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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원고 - 작업중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산행(山行)이 있다. 이 시는 최고의 단풍 시로 칭송을 받고 있다.

遠上寒山石徑斜(원상한산석경사) 아득한 한산 비탈진 돌 길 오르니

白雲生處有人家(백운생처유인가) 흰 구름이 이는 곳에 인가가 있네.

停車坐愛楓林晩(정거좌애풍림만) 수레 멈추고 저녁 단풍 숲을 보니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서리에 물든 잎, 봄꽃보다 더 붉네.

그런데, 젊은 시절에 이 시를 접하면서 결구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질 않았다. 상엽(霜葉), 곧 서리 맞은 단풍잎이 어쩌면 이월 화, 곧 봄꽃보다 아름다우랴. 그 의문은 나이 들면서 풀렸다. 결구에서 단풍이 봄꽃보다 더 붉다고 한 것은 노년이 청춘보다 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단풍이 어느 이름 모를 바람에 느닷없이 핑그르르 떨어지듯이 그렇게 죽는 것이, 오복의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이다.

나이 들면 외적인 변화로서는 머리털의 색깔은 변하고, 머리카락의 숫자는 줄어들며, 눈은 원시안으로 바뀐다. 내적인 변화로는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이 줄어든다. 다시 말하자면 총명(聰明)함을 잃어 간다는 뜻이다. 썩 영리하고 재주가 있을 때, 총명하다고 한다. 이 말의 문자학적 의미를 살펴보면, 총(聰)은 귀가 밝다는 의미요, 명(明)은 눈이 밝다는 의미이다.

우리 조상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엮은 책인 사자소학<四字小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父母呼我(부모호아)어시든 唯而趨進(유이추진)하라. 부모님께서 나를 부르시거든 빨리 대답하고 달려 나가라. 효도의 첫째는 대답 잘 하는 일이다. 총명한 자신의 기준으로 볼 때 했던 소리 또 한다고 짜증내기 일쑤인데 늙으신 부모님의 입장에서 보면 기억에서 했던 말도 금새 사라졌으니 늘 처음처럼 하시는 말씀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 주먹을 꼭 쥐고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손바닥을 펴고 죽는다.

태어날 때 주먹을 쥐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움켜 쥐려고 하기 때문이며,

죽을 때 손바닥을 펴는 것은

결국 빈손으로 떠난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하기 때문이다.

<탈무드>

태어날 때에는 주먹을 쥐고 태어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욕심을 나타내지만 죽을 때 손바닥을 펴고 죽는 것은 다 돌려주고 떠난다는 의미이다. 죽음은 가장 큰 가르침이다. 돌아가시는 분은 '너희를 끝을 보았느냐?'라고 이심전심으로 깨우쳐 주고 눈을 감는다. 그렇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떠나가는 '空手來空手去'가 인생인 것이다.

그대, 비운 만큼 채울 수 있다. 執之兩個 放則宇宙(집지양개 방즉우주)이다. 엄밀히 말하면 두 손으로 잡아 보았자 두 개일 뿐이요, 놓으면 편안히 우주가 내것으로 다가온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불알 두 쪽만 대그락대그락한다'는 말을 한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에는 불알 두 쪽밖에 없었는데, 지금도 너무나 많이 넣고 걸치고 챙기고 있다. 더구나 불의의 방법으로 많은 물건을 차지하고 있다면, '불알 차인 중놈 달아나듯' 그곳에서 떠나야 한다.

③ 점잖다.

노인이 되면 '언행이 묵중하고 야하지 아니하다'. 품격이 속되지 아니하고 고상하기 때문에 '점잖다'라고 하는 것이다. 발음상으로 보면 /점잖다/는 말은 /젊지않다/는 뜻이다. 젊은이처럼 가볍고 속되게 덤벙대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중후한 인생의 결정체, 그것은 노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엄한 아름다움이다.

④ 생각이 많다.

노인이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그러다 보니 했던 말 또 하기도 한다. 그래서 예부터 효자는 말대꾸하지 않고 대답 잘 하는 것을 중히 여겼다. 생각할 考(고)자는 老변에 속한다. 모질회(耄會)나 耆老宴(기로연)에는 생각이 많은 분들의 밤잠을 잊은 대화의 모임이다.

⑤ 노련(老鍊)하다.

노인은 매사에 노련하다. 일생 동안 겪어온 노하우가 있다. 컴퓨터라는 괴물이 나와 손가락 빠른 젊은이에게 뒤쳐진듯 보이지만 노인은 그 기계의 인성파괴성과 중독성을 잘 알고 있다. 노인은 연륜에 어울리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길을 걷는다. 술을 마셔도 젊은이처럼 속수무책으로 쓰러지지 않는다. 不倒翁(부도옹)은 노숙(老熟)하고도, 노성(老成)하다.

