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해인> 2011. 9월호- 심획

心劃(심획)

수월 권상호

씨앗은 흙을 만나 꿈에서 깨어나지만

먹은 선지를 만나 입을 연다.

붓이 쟁기 되던 날

먹은 씨앗 되어

첫새벽 찬물 머금고

글씨란 씨앗으로 發芽(발아)한다.

낮에 밤을 이어 마음 밭 갈고

붓 가락에 노래 얹어 시름없이 보낸 세월의 강

붓은 쪽배 되어

먹 물길 타고

여울로 큰 강으로 흐르다가

마침내 墨海(묵해)를 이룬다.

붓 바람 일던 어느 날

용오름처럼 타오르는 벅찬 감동의 카덴차

이른바 心劃(심획)

* 붓질을 운필이라 한다. 차를 몰면 運轉(운전)이요 붓을 몰면 運筆(운필)이다. 붓이 서 있는 자국은 點(점)이요, 붓이 지나간 자국은 劃(획)이다. 그런데 點劃(점획)은 살아 있어야 한다. 점획이 그럴 양이면 붓이 살아 있어야 한다.

  붓이 살아 있으려면 붓끝과 붓 허리가 살아 있어야 한다. 붓끝은 미끄러지지 않고 붓 허리는 탄력을 받아야 한다. 수많은 붓끝을 흔히 萬毫(만호)라 하고, 화선지에 숨어 있는 수많은 구멍을 紙孔(지공)이라 하는데, 만호가 지공의 구멍마다 박혀 있는 상태에서 붓 허리가 유연하게 움직일 때 이른바 심획(心劃)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