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1- 시간, 공간, 인간 = 삼간(三間) - 제2호신문-

<한국문학신문> 라이브 서예 카페

 

시간, 공간, 인간 = 삼간(三間)

 

도정 권상호

  초대장을 받아보면 반드시 일시와 장소가 씌어져 있다. 이 둘 중에 어느 하나만 없어도 우리는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순우리말로 때와 곳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때와 곳이 없는 인간의 약속은 없다. 제법 분위기 있는 한 친구는 ‘좋은날’, ‘좋은곳’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의 좌표가 설정되어야 분명한 약속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 공간이라고 할 때의 ‘간()’자를 ‘인간(人間)’에게도 왜 붙였을까. 시간과 공간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물상도 마찬가지지만 인간 역시 시간과 공간의 굴레를 벗어나서는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시간과 공간, 곧 시공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유사 이래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축지법(縮地法)에 대한 염원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전화, 텔레비전, 자동차, 비행기는 물론 인터넷, 인공위성 등도 축지법 실현을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시공을 극복하고자 노력해 보았자, 우리의 삶은 영원한 시간 속의 무지 짧은 인생이요, 무한한 공간 속의 너무나 좁은 육신에 불과하다. 이를 어찌할 거나! 영원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에 비하면 인간의 존재는 너무나 보잘것없다. 하이데거가 아니라도 실존(實存)의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사유하지 않을 수 없다.

  45억년의 지구 역사를 하루 24시간에 비유하면 인간은 자정 1 17초 전에 세상에 나타났고, 이 중 호모사피엔스 시대는 불과 3초밖에 되지 않는다니 참으로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역사 시대는 1초도 안 되는 너무나 짧은 시간의 기록이라니 이 글을 쓰는 자체도 무의미한 짓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인류는 예술(藝術)과 종교(宗敎)라는 이름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고 본다. 예술은 가시적인 활동으로 시공을 극복하게 해 주고, 종교는 불가시적인 영적인 것으로 시공의 무한을 제공한다. 내가 쓴 시와 글씨가 비록 하찮은 예술품일지라도 내 손을 떠나 먼 곳에 존재할 수도 있고, 죽은 뒤에도 세상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 내 육신의 또 다른 모습이 DNA암호를 갖고 자손에게 남아있듯이 내 영혼의 또 다른 모습은 예술이란 이름으로 길이 세상에 전해지는 것이다. 나는 시공을 초월하게 해 주는 나의 예술, 서예를 몸서리치게 사랑한다. 먹을 믿고 따르는 걸 보니 신묵교(信墨敎) 교주라도 된 느낌이다.

  오늘은 시간, 공간, 인간을 삼간(三間)이라 명명하고 붓으로 시공인간(時空人間) 네 글자를 옛 글씨체로 써 보았다.

  낯선 시() 자는 시()의 갑골문 형태이다. () 자의 윗부분 지()는 지()의 고형으로 ‘간다’는 뜻이고, 아랫부분은 일()로 태양을 나타낸다. 곧 시간이란 개념은 ‘태양의 운행’에서 비롯되었는데, 나중에 ‘헤아린다.’는 뜻의 촌() 자가 덧붙어 시()가 탄생한 것이다. ‘태양의 운행을 헤아린다.’는 뜻이다.

  () 자의 윗부분은 ‘굴’을 뜻하는 혈()이고, 아랫부분은 이 글자의 음을 표시하는 공()자이다. 공간이란 전후좌우의 넓이에 높이를 더한 3차원의 개념이다. x, y 평면좌표에 h라는 높이좌표를 더하면 완벽한 공간 개념이 선다. 광년을 따지지 않더라도 정녕 무한한 공간이다.

  ()의 갑골문 형태를 보면 팔을 드리우고 직립하고 있는 사람의 측면 모습이다. 인간은 대지를 굳게 딛고 서서 머리는 하늘로 두고, 팔의 자유를 얻는 순간부터 문명의 급속한 발달을 가져왔다.

