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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한글의 조형미

창녕 성씨 총친회 발표 논문


한글의 조형미


권상호(문학박사, 문예평론가)



Ⅰ. 여는 말


Ⅱ. 한글의 조형적 특성

1. 둥근 점이 글자(아래아)가 된 한글

2. 대칭 구조로 안정감을 주는 한글

3. 동그라미가 많은 한글

4. 양보와 겸양의 한글

5. 가로쓰기와 세로쓰기가 자유로운 한글

6. 부자자효(父慈子孝)의 미덕을 가르쳐주는 한글

7. 가족융합형의 한글

8. 상형적 요소가 많은 한글

1) 어금닛소리

2) 혓소리

3) 입술소리

4) 잇소리

5) 목구멍소리

9.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한글

10. 한글의 뛰어난 조형미


Ⅲ. 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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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여는 말

의사소통의 도구로 인간은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를 사용한다.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는 정보 전달을 위한 도구의 역할이 가장 크지만, 문자언어의 경우는 서사 과정과 결과물로서의 미적 요소로 인하여 조형예술이 될 수 있다. 

컴퓨터와 붓도 정보 전달을 위한 도구이다. 컴퓨터가 0과 1이란 두 개의 숫자만 가지고 엄청난 정보를 표현하듯이, 서예도 점(點)과 획(劃)이란 두 가지 구성요소만으로 무한한 조형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현대인은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스마트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하루 평균 주고받는 카톡과 메시지 건수는 2020년 기준 약 110억 건이나 된다고 한다. 지식채널e – 디지털에 최적화된 문자가 한글이라니(www.youtube.com/watch?v=ouVFla9GSZw)

 그런데 디지털에 최적화된 문자가 한글이기 때문에 더 빠르고 쉽다는 것이다.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은 ‘한국이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배경이 한글이다. 그 이유는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직관적인 문자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현재 지구상에는 6천여 개의 음성언어가 있지만, 문자언어는 40여 개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인류는 250여 개의 문자를 만들어냈지만, 현재 사용되고 있는 문자는 한글을 비롯한 40여 개에 불과하다. 한글은 가장 늦게 탄생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쉬운 글, 그러면서도 과학적인 글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서예술로서의 한글은 실용성, 철학성, 과학성보다 조형성에 관심이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서예술로서의 한글이 가지고 있는 형태적 특성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글 서예의 세계화가 고양되고, 나아가 ᄒᆞᆫ글 디자인 및 타이포그래피 등의 지평도 넓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미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반 립 이렌은 ‘한글은 현대적이면서도 기하학적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라고 말하며, 세계 디자인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했다. 파리 패션 전시 기획자 르하는 ‘섬세하고 낭만적이다.’, 일본 최고의 서체 디자이너 고미야마는 ‘한국의 정신 그 자체다.’,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은 ‘최고의 문화적 사치이자 상품이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문화산업으로서의 한글 디자인, 전망과 과제(논문) - 신승일

 외국인들이 한글로 쓴 자신의 이름만으로도 신기해하며, 그 아름다움에 도취하는 것만 보아도 한글의 조형미가 특별히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언어는 말, 글, 뜻 등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문자학에서는 흔히 형음의(形音義)로 구분하여 분석하는데, 본고에서는 글꼴 곧, ‘형태를 중심으로 한글이 지닌 특징을 토구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하자면 ‘한글의 글꼴’이 가지고 있는 조형적 특성과 그 아름다움을 찾아보는 데에 의의가 있다.


Ⅱ. 한글의 조형적 특성


한글은 외형상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소박하고 은근한 아름다움을 지닌 글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창제 당시의 한글은 기본 글자는 8자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 자음 5자 ‘ㄱ, ㄴ, ㅁ, ㅅ, ㅇ’, 기본 모음 3자 ‘ㆍ, ㅡ, ㅣ’를 바탕으로 하여 28자를 창제하는 데에는 획을 더하는 가획(加劃) 원리와 글자에 글자를 더하는 합성법에 그 비밀이 있다.

한글 창제 이래로 한글의 서체도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판각이나 활자로만 사용되었던 훈민정음 해례본체에서, 붓으로 써서 판각하기 시작한 훈민정음 언해본체로, 다시 궁녀에 의해 필의를 살린 궁체로의 변화를 겪어 왔다. 이러한 변화의 굴레는 서체의 단절이 아니라 서체끼리 서로 공존 상생하며 서예술의 발전을 가져왔다.

