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정 곡수에서 우군을 만났다.
점잖은 몸통에서 뻗어 나온
유연한 목줄기는 전서다,
살짝 올라간 꼬리는
영락없는 예서의 파임이다.
튼실한 몸통을 닮은 점을 찍을 수만 있다면
고품격의 글씨를 쓸 수 있을 터인데.
거위 두 마리가 다가와도
평화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떼.
물 위에서 헤엄치며 다가오는 거위 모습은
무서운 오리와 같아 보일 텐데
태연자약(泰然自若)하기만 하다.
물고기들은 거위가 거위(巨胃)를 가지고도
자기들을 잡아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까?
큰 몸을 물속에서 움직일 때
짧은 두 발의 움직임은 초서처럼 분주하다.
살랑살랑 꼬리치며
한가롭게 헤엄치던 물고기 무리
아무 일 없이 순간 잽싸게 가던 길을
매스게임(mass game)하듯
전획(轉劃)으로 일제히 방향을 바꾼다.
위기 대응 훈련이 듯하다.
곡수(曲水)에서
거위와 물고기는
지금 글씨를 쓰고 있다.
* 우군(右君) : 오리의 별명
* '목줄기'는 ‘목덜미’의 경북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