  마지막으로 간()의 원형은 대문 위에 뜬 달의 모습인데, 실은 대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달빛의 의미에서 ‘틈새’, 곧 ‘사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인간이란 시간과 공간에 비하면 게임이 안 될 정도로 생은 짧고 몸은 작다. 하지만 생각하는 동물, 호모사피엔스이다. 생각 끝에 시간 공간 인간을 함께 삼간(三間)이라 명명한다. 인간이여, 그대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이라면, 그 시간 즐겁고, 그 공간 아름답게 꾸려 나가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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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부동산과 동산


不動産은 따지고 보면 결국 不動으로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진정 動産이지요.
황금집이든 토담집이든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집 자체가 아니라
그 집이 만들어 준
공간일 뿐입니다.
내 자신을 업그레이드 할 때,
진정 내 집값과 내 마을,
나아가 우리나라의 브랜드 가치도
올라갈 것입니다.
권상호
天地玄黃(천지현황) 宇宙洪荒(우주홍황)
: 하늘은 까마득하며 땅은 누런데 우주(시공간)는 넓고도 거칠다.


◐음(音)과 훈(訓) 天(하늘 천) 地(따 지) 玄(검을 현) 黃(누루 황) 宇(집 우)  宙(집 주) 洪(넓을 홍) 荒(거칠 황)
 



만물의 영장인 사람(人)이 머리를 들어 하늘(天)을 우러러봄에 끝없이 아득하여 가물가물하므로 보이지 않는 검은 색(玄色)에다 하늘을 견주고, 허리를 굽혀 땅(地)을 살펴봄에 가을철 들녘에 오곡백과가 누렇게 무르익어 물결치므로 누런 색(黃色)에다 땅을 비겨 표현했습니다. 저 위 하늘에 대해서는 높고 먼 고원(高遠)함을 강조하고 이 아래의 땅에 대해서는 넓고 두텁게 감싸는 광후(廣厚)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천지상하에 존재하는 만물은 또 밖을 알 수 없는 무한한 공간의 집(宇)과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무궁한 시간의 집(宙)을 생활무대로 하고 있으므로, 무궁무한하게 펼쳐지는 우주시공(宇宙時空)을 끝없이 넓고(洪) 아득한 태초의 거칠음(荒)으로써 표현하였습니다.


[참조] 태극(太極)
천지만물이 열리기 이전의 우주의 공허한 혼돈상태를 태극(太極)이라고 합니다. 시간적으로는 ‘처음 태(太)’와 ‘끝 극(極)’ 즉 태초(太初)에서 궁극(窮極)에 이르기까지를 말하며, 공간적으로는 ‘클 태(太)’와 ‘덩어리 극(極)’ 즉 삼라만상을 두루 감싸는 가장 큰 덩어리로써 끝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태극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끝이 없기 때문에 무극(無極)이라고도 합니다. 무궁무한한 이 태극에 대해서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고 표현하는데, ‘끝이 없기에 가장 크다’는 뜻입니다.
  우주시공과 천지만물을 생성화육해내는 근원바탕은 태극입니다. 하나의 태극으로 시작했건만 어디에서 시작한지를 모르고 다만 한 기운이 유행(流行)할 뿐인데, 이 유행하는 한 기운이 일정한 상태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동(動)하여 움직이고 때로는 정(靜)하여 고요히 움츠리니, 동하는 이치를 양(陽−)이라 이름하고 정하는 이치를 음(陰󰁌)이라 일컫습니다.
  태극의 가볍고 맑은 양의 기운이 움직여 위로 올라가 하늘(天)이 열리고 무겁고 탁한 음의 기운이 고요히 아래로 뭉치어 땅(地)이 열립니다. 이렇게 태극의 두 기운을 대표하는 천지음양의 조화에 의해 만물(人으로 대표)이 생성됩니다. 천지는 삼라만상을 생성하는 근본이므로 만물의 부모에 해당하고 우주는 모든 만물의 생활무대인 무궁광대한 시간과 공간의 집을 가리키므로 천자문의 제일 첫머리에 천지와 우주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됩니다. 주역의 ‘천현이지황(天玄而地黃)’을 따다가 ‘천지현황’으로 천자의 맨 처음에 놓았으므로 한문공부 기초 입문서인 천자문은 시작부터 만학의 제왕으로서 모든 학문의 근본이고 귀결처가 되는 주역을 공부하는 셈입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소우주라고 하는 이유도 만물 중에 유일하게 오행을 골고루 갖춰 타고난 형질이 태극의 본원과 가장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신체에 있어서도 상부의 머리는 검은 색이고 또한 둥글며 스스로 생각하고 사물을 판단하므로 하늘에 짝하고, 하부의 몸은 누런색으로서(황인종인 동양인을 기준) 오장육부가 활동하고 머리에서 생각하는 바대로 사지육신이 움직이므로 땅에 짝합니다. 최초 의복도 상의는 검정 윗도리(玄衣), 하의는 누런 아랫도리(黃裳)였다고 합니다. 검정과 누렁이 섞이면 풀처럼 푸른빛이 나오므로 천지에 의해 창조된 만물을 억조창생(億兆蒼生)이라 일컫고 처음 시작하는 때를 초창기(草創期)라고 부릅니다.