훈민정음 해례본체는 글자의 선이 비교적 굵고, 형태가 단순하며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가독성이 높고 중량감이 있는 서체로, 세종대왕이 직접 손으로 써 가면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훈민정음 언해본체는 훈민정음 언해본의 출현으로부터 생성되었다. 이 언해본은 붓으로 써서 판각한 것으로 실용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서체라 할 수 있다. 언해본체는 획의 굵기가 일정한 해례본체와 달리 점점 가늘어지거나 굵어지는 획의 변화와 율동감이 나타나고, 쓰기 편하게 가로획은 오른쪽이 조금씩 올라가며, 또 앞의 획에서 다음 획으로 옮겨가고자 하는 필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글자의 중심축은 오른쪽으로 옮아가고, 글자의 크기와 흐름에 많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자형도 비교적 다양하게 나타난다. 언해본체는 한자와 함께 섞어 쓰기에 어울리는 서체라서 조화체란 별명을 얻기도 한다.

이어서 궁중 여성들에 의해 탄생한 궁체가 있다. 궁체는 글자의 중심축이 더욱 오른쪽으로 가지런히 자리 잡기 시작하고, 점획 간은 물론 상하 글자 간의 필맥이 유연하게 호응하는, 조화롭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서체이다.

20세기 후반부터는 궁체 흘림을 바탕으로 한 캘리그라피 서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캘리그라피라는 용어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언어는 대중의 몫이고, 흔히 순간순간의 감성을 드러내는, 손글씨 또는 감성 글씨라고 일컫는다. 

여는 말에서도 일렀듯이 한글의 조형적 특성을 살피는 일은 한글의 예술적 가치는 물론 상업적 가치도 동시에 높이는 일이다. 

문자 기호로서 한글이 주는 독특한 조형 어법을 객관적으로 찾아내기 위해서는 일체의 선입견을 배제하고 백지에서 원시적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 한글의 이미지를 제대로 살피기 위해서는 열린 생각으로 순간순간 자유롭게 이미지를 추정해 나가야 하며, 주의할 점은 각자의 머릿속에 은닉하고 있는 고정관념에 고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조형과 비슷한 말로 때깔이라는 용어가 있다. 모양과 빛깔을 뜻하는 합성어로 조형예술을 논할 때 매우 유용한 낱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모양 ‘때’ ‘본때(本때)가 난다’라고 할 때의 본때의 ‘때’는 한자 ‘모양 태(態)’와 발음과 의미도 비슷한 면이 있지만, 맵시를 뜻하는 명사로 보인다.

는 그에 따른 성격 곧, ‘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때깔’의 ‘깔’은 ‘빛깔’ ‘성깔’에서처럼 ‘상태’나 ‘바탕’을 뜻하는 접미사로 풀이하고 있는데, 필자의 생각에는 ‘빛깔’ ‘색깔’ ‘깔색’의 준말로서 ‘깔’은 명사로 보인다. 그렇다면 ‘때깔’은 ‘때’와 ‘깔’의 합성어로 볼 수 있다.

을 낳기 때문이다. 

한글도 모든 언어가 갖는 보편적 성격으로서 말, 글, 뜻의 3요소를 가지고 있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고 유동적이지만, 붓을 통하여 종이 위에 글로 형상화되었을 때 뜻을 가지며 영원성을 지닌다. 이때 붓으로 필사를 하든, 폰트로 인쇄를 하든 글자 모양은 어느 정도 그 의미를 도와준다고 본다. 한글은 소리글자이지만 자형이 더해주는 형태적 자극과 감성도 있다. 곧, ‘때’가 주는 ‘깔’이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자언어로서의 한글의 조형적 특성을 찾아보되, 그 근본 자형은 훈민정음 해례본체에 두고 살펴보기로 한다.

 

1. 둥근 점(點)이 글자(아래아)가 된 한글


‘점이 모여 선이 된다’라고 할 때, 점(period)은 조형 요소의 기초이다. 점이라 하면 흔히 문장부호의 하나인 마침표를 연상하게 된다. 좁은 의미의 마침표는 ‘.’의 이름이다. 넓은 의미의 마침표에는 온점(.)을 포함하여 물음표(?), 느낌표(!) 등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문장을 마친다는 데에 있다. 세로쓰기할 때 사용하던 고리점(˳)은 2015년 문장부호 규정 개정 시에 삭제되었다.

 그러나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둥근 점(點)은 ‘아래아(ㆍ)’라는 글자가 되었다. 아래아는 오늘날 사용되지 않고 제주도에 그 발음 [ʌ]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체에서 점은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이를테면 ‘ㅏ, ㅓ, ㅗ, ㅜ, ㅑ, ㅕ, ㅛ, ㅠ’ 등에 모두 둥근 점이 사용되었다. 한자에서 단독체로서의 점은 ‘불똥 주(丶)’ 또는 ‘주인 주(主)’ 자의 약자로 쓰일 뿐이다. 영어에서는 ‘i, j’ 두 글자에서 점은 다른 글자의 부분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훈민정음 해례본체에서의 ‘ㅎ, ㅊ’ 위의 점은, 점이 아니라 ‘획(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가획(加劃) 원리에 의해 만든 글자이기 때문이다.


