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10- 붓질로 봄을 열며(안중근 의사를 생각하며)

붓질로 봄을 열며

 

                                     도정 권상호(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예 교수)

 

  올해는 안중근(1879~1910) 의사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안중근 의사는 왜구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대한국인의 이름으로 암살하고, 랴오닝 성 다롄 시에 있는 일제의 뤼순형무소에 갇혀 있던 143일 동안 200점이 넘는 먹 자국을 남겼다. 그의 기개와 인품에 감화된 일인 검사와 간수, 그리고 의사들마저 앞다투어 글씨를 받으려 했기 때문이다.

  국가안위(國家安危) 노심초사(勞心焦思) - 나라의 안위 때문에 몹시 마음을 쓰고 애를 태우다.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 - 이익을 보면 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위국헌신(爲國獻身) 군인본분(軍人本分) -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세 번째 구절은 하얼빈 의거 때 안 의사를 호송한 일본인 간수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한 글씨이다. 형장으로 떠나기 한 시간 전까지도 그는 아내가 바느질하고 어머니가 다림질하여 보낸 하얀 한복을 입고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는 조국 광복을 다짐하며 손가락 하나를 자른 왼손바닥을 낙관 대신에 꾹꾹 눌렀다.

  안중근 의사의 유골은,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수습하려 했지만 가묘만이 효창공원과 북한의 어느 곳에 쓸쓸히 남아있을 따름이다. 유골은 그렇다 치더라도 안 의사의 영혼 증명서인 옥중 서예만은 찬란하게 살아남아 나라사랑의 빛을 더하고 있다. 치열한 삶의 마지막 묵적(墨迹)은 어쩌면 유골보다 더 귀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의로운 혼이 담긴 붓글씨를 돈으로 계산한다는 게 쑥스럽지만 한 점에 수억 원을 호가한다.

  컴퓨터의 다양한 폰트에 떠밀려 점점 위축되고 있던 붓글씨가 안 의사 서거 100주년을 계기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이때를 즈음하여 필자의 라이브 서예관(書藝觀)을 소개해 볼까 한다.

  일단 붓글씨는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님을 밝혀 둔다. 차를 모는 것을 운전(運轉)이라 하고 붓을 움직이는 것을 운필(運筆)이라 한다. 기본만 알면 누구나 운전할 수 있듯이 붓질도 누구나 쉬이 터득할 수 있다.

  나는 붓을 잡은 이래 처음 30여 년 동안은 줄곧 서예는 글씨 모양 만들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는 서예가 모양이 아니라 동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서 30년이 벌 받는 의지의 서예였다면 뒤의 10년은 신명나는 노래판 춤판의 서예라고 할 수 있다.

  무거운 호박돌을 얇은 유리 위에 조심스레 살짝 놓는 동작, 농구공을 물속 깊이 밀어 넣거나 탁구공을 튀기는 동작, 달콤하고 몰캉몰캉한 홍시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동작, 말을 타고 신나게 달리다가 낭떠러지를 만나 급히 고삐를 잡아당기는 동작, 그네나 널을 뛰는 동작, 큰 활을 하늘 향해 높이 들었다가 표적을 향하여 서서히 힘주며 내리 당기는 동작, 복싱 선수가 가볍게 잽을 넣는 동작이나 킥복싱 선수가 발질하는 동작, 개구리가 팔짝팔짝 뛰어가거나 다람쥐가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뛰어 건너는 동작, 자리에 누웠다가 바닥 짚고 무릎 짚고 허리 잡고 서서히 일어서는 동작, 사랑하는 애마를 달리게 하기 위해 채찍질하는 동작, 잠자는 미녀를 잠에서 깨우지 않고 탐하는 동작, 닭이 모이는 쪼거나 제비가 잠자리를 낚아채는 동작, 검무가 주는 오싹한 전율에다가 한풀이 춤의 완만한 움직임, 계곡의 물줄기가 곤두박질하고 나서 평온한 시내 되어 흐르는 모양 등등……. 얼쑤~

  그래서 서예는 문약한 문인보다 운동 잘하고 춤 잘 추고 기상이 뛰어난 사람이 더 잘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서예에는 음악이 있다. 요즈음은 음악 없이는 거의 글씨를 쓰지 못한다. 한국의 산업화를 일궈낸 생기발랄한 뽕짝 메들리에서부터 시작하여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장중함과 열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을 들어가며 그 가락과 분위기에 붓을 맡긴다.

  필자는 드럼, 성악, 기타, 시낭송, 전통무용, 플라멩코, 발레, 합창 등과 함께 라이브 서예를 펼친 바 있다. 이러한 서예술 퍼포먼스를 ‘라이브 서예’라 명명한다. 라이브 서예란 필자가 새로 만든 용어로, 라이브 콘서트 또는 라이브 쇼라는 말에서 보듯이 공공장소에서 실제 붓글씨를 써 보임으로써 서예가와 관중이 함께 즐기는 서예의 한 영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 서예의 실천과 공유라는 측면에서 붙인 말이다.

  굳이 한자어로 이름 붙인다면 휘호(揮毫), 낙서(樂書) 또는 생서(生書)라고 할 수 있다. 붓을 마음먹은 대로 휘두르며 글씨를 쓴다는 의미에서는 휘호(揮毫)이고, 글씨를 즐긴다는 점에서는 낙서(樂書)이고, 글씨를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본다면 생서(生書)라 할 수 있다. 사실 표구를 잘하여 벽에 걸어 둔 멋진 글씨를 보는 것도 감흥을 주지만 점획을 긋는 매 순간 손끝에 와 닿는 변화무쌍한 느낌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축구나 발레를 하는 사람들의 발 감각도 아마 서예가들의 손 감각과 상통하리라…….

  일반적으로 서예라 하면 조용히 방안에 홀로 앉아 날씨에 구애됨이 없이 즐기는 차분하고 내밀한 예술로 생각하겠지만, 라이브 서예를 접해 보면 그 역동적이고도 강한 메시지에 서예의 또 다른 예술적 측면을 발견하게 된다. 서재에 홀로 앉아 쓰는 글씨를 조용한 실내악이라고 한다면 라이브 서예는 많은 관중 속에 연주되는 대형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다.

  학문과 예술의 가치는 실천과 공유에 있다. 조형 예술의 한 영역인 서예의 가치도 실천과 공유를 통하여 더욱 빛날 수 있다.

  유난히 길고 지루했던 겨울도 청제신의 힘에 밀려 이제는 꼬리를 감추고 있다. 화창한 봄꽃처럼 기지개를 켜고 붓을 잡고 산으로 내로 행사장으로 밤이든 낮이든 가리지 말고 나가 보자. 글 솜씨가 부족하더라도 마음껏 붓질을 해 보자. 즉흥시라도 한 수 나오면 금상첨화. 낯깎임은 순간이요 실력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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