◎ 출전(出典)
  : 上六은 龍戰于野하니 其血이 玄黃이로다(周易 坤卦文言傳)


  주역의 괘(卦)들은 양효(━)와 음효(--) 즉 음양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모두 양인 괘는 하늘인 건(乾)괘이고 모두가 음인 괘는 땅인 곤(坤)괘입니다. 땅의 이치를 설명한 곤괘(坤卦)의 마지막 자리인 상육(上六)은 음(陰)이 다 커져 마침내 극성한 자리에까지 이른 상태이므로, 암컷이 다 자라서 암내를 풍기며 수컷을 불러들이는 음양의 교전, 다시 말해 암수교합이 있는 때입니다. 공자는 이를 천지의 두 음양기운이 섞여 교잡하는(天地之雜) 것으로 정의하고 이를 ‘天玄而地黃’ 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字義]

天(하늘 천): 大(큰 대)部
一(한 일)과 大(큰 대) 大를 세상에서 제일 큰 존재로서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형상(머리와 팔다리)으로 보고 그 위에 一을 하늘로 보아, 사람 머리위에 있는 하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二(두 이)와 人(사람 인) 으로 보면 위의 한 획은 하늘(上天)을, 아래의 한 획은 땅(下地)을, 중간의 人은 사람을 말하고 있다. 이는 하늘이 우주 만물을 다 포용하여 天地人 三才(삼재)를 거느리는 주체라는 뜻이 된다. 天覆(하늘 천, 덮을 부)라는 말과 같이 위의 하늘이 아래의 땅과 중간의 사람을 덮어 모두 포용함을 뜻한다.
* 一: 유일하다, 첫 번째, 한 개, 전체(하나)


地(따 지): 土(흙 토)部
土(흙 토)와 也(이끼 야) 모든 생명의 모태(也)는 흙(土)으로 된 땅이라는 뜻이다. 土(二+丨)는 땅속(밑의 一)에서 흙(위의 一)을 뚫고 (丨: 뚫을 곤) 초목이 움터 나옴을, 也는 주맥(丨)을 중심으로 좌우(좌청룡과 우백호)로 에워싼 땅의 형세로서 본래는 아기가 자라는 여성의 모태와 출구를 본뜬 글자이다. 땅은 흙으로 다 뭉쳐 있으므로 더 말할 나위없이 ‘土也’라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 天地는 밖으로 보이는 형상적 의미를 말하고 乾坤은 내적인 性情을 가리키는 추상적 의미로 쓰이니, 하늘과 땅의 형이하적인 표현은 天地이고 형이상적인 표현은 乾坤이 된다.


玄(검을 현): 玄部
亠(머리 두, 돼지해머리두)와 幺(작을 요) 본래는 가물거림을 뜻한다.  검은 실을 묶은 모양을 본떠 ‘검은 실’을 나타내며 깊다는 뜻으로 쓰인다. 실(幺)이 가늘어 하늘거리듯  하늘(亠: 뚜껑의 상으로 천체의 덮개 )이 아득하여 가물가물하므로 볼 수 없는 검은 빛으로 쓰이게 되었다.
* 주역 64괘 가운데에 玄과 직접 관계된 대표적 글자로는 畜(쌓을 축, 그칠 축)을 들 수 있는데  小畜괘와 大畜괘가 있다. 모두 하늘의 양기운(玄)이 아래 땅으로 내려와 쌓이는 상이며, 바람이 위에서 불면 흔들려 물건을 높이 쌓을 수 없으므로 小畜이고 산과 같이 요지부동으로 그쳐있으면 물건을 높이 쌓을 수 있으므로 大畜이 되는 것이다. 畜은 본래 하늘밭(天玄之田)을 뜻한다.