2. 대칭 구조로 안정감을 주는 한글


한글이 안정감을 주는 근본 까닭은 대칭 구조의 글자가 많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체의 28자를 중심으로 대칭 구조의 조형으로 만들어진 글자를 찾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 1> 훈민정음 초성 체계           

<그림 2> 훈민정음 중성 체계


좌우 대칭 – ㆁ, ㅁ, ㅂ, ㅍ, ㅅ, ㅈ, ㅊ, ㅿ, ㆆ, ㅎ, ㅡ, ㅗ, ㅜ, ㅛ, ㅠ

상하 대칭 – ㄷ, ㅌ, ㅣ, ㅏ, ㅑ, ㅓ, ㅕ(ㄷ과 ㅌ은 가획이 약간 기므로 완전한 대칭은 아니다)

사선 대칭 – ㄱ, ㄴ

점 대칭 – ㄹ

완전 대칭 – ㅇ, ㆍ(아래아)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모두 다양한 대칭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나, 비교적 간결한 구조로 이루어진 알파벳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대소문자를 통틀어 살펴보면 ‘b, d, e, F, G, g, h, J, j, k, L, m, n, P, p, Q, q, R, r, t, u, y’ 등은 대칭 구조가 아니다. 아라비아 숫자도 열 자 중에서 ‘0, 1, 3, 8’ 네 글자만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 한글 모음에서는 글자끼리 절묘한 상하 또는 좌우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어 서로 마주 서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또한 한글을 보는 순간 심리적인 안정과 조화를 얻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어의 경우 ‘b-d’ ‘p-q’에서 마주 보는 듯한 좌우 대칭형을 찾을 수 있다. 


좌우 대칭 – ㅏ–ㅓ, ㅑ-ㅕ

상하 대칭 - ㅗ-ㅜ, ㅛ-ㅠ 


3. 동그라미(ㅇ, ㆁ, ㅎ)가 많은 한글


우선, 한글에는 그 많은 한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곡선으로 이루어진 동그라미가 많다는 사실이다. 동그란 ‘ㅇ’을 비롯하여 사과 모양의 ‘ㆁ’, 그리고 ‘ㅎ’ 안에도 작은 동그라미가 들어있다. 한자권이나 영어권 사람들에게 한글의 첫인상에 관하여 물어보면, 흔히 ‘동그라미가 많아요.’ 또는 ‘동그라미와 네모가 많이 보여요’라고 대답한다.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그 많은 한자에는 동그라미가 없다. 한글로 ‘동그라미’라고 쓰면 ‘동’ 자 안에 동그라미가 들어있지만, 한자로 ‘둥글 원(圓)’을 쓰더라도 동그라미는 없고 네모만이 들어있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 한문을 익히면 곡선이 많이 들어가는 초서(草書)를 즐겨 쓰지 않나 생각한다. 간찰(簡札)의 경우 대부분 초서로 쓰여 있다.

 한글은 ‘네모’ 안에는 네모가 들어있고, ‘세모’ 안에는 세모가 들어있다. 여기에서 자음인 ‘ㅇ, ㅁ, ㅿ’을 통하여 ‘원방각(圓方角)’ 이론과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이 탄생하기 시작한다. 

원방각에서 원(圓)은 하늘의 뜻을, 방(方)은 땅의 뜻을, 각(角)은 인간의 뜻을 상징한다. 따라서 원방각은 천지인의 상형이자 기하학의 실마리가 되는 동시에 심원한 철학적 상징어이기도 하다. 기본 모음 ‘ㆍ, ㅡ, ㅣ’ 창제에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이론을 기초로 하였듯이, 자음에서도 ‘ㅇ(하늘), ㅁ(땅), ㅿ(사람)’의 원방각 곧, 천지인 삼재론이 대두된다. 천부경과 영화 오징어 게임에서도 원방각을 사용하는 등, 이 원방각과 천지인의 문화 상품적 가치는 대단히 크다고 본다.


<그림 3> 원방각(圓方角)


이응(ㅇ)만이 아니라 훈민정음 반포 시에는 상형의 원리에 따라 하늘을 본떠 만든 아래아(ㆍ)는 물론 초출자와 재출자에 찍는 점들도 모두 둥근 점이었다. 알고 보면 한글은 자연이 만든 곡선과 인간이 만든 직선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글자이다. 


