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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5 - 경인년 백호(白虎)여 - 제6호 -

경인년 백호(白虎)

 

도정 권상호

 

  2009년이 가고 2010년이 오고 있다. 기축년(己丑年)이 가고 경인년(庚寅年)이 오고 있다.

소가 저만치 걸어가고 호랑이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새해는 호랑이 중에도 백호(白虎), 곧 흰 호랑이띠 해이다. 그래서 그런지 연말에는 순백의 눈이 자주 내린다.

  왜 경인년을 특별히 백호의 해라고 하는가. 왜 경인년에 태어나는 아이는 흰 호랑이띠에 해당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인년의 경()이 색깔로는 백()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갑오(甲午), 병오(丙午), 무오(戊午), 경오(庚午), 임오(壬午)의 다섯 가지 중에 경오(庚午)만이 백말 띠인 것이다. 말띠 중에 서로 백말띠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많기에 넋두리를 편다.

  십간(十干)은 각기 방위와 색깔이 있다. 갑을(甲乙)은 동쪽 청색, 병정(丙丁)은 남쪽 적색, 무기(戊己)는 중앙 황색, 경신(庚辛)은 서방 백색, 임계(壬癸)는 북방 흑색이다. 따라서 경()은 백색, ()은 호랑이에 해당하므로 경인년(庚寅年)은 흰 호랑이띠에 해당한다. 60년간에 호랑이띠는 다섯 번 오지만 경인년 호랑이는 딱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 경인년에 태어난 사람이 다시 경인년을 맞이하니 1950년생은 2010년에 환갑을 맞이하는 것이다.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까치와 호랑이 그림을 호작도(虎鵲圖)라고 하는데, 이것도 냉정히 이야기하면 표작도(豹鵲圖)라고 해야 한다. 까치와 함께 항상 등장하는 짐승은 얼룩무늬의 호랑이가 아니라 점박이의 표범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표범의 모양이 서서히 호랑이로 둔갑하고 있었다. 액막이 역할만으로 본다면 호랑이든 표범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표범이 맞다는 근거에는 한자의 중국 발음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표범에 해당하는 한자는 표()자인데, 이 글자의 중국 발음은 /bào/로서 알린다는 뜻의 보()자와 발음이 같다. 따라서 표()는 표범으로 볼 것이 아니라 ‘알리다’의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까치는 기쁨을 나타내는 희조(喜鳥)로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집안에 기쁜 소식만이 전해지기를 기다리는 염원이 담겨 있다.

  문자학적으로 보면 경()자는 추수한 알곡을 집(广:집 엄)에 손(又의 전서 형태)으로 들여놓는() 모양이다. 참고로 전서에서의 입()자는 인()자처럼 쓰였다. 내친김에 인()자 공부도 해 볼까나. ()자의 전서 형태는 사람()이 집() 안에서 두 손을 맞잡고 굳게 약속()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본뜻은 '삼가다'이다. 달로는 음력으로 정월을 가리키는데, 정월이 바로 일 년을 설계하고, 차례를 지내며, 삼가고 근신하는 달이 아닌가. 인시(寅時)는 하루 중에 새벽 3~5시를 가리킨다. 최고의 검을 사인검(四寅劍)이라 하는데,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 곧 인() 자가 네 번 겹쳐지는 시간에 맞추어 쇳물을 부어 만든 보검을 말한다. 칼은 어진 정원사나 의사처럼 잘 쓰면 생명을 구할 수 있지만 잘못 다루면 생명을 앗아간다.

  그런데 60년 전의 경인년을 생각하니 6·25전쟁이 일어났던 끔찍한 해이다. 그 와중에 태어나서 용케도 살아오며 이 나라를 일궈내고 드디어 회갑을 맞이하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임들은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10년 전을 돌이켜 보면, 새천년이 온다고 온 세상이 떠들썩했다. 온통 화두는 숨 막히는 뉴밀레니엄이었다. 지구의 부가가치가 한껏 업그레이드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환경과 온난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오리려 금융위기로 심리적 불안감만 가중될 뿐이었다. 80년대에 인터넷이 등장하고 공산주의가 물러났으며, 90년대에는 세계화를 화두로 보냈다. 우리는 너무 빨리 달려오다가 보니 귀중한 것 하나를 빠뜨리고 왔다. 마음이다. 온 길 돌아가서라도 마음을 챙기고 차분히 살아나가자. 저탄소 녹색성장은 몰라도 저고민 사색성장은 필요하다.

  세상은 변화하는 관점에서 보면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변화하지 않는 관점에서 보면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시간과 공간은 늘 그렇게 있을 뿐인데, 우리의 생각이 변할 뿐이다. 2010년에는 지난 일을 들추어내어 걱정하지 말고, 미래의 일을 앞당겨서 걱정하지도 말자. 내 마음의 수면이 흔들릴 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비춰볼 수 없다. 호랑이처럼 당당하게 느린 박자로 삶의 터전을 지키며 기지개 켜는 정도로 운동하고, 배가 고파 먹이 사냥을 할 때에만 민첩하게 움직이자.

  아마 중학교 시절로 기억된다. 국어 교과서에서 읽은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란 소설이 떠오른다. 주인공 어니스트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로부터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인이 이 마을에 태어나리란 전설을 들으며 자란다. 어니스트는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간다. 평생 재물만을 모은 인색한 개더 골드, 평생 전쟁터에서 살며 장엄함은 보이지만 온화함이 없는 장군 올드 블러드 앤 썬더, 정치적으로 성공했지만 교만하고 세 치의 혀만을 믿는 올드 스토니 피스, 큰 바위 얼굴을 닮았지만 실천이 없는 시인이 차례로 이 마을에 등장한다. 사람들은 특히 시인에게서 매력을 느끼지만, 그는 스스로 자기가 큰 바위 얼굴을 닮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이 네 사람에 대하여 어니스트는 결국 실망하고 만다.

  전설 속의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어니스트가 평소대로 설교하고 있던 어느 날, 시인이 소리친다. “어니스트다! 어니스트야. 보라, 그가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 마을 사람들이 기다려 온 큰 바위의 얼굴을 닮은 사람은 바로 그들과 함께 살아온 어니스트였던 것이다.

  올겨울에는 눈 덮인 삼각산이 유난히 정겹게 다가온다. 서울의 동북지역에서 삼각산의 능선을 보면 김구 선생이 누워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에서는 경인년 첫 햇살이 저 백운대 위에 처음으로 비치리라.

  듬직한 삼각산을 자주 바라보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삼각산을 닮게 될지도 모른다. 삼각산 눈 속에서 백호가 나오길 기도하자. 이 민족과 인류의 모든 액을 막아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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