3. 늙음의 아름다움

4. 출생은 곧 사형 선고

태반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우는 까닭은 사형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태어나지 않았다면 죽을 일도 없을 것을...... 어차피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살며' '사랑'하며 '삶'을 구가하다가 죽어야 한다. (살다-삶-사랑-사람)

生과 死의 상황의 차이를 살펴보자. 출생의 상황은 태어나는 한 신생아의 울음 주변에 많은 사람의 웃음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볼 때, 정작 죽는 당사자는 웃으며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6. 인생 공부

인생공부란 삶의 유혹과 죽음의 공포, 두 가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터득하는 일이다.

삶의 유혹에는 돈과 명예가 가장 크다. 저녁으로 랍스타를 먹었든, 소금 주먹밥을 먹었든 배출할 때에는 똥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 든 것은 똥밖에 없고, 진 것은 죄밖에 없다는 점에서 인간은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인격의 완성이요 장엄한 인생의 마무리가 아닌가.

사유(思惟)의 대자유

자유(自遊)의 대자유 속에서 늙어가는 즐거움을 그대는 아는가.

그대, 칠흑같이 캄캄한 시골 방에서 봉창 틈을 비집고 내리꽂히는 달빛의 산뜻함을 기억하는가? 그리고 어느 늦가을 아침, 잠에서 어렴풋이 깨어나는 순간 문틈으로 새어드는 햇살이 방안의 뽀얀 먼지를 흔들며 머리맡에 쏟아지던 그 상큼한 순간을 기억하는가?

은빛의 부드러운 화선지 위에 까맣게 윤기 넘치는 먹물이 흐드러지게 퍼져나가는 그 맛 역시 영원히 놓칠 수 없는 오싹한 전율이다. 격조 높은 흑백의 앙상블! 낭창낭창하고 원만하게 생긴 붓털이 빚어내는 강하고 질긴 획질(劃質)! 심간을 깎는 아픔의 붓질을 통한 먹울림! 이러한 잔잔한 감동들 때문에 서예는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 하였고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혹독할 정도로 애호하고 있다. 그 누가 서예를 고리타분하고 낡은 취미 정도로만 치부한단 말인가?

서예는 문자를 매체로 하여 표현하는 조형 예술이다. 다시 말하면, 서예는 필묵으로 종이 위에 점과 획을 결합함으로써 문자의 미적 질서를 나타내는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랜 예술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표현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문자를 모르는 어린아이조차 색연필을 손에 잡으면 아무 데에나 마구 그어 버리고 짓이기는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도심에서 새로 길을 닦고, 시멘트를 발라 놓으면 마르기도 전에 꼬챙이를 들고 대책 없이 낙서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의 벽지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경우를 보았는가? 긋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 본능의 자취이다. 그러나 인간은 차차 성장하면서 이성의 갑옷을 입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고, 점수로 자기를 판단하며, 자기의 글재주 없음을 선천적이라고 속단하고 본래 가지고 있던 표현 본능의 씨앗마저 하나하나 짓밟아 버리기가 일쑤다.

운동장에서는 잘잘못을 떠나 누구든 공을 찰 수 있고, 노래방에서는 점수에 상관없이 누구나 노래를 부를 수 있듯이, 아무나 붓을 잡으면 붓글씨를 쓸 수 있다. 그대 또한 서재에 혼자 앉아 또 다른 내면의 자아와 대화를 나누면서 붓질을 즐길 수 있다. 번잡한 세상일수록 지고한 붓과 지순한 종이와 더불어 지내다 보면 생각은 어느새 가을 물처럼 맑아진다. 붓끝에서 쏟아질 듯 질펀한 먹물을 후려치거나 마침내 남은 마지막 한방울까지 짜내고 우려내어 화선지에 불이 붙을 정도로 붓털을 짓이기다 보면 어느새 가슴은 미묘한 감흥과 뿌듯함으로 흥건히 젖는다. 붓질, 이 작업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생활의 리듬이요 사고의 향기이다. 붓맛, 맛보면 맛볼수록 입안에 침이 돌고 코끝에는 신비한 묵향이 감돈다. 손끝을 통하여 전신에 번지는 짜릿한 흥분, 흑백과 농담, 강약과 완급이 빚어내는 점과 획의 하모니, 이런 서예야말로 문인묵객은 물론 교양 있는 현대인이 평생 누릴 수 있는 으뜸 취미요 품위하고 할 수 있다. 아니 현대 메카니즘 시대에 아련한 선비 추억을 눈앞의 현실로 일깨워 주는 최고의 여가 선용이다.