4. 양보와 겸손의 한글


한글이 주는 때깔의 특징 중 양보를 통한 조화의 이미지를 들 수 있다. 한자의 ‘열 십(十)’ ‘벨 예(乂)’ 자나 영어의 ‘X’ ‘t’ ‘f’ 등의 글자에서는 획과 획이 서로 교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교차하는 획은 대결구조의 이미지로 침범하거나 싸우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한글에는 이처럼 교차하는 획이 없다. 한글은 ‘ㅏ’ ‘ㅓ’ ‘ㅗ’ ‘ㅜ’ ‘ㅅ’ ‘ㅎ’ 등에서 보듯이 긴 획에는 짧은 점을, 짧은 점에는 긴 획을 가볍게 붙일 뿐 서로 교차하는 법이 없다. 한글 서체는 점획 간에 서로 자리를 양보하며 침범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한글만의 양보와 겸손의 조형적 특징을 살필 수 있다. 그리하여 한글은 읽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정서순화의 글자이다.


5. 가로쓰기와 세로쓰기가 자유로운 한글


<훈민정음해례본> 합자해(合字解)는 초성, 중성, 종성이 합하여 글자 곧, 음절을 이룬다는 풀이이다. 이때 중성 ‘ㆍ, ㅡ, ㅗ, ㅛ, ㅜ, ㅠ’ 등은 초성 아래에 쓰고, 중성 ‘ㅣ, ㅏ, ㅑ, ㅓ, ㅕ’ 등은 초성 우측에 쓴다는 법칙이다. 당연한 얘기를 하느냐고 비웃을 수 있겠지만 창제 당시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외국인에게 ‘이’자를 쓰라고 하면, ‘ㅣ’를 밑에서 위로 긋는 사람도 꽤 있다. 나무가 밑에서 위로 자라는 것을 보았으리란 상상을 해 본다.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여 글자를 이루는 합자해에서 한글만의 조형상의 특징을 살펴보기로 한다. 한글은 창제 당시는 28 자모로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자음 14자, 모음 10자로 24자모만 사용하고 있다. 한글은 현존하는 문자 중 가장 단순한 자모 체계를 가졌고, 음소문자(音素文字)이면서도 모아쓰기를 할 수 있는 음절형 문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단순한 자모 체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11,172자의 조합형 문자를 생성해 낼 수 있는 글자가 한글이다. 

한글은 ‘가’처럼 좌우 결합, ‘구’처럼 상하 결합을 원칙으로 하되, 가로쓰기 또는 세로쓰기가 다 가능하다. 그러나 영어는 좌우로만 결합하여 쓰므로 자음과 모음의 구분이 어렵고 또, 가로쓰기만 가능하다. 한자는 글자의 결합 방식이 ‘木’ ‘日’과 같은 독체(獨體)인 ‘문(文)’과, ‘東’ ‘明’과 같이 문과 문이 만나 이루어지는 합체(合體)인 ‘자(字)’로 구분되지만, 글자의 결합 방식과 필순은 매우 복잡하여 필사할 때는 필순까지 배워야 한다.


6. 부자자효(父慈子孝)의 미덕을 가르쳐 주는 한글


한글은 ‘ㆍ(아래아)’를 제외하면 모음이 자음보다 조금 크다. 좌우 결합의 ‘아’ ‘기’ 자를 보면 부모가 자식을 가슴에 안고 있는 모습이다. 상하 결합의 ‘부’ ‘모’ 자를 보면 부모가 자식을 목말 태우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받침으로 자음을 붙이면 ‘앞’ ‘길’처럼 되는데, 이는 자식이 성장하여 부모를 업고 있는 모습이다. 만약 초성으로 쓰인 자음을 고려한다면, 형이 부모와 동생(초성)을 함께 떠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어린이나 외국인에게 한국어 교육을 할 때 부자자효를 곁들여 설명해 주면 커다란 정서적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은 자음을 모음보다 크게 쓰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부자간, 세대 간의 갈등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ㅉㅉ, ㅇㅋ, ㅅㄹㅎ, ㅋㅋㅋ’ 등과 같이 초성자만으로 의사소통하기도 하여 모음의 존재감을 무색하게 하기도 한다.


7. 가족 융합형의 한글


한글은 자질문자(資質文字)로서 가족융합(家族融合)형의 글자이다. 

자질문자란 문자가 나타내는 음소들의 자질이 그 글자의 외형에 체계적으로 반영된 문자체계를 갖춘 문자를 일컫는다. 예를 들면 기본 글자 ‘ㄱ’에 격음은 가획으로, 경음은 각자 병서로 표현하여 ‘ㅋ’과 ‘ㄲ’과 같이 쓰는 문자를 말한다. 

