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서예와 장수(長壽) - 문화예술비평지 기고

서예와 장수(長壽)


도정 권상호(문학박사)


옛날부터 서예를 하면 건강에 좋다거나, 장수하는 사람 중에는 붓글씨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은 인구에 회자되어 왔다. 마침, 지난 10월 중국 CCTV 채널4에서 베이징대학교 왕악천(王岳川) 교수를 모시고 서예(書藝)와 건강에 대한 흥미로운 토크쇼 토크쇼 프로그램 이름은 ‘文化旅流(The Journey of Civilization)’이다.

를 방영한 바 있다. 내용은 건강과 장수를 위한 최고의 방편이 서예라는 것이다.

중국서법가협회(中國書法家協會) 주석(主席)을 역임했던 서동(舒同) 선생과 계공(啓功) 선생이 다 같이 93세(우리식 나이 계산법으로는 94세)로 장수하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서예가, 승려 및 역대 황제의 평균 연령을 비교하여 밝히고 있다. 고대 저명한 서예가의 평균 수명은 78.9세(우리식으로는 79.9세), 고대 저명한 고승(高僧)의 평균 수명은 66세, 진시황 이후 마지막 황제까지의 역대 황제 평균 수명은 39.2세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심리학(心理學)적으로, 의학(醫學)적으로 증명된 사실임을 밝히고, ‘서법인생(書法人生)’이라는 내용을 즉석 휘호를 하는 것으로 마쳤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중국의 서예사를 저본으로 하여 생몰 연대가 비교적 뚜렷한 서예가를 대상으로 하여 시대별로 대표적인 작가를 선정하고 이들의 나이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 과연 중국의 저명한 역대 서예가의 평균 수명이 80세 가까이 되는지와, 우리나라 서예가들의 평균 수명은 어떠한지, 그리고 왜 다른 직업군에 비해 서예가들이 장수(長壽)하는지 그 근거를 살펴보거나 추론해 보고 점점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슬로우 아트로서 서예를 즐기며 보람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독려하는 데에 이 글의 목적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 서예가의 시대별 나이를 조사해 본 바는 다음과 같다. 나이의 수치는 만으로 계산한 것이 아니라, 뱃속 나이까지 치는 우리의 전통 방식을 따랐다. 그리고 서예가의 나열 순서는 출생 연도순을 따랐다. 

통일신라 때의 서예가로 해동(海東)의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김생(金生, 711 ~ 791?)은 81세로 생을 마쳤다. 

고려의 승려이자 서예가인 탄연(坦然, 1070 ~ 1159)은 90세, 동국(東國)의 조자앙(趙子昻)으로 불렸으며 특히 예서와 초서에 능했던 이암(李嵒, 1297 ∼ 1364)은 68세를 기록했다. 

조선 전기의 시인이자 서예가인 양사언(楊士彦, 1517년 ∼ 1584)은 68세, 소위 석봉체(石峰體)를 완성한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 ~ 1605)는 63세에 별세하였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는 전서(篆書)에 독보적 경지를 이루었던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 ~ 1682)은 88세, 문장과 글씨에 두루 뛰어난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은 67세, 창고(蒼古)하고 힘에 넘치는 글씨를 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 ~ 1689)은 83세, 시·서·화에 모두 능하면서도 특히 독특한 서체인 원교체(圓嶠體)를 이룩하여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 ~ 1777)는 73세, 남종문인화가 조선 후기 화단의 주도화풍으로 정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당시의 서화계를 계도한 서화비평가였던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 ~ 1791)은 79세, 동기창체(董其昌體)를 따르고 조선시대에 이 서체가 유행하는 데 계도적 구실을 하였던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 ~ 1845)는 77세, 이광사(李匡師)의 글씨를 배웠으며 특히 초서에 능하여 이른바 창암체(蒼巖體)를 이룩한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 ~ 1845)은 76세, 행서와 예서에 뛰어나 독보적인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 ~ 1856)는 71세, 전서(篆書)와 예서(隸書)에 금석기(金石氣)가 보이고 고법(古法)의 임모(臨摸)에 뛰어났으며 서첩으로 <조눌인법첩(曺訥人法帖)> · <눌인서첩(訥人書帖)> 등이 전하는 눌인(訥人) 조광진(曺匡振, 1772 ~ 1840)은 69세, 예서체(隷書體) 비문에 관해서는 동국(東國)에 전혀 없었던 신합(神合)의 경지라는 칭찬을 받았던 이재(彝齋) 권돈인(權敦仁, 1783 ~ 1859)은 77세, 서화에 능하였으며 특히 난초를 잘 쳤던 석파(石坡) 이하응(李昰應, 1820 ~ 1898)은 79세를 각각 누렸다. 

