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16- 休息(휴식) 없는 休暇(휴가) 없다

休息(휴식) 없는 休暇(휴가) 없다

 

 

도정 권상호

  강의 중에 손을 드는 학생이 더러 있다. 질문이 있어 손을 드나 하고 얼굴을 살펴보면  어벌쩡하면서 표정으로만 한몫을 보려 든다. 이내 질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쉬’ 또는 ‘응가’ 생각이 난 모양이다. 내적 불만의 외적 해소! 압박으로부터의 해방! 긴장의 끝!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 돌아와 앉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시원해진다.

  감탄사 ‘후유’를 줄여서 ‘휴’라고 한다지만, 한자 ‘쉴 休()’ 자와 발음이 같다. 이 말은 어려운 일을 끝내거나 고비를 넘겼을 때 크고 길게 내쉬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일하는 도중에도 그 일이 너무 고되어 힘에 부치거나 시름이 생길 때에 나오는 소리이기도 하다.

  OECD 국가 중 한국인이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열심히 일하다가 보니 사실 쉴 시간이 없는 형편이다. 그러니 어쩌다 생긴 휴가라도 쉴 줄을 모르고 어정쩡하게 넘기기 일쑤이다.

  어느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일에 대한 계획만큼이나 휴식에 대한 계획도 매우 중요하고 또한 멋지게 쉴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財() 테크’만큼이나 ‘休() 테크’도 필요하다.

  동사 ‘쉬다’에서 형용사 ‘쉽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본다. 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다는 얘기일까. 반기니 반갑고, 즐기니 즐겁듯이 쉬니 쉽구나 하는 식이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그냥 쉰다는 것이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쉼’에 해당하는 한자어는 ‘休息(휴식)’이다.

  ‘休(쉴 휴)’ 자는 누가 봐도 알 수 있듯이 일하고 난 뒤에, 아니면 새 일을 구상하기 위해서, 어쩌면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어서,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쉰다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새로운 일을 위한 충전의 시간이다. 알고 보면 사람만이 쉬는 게 아니다. 밭도 쉬어야 하니, 이를 休耕(휴경)이라 한다. 땅에도 힘을 불어넣어 주기 위하여 부치던 땅을 얼마간 묵히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진정한 쉼의 의미는 ‘息(쉴 식)’ 자에 다 들어 있다. () 자는 ‘自()+()’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의 自()는 ‘코’를 가리키고 心()은 ‘심장’을 뜻한다. 진정한 휴식이란 ‘코로 숨 쉬고 심장이 뛰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없는 상태’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자율신경계의 움직임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참된 휴식이란 말이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休日(휴일)에 쉬지 않고 지나친 놀이로 인하여 몸을 더 혹사시키는 경우가 많다.

  따지고 보면 영원한 휴식은 永眠(영면)인데, 동양에서는 自()에 중점을 두어 ‘숨을 거두었다’라고 하고, 서양에서는 心()에 중점을 두어 ‘심장이 멈추었다’라고 표현한다.

  쉴 수 있는 방이 休憩室(휴게실)인데, 여기의 ‘憩(쉴 게)’ 자 역시 休() , () 자와 마찬가지로 ‘쉬다’의 뜻이다. 그런데 息() 옆에 ‘舌(혀 설)’ 자가 붙어 있는 게 재미있다. 적어도 휴게실에서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숨쉬기와 심장 박동 외에, 남에게 방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분자분 대화도 나눌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문자학적으로 보면 休息(휴식)은 말없이 쉬는 것이요 休憩(휴게)는 대화를 나누면서 쉬는 것이라 하겠다.

 

  이번 여름에는 피곤하지 않은 진정한 휴식을 위하여 休暇(휴가)를 내자. 휴가의 ‘暇(겨를 가)’ 자는 ‘日(날 일)+(빌릴 가)’로 이루어져, 쉬기 위한 날[]을 직장으로부터 빌린다[]는 뜻이다. 1년에 일정한 기간을 쉬도록 해 주는 유급 휴가를 年暇(연가)라 하는데, 연가를 얻기 위해서는 請暇(청가)를 해야 한다. 寸暇(촌가)라도 내어 忙中閑(망중한)의 여유를 누려 보자. 얼씨구~. 휴가 때 몸을 더 혹사시키면 雪上加霜(설상가상)이다. 적어도 마지막 하루는 절대 휴식이 필요하다. 서구 사회는 물론 국내에도 餘暇(여가)를 선용하기 위하여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있것다. 절씨구~. 이게 바로 여가학(餘暇學)이로다. 잘 헌다~.

  (빌릴 가)’의 전서 형태를 보면 언덕 밑에서 손을 꼬부려 광물을 채취하는 모습이다. 자연으로부터 금은보화를 캐내어 즐기지만, 결국 죽으면서 자연에게 되돌려주는 형국에서 ‘빌리다’의 의미가 생성되었다.

  (겨를 가)와 비슷한 모양의 글자 중에 ‘假(거짓 가)’ 자가 있다. 날을 빌리면 ‘겨를’이 생기는데, 사람을 빌리면 ‘거짓’이 생긴다? 맞는 말이다. 개를 키우는 이유가 거짓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도 설득력이 있다. (거짓 가) 자에 (사람 인) 자가 붙어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결국 인간만이 거짓을 만든다는 게 아닌가? ‘거짓이 없으면 진실도 없고, 가짜가 없으면 진짜도 없다.’라고 하면 지나친 인간 비호일까?

  ‘진짜’, ‘가짜’라는 우리말은 한자어 ‘眞者(진자), ‘假者(가자)’에서 왔을지도 모른다. ‘가게’라는 말도, 길가에 멋대로 만든 가짜 집이란 뜻의 ‘假家(가가)’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에서 자연을 벗 삼으며 閑暇(한가)한 삶을 누린 우리 선조가 많다. 벼슬이 없으니 문 앞에 마차 소리 시끄러울 일 없고 청탁받을 일도 없다. ‘한가하다’라는 의미의 한자는 閑()과 閒()이 있다. 낮이면 ‘閑()’처럼 문 닫고 나무 침상에 누워 쉬고, 밤이면 ‘閒()’처럼 문 열고 달을 희롱하며 쉬는 멋이 진정한 휴식이다.

  餘暇(여가)를 즐길 줄 아는 풍류적인 삶을 누리자. 시간의 여유, 마음의 여유, 생각의 여유를 가질 때 창조적이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물질적 여유도 좋지만, 이는 엄연히 한계가 있으니 욕심 부릴 일이 아니다. 三時(삼시) 세 끼 거르지 않고, 五尺(오척) 단구 눕힐 만한 자리만 있으면 그만이다. 이러한 최소한의 욕구가 모든 국민에게 충족되는 세상이 행복지수 최상의 복지국가라고 생각한다. 많은 돈으로 인한 피곤한 여가는 결코 행복을 주지 못한다.

  수차례의 벼슬을 사양한 조선 중종 때의 학자 화담(花潭) 徐敬德(서경덕, 1489~1546) 선생의 시 述懷(술회)에 나오는 시구이다. 여름휴가 중에 