이러한 체계적 자질은 한글만이 갖추고 있는데, 여기서는 한글의 새로운 자질로서 가족적 자질을 찾아보고자 한다. 

우선 자음과 모음 24자는 각기 개인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나’ ‘우’처럼 두 개의 자모가 모여 한 글자를 이루면 2인 가족, ‘집’ ‘동’처럼 세 개의 자모가 모여 한 글자를 이루면 3인 가족처럼 보인다. 이를 기초로 생각해 보면 ‘삶’ ‘밝’은 4인 가족, ‘짧’ ‘떫’은 5인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글은 영어의 ‘a’ ‘I’나, 한자의 ‘一’ ‘馬’와 같은 1인 가족은 없다. 그래서 한글은 더불어 사는 글자, 외롭지 않은 글자이다. 따라서 한글은 한 음절을 이루고 있는 가족적 조화로움 덕분에 사용하는 사람의 심성도 그만큼 밝아진다고 본다. 모든 가족은 음소가 모여 음절로 똘똘 뭉쳐 있다.

이를테면 음절이 가족 형태이므로 2음절, 3음절의 단어는 각각 두 가족, 세 가족이 모여서 살아가는 모습이다. ‘사랑’ ‘행복’은 두 가족이 이웃을 이루고 있고, ‘보름달’ ‘찔레꽃’은 세 가족이 이웃을 이루고 있다. 마찬가지로 ‘꽃봉오리’ ‘함박웃음’ ‘온새미로’ ‘안다미로’ 등은 네 가족이 더 큰 이웃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듯 단어가 모여 이룬 문장은 한 마을을 구성하고 있다. 예컨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문장은 28가족이 모여 사는 마을을 연상케 한다.


8. 상형적 요소가 많은 한글


소리글자(표음문자) 중에서도 자질문자에 속하는 가장 뛰어난 문자, 한글은 소리글자 중에도 뜻글자(표의문자)처럼 상징적 요소가 많다.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되자 그 속에 제자 원리가 소상히 밝혀지게 되었다. 기본 자음 ‘ㄱ, ㄴ, ㅁ, ㅅ, ㅎ’ 등의 5글자는 발음기관을 상형하고, 기본 모음 ‘ㆍ, ㅡ, ㅣ’는 천지인을 상형하였다. 그리하여 한글은 자음으로 보면 인간적이고 과학적인 글자, 모음으로 보면 우주적이고 철학적인 글자라 할 수 있다. 

자음과 모음이 어울려야 소리가 완성되는 한글, 그중에서도 자음에는 형태가 주는 상징적 요소가 많이 나타나고, 모음은 음성 상징적 요소가 많이 나타난다. 창제 당시의 모음은 모음조화가 철저하게 지켜져 발음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양성모음은 음색과 어감이 밝고 작으며, 음성모음은 어둡고 크다. 따라서 모음은 글자 형태보다 음성 상징이 강하다. 이를테면 [이] [희] [기]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ㅣ] 발음의 상징성은 기쁨을 나타낸다. 모음은 기본자를 합성하여 초출자와 재출자를 만들고, 이들을 합용하여 모두 29자를 만드니 현존하는 언어 중에서 한글이 가장 많은 모음을 가진 글자로 추정된다. 

자음은 실제 글자 속에 운용함에 있어 모음과 달리, 형태 상징적 요소가 많이 발견된다. 한글의 조형적 아름다움과 과학성은 자음 글자꼴의 발음기관 상형과 이를 바탕으로 한 가획 원리의 운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어휘에 쓰인 자음은 어휘의 뜻을 도와주는 어떤 이미지를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문은 성모와 운모의 결합 곧, 반절법(反切法)에 따른 2분법적 구조인 데 비해, 한글은 초성(첫소리), 중성(가운뎃소리), 종성(끝소리)에 의한 3분법적 구조로 확장되어 있다. <훈민정음해례본>의 해례(解例)에 의하면, 합자해(合字解)와 용자례(用字例)가 한글 형태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합자해(合字解)는 첫소리·가운뎃소리·끝소리가 합쳐 음절이 되는 것에 관한 규정이다. 이어 용자례(用字例)는 단음절어 54개와 이음절어 40개의 고유 단어를 조화롭게 표기하여 실제 용례를 보여주고 있어서, 갓 태어난 한글 어휘의 울음소리를 듣는 듯하다. 


1) 어금닛소리(아음)에는 ‘ㄱ, ㄲ, ㅋ’ 등이 있고 이체자로 ‘ㆁ’이 있다. 