黃(누루 황): 黃部
廿(스물 입)+ 一(한 일)+ 由(말이암을 유)+ 八(여덟 팔) 볏단으로 한데 묶어 노적가리가 쌓인 들판을 뜻한다.
초두(艹)밑에 작은 一을 받쳐놓은 것은 곧 볏단을 묶어놓은 형상으로 결실물을 상징하고 그 아래 땅을 나타내는 큰 一과 밭 주위에서 생명이 움터나온다는 由와 음양의 두 씨앗을 뜻하는 八을 합친 모습이다. 즉 八은 음양의 씨앗, 由는 만물의 싹틈을, 一은 지표를, 廿은 볏단을 묶은 것으로 (결실물), 봄에 종자가 싹트고 여름에 자란 곡식을 가을에 이르러 마침내 수확한다는 뜻이다.


宇(집 우): 宀(집 면, 갓머리)部
宀(집 면)과 于(어조사 우, 감탄할 우, 갈 우) 육합(六合) 즉 상하와 사방으로 구성된 공간을 이른다. 于는 땅(二: 지표와 땅속)을 파서 땅 속의 물건을 갈고리(亅:갈고리 궐)로 끌어냄을 뜻하며 물건이 감추어진 특정한 곳이라는 뜻에서 주로 장소를 지칭하는 어조사(∼에, ∼에서)로 쓰인다.


宙(집 주): 宀(집 면, 갓머리)部
宀(집 면)과 由(말미암을 유) 과거, 현재, 미래인 삼세(三世) 즉 지나간 옛날과 닥쳐오는 앞날(往古來今)의 시간을 뜻한다. 由는 밭(田)에서 싹이 나오듯(丨) 생명이 유래되고 존재하는 사물에는 반드시 말미암은 까닭(연유)이 있고 과정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과거는 현재를 낳고 현재는 미래를 낳는 것이다.


洪(넓을 홍): 氵(삼수변, 水)部
氵(물 수)와 共(같이 공) 여러 갈래의 물이 한군데로 같이 모여들어 큰물이 됨을 말한다. 나아가 홍수가 일어나면 모든 이들이 하나로 뭉쳐서 제방을 쌓듯이 힘을 하나로 모은다는 뜻이다.
共(두 손 맞잡을 공)은 본래 두 손을 공손히 하나로 모은 모양으로 중간 一은 두 손을 하나로 모음을, 위의 卄(스물 입)과 아래의 八(여덟 팔)은 열 손가락의 28마디를 나타낸다. 선인들은 하늘의 별자리도 이와 같이 공동(共同)일체를 이룬다고 보았다. 북극성 하나를 중심으로 사방 28수(宿)가 돌아가는 천체형상을 본뜬 윷판의 29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 洪은 서경 홍범(洪範)과 깊은 관련이 있다
권상호
우주 탄생으로부터 원자의 세계와 지구의 역사를 보면 갑자기 삶이 시시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주(宇宙)라고 할 때, ‘宇’ 자는 공간적으로 끝이 없음을, ‘宙’ 자는 시간적으로 끝이 없음을 나타낸다. 우(宇) 속의 우(于) 자가 장소를 지칭하고, 주(宙) 속의 유(由)자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을 나타내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두 글자의 공통점은 움집 모양을 한 ‘宀(집 면)’에 있다. 곧 무한한 시공을 안고 있는 우주가 우리를 집처럼 감싸주어 위험으로부터 ‘면’하게 해 주기 때문에 ‘면’이라 발음하는 것이다. 우주 덕분에 그나마 우리는 큰 어려움을 면하고 일생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청화
참으로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이런 강의를 내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황송할까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 감솨함다 -
권상호
<나의 삶 나의 서예>
삼간(三間)
                                                  도정 권상호

* 惜寸陰
  영원한 시간 속의 짧은 인생, 무한한 공간 속의 좁은 육신.
  시간, 공간, 인간을 삼간(三間)이라 이름붙이고 싶다. 시간과 공간 앞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한 사람도 없다. 시간과 공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삶이기 때문에 시간, 공간의 간(間)자를 붙여 ‘인간(人間)’이라고 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 곧 시공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축지법(縮地法)에 대한 꿈을 낳았다. 전화, 텔레비전, 인터넷은 물론 자동차도 따지고 보면 축지법 실현을 위한 인간 몸부림의 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