시(詩)·서(書)·화(畵)·금(琴)·기(碁)·박(博)·의(醫)·변(辯)에 두루 능하여 팔능(八能)이라 불린 서화가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 1862 ∼ 1935)는 74세, 수전증(手顫症)을 악필(握筆)로 기적처럼 위기를 극복한 석전(石田) 황욱(黃旭, 1898 ~ 1993)은 96세, 전서를 바탕으로 소전체(素筌體)를 개발하여 서예 발전에 공헌하였던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 1903 ~ 1981)은 79세, 독자적인 한글 필체인 원곡체(原谷體)를 개발한 원곡(原谷) 김기승(金基昇, 1909 ~ 2000)은 91세로 별세했다. 육조체(六朝體)의 강건하고 웅혼한 필세가 특징인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 1911 ~ 1976)은 66세, 한글과 국한혼서체 그리고 한자의 예서(隸書)에 독보적인 경지를 구축한 거장으로 평가하는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1921 ~ 2006)은 86세, 초서의 대가 월정(月汀) 정주상(鄭周相, 1926 ~ 2012)은 87세, 엄격한 書法(서법)으로 서예계의 좌표를 제시한 여초 김응현(金膺顯, 1928 ~ 2007)은 80세 등으로 비교적 어려운 세상을 살다가 간 당대의 서예가들도 장수하였다. 

이상의 한국을 대표하는 24명의 서예가 평균 수명을 계산해 보니, 77.8세로 나타난다. 


다음은 중국의 서예가들에 대한 수명을 조사해 보기로 한다. 중국 후한(後漢)의 서예가로 비백체(飛白體)를 창시한 채옹(蔡邕, 133∼192)은 60세, 중국 진(晉)나라의 서예가로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왕희지(王羲之, 307 ~ 365)는 59세, 그의 아들 왕헌지(王獻之, 344 ~ 388)는 45세로 세상을 마쳤지만 이마저도 그 당시로서는 평균 이상으로 오래 산 쪽에 속한다. 

당나라 때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의 비문을 쓴 구양순(歐陽詢, 557 ~ 641)은 85세에 별세했다.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를 쓴 우세남(虞世南, 558 ~ 638)은 82세, 다보탑(多寶塔) 비문과 쟁좌위고(爭座位稿)를 쓴 안진경(顔眞卿, 709 ~ 785)은 77세, 현비탑비(玄秘塔碑) 비문을 쓴 유공권(柳公權, 778 ~ 865)은 88세에 각각 일세를 마무리했다. 

그 당시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詩聖)이라 불렸던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인 두보(杜甫, 712 ~ 770)는 곡강시(曲江詩)에서 ‘술빚이야 가는 곳마다 흔히 있지만, 인생 칠십은 고래로 드물도다. [주채심상행처유(酒債尋常行處有)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하여, 70세 살기가 힘들다는 뜻으로 고희(古稀)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정작 두보자신은 59세에 세상을 마쳤는데, 그의 말처럼 70세까지 살지 못하였다. 

송4대가는 상대적으로 다른 시기보다 짧은 삶을 살았다. 채양(蔡襄, 1012 ~ 1067)은 56세, 미불(米芾, 1051 ~ 1107)은 57세, 소식(蘇軾, 1037 ~ 1101)은 65세, 황정견(黃庭堅, 1045 ~ 1105)은 61세를 각각 기록했다. 

원4대가로 알려진 황공망(黃公望, 1269~1354)은 86세, 오진(吳鎭, 1280 ~ 1354)은 75세, 예찬(倪璨, 1301-1374)은 74세, 왕몽(王蒙, 1308? ~ 1385)는 78세로 생을 마감했다. 

명나라 때의 유명한 서예가 심주(沈周, 1427 ~ 1509)는 83세에, 문징명(文徵明, 1470 ~ 1559)은 90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청나라 때 서예가 팔대산인(八大山人) 주답(朱䐛, 1626 ~ 1705)은 80세, 청나라 초기의 화승(畵僧) 석도(石濤, 1641~1720)도 80세, 판교(板橋) 정섭(鄭燮, 1693 ~ 1765)은 73세에 각각 이 세상을 마무리하였다. 