‘ㄱ’은 혀뿌리처럼 ‘구부러진’ 모습이다. ‘굽다’ ‘구불구불’도 ‘ㄱ’으로 시작한다. 날씨가 추우면 손이 ‘곱다’도 그렇다. ‘긁다’ ‘구부리다’ 등도 마찬가지다. 호미, 괭이, 낫 등은 구부러져야 쓸모가 있다. 노자의 도덕경 22장에 나오는 '곡즉전(曲則全)'은 굽어서(曲) 온전할(全) 수 있다는 뜻인데, 여기의 ‘굽을 곡(曲)’도 같은 이치다. ‘ㄱ’은 아라비아 숫자 ‘7’과 비슷하여, 행운을 불러들이는 글자로도 보인다. 

‘꽃’의 ‘ㄲ’은 꽃잎이 바람이 휘날리는 듯, ‘ㅗ’는 꽃자루와 꽃대, ‘ㅊ’은 드리운 다섯 꽃잎으로 보인다.

‘ㆁ(옛이응)’은 어금닛소리의 이체자로 [ŋ]의 음가가 있다. 

‘또ᇰ’이라 하면 밭침 ‘ㆁ’이 있으며 똥 덩어리로 연상된다.


2) 혓소리(설음)에는 ‘ㄴ, ㄷ, ㄸ, ㅌ’ 등이 있고, 이체자로 반혓소리(반설음) ‘ㄹ’이 있다. 

‘ㄴ’은 감춰져 있던 것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낫’ ‘낮’ ‘낯’ ‘나’ ‘나가다’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여기서 ‘낫’은 중요한 생활 도구로 항상 찾으면 나타날 수 있는 자리에 두어야 한다. 한자의 ‘가까울 근(近)’에 ‘도끼 근(斤)’이 있는 점과 상통한다. ‘나’는 미소짓는 얼굴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림 4> 미소짓는 ‘나’

‘ㄴ’에 가획한 ‘ㄷ’은 뚜껑을 덮은 모습이다. ‘닫다’ ‘덮다’ ‘뚜껑’ 등에서 닫힌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에 한 획을 더한 ‘ㅌ’은 ‘답답한 ㄷ’에서 터져 나오는 모습이다. ‘탕’ ‘터지다’ ‘태어나다’ 등에서 그러한 이미지를 살필 수 있다.

혓소리 이체자 ‘ㄹ’은 혀가 ㄹ처럼 떨며 나오는 소리이다. ‘바르르’라고 발음하면 실제로 혀가 바르르 떤다. ‘ㄹ’의 발음은 설전음 [r]과 설측음 [l]의 두 가지로 실현되는데, [r]에서는 ‘흐르다’에서처럼 단어에서도 떨림의 어감이 감지되고, [l]에서는 ‘길’ ‘실’ ‘줄’ ‘살’ 등에서처럼 단어들에 공통으로 ‘길다’라는 느낌이 전해온다. 

‘ㄹ’은 네 번이나 꺾여진 이미지로 크게 보면 한자 ‘새 을(乙)’ 자와 닮았다. 그리고 한자에서 ‘영(永)’ ‘모(毛)’처럼 긴 것은 구부려서 표현한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3) 입술소리(순음)에는 ‘ㅁ, ㅂ, ㅃ, ㅍ’ 등이 있다. 

‘ㅁ’은 한자 ‘입 구(口)’ 자 모양 그대로이다. ‘ㅁ’은 인간이 태어나 익히는 원초적 발음이다. ‘엄마’ ‘맘마’ ‘물’ ‘말’ ‘몸’ ‘맘’ 등의 단어를 살펴보면 확실해진다. ‘ㅂ, ㅃ, ㅍ’은 단계적 훈련이 요구되는 발음이다. 오랜 기간의 ‘맘마’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밥’이란 발음을 할 수 있게 된다.

‘바람’ ‘불’ ‘불다’ 등의 ‘ㅂ’ 이미지는 뭔가 일어나거나 타오르는 모습이다. ‘폭풍’ ‘폭발’ 등에서 ‘ㅍ’ 발음은 거세고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이다. ‘ㅁ’을 기준으로 볼 때, ‘ㅂ’ 두 개의 상향 돌출 모습이, ‘ㅍ’은 네 개의 좌우 돌출 모습이 보인다.

‘밥’ 자 속에는 두 개의 밥그릇 모습의 ‘ㅂ’ 자가 들어있다. <훈민정음해례본>의 ‘ㅂ’ 모양은 한결같이 가운데 획의 위치가 높다. 밥은 배불리 먹지 말고 7할 정도만 채우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봄’에는 싹이 돋아나는 이미지와 ‘보드랍다’의 이미지가 들어있다. ‘비’와 ‘빛’에는 내리쬐는 빗물과 빛살이 하강하는 이미지도 포함하고 있다.

‘부부’는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입은 맞추는 모습이다.

