槿甫 崔允榮 校長 先生님과 高奇梅 女史의 碑(수정본)

槿甫 崔允榮 校長 先生님과 高奇梅 女史의 碑

이 나라의 앞날을 이끌어 갈 人材養成을 爲하여 農村에서 素朴한 一生을 보낸 스승 槿甫 崔允榮 校長先生님과 師母님 高奇梅 女史께서 여기 임들의 영원한 故鄕 自然의 품에 고이 잠드시다.

先生님께서는 海州崔氏 三十世로서 字는 尙奎이고 號는 槿甫이시다. 1932年 11月 20日 慶尙北道 醴泉郡 知保面 首月里 平地洞 490番地에서 父 在勳, 鍾旭의 따님인 母 密陽朴氏 사이의 四男二女中 맏아들로 태어나셨다. 先生의 始祖는 溫이고, 二世 文獻公 冲께서 高麗 때부터 海東孔子로 推仰받으면서부터 名門巨族이 되었다. 十四世 江湖散人 萬理께서는 朝鮮朝 世宗 때에 集賢殿副提學의 벼슬을 지낸 淸白吏였고, 公의 三男인 塘께서 派祖가 되신다. 派祖의 從孫인 通德郞 琇께서 壬辰倭亂 直後인 1598年 孝子 就明의 등에 업혀 入鄕함으로서 平地洞과 因緣을 맺으셨다. 先生의 高祖 顯德, 曾祖 成根, 祖父 洪和 세 분은 世上에 이름을 숨기고 江湖와 더불어 지내시다가 生을 마치셨다.

先生님께서는 어려서부터 自立心이 强하고 意志가 굳었으며, 父母께는 孝道하고 同氣間엔 友愛로웠다. 1942年 知保國民學校에 入學, 醴泉農業中高等學校를 거쳐, 1955年 3月에 安東師範學校를 卒業하자마자 醴泉西部國民學校 敎師로 發令받고 以後 44年間 오직 참된 스승의 길만을 밟아왔다. 烏山, 上月, 漁薪, 普門, 醴泉東部, 醴泉 등의 學校를 갈마들며 轉勤하다가 1989年에 校監 昇進하여 上里, 知保初等學校에 勤務하고, 1996年 1月에 마침내 校長으로 昇進하여 義城高山 및 普門初等學校를 이끌면서 많은 發展을 일으켰다. 平生 어려운 餘件 속의 敎育現場에서 獻身奉仕하고, 이 나라 敎育發展에 寄與한 큰 功勞로 많은 表彰狀을 받고, 1999年 2月 27日에는 國民勳章 冬栢章을 받으며 榮譽로운 停年을 맞이하니, 先生께서는 참으로 이 땅의 거룩한 스승이시다.

先生의 나이 스무 살이던 1951年 3月에 開城高氏 鳳出의 二女 奇梅 女史께 장가드셨다. 女史께서는 1934年 1月 13日에 태어나 嚴格한 家風 속에 成長하셨다. 品性이 沈着하고 言이 貞淑하며, 알뜰한 살림과 犧牲的인 內助로 家內는 물론 집안에 和睦과 人情이 넘쳤다. 膝下에 一男五女妹를 두었는데 맏아들 承賢은 公州人 李英淑을 맞아 亴植 允瑄 男妹를, 맏딸 銀順은 公州人 李長輝를 맞아 炯瑞 潤美 男妹를, 二女 英姬는 全州人 李龍鎭을 맞아 昌顯 英柱 男妹를, 三女 賢淑은 密陽人 孫載昌을 맞아 딸 知慧를, 四女 美卿은 原州人 元鍾烈을 맞아 光淵 承淵 兄弟를, 五女 宗姬는 密陽人 朴玉煥을 맞아 昭炫 基棟 男妹를 두니 家門의 繁昌이요 韓民族의 榮華로다.

先生의 맏사위이자 저의 同窓인 李長輝 社長이 찾아와 글을 請하고, 글의 主人公인 先生님께서는 恩師되시니 敢히 辭讓할 수 없어 이에 붓을 잡았나이다.

險難한 歷史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 겨레 어린 靈魂들을 일일이 깨우치시니, 그 가르침 그지없고 그 恩惠 永遠하도다. 거룩한 임의 一生 별처럼 아름답고 所重한 임의 가르침 꽃처럼 香氣로워라. 참스승 되신 모습 小白山처럼 우뚝하고, 따스한 人品은 洛東江처럼 흐르리라.

2008년 5월에

水原大學校 美術大學院 書藝敎授 權相浩 삼가 짓고 쓰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