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3 - 노합생주(老蛤生珠) - 제4호 신문 -

노합생주(老蛤生珠)

 

 도정 권상호

  출근은 언제나 분초를 다툰다. 다툰다는 의미에서 출근전쟁이라고도 한다. 초겨울 출근길은 더욱 많은 신경전이 펼쳐진다. 피곤한 퇴근길에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가기 싫어 지상에 세워 차에는 성에가 끼어 앞뒤 분간이 어렵다. 집이 불암산 근처인지라 도심보다 많은 서리가 내린다. 문을 열고 앉으면 차가운 핸들 잡기가 꺼려진다. 그나마 분을 달리다 보면 공기는 이내 다사로워지고 차창 앞엔 아침 햇살에 비친 삼각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 산옹(山翁) 구름 모자 대신에 서설(瑞雪) 모자 썼구나. 간밤에 약간의 첫눈이 내렸나 보다. 눈이 내리니 눈부시다. 순간 빨강 신호등이다. 잠시 차내 거울에 비친 얼굴을 슬쩍 훔쳐본다. 머리 위에도 여지없이 눈이 제법 내렸다. 닮았구나. 인생의 계절도 초겨울로 접어드는가 보다.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외로움과 추위를 달래려는 어깨를 겨루며 다정하게 삼각을 이루고 있다. 상대적으로 외롭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아니야, 산은 셋이 아니야. 하나야. 반백의 늙은이가 길을 가다가 행장을 풀고 하늘을 쳐다보며 홀로 드러누워 쉬는 모습이야.

 

  늙어감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아마 털빛이 변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한자(늙은이 )’ 자는( )’ 자에(변할 )’ 자가 붙어 있는 모양이다. ‘자의’이 생략된 꼴이다. , 늙은이란 색깔이 변한 사람이다. , 머리카락의 빛깔이 변할까. 그것도 하필 하얗게? 초로의 백발은 한눈에 초겨울의첫눈에서 해답을 얻었다. 내린 산길은 조심조심 다녀야 하듯이, 머리카락이 희뿌연 사람을 만나면 부딪치지 말고 조심스레 피해 다니라는 비표(秘標)이다. 아니면 아예 바짝 붙어 되어 함께 걸어가 주든지. 낱되지 않는 머리카락은 백학처럼 고상하다. 비굴하게 늙은 노인보다 보기 싫은 것도 없지만, 백학처럼 고고하게 늙은 노인보다 아름다운 것도 없다.

 

  진정한  노인의 모습은 어떤가. 생각이 깊은 만큼 주름 골도 깊다. 근력이 줄어드는 만큼 머리숱도 줄어든다. 그러나 주름 속에는 켜켜이 지혜의 보석이 박혀 있다. ‘노합생주(老蛤生珠)’. 늙은 조개가 진주를 낳는다는 뜻이다. 새파란 조개, 젊은 조개는 진주가 없다. 아픔을 겪지 않은 늙은 조개도 진주가 없다. 조개 처지에서 보면 진주는 덩어리이다. 조개는 몸에 들어온 뜻밖의 이물질을 녹여 없애려고 한평생 아픔의 체액을 분비한다. 분비물이 겹겹이 쌓여 진주가 되는 것이다. 진정한 노인의 주름살 속에는 진주가 자라고 있는 것이다.

 

  하루의 변화는아침 점심 저녁 으로 이어진다. 인생의 변화는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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