‘뽀뽀’의 ‘ㅃ’은 두 입이 마주치는 모습이다.

‘방긋’이라 하면 ‘ㅂ’에서 웃는 모습이 연상된다.


4) 잇소리(치음)에는 ‘ㅅ, ㅈ, ㅉ, ㅊ’ 등이 있고, 이체자로 반잇소리(반치음) ‘ㅿ’이 있다.

‘ㅅ’은 앞니의 측면 모습을 상형한 글자이다. ‘이 치(齒)’ 자 속에 들어있는 네 개의 이빨을 그린 ‘ㅅ’과 닮았다.

‘솔’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언덕 위에 소나무가 두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 있는 모습이다.

‘솟다’의 ‘솟’은 전체적으로 위로 솟구치는 모습이다.

‘싸움’과 ‘씨름’의 ‘ㅆ’은 두 사람이 서로 다투는 모습이다.

‘죽음’의 ‘ㅜ’는 ‘ㅡ + ㆍ’의 결합으로 점(ㆍ)이 땅(ㅡ)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5) 목구멍소리(후음)에는 ‘ㅇ(제로), ㆆ, ㅎ’ 등이 있다.

‘ㅇ(이응)’은 글자 형태만 있고, 발음은 없다. ‘ㅇ’은 목구멍 상형으로 음가는 없지만, 초성에 쓰일 때는 모음부터 발음되며 둥근 이미지가 떠오른다. ‘아’하고 감탄하면 목구멍이 보이고, 입술도 둥근 모양이다. ‘앙앙’거리는 ‘아이’의 모습은 영락없는 ‘ㅇ’의 이미지이다. 원순모음 ‘오’ ‘우’는 입 모양도 둥글지만 둥근 이미지도 연상된다. 

‘오’는 중심, 중간의 이미지이다. 시간상으로 ‘오늘’은 어제와 내일의 중간이고, ‘오정(午正)’은 오시(午時)로 하루의 중간이다. ‘5’는 숫자의 중간이고, ‘나 오(吾)’는 세상의 중심이다. 

‘우리(we)’, ‘우리(짐승을 가두어 기르는 곳)’의 시작은 ‘울’이나 ‘울타리’의 이미지인 ‘ㅇ’이 있다.

‘이’라고 발음하면 ‘앞니’가 보이고, ‘아’라고 발음하면 ‘어금니’가 보인다.

‘아침’의 ‘ㅏ’는 ‘ㅣ+ㆍ’의 양성모음으로 태양(ㆍ)이 동쪽에서 떠오르는 모습이고, ‘저녁’의 ‘ㅓ’는 ‘ㆍ+ㅣ’의 음성모음으로 태양(ㆍ)이 서쪽으로 저무는 모습이다.

‘한국’이라 할 때의 ‘ㅎ’은 갓을 쓴 한국인의 얼굴 모습이다. 그리하여 ‘한글’ ‘한복’ ‘한식’ ‘한옥’이라 하면 한국인의 이미지가 자연적으로 떠오른다. 


9.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한글 


아래의 두 도형은 필자가 만든 한글 자음도(子音圖)와 한글 모음도(母音圖)이다. 자음도 안에는 ㄱ에서 ㅎ까지의 14 자음이 다 들어있고, 모음도 안에는 모음 ㅏ에서 ㅣ까지의 10 모음이 다 들어있다. 

세계 어느 나라 문자도 이처럼 간단한 도형 안에 모든 글자를 포함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한글이 익히기 쉬운 글자라는 점과 대칭적 구조를 지닌 글자라는 두 가지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한글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체계적이고,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글자이다. 이러한 문양은 한글박물관, 국립박물관 등에서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림 5> 한글 자음도와 모음도


10. 한글의 뛰어난 조형미


아래 작품은 ‘훈민정음 夫婦(부부)’라는 제목으로 해외에 출품한 바 있는 대련 작품이다. 훈민정음 어지(御旨) 부분을 한글과 한자로 각각 쓴 작품인데, 한글 부분은 아내의 이미지로 하고, 한자는 남편의 이미지로 했다.

아내의 얼굴에서는 ‘ㆆ, ㅸ’으로 두 눈을, ‘ㅿ, ㆁ’으로 각각 코와 입을, ‘ㅏ, ㅓ, ㅗ, ㅠ’ 등으로 얼굴 윤곽을 표현하였다. 창제 당시의 글자 중 오늘날 사용하지 않는 자음 ‘ㆆ, ㅿ, ㆁ’ 세 글자가 위에서 아래로 순서대로 놓였는데, 이 순서는 창제 이후 사라진 글자의 순서이기도 하다. 만약 목에다 모음 ‘ㆍ’를 찍는다면 사라진 네 글자를 익힘은 물론 한글 역사를 기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남편의 얼굴은 한자 중 전서(篆書)를 바탕으로 표현하였다. 이 속에는 얼굴과 관련한 ‘面, 首, 目, 耳, 頁, 口, 眉, 而’ 등의 글자가 숨을 글자 찾기처럼 들어있다.