  人間(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時間(시간)과 空間(공간)의 개념과 관련하여 인간이란 명칭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시간, 공간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間’자를 쓰고 있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로서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間자를 붙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시간과 공간 앞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한 사람도 없고, 또 시간과 공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삶이 인간의 삶이기 때문에 시간, 공간이라고 할 때의 間자를 붙여 ‘人間’이라고 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 곧 시공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인류문화의 발달을 낳았다. 라디오, 텔레비전, 전화, 인터넷 등이 모두 시간과 공간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서 발명한 것이다. 인간은 또한 사라질지도 모를 소중한 사상이나 이론을 먼 곳까지, 후세에까지 전하기 위하여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문자를 통하여, 유럽 사람과 생각을 나누고, 추사 선생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문자는 시간과 공간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시간, 공간에다 인간을 합쳐 三間(삼간)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붙여 본다.

  시간을 돈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다. 누구는 시간을 벌기도 하고, 누구는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알뜰한 사람은 시간을 쪼개어 쓰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시간을 통째로 던져 버린다. 누구에게나 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고 싶어 한다. 하는 일이 몹시 바삐 진행되거나 어떤 일에 몰두하여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알지 못할 때는 꼭 시간을 도둑질당한 기분이다. 재미없으면 시간이 더디게 지나가고, 재미있으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니 아이러니컬하다. 선택은 자유다. 

* 시간 [時間, time] 시각과 시각 사이의 간격 또는 그 단위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길이, 질량과 같이 다른 물리량을 정하는 기본단위이다. 물리적 시간을 정하기 위해 현재는 원자시계등을 이용한다. ~
한편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모든 현상의 추이시간(推移時間)은 그 현상이 놓여 있는 공간의 상태(중력장의 영향)에 지배되고, 관측자에 대한 상대운동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여러 실험에서 확인되고 있다. 즉, 시간과 3차원 공간은 서로 독립적이 아니라 4차원 시공간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4차원 시공간의 회전을 로런츠변환이라 하는데, 이 변환에서는 시간좌표와 공간좌표가 대등한 변환을 받는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보편성 •균일성 •객관성을 갖춘 절대적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대론적 영향은 일상의 세계에서는 너무 작아 나타나지 않지만 원자시계의 정확도가 현재보다 더 높아지면 그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게 되어 시간의 단위를 정의하는 데 문제가 야기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지구중력장의 영향은 고도차 1 km에 대하여 시간 차가 3×10 -13 초에 이른다. 한편, 심리적 시간과 생리적 시간은 물리적 시간과 달라서 개인의 생리조건이나 경험의 질 및 양에 좌우되는 주관적 시간이다. 예를 들면, 같은 길이의 물리적 시간일지라도 유년기의 생리적 변화는 장년기 •노년기의 변화보다 그 정도가 심하다. 또 장년기를 지나면 세월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고, 강렬한 경험이 많이 쌓이면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등 심리적 및 생리적 시간은 보편적 •물리적 시간에 대하여 주관성이 강한 개인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 (위키백과) 시간(時間, time)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이다.
시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것은 오랫동안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시간의 의미에 대한 여러 갈래의 폭넓은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시간의 정의를 제공하는 것은 어렵다. 이 문서는 시간과 관련된 주요 철학적, 과학적 쟁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시간의 측정에 관심을 기울였고 천문학을 통해 동기가 부여되었다. 시간은 또한 경제적 가치를 지님으로써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다.

시간은 작가, 화가와 철학자들에게도 오랫동안 중요한 테마였다. 시간의 단위는 사건들 사이의 간격과 그 지속 기간에 대한 양으로 생각되어 왔다.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과 하늘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태양의 육안 운동, 달이 차고 기우는 변화, 진자의 진동처럼, 명백하게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물체들을 시간의 단위에 대한 표준으로 오랫동안 사용하여 왔다.

* 시간지각 [時間知覺, time perception] 시간의 경과 또는 시간의 길이를 물리적인 계측수단에 의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파악하는 일.
(본문)
시간의 경과 또는 시간의 길이를 물리적인 계측수단에 의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파악하는 일. 시각에는 눈이 있고 청각에는 귀가 있는 것처럼 각 감각에는 각기 특유한 감각기관이 있으나 시간을 전문적으로 느끼는 감각기관은 없다. 시간의 지각은 많은 감각기관의 종합적인 작용에 의한다고 본다.

