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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13-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도정 권상호

  ‘알다(, )’의 사전적인 뜻은 배워서 알든, 겪어서 알든, 생각하여 알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갖추고 있다[know]는 뜻이다. 여기에서 발전하여 심리 상태를 마음속으로 느끼거나 깨닫다[understand]의 뜻도 있고, 어떠한 사실에 대하여 느끼거나 깨닫다[recognize]의 뜻도 있다. 다시 말하면 ‘알다’라는 말 속에는 분별하다, 이해하다, 인식하다 등의 의미가 내재해 있다.

  속담에 ‘아는 길도 물어 가라.’고 했으니, 알 듯 말 듯한 ‘알다’의 어원을 살피기 위해 신중한 자세로 임해야겠다. ‘알다’의 뿌리를 캐다가 ‘아는 게 병’이 될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알다’의 어근 ‘알’은 무슨 뜻일까. 아가리(악알이), 주둥아리(주둥알이)에서 볼 때 ‘알’의 근원적 의미는 ‘입[]’이고, 아뢰다(알외다)에서 볼 때 ‘알’의 의미는 입에서 나오는 ‘말[]’의 뜻으로 볼 수 있다. ‘아뢰다’는 뜻의 한자가 ‘아뢸 알()’인 걸 보면 한자의 음과 훈도 우리말과 상통함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알다’의 반대어인 ‘모르다’는 어디에서 왔을까. 흥미로운 것은 영어와 한자에 ‘모르다’는 뜻의 단일어가 없다는 사실이다. do not know’나 ‘부지(不知)’처럼, ‘알다’는 뜻의 ‘know’와 ‘지()’ 앞에 각각 부정어를 갖다 놓고 ‘모르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사실은 영어와 한자어에서 ‘모르다’는 의미는 ‘알다’는 의미 속에 예속되어 있어서 ‘못 알다’는 식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놀랍게도 국어의 ‘모르다’도 영어나 한자어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모르다’는 고어 ‘모다’에서 왔으며, ‘모다 = (,)+다(알다)’로 분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말 ‘모르다’도 단독형이 아니고, ‘알다’는 말에서 파생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정의 의미인 ‘몰(,)’은 한자어 몰이해(沒理解), 몰인정(沒人情)에서 보듯이 ‘숨길 몰, 빠질 몰()’과도 서로 통한다.

  과학의 영역인 ‘빛’과 ‘그림자’도 ‘알다’와 ‘모르다’의 관계와 똑같이 파악된다. 본디 그림자란 성분이나 형체가 없다. 광자의 집합인 빛에 의해 상대적으로 인지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본디 ‘모르다’는 말도 ‘알다’는 말에 의해 상대적으로 인지될 뿐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주제넘게도 이기 일원적 이원론(理氣一元的二元論)의 입장에 선다. ()는 ‘그림자’나 ‘모르다’와 같이 실체가 없고, ()만이 ‘빛’과 ‘알다’처럼 실체가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와 기()가 남녀(男女), 음양(陰陽)과 같이 양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가 원()이 되고 기()는 종속적으로 인지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원시 수렵시대로 돌아가, ‘알다’는 뜻에 해당하는 한자 ‘지()’와 ‘식()’의 뿌리를 캐 보기로 한다.