근대 중국 내에서 이름 있는 화가이자 서예가인 오창석(吳昌碩, 1844 ~ 1927)은 84세, 전각가 제백석(齊白石, 1863 ~ 1957)은 95세, 당대의 서예가로 다 같이 94세를 살다 간 서동(舒同)과 계공(啓功) 주석까지 이상 24인의 평균수명은 계산해 보면 79.7세이다.


이상의 예에서 보듯이 한국과 중국의 역대 대표적인 서예가 24명의 평균 연령이 각각 78세, 80세 이르는 것을 보면 서예가가 어떤 직종보다 월등히 긴 수명을 누리고 있는데,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된다. 서예술이 가지고 있는 건강적 특성을 찾아봄으로써 서예가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밝히고 나아가 장수 예술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앞으로 서예인과 비서예인의 표집 집단을 두고 일정 기간 좀더 과학적인 조사와 분석 및 사례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본다. 

첫째, 서예는 정신운동과 육체운동이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된 예술이다. 글씨를 쓰는 일은 언제나 쓸 내용을 머릿속으로 먼저 구상하는 일이 선행하고 붓을 잡은 손은 거기에 뒤따라가는 것이다. 쓸 내용과 서체에 대한 구체적 사전 준비 없이는 절대로 붓을 잡을 수 없다. 서사 내용을 찾기 위해서는 독서 또는 글짓기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사 내용과 서체 선정이 끝났을 때 비로소 붓은 신운(神韻)을 얻어 거침없이 제 갈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전자가 정신운동이고 후자는 육체운동으로 볼 수 있으며 서예는 언제나 이 두 가지 운동이 병행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서예를 하면 치매에 걸릴 확률은 절대적으로 낮아진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서예는 완벽한 관절운동이다. 서예 퍼포먼스 라이브 서예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실내에서 소해(小楷)를 쓴다 해도 온몸의 관절이 움직이다. 특히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의 관절 운동이 더 많이 이루어지는 것은 자명하다. 의자에 앉아 쓰거나 서서 쓰기를 할 때에도, 허리의 굴신 운동은 줄곧 이어진다. 붓 잡은 손이 화선지 위와 벼루를 왔다갔다 하는 순간 가벼운 허리 운동도 동반된다. 글씨를 쓸 때 현완(懸腕)으로 붓을 잡으면 더 좋다. 현완법으로 글씨를 쓰는 동작은 마치 우리 몸이 공사장의 기중기(起重機)가 된 듯하다. 기중기가 공사장에서 물건을 끊임없이 들어 나르듯이 글씨를 쓰는 일은 벼루의 먹을 끊임없이 화선지 위로 퍼 나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글씨를 쓰는 동안 우리 몸은 전후좌우, 상하로 굴신(屈伸)하며 전신의 관절을 움직이게 된다. 이럴 때 무릎, 허리, 어깨, 팔꿈치, 손목을 거쳐 손가락 마디까지 기혈(氣穴)이 통하며, 지압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셋째, 서예를 하면 호흡과 맥박이 길어진다. 호흡은 보통 1분에 20회에서 15회 또는 그 이하로, 맥박은 1분에 70회에서 60회 정도로 줄어든다. 사격에서 표적을 조준하고 격발하기까지 숨을 쉬지 않는데, 이는 흔들리지 않고 정확히 목표물을 맞히기 위해서이다. 서예도 붓끝이 화선지 위를 지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숨을 쉬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서예를 오래 한 사람일수록 호흡이 깊고 길다. 이를테면 ‘서예효과’ 중의 하나가 해녀의 무자맥질 효과나 요가의 풀무호흡 효과가 있어서 폐와 심장이 튼튼해진다.

넷째, 서예의 감정순화 작용을 들 수 있다. 세상살이 하면서 우리는 다양하고 많은 일을 접하면서 감정의 기복을 심하게 겪는다. 감정의 기복을 심하게 겪으면 뇌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서예는 먹을 가는 일부터, 글씨 쓰는 일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침착하게 대하지 않고서는 이루어낼 수 없다. 서예는 일회성이라는 측면에서 인생과 닮았다. 서예에서 한 번 그은 획 위를 두 번 그을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매 순간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신중은 침착성을 기른다. 그래서 흔히 붓글씨를 쓰면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고백을 하게 된다. 왕복표가 없는 인생길처럼 붓길도 편도 일방통행만 가능하므로 신중히 운필(運筆)해야 한다. 

