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해인> 2010. 12월호- 늦가을 소리 공양

늦가을 소리 공양

수월 권상호

새털구름마저 사라진 늦가을 하늘은 드높고

여름 내내 씻긴 물은 속살까지 드러낸다.

서리 새벽 뜨거운 입김에

온산 붉게 단장했던 비단 옷 훌렁 벗어던지자

휑하니 텅 빈 세상엔 나 혼자일레라.

 

파란 하늘 밑

발갛게 익어가는 그리움

어찌할거나 어찌할거나

저 달력마저 마지막 한 잎을 벗어버리면

이를 어찌할거나.

청산은 말이 없고 물은 무심히 흐르는데.

 

세상만시하시족 世上萬事何時足

유공청음대불심 唯供淸音待佛心

세상만사 어느 때 만족할고

맑은소리 공양하며 불심을 기다릴 뿐.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용인시 양지면 운다라니마을 무위선원無爲禪院에서

신륵사 주지 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과 불자님을 모시고

늦가을의 작은 음악회를 연다.

 

헌다례獻茶禮에 이은 소리공양

음악은 귀로 마시는 황홀한 곡차인가.

하늬바람에 하늘거리는 갈꽃 같은 손길에서

석류 속 깨문 듯 알싸한 입술에서

저리도 고운 소리를 짓나니.

연주 내내 붓 가락도 묵향墨香 두르고

화선지 위에서 춤추며 법향法香을 뿜는다.

 

세상 시비是非에 집착했던 귀를 씻자

가슴 밑바닥에 흐르는 세심천洗心泉.

그 위에 초저녁달이 백련白蓮으로 피어오른다.

 

시간, 공간, 인간 삼간三間의 경계가 무너진다.

 

암중불견암전물 庵中不見庵前物

수자망망화자홍 水自茫茫花自紅

암자 안에서 암자 앞의 것을 보지 못하지만

물은 절로 아득히 흐르고 꽃은 절로 붉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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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청화
어젯밤 한바탕 내린 첫눈이 단비를 뿌린듯 조용한 월요일 아침을 맞이한것도 감사한데 더좋은 글을 읽고 마음의 안식을 얻었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글이란 정말 마음을 울리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것 같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