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6 - 교육과 학습, 그리고 학문 - 제7호 -

敎育(교육)과 學習(학습), 그리고 學問(학문)

 

도정 권상호

  敎育(교육)의 주체는 학생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엄밀히 따져 보면 잘못된 말이다. 교육, 곧 가르치고 기르는 일의 주체는 교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생은 무엇의 주체란 말인가. 결론적으로 學習(학습)의 주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교사와 학생 양자 간의 가장 좋은 전수 방법으로는 學問(학문)이 최선책이다.

  따라서 교육, 학습, 학문의 진정한 의미를 문자학적으로 살펴보고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진정한 자세를 제시해 볼까나.

  정부는 지난해 수능성적 공개, 교육과정 개편, 외고 개혁, 자율형 사립고 설립 등 굵직한 교육 현안을 처리한 바 있다. 올해에도 3월부터 전국 초·중·고교 교원 평가제 전면 시행, 수능체제 개편 등 민감한 교육현안 처리를 앞두고 있다.

  올해는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뽑는 해이기도 하다. 보수 쪽에서는 경쟁을 통한 수월성 교육을 내세우며 일제고사 실시, 특목고 확대 등을 요구하고, 진보 쪽에서는 교육 기회의 평등을 내세우며 일제고사 반대, 무상급식 등을 요구하고 있다.

  어쨌거나 교육이 근년에 보기 드물게 사회적 화두가 되고 개혁을 위한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기야 유사 이래 교육이 중시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느 때든 교육 정책에 자유로울 수 있는 가정은 없고, 그러기에 정치가들은 국민의 관심을 끌기에 가장 좋은 수단의 하나로 교육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나. 여기에서는 공급자 중심의 ‘敎育(교육)’이라는 단어에만 관심할 것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의 ‘學習(학습)’ 또한 대단히 중요함을 일깨우고자 함이렷다.

  敎育(교육)의 敎(가르칠 교)는 ‘爻(육효 효->발음)+(아들 자)+매로 때릴 복, 때릴 때의 소리도 //)’으로 이루어진 글자로 ‘어린아이에게 육효, 곧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 매로 때리는 모양’이다. 선생이 한 손에 회초리를 들고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독촉하는 모습을 보면 교육을 위한 체벌이 지금과는 달리 허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은 매를 들고 때리는 상형에서 왔지만 ‘급히 고치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럼 누구부터 고쳐야 하는가. 자기 자신부터 고쳐야 한다. 고칠 改()를 보면 자기를 나타내는 己()가 있지 않은가. 잘못을 보면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민첩하게 고쳐야 한다. 민첩할 敏()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미()가 등에 업고 다녀야 하는 정도의 아기(라면 늘(늘 매=) 시선을 뗄 수 없고, 그런 자식이 물가나 불가에 가면 어비어비 하며 민첩하게() 달려가 제재하고 바로잡아 주거나 고쳐주어야 한다.

  농작물도 제때에 민첩하게 거두어(거둘 수=) 들여야 하고, 구제(구제할 구=), 본받음(본받을 효=), 공격(칠 공=), 대적함(맞설 적=), 정치(정사 정=), 석방(내칠 방=), 계산(셈할 수=), 거둠(거둘 렴=) 등의 )이 들어간 모든 글자는 빠른 동작이 필요하다.

  (기를 육)은 본디 산모가 아기를 낳는 모습인 毓(기를 육)에서 왔으나 지금의 모습은 子를 뒤집은 모습에 고기 육=)을 붙여서 ‘아이에게 고기를 먹여 건강하게 기르는 모습’이다. 발음상에도 育()과 肉()은 똑같지 않은가. 손에 먹을 것을 가진 모습이 ‘있을 유, 가질 유’라고 하는 有() 자이다. 젓가락을 들고 있고 안주를 집은 모습이 肴(안주 효)이다.

  身外無物(신외무물)이라는 말이 있다. 몸밖에 다른 것이 없다는 뜻으로, 다른 어떤 것보다도 몸이 가장 귀하다는 말이다. 건강이 최고이다. 敎만큼이나 育도 중요하다. 敎는 정신적인 가르침이요, 育은 육체적인 가르침이다.

  學習(학습)의 學()의 갑골문의 모습은 두 손으로 지붕을 엮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배움의 시작은 지붕 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후대에 子()가 들어가 배움이란 어릴 때부터 힘써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금문이나 소전에 )이 들어간 斅(가르칠 효)가 나타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은 새가 날갯짓 하듯(깃 우=) 끊임없이 쉬지 않고 반복하여 말하는(사뢸 백=) 모습이다. 논어집주(論語集註) 학이편(學而篇)에 如鳥數飛(여조삭비)라는 말이 나온다. 배움이란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끊임없이 반복 연습하여야 공부가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

  티베트의 소림사(少林寺)로 불리는 세라사원(色拉寺)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이곳의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불경토론인데, 어린 학승이 무협적 동작과 더불어 1:1로 묻고 대답하는 광경이었다. 그래, 學問(학문)의 요체는 바로 저것이야. 물을 問() 자야. 질문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우리의 아이들은 누구의 잘못인가. 유태인 어머니는 귀가하는 자녀들에게 하는 첫 마디가 이렇단다. 오늘은 선생님께 무엇을 물어보았니? 이 끝없는 질문이 세계의 많은 민족 가운데 가장 뛰어난 민족을 만들었구나.

  교사는 교육하는 사람이요, 학생은 학습하는 사람이다. 교육만으로도 학습만으로도 사상과 이론의 바람직한 전수를 기대할 수 없다. 질문을 통한 이 두 가지의 이상적 만남이 一言以蔽之(일언이폐지) () 啐啄同時(줄탁동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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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Education의 어원은 라틴어 ‘E + ducation’의 합성인데, E는 밖으로out라는 뜻이다. E는 Export(밖으로 가는 항구: 수출), Emmigration(밖으로 이민), Exposure(밖으로 드러나 노출), Eliminate(밖으로 limit=제한하는 제거, 제외하다)의 어두에 쓰인다.

ducation은 ducare가 어원이며 ducare의 동사원형은 duco.'끌다'의 의미로, abduct (ab 멀리duct 끌고가다 - 납치하다), product(pro 미리 duct 끌다 - 미리 만든 상품), conduct(con 함께duct 끌다 - 함께 이끌어서 지휘하다), aqueduct(aque물duct끌다-수도)등이 있다. 즉 영어에서 Education의 의미는 ‘잠재능력을 밖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그렇다. 교육의 본질은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타고난 본성 그대로의 개성과 장점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잠재된 가능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