  ‘알 지()’는 ‘화살 시()+입 구()’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지()’ 자를 ‘화살’과 ‘입’으로 파악하면 ‘알다’는 의미가 쉬이 추출되지 않는다. 그것은 여기의 구() 자는 ‘입’이 아니라 ‘표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당시는 ‘표적을 향하여 화살을 잘 쏘는 사람’을 ‘뭔가 잘 아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본 것이다. 적중(的中)이라고 할 때의 ‘중()’ 자를 보면 표적의 가운데를 화살로 꿰뚫은 형태이다. 적어도 지() 자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뜻은,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갖춘다는 의미가 아니라, ‘화살로 짐승을 잡는 방법을 잘 알다.’는 뜻이었고 ‘지혜 지()’ 자는 훨씬 나중에 생긴 글자이다. 곧 수렵사회에서는 먹을거리를 잘 잡는 사람이 많이 아는 사람이고, 또 지혜로운 사람임을 지() 자를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지()’ 자를 통하여 공부하는 자세를 본받아 볼까나. ()가 학습 목표라면 시()는 학습자에 해당한다. 시위를 떠난 화살의 모습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첫째, 한 길로 꾸준히 날아간다는 것과 둘째, 일단 시위를 떠난 뒤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학습자가 지식(知識)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설정한 목표를 향하여 한길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과 한번 놓친 기회는 다시 찾을 수 없다는 점을 깨우쳐 주고 있다.

  ‘기록할 지()’ 또는 ‘알 식()’ 자는 같은 글자로 갑골문에는 앞의 언() 자가 없다. 어떤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창[()]으로 그어 표시를 해 놓은 모양이다. 그은 부호가 오늘날의 ‘음()’ 자의 모양으로 변한 것은, 기록한 내용을 음()으로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언()자가 붙은 것은 ‘말로 한 것을 창으로 새겨 기록하다’로 풀이할 수 있다. 지식(知識)이라 할 때는 ‘식()’으로 읽는데, 여기서는 ‘알다’는 뜻이다. ‘짤 직()’ 자는 ‘실로 베를 짜는 일이 창으로 새기는 일과 비슷함’에서 생긴 글자이고, ‘벼슬 직()’은 ‘귀로 들은 것을 창으로 새겨 기록하는 일’에서 벼슬아치의 의미가 나온다. 직장인(職場人)으로 직책(職責)을 맡은 사람은 기록을 잘 해야 한다. 지식(知識)이란 앎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적어’ 둘 때, 그 가치가 있다. 그리하여 학위에는 반드시 논문이 필요한 것이다. 적어 두어야 진정한 나의 지식이 되고, 또 학문 발달에 일조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새로운 ‘적자생존론’이 나온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安分身無辱 知機心自閑(안분신무욕 지기심자한)’란 구절이 있다. 분수에 편안하면 몸에 욕됨이 없고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알면 마음이 절로 한가롭다는 뜻이다. 알면 안심이 되지만 모르면 물어야 한다. 그래서 공자의 고백처럼 배움 그 자체도 즐거운 일이지만, 모르면 물어야 즐거움이 더해지므로 학문(學問)이라고 할 때에 ‘물을 문()’ 자를 쓰는 것이다.

  <논어(論語)>에 ‘知之者不如好之者(지지자 불여호지자), 好之者不如樂之者(호지자 불여락지자)’란 명구가 나온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직업 중에 제일 좋은 직업은 즐기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다. 곧 낙업(樂業)이 최상이다.

  ‘알아야 면장(面長)을 하지.’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일을 하려면 그와 관련된 지식을 갖추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하필이면 면장(面長)일까. 그것은 사람이 태어나서 면식(面識)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정도의 행정구역이 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면장은 면민의 면면(面面)을 모두 알아야 한다.

  요즈음 정치권에서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4대강 개발, 세종시 수정안 및 천안함 진실을 두고 상반되는 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땅에 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 알 바 아니다.’하고 살 수도 없다. 정녕 이 땅에는 정치꾼만 있고 정치가는 없단 말인가?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 했는데.

  누구나 아는 세 가지는 ‘반드시 죽는다. 혼자서 죽는다. 빈손으로 죽는다.’는 사실이요, 아무도 모르는 세 가지는 ‘언제 죽을지, 어디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모르는 인생으로 태어나 알려고 바동거리다가 다시 모르는 곳으로 가는 인생……. 무지한 먹탱이가 ‘앎’을 건드린 다는 것이 다 부질없는 일인지 모른다. 아는 것은 남의 것이고, 깨달음만이 나의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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