다섯째, 서예는 만남이다. 서예는 인간과 자연의 만남, 먹과 벼루의 만남, 물과 먹의 만남, 붓과 종이의 만남, 흑(黑)과 백(白)의 만남, 음(陰)과 양(陽)의 만남, 멋과 맛의 만남이다. 하나와 하나의 만남은 새로운 하나를 탄생한다. 이것이 예술이다. 우리의 인생도 만남의 연속이다. 만남 속에서 건강한 삶이 영위된다. 글씨를 쓰면 붓의 멋과 먹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붓을 연주하는 곡은 흑백의 앙상블이다. 점(點)·획(劃)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서사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 붓 연주는 오케스트라 지휘처럼 참으로 즐거운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여섯째, 서예는 여백의 미학이다. 삶의 여백은 여유라고 할 수 있겠다. 서예든 삶에서든 여백과 여유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 여백과 여유 속에서 새로운 창조의 싹이 트는 것이다. 불어오는 바람을 거슬러 나아가려면 새가 날갯짓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붓글씨를 쓰는 일은 붓을 잡는 순간부터 잠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이 바쁜 과정이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여백의 미를 찾아야 한다. 

일곱째, 서예에는 꿈과 미래가 있다. 글씨 쓰는 일은 영원히 변치 않는 먹과 미래를 약속하는 일이다. 서예인은 작품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 있으니 언제나 청춘(靑春)이다. 로댕의 경우, 바위를 보면 이미 그 속에 작품이 들어 있다고 실토했듯이, 서예가는 화선지를 펴면 이미 그 위에 글자가 놓여있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여덟째, 서예 활동의 장점 중에 하나는 항상 좋은 글귀를 접하며 사는 일이다. 좋은 내용을 접하고 자주 쓰다가 보면 붓질을 통한 심미안(審美眼)이 길러진다. 심미안을 가진 사람은 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안목이 있기 때문에 평소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또 무한 긍정의 힘을 믿으며 순수한 동심(童心)을 잃지 않는다. 언제나 생각이 신선하고 심신에 물결과 바람결이 일어나니 건강할 수밖에 없다.

아홉째, 서예술의 묘리(妙理)인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이 심신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해 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항상 긴장해도 또 이완되어도 건강에 좋지 못하다. 긴장과 이완이 적절히 배합될 때 건강이 좋다. 겉보기에는 글씨 쓰는 일이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과 같이 한가로운 작업으로 보인다. 바쁜 일상에서 먹을 가는 일과, 폰트가 난무하는 세상에 손글씨를 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행위로 보인다. 하지만 붓을 잡은 순간부터 대단히 바쁘다. 획법(劃法), 자법(字法), 장법(章法), 묵색(墨色), 필압(筆壓), 번짐 등을 동시에 동물적 감각으로 생각하면서 작업하므로 잡념이 생길 겨를이 없다.  


종합적으로 보면 글씨를 쓰는 일은 인간의 筋骨血肉(근골혈육), 사단칠정(四端七情), 지정의(知情意), 이기(理氣), 영육(靈肉), 혼백(魂魄)이 한 데 어울려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예는 기공(氣功), 요가, 발레, 피겨스케이트, 서커스 등과 닮았다. 붓을 잡으면 심신(心身)이 혼연일체가 되어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예는 생각과 마음과 숨과 몸이 모두 잘 가다듬어지지 않고서는 점 하나도 찍을 수 없다. 먹을 갈고 붓을 잡아보자. 마묵(磨墨)과 서사(書寫)는 심전경작(心田耕作)이자 심신수행(心身修行)의 과정을 넘어 장수(長壽)의 비결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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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근대 중국내에서 이름 있는 서법가 중 황빈홍(黃賓虹)은 92 세, 제백석(齊白石)은 95 세, 유해속(劉海粟)은 100 세에 세상을 마쳤다. 세칭 남선북불(南仙北佛)이라고 일컫는 상해의 소국선(蘇局仙)과 북경의 손묵불(孫墨佛)은 각각 100 세에 세상을 마쳤다.
도정
http://www.mooyenews.kr/sub_read.html?uid=824

생각과 염려는 정신을 상하기가 가장 쉽고, 기쁨과 분노는 호흡을 불편하게 만든다. 심신이 안정되지 않으면 기가 울체(鬱滯)되어 정신이 쉽게 상하고, 內臟의 기능이 정상적인 작용을 하지 못한다. ‘정’의 상태는 심신이 모두 안정되어야 하며, 심신의 안정은 자연의 변화에 순응함으로써 가능하다. 몸을 지나치게 사용하지 않으려면(小勞) 양성지도(養性之道)를 지키면서 욕망을 자제하는 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