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8 - 고향 가는 길- 제9호 -

고향 가는 길

 

도정 권상호

  먼저 고생하고 나중에 즐거운 쪽과 먼저 즐겁고 나중에 고생하는 쪽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선고후락(先苦後樂)인가, 아니면 선락후고(先樂後苦)인가. 요즈음은 후자를 택하는 사람이 많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까. ‘젊어서 고생은 늙어서 신경통’이라는 판이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 선조는 당연히 전자 쪽에 손을 들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와 즐거움은 언제나 걱정하는 데서 나온다는 낙생어우(樂生於憂)를 믿었다.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온다는 흥진비래(興盡悲來)의 가르침을 안고 살았다. 청춘의 고생은 젊음으로 넘기지만. 노년의 고생은 늙음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경인 백호(白虎)년을 축하하려 전국적으로 백설이 내렸다. 그것도 기상관측 사상가장 많은 눈이 내렸단다.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이 아니라 호백설백천지백(虎白雪白天地白)이다. 설에 내리는 설()은 서설이라니까 설설 기어가도 참지, 고향 길의 귀성객이나 배고픈 산새들에게는 눈 돌아갈 놈의 눈이다. 고향 길이 고생길이 되다 보니, 백발도 백설에 더하는구나.

  , 구업을 짓지 말진저. 평소에 이루지 못한 혼정신성(昏定晨省). 명절에나마 실천해 보고자 떠나는 길인데. 막힌들 어떠리. 날이 저물면 부모님의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 일찍 밤새 안부를 물어보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런데 이내 신세는 풍수지탄(風樹之嘆)이로소이다.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子欲養而親不待也(자욕양이친부대야)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네.

往而不可追者,年也(왕이불가추자,연야)

흘러가면 쫓을 수 없는 것은 세월이요,

去而不可得見者,親也(거이불가득견자,친야)

가시면 다시 뵐 수 없는 것은 어버이이시다.

출전: <한시외전(韓詩外傳)>

 

  그래, 살아계신 부모님을 뵈러 가는 명절의 교통체증은 달콤한 고통이다. 고향 가는 길이 편안하면 설 맛이 나지 않는다. 젊어서 고생은돈을 주고 사서라도 하고, 귀성의 고생은 일 년을 행복하게 해 준다. 연초부터 제대로 막혀 봐야 연중 교통체증을 감내할 수 있다. 막혀도 좋고, 안 막히면 더 좋다.

  지루하지만 행복한 고향인, 이 대목에서 차 한 잔 마시고, () 타령이나 해볼까나.

  바퀴가 굴러서 나아가게 되어 있는 차를 순우리말로 ‘수레’라고 한다. ‘수레’ 또는 ‘수리’는 둥글다는 의미가 있으며, 차를 수레라고 부른 까닭은 수레의 가장 큰 특징이 둥근 바퀴, 곧 ‘수레바퀴’에 있기 때문이다.

  이 차라는 말이 분화되어 자동차, 기차, 전차, 우차(소달구지), 마차(말달구지) 따위로 나타난다. 그러면 차 중의 자동차는 어디서 온 말일까. 자동차를 중국에서는 汽車[치처]라 하고 일본에서는 自動車[지도샤]라고 하는 것으로 볼 때, 우리말 자동차는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말임을 알 수 있다.

  명칭으로만 보면 저절로 움직인다는 뜻의 자동차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운전자의 조작에 의해 움직이는 피동차(被動車)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자동차는 당나귀나 소만도 못하다. 당나귀나 소를 타고서는 사색이나 독서도 가능하지만, 자동차를 운전 중에 이런 일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자동차의 지능지수가 소나 말보다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화가 이상좌의 ‘기려도(騎驢圖)’를 보면 나귀를 탄 주인공은 앞을 보지 않고, 아예 뒤를 여유롭게 응시하면서 생각에 잠겨 있다.

  문인화가 함윤덕의 그림 중에도 '기려도'가 있다. 이 그림에서는 머리를 숙이고 등 위의 사람 무게를 못 이기는 듯 앙상한 다리를 벌려 버티는 나귀와, 짐승의 고충은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다른 상념에 골몰해 있는 듯한 선비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나귀와 선비, 비유하자면 자동차와 승객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늙고 여윈 폐차 직전의 늙은 나귀지만 승객에게 온힘을 다하고 있는 사족구동(四足驅動) 자동차이다.

  단원 김홍도의 '선인기우도(仙人騎牛圖)'는 탕건을 쓴 한 선비가 소 등에 비껴 앉아 고적한 교외를 한가로이 거니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선비의 자세가 앞쪽으로 약간 쏠린 것을 보니 졸고 있지 않으면 낮술 한 잔에 취해 있는 모양이다. 음주운전 중이다.

  언젠가는 계기에 목적지 입력만 해 놓으면 자동차가 알아서 모셔다 주는 미래형 자동차 시대가오리라. 컴퓨터피아(Computerpia) 세상의 미래형 자동차, 그 안에는 아름답고 황홀한 음악이 있고, 첨단 멀티미디어가 갖춰져 있다. 차내에 미니바가 있어서 이술 저술을 골라잡아 마시며 친구랑 덕담을 나누어도 목적지 안착에는 문제없다. 미래형 자동차는 나만의 절대 휴식, 절대 명상의 공간이다.

  시공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축지법에 대한 꿈을 낳았다. 전화, 텔레비전, 컴퓨터는 물론자동차, 기차, 비행기 등도 축지법 실현을 위한 인간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축지법 도사가 따로 있나, 원하는 목적지에 약속한 시간에 대 주는 자동차가축지법 도사지.

  도요타 리콜 사태로 지구촌이 떠들썩하다. 일본에겐 미안하지만 우리 자동차 업계로서는 도약의 기회이다. 빠르고 편하고 안전한 길을 달려온 우리 자동차, 열어온 길도 훌륭하지만 열어갈 길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멋있되 튼튼한 꿈의 자동차. 그 꿈은 새벽안개처럼 다가오리라.

  오호라, 막혀도 짜증내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떠들다가 보니 어느덧 고향의 동구 밖에 이르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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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김홍도 <선인기우도>에서: 하늘 멀리에는 인기척에 놀란 물새들이 황급히 날아오르는데, 소등의 선비는 물새의 놀란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몰아의 경지에 깊이 빠져 있는 표정이다. 화면 가운데는 그림으로 못다 표현한 시심을 담은 화제(畵題)가 쓰여 있다.
  落花流水閒啼鳴(낙화류수한제명) 낙화는 물위에 흐르고 한가로운 새는 지저귀는데
  一事無干陸地仙(일사무간육지선) 간섭할 아무 일도 없는 걸 보니 육지의 신선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