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12 - 도검설(刀劍說)

도검설(刀劍說)

 

 도정 권상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로댕 조각전신의 열리고 있다. “바위를 보면 이미 속에 작품이 숨어 있었다.” 라는 멋진 고백 때문에 개막식 날에 전시장을 찾았다. 맥박의 진동과 숨소리를 느끼는 듯한 꿈틀거리는 근육에서 로댕의 칼과 , 그리고 망치 소리가 들린다. 

  칼은 요리를 하기도 하지만, 훌륭한 예술 작품을 빚기도 하는구나. 걸음 나아가면 칼은 수술을 통하여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흉기로 변하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칼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득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칼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서 결과는 판이해진다는 점이다. 같은 물을 마시지만,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드는 이치와 같다. 원자력과 컴퓨터 기술도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무서운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전각(篆刻) 취미로 하는 나에게 있어서 칼은 주로 돌을 새기는 도구이다. 칼의 여러 기능 중에서 새김질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다. 새김질, 이는 인간의 본능에 해당된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났다는 징표로 뭔가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본성이 있다. 크게 보면 종족 보존의 욕구도 그러한 본성의 하나이고, 세계문화유산 역시 동물이 배설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듯 세계 곳곳에 인간의 영역을 큼지막하게 나타내 보인 것이다. 부드러운 나무보다 단단한 위에 새기는 일이 힘들지만, 돌은 반영구적이고 수정할 없는 분명한 표현 행위이기 때문에 더욱 엄숙하고 신성한 본능이라 있다.

  인류 문화의 전이(轉移) 양상을 보면 칼로 새기는 문화에서 붓으로 쓰는 문화로, 붓으로 쓰는 문화에서 다시 인쇄 문화, 전자 문화로 발전해 왔다. 전자 문화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 실리콘 등의 반도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컴퓨터는 양자 역학의 기본 원리를 이용한 양자 컴퓨터가 꿈의 컴퓨터로 등장할 전망이다.

  하지만, 원시적인 새김질도 예술이란 이름으로 지금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며, 인류의 역사와 궤를 영원히 같이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옛날의 종이는 돌이요, 오늘날의 돌은 종이인 셈이다. 키보드와 마우스로도 글씨 쓰고 그림 그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키보드와 마우스 역시 다른 형태의 칼이나 붓이라 있다.

  일찍이 고유섭 선생은 돌의 문화는 '쌓는 문명'에서 '새기는 문화' 전개되었다고 전제하고, 쌓는 문명에서 새기는 문화로의 전개는 석기 문명 진전의 필연상이라 했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돌을 쌓는 문명이든 돌에 새기는 문화이든 따로 존재하지 않고 공존하며 이어져 왔다고 본다. 지금도 건축이나 토목 또는 조각 등의 작업에서 쌓는 문명과 새기는 문화는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인류가 존속하는 가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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