(嵇喜)가 나와서 맞이하자, 여안은 들어가지 않고 문 위에 봉(鳳) 자를 써서 마음속으로 그를 조롱하고 떠나 버린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6]가인(可人) : 재덕(才德)이 있는 훌륭한 사람을 말한다.

25. 牧隱詩藁卷之七

代書寄羅州吳判官 남을 대신하여 써서 나주(羅州) 오 판관(吳判官)에게 부치다.

금성엔 봄 경치가 일찍 찾아와 / 錦城春色早

강 언덕에 매화가 지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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