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해인> 2011. 8월호- 하심(下心)

하심(下心)

 

- 수월 권상호

 

당신의 마음처럼 여름 볕이 뜨거웠습니다.

찬물 한 가득 떠서 훅훅 뿌려대며 지열을 식힙니다.

경계를 넘나들던 바람이 숨고르기 하듯

수초를 헤치며 너울너울 개울을 밟고 지나갑니다.

낮게만 드리우던 개울물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더 낮은 곳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순간, 주변이 잠잠해졌습니다.

내 마음도 깨끗해졌습니다.

 

어디쯤 걸어왔을까.

새벽 비 내린 밭가에 홀로 서 있었습니다.

간밤의 수선스러운 꿈 자락을 걷어내고 나와

하이얀 산()이내 몽글거리며 흩어지는

밭둑 질척한 흙 위에 맨발로 서서 소리쳐 부른

존재의 나무, 각성의 나무, 비움의 나무여

 

평생을 경계에서 이탈해 헛발질하며 걸어온

나의 한 생애가 순간,

몹시도 부끄러워졌습니다.

흙 속에 튼실히 뿌리내린 어린 잡목 한 그루보다

더 부실하고 허약한 내 모습을 보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왠지 내 마음은 참 즐거워졌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의 하심(下心)

나를 키웁니다.

억하심정(抑何心情)은 놓아두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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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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