물리적으로는 시간을 세분(細分)할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어느 한도 이하의 시간차는 구별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단속적으로 2개의 광점(光點)이 점멸하거나 두 개의 음을 울리는 경우, 그 시간간격이 짧으면 동시라고 느끼게 되어 시간적 선후관계를 구별하지 못한다. 어느 한계 이상의 시간간격이 있어야 비로소 2개의 빛의 선후나 음의 선후를 느낄 수 있다. 이 한계시간을 시간역(時間閾:temporal limen)이라 한다.

시간역은 감각의 종류나 강도 등의 조건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청각으로는 1,000분의 2∼15초, 촉각으로는 1,000분의 30초, 시각으로는 1,000분의 50초 정도라고 한다. 시간역 이상의 시간간격으로 주어진 감각이라도 어느 한계 이하의 시간간격이면 동시에 의식하게 된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나 음악 등을 듣고 있을 때 지각하는 것은 개개의 소리가 아니라 말이나 문장, 멜로디 •리듬인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전후해서 느낀 감각이 동시에 의식되어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다. 어떤 때에 ABCD를 의식하게 되면 다음에는 BCDE를, 그 다음에는 CDEF가 의식에 떠오르는 것처럼 이전에 생겼던 감각은 차차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가해진다. 마치 시간의 흐름을 창문을 통해서 보고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동시에 파악되는 시간적 범위를 시간의 창문(time window)이라고도 한다. 또 이 범위가 심리적 현재를 형성한다고도 한다. 직접적인 기억이 성립되는 시간범위와도 대응한다고 생각된다. 시간의 장단을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퍽 불안정하여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게임에 열중하는 1시간과 지루한 연설을 듣는 1시간은 크게 다르다. 보통, 무엇에 열중하고 있을 때의 시간은 짧게 느껴진다. 그러나 후일에 과거의 경험을 회상할 때는 그와 반대로 층실했던 시간쪽이 길게 느껴진다. 또 체온을 인위적으로 올리거나 발열(發熱)했을 때 등의 시간은 평상시보다 길게 느껴지고, 흥분제가 투여되면 시간이 길게, 진정제가 투여되면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등의 심리적 효과도 알려져 있다.
 
* 생활시간 [生活時間] 하루의 생활을 시간적인 측면에서 본 생활시간 구조.
본문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① 소득을 얻기 위해 필요한 시간으로서 수입생활시간이라 하며, 노동시간 외에 휴식을 포함한 근무시간•부업시간 등으로 이루어진다.

② 본인의 생리적 재생산에 필요한 시간으로, 수면 외에 휴식•식사•목욕•용변 및 본인의 의료(醫療)를 위한 시간 등이 포함된다.

③ 가사적(家事的) 생활시간으로서 취사•재봉•청소 등의 가사작업시간 외에 다음 대(代)의 노동력 재생산인 육아를 위한 시간도 포함된다.

④ 사회적•문화적 생활시간 또는 여가•자유시간으로서, 교양•오락 등의 레저 외에 스포츠•교제•사회적 활동 등의 시간을 포함한다. 이 시간은 문화적 동물로서의 인간을 재생산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다.

생활시간 구조는 민족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서 변화•발전하는 것이지만 소득 수준에 의한 영향도 강하게 받는다. 소득의 상승에 수반하여 가사적 생활시간은 말할 것도 없이, 특히 사회적•문화적 생활시간의 내용은 크게 변화한다.

최근의 예로 보면, 가정의 전화(電化)로 가사작업 시간이 단축되고, 레저비용의 지출증가로 여행과 레크리에이션이 늘고, 텔레비전 시청시간이 격증되어 다른 교양오락 시간을 압축하고 있다.

한편 생활시간은 성(性)•연령•직업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여자는 가사적 생활시간이 많기 때문에 사회적•문화적 생활시간은 압박을 받고 있다. 연령이 젊은 층에서는 활동적인 레저가 많고,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은 적으나 연령이 많아짐에 따라 전자는 줄고, 후자는 증가한다. 직업이 없는 주부는 가사적 생활시간이 8시간에 가까우며, 남자의 노동시간에 거의 맞먹는다. 그러나 직업주부의 경우에는 수입생활시간에 가사적 생활시간이 가산되므로, 특히 사회적•문화적 생활시간이 압박을 받는다.