<그림 6> 훈민정음 부부


Ⅲ. 나가며


한글 서체 명칭으로 그동안 논란이 있었지만 한글 서예 연구로 일생을 바친 허경무 한글서체연구회장의 노력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체, 훈민정음 언해본체, 궁체 등으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 한글 서체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든지 간에 거기에는 한글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 조형미는 숨어있다. 

‘ㆍ’처럼 점도 글자가 되는 한글, 대칭 구조가 많아 안정감을 주는 한글, 한자에 없는 원이 있는 원방각의 한글, 획끼리 서로 침범함이 없는 양보와 겸양의 한글, 가로쓰기와 세로쓰기가 다 가능한 한글, 부자자효의 미덕을 가르쳐주는 한글, 가족융합형의 한글, 소리글자임에도 상형적 요소가 많은 한글,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한글, 작품 제작 소재로도 부족함이 없는 한글 등 한글의 뛰어난 조형미에는 그 경계가 없어 보인다. 

한글은 누구나 배우기 쉽고, 읽기 쉽고, 쓰기 편한 아름다운 글씨이다. 정보화시대가 되면서 더욱 돋보이는 한글이다. 숭고한 한글 창제 이후 오랫동안 사회 지도층인 양반들의 외면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무지몽매한 백성 계도는 그만두고라도 국내현실과 국제정세를 무시하고 한자로 문자 권력을 부리면서 현학적 위세를 떨친 선조들이 참으로 안타깝다. 

오늘날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린 한글로 각종 시험이 치러지고 있어 다행이다. 언문, 암클, 통싯글 등으로 불리며 우리 스스로 자폐증을 앓아왔던 과거가 부끄럽다. 큰 활을 가지고 있기에 평안하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의 ‘동이족 이(夷)’ 자를, 우리 스스로 ‘오랑캐 이’라고 읽어 왔고, 지금도 그렇게 읽고 있는 현실은 불편한 진실이다. 이제 한글이 세계인의 주목과 사랑을 받기 시작하자 이에 편승하여 우쭐대는 우리의 모습이 쑥스럽기까지 하다.

한글은 한문을 아는 지식인을 위한 훈인정음(訓人正音)이 아니라, 글 모르는 무지렁이 백성을 위한 훈민정음(訓民正音)이다. 순수한 국민의 우리말과 우리 노래를 천시하고, 한문이나 영어 좀 안다고 해서 유세 떠는 언어 사대주의자를 위한 한글이 아니다. 한글은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아랫사람을 위해 만든 유일무이한 글자이다. 

한글은 창제자와 창제 원리가 있는 유일한 문자언어이다. 한글은 누구나 읽기 쉽고, 쓰기 쉽고, 짓기 쉬운 글이다. 한글은 배우기 쉬운 글, 과학적인 글이다. 한글은 음소문자이면서도 음절문자처럼 음절 단위로 모아 쓰는 자질문자이다. 

한글은 1962년에 국보 70호로 지정되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이다.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한 유네스코에서 1990년부터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제정하여 문맹 퇴치에 공헌한 이들에게 수여하고 있다. 

서양이 20세기에 들어와 완성한 음운이론을 세종대왕은 그보다 5세기 앞서 체계화했다. 한국의 문맹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국립국어원, 2008년 9월~11월 사이 전국 16개 시도 19세 이상 79세 이하 성인 12,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

 한글 사용 인구수는 세계 12위이다. 이런 사실만 두고 보더라도 한글의 가치와 우수성은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는다. 

육신의 근육을 기르기 위해 풍류도(風流道)를 익혀야 한다. 이성의 근육을 기르기 위해서는 문사철(文史哲)을 익히고, 감성의 근육을 기르기 위해서는 시서화(詩書畵)를 익혀야 한다. 경사자집(經史子集) 원문도 좋지만, 잘 번역된 한글로 빨리 읽고, 한글로 창의적인 글을 지으며, 한글로 품위 있게 서예 작품을 남기는 일도 한글을 사랑하는 방편 중의 하나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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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정(塗丁) 권상호(權相浩) 

문학박사(경희대학교)

라이브 서예 창시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심사위원장 역임

세계일보, 월간서예, 월간해인, 한국문학신문 등에 칼럼 및 평론 기고

현, 도정문자연구소장, 풍덩예술학교장,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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