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묵(信墨)

내가 쓴 시 신묵(信墨)이 월간서예 2003년 9월호에 개재된 바 있다.




信墨 
        
            塗丁 權相浩(三角山 浮休室 主人)

먹은 영원하다.
그 먹을 믿고 따르고 싶다.

나무는 세 번 죽는다.
물이 말라 한번 죽고
불에 타서 숯이 되면서 두 번 죽고
그 숯이 또 한번 몸을 불살라 세 번 죽는다.
그러고 나면 나무는
이 세상에서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만다.

먹은 나무가 타면서 생기는
그을음으로 만들어지는데
그 성분은 탄소 알갱이로서
숯과 성분이 같은지라 성질이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먹은 영원하고,
그 먹으로 형상화한 예술 또한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다.

글씨 쓰는 일은 결코 외롭지 않다.
글방엔 언제나 신실한
네 친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

먹군과 벼루양의 은근한 만남
붓군과 종이양의 환상적 해후.
물이란 매파 없이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붓이 종이를 스치는 건 순간이나
다 마를 때까지는 꾀나 시간이 걸린다.
그 동안 책장 넘기며
문자의 숲 속에서 산책을 할 수도 있다.

인간의 손을 거치긴 했어도
붓을 떠난 먹물과 종이의 만남은 자연이다.
물에 의한 먹의 이합집산
새로운 먹의 질서 탄생
......

죽는 순간
내가 소유한 모든 재산은
남의 명의로 바뀌지만
내가 쓴 글씨는
낙관이 말해주듯
영원히 나의 소유이다.

合自然과 永生을 일깨워 준 먹.
그 먹을 믿고 따르고 싶다.

믿을 信, 먹 墨,
信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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