수입생활시간이 연장되면 사회적•문화적 생활시간이 압박받게 되는데, 수입생활시간이 11시간을 초과하면 수면시간마저 압박받기 시작한다.

* 시간예술 [時間藝術, Zeitkunst] 내용이 시간의 추이에 따라 전개될 수 있는 예술.
(본문)
예술 일반을 각종 예술로 분류할 때, 그 예술의 표상(表象)이 시간적 계기(繼起) 형식으로 나타나는가, 또는 한 공간에 같이 있는 공간적 병렬(竝列)형식으로 나타나는가에 따라, 시간예술(時間藝術)과 공간예술(空間藝術)로 나눈다.

시간예술은 문학•음악•연극 등을 포함하고, 공간예술은 회화•조각•건축 등을 포함한다. 이 분류법은 G.E.레싱이 《라오콘 Laokon》에서 문학과 회화의 표현상의 특질을 비교해서 연속적 또는 계기적(繼起的:nacheinander)인가, 병렬적(竝列的:nebeneinander)인가의 구별을 가려낸 것에서 시작하여 근대미학에 의하여 여러 이론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연속적 또는 계기적인 것은 음악연주와 같이 연주를 시작해서 계속 연주하다가 그것이 끝나면 없어져버리는 예술이다. 그것은 연극도 같다. 회화나 조각은 제작이 끝나면 오랜 시간 동안 작품이 남는 예술이며, 이는 일정한 공간에 그대로 남는다는 것을 뜻한다.

20세기의 예술학자 L.데스와르는 이것을 다시 운동과 계기의 예술, 정지(靜止)와 병렬의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여러 예술의 분류를 시도하였다. 시간예술과 공간예술이라고 하는 구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분류에서 발전한 뮤즈적 예술(Muse的 藝術)과, 조형예술이라고 하는 대립개념(對立槪念)과도 내용적으로 일치한다. 또 이것을 더 세분해서 시간예술(음악•문학), 공간예술(회화•조각•건축), 시간•공간예술(무용•연극)로 나누거나, 또는 E. 하르트만과 같이 시간예술(음악), 공간예술(회화•조각), 시간 공간 예술(무용•연극), 상상가상예술(想像假象藝術:문학)로 나누는 수도 있다.

J.폴켈트와 같이 시간직관(時間直觀)은 시각이나 청각에도 공통되므로, 시각예술은 공간적•시간적인 데 대해, 공간직관(空間直觀)은 시각의 영역에 고유의 것이다. 따라서 시간적이란 것과 공간적이란 것의 개념은 포괄 범위가 균등하지 않으므로, 분류 기준으로서는 적당하지 않다고 보는 설도 있다. 프랑스의 미학자(美學者) 수리오도 예술관조(藝術觀照)에서의 시간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공간예술이라는 개념에 반대하며, 조형예술에도 또한 관조하는 데에서는 역시 계기적 사실이 성립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H.L.베르그송, E.후설, M.하이데거 등의 철학적 시간론과 결부하여 근래 유력해지고 있지만, 예술 분류상에서 시간적이라는 개념은 음악 연주나 연극 상연처럼 표상형식(表象形式)이 작품 속에 확정된 계기적 질서를 갖는 것을 의미하며, 조형예술과 같이 관조에서 불확정한 계기적 질서가 불러일으키는 예술에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공간예술의 명칭이 타당하다고 보아도 좋다.

공간예술이라는 개념은 조형예술 일반 속에서도, 회화•조각처럼 상상가상(想像假象)이나 입체형상에 의한 표현적 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형상예술과 구별되고, 추상적인 공간 형성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공예 등에만 타당하다는 설도 있다. 어느 장르에도 물리적 공간과 가상의 공간성과의 관계는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는 것이므로, 이 견해는 공간의 개념을 너무 좁게 해석해버렸다고 할 것이다. 공간예술은 조형예술과 같은 것이며, 그리하여 2차원적인 평면형인 것으로는 회화•평면장식•그래픽 등이, 3차원적인 입체형인 것에는 조각•공예•건축, 그리고 기념비적 예술 등을 모두 포함시켜서 생각할 수 있다.
 