서예를 즐기기에 이상적인 상태로 구생법(九生法)이라는 것이 있다. 생지(生紙), 생필(生筆), 생연(生硯), 생묵(生墨), 생수(生水), 생수(生手), 생목(生目), 생신(生神) 생경(生景)의 아홉 가지를 가리킨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종이, 끝이 부드러우면서도 허리의 탄력을 잃지 않는 붓, 푸근하면서도 깐깐함을 잃지 않는 벼루, 빛깔이 맑으면서도 윤기가 흐르는 먹, 새벽에 새로 기른 맑고 깨끗한 생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 손, 붓털의 섬세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 눈, 고요하면서도 여유 있는 정신, 기상이 넘치는 화창한 날씨 등 최적의 서사(書寫) 조건을 가리키는데 이 여건이 구비되었을 때, 득의작(得意作)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조자룡이무딘칼을탓하던가? 연장타령, 기분타령, 날씨타령……. 반주 없어 노래 못할까. 꿩 잡는 것이 매이다. 촉촉한 가을날 차 한잔의 여유를 갖고 누군가와 따스한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현실 속에서 존경하는 그 누구와 상면하여 정담을 나누거나 덕담을 얻는 일도 좋겠으나, 독서를 통한 고인과의 대화 또한 시공적(時空的), 물질적 제약 없이 즐길 수 있는 보람이다. 서예를 배로 즐기는 선행 조건이 바로 독서이다. 문자를 매개로 하여 뿜어내는 명사들의 메시지를 접하다가 보면 더러는 밑줄을 그어 오랫동안 가슴깊이 새겨 두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럴 때 붓을 붙(붓)잡고 글씨를 써 보자. 먹빛은 천년 간다고 하였것다 당장 지필묵(紙筆墨)을 잡아보면 어느덧 공해 속의 자신은 잊어버리고 신선이 된 기분을 만끽할 것이다. 혼자서도 흠뻑 빠질 수 있는 취미활동 중에 이보다 멋스러운 것이 어디 있을까? '글씨'란 '그'으면서 '씨'를 뿌리는 일이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환언하면 글씨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가치있는 정서를, 붓이란 파종 도구를 이용하여, 화선지라는 마음의 밭에 먹물이라는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그 씨앗이 영글어 작품이 된다. 그 씨앗이 모두 향기를 지닌 먹꽃으로 피어나는 것까지는 좋으나, 어느 순간 대부분의 먹꽃은 떨어져 버리고, 표구라는 포장을 해서 남에게 선보일 만한 열매를 찾기란 쉽지 않다. 김이란 성을 가진 사람의 아들딸은 김이란 분의 씨앗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반드시 김씨만이 될 수 있다. 이씨나 박씨 등 모든 성이 마찬가지이다. 이는 살구씨를 심으면 살구란 열매만 맺고, 그 속에서는 살구씨만 얻을 수 있는 이치와 같다. 글씨도 씨의 일종이다. 말씨, 솜씨, 마음씨, 맵씨(국어사전에는 '맵시'를 표준어로 잡고 있으나 필자의 생각에는 맵씨가 옳다고 생각한다) 등이 모두 씨의 일종이다. 씨는 죽어서 새 생명을 잉태하고 또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 속의 씨는 또 다시 하나의 씨가 되어 뿌려지고 거두어지기를 반복한다. 글씨란 씨도 종이에 떨어져 썩어야만 한다. 썩어야 열매 맺고 그 열매는 다른 감상자의 입맛을 돋울 수 있다. 그 글씨 열매에서 배어 나오는 묵향은 내용과 어울려 시공을 초월하여 메아리쳐서 대를 잇게 된다. 신라의 김생도 고려의 이암도 다 시간 속으로 사라져 갔지만, 그들이 붓으로 요리한 손맛은 아직도 입맛을 돋우고 삶의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21세기, 정보와 문화의 세기, 이제 세상은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변하고 있다. 컴퓨터 혁명으로 말미암아 물질적 소유의 시대에서 정신적 접속의 시대로 급변하고 있다. 누구든 접속을 통하여 정보의 바다 속에서 끊임없이 헤엄칠 수 있다. 문화의 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 접속을 통하여 지구 저편의 예술 작품도 안방에서 쉬이 접하고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인터넷을 통하여 쉽게 남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도 일락(一樂)이라 하겠으나, 스스로 먹 갈고 붓 잡아서 자기의 생각을 종이 위에 우려내 보자. 못난 글씨면 어떠랴. 진실하고 착한 마음만 묻어 있다면 그만인 것을. 기계의 편리함으로 인하여 사라져가는 손의 감각을 되찾자. 각박한 세상일수록 한묵유희(翰墨遊戱)를 통하여 심성을 기르고 멋진 취미의 소유자가 되어 보자. 서예를 통한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가 되어 마음껏 폼을 잡아보자꾸나. 화선지는 대지요, 먹물은 빗줄기이다. 화선지는 늘 건조한 상태에서 빗줄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갈증에 허덕이는 화선지의 절규가 들린다. 비 내려야지, 비 내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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