* <존재와 시간> Sein und Zeit.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존재론 저서.: 세계에는 무수한 존재자가 있다. 이중에서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갖는 존재자는 오직 현존재(인간)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존재에 대한 물음은 현존재의 분석으로부터 그 대답을 얻을 수 있다. 하이데거는 존재자인 현존재의 분석이 현존재의 존재론적 분석이며 그것이 곧 기초존재론이라고 말한다.

* 심리적 시간 [心理的時間, psychological time] 시계 등의 물리적인 계측시간에 의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체험하고 파악하는 시간 또는 그 경과.
 
본문
시계침이 가리키는 시간은 단지 한 점으로만 표시되는 현재에 불과하며 또한 무한의 연속이지만 심리적 시간은 동시성(同時性)의 인상을 기초로 한 어떤 연장(延長)을 가지고 있는 심리적 현재의 추이로 구성되어 있다. 거기에는 기억을 통하여 과거가, 그리고 기대에 의하여 미래가 파고 들어온다.

동식물뿐만이 아니라 인간에게서도 어떤 종류의 자율적인 계시기구(計時機構)가 구비되어 있다고 생각되며, 그것을 체내시계(내부시계)라고 부른다. 이러한 자율적인 계시기구와 나아가 내외사상(事象)의 변화를 인식하는 지각 등에 의한 직관적인 시간파악을 기반으로 하여 심리적인 시간이 성립된다고 생각된다.

특수한 신체적•생리적 조건하에서는 심리적 시간은 가끔 변조(變調)를 가져오기도 한다. 꿈속에서의 기묘한 시간경과나 어떤 종류의 약물의 투여 및 정신질환에 따르는 특이한 시간체험 등은 그 한 예일 것이다.
 
* 시간의 흐름
우리들이 사는 자연계는 세로•가로•높이의 방향으로 펼쳐지는 공간과, 과거에서 미래에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기초로 하여 성립되어 있다. 공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자연계란 상상할 수도 없다. 이 양자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모든 사고는 시작된다.

시간과 시각의 차이 
우리들은 시간과 시각이란 말을 애매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이 구별을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의 흐름을 종이 위에 그은 한 가닥의 직선에 비유해서 생각해보자. 이 직선의 한쪽 끝이 과거, 다른 한쪽이 미래에 해당한다고 볼 때 직선상에 찍힌 점의 위치를 나타내는 값이 시각(時刻;시간의 어느 한 시점)이며, 점과 점의 간격이 시간(時間;어떤 시각과 어떤 시각과의 사이)이다.
평균 항성시와 평균 태양시
우리들을 중심으로 한 하늘의 구면(球面)을 천구(天球)라고 이름짓고, 항성은 천구에 달라붙어 있다고 치자. 북극성을 중심으로 해서 별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은 천구가 약 1일에 1회전의 속도로 돌기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 현상을 천구의 일주 운동(日周運動)이라고 한다. 천체의 회전은 지구가 자전하는 현상이므로 이 회전축은 지구의 회전축, 즉 지구의 북극과 남극을 관통하는 직선으로, 이 직선이 천구와 교차되는 점을 각기 하늘의 북극, 하늘의 남극이라 한다. 따라서 이 점들은 천구가 회전하여도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들의 머리 위에 있는 천구상의 점, 즉 천정(天頂)과 하늘의 북극을 연결하는 큰 원을 자오선이라 부른다. 이 자오선은 시간과 함께 얼마만큼 회전하였는가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가 있다. 시각을 정의하려면, 천구상에 있는 천체가 자오선을 지나 얼마만큼 회전하였는가를 표시하면 된다. 우리들의 생활에 가장 관계가 깊은 것은 태양이므로 가능하다면 태양의 시각(時角=천체와 하늘의 북극을 연결하는 큰 원과 자오선 사이의 각)의 크기로 시각(時刻)을 나타낸다.

 세계시(世界時)와 협정 세계시
시각은 하늘을 보는 사람의 자오선을 기준으로 하여 측정하므로 보는 장소가 다르면 시각의 값이 달라진다. 영국의 그리니치를 통과하는 자오선으로 측정한 평균 태양시를 특히 세계시라고 부른다.~

 공전과 자전의 비율 

무량억겁 [無量億劫] 수유
삼간에 대한 이해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한쪽은 서예로 세상 보기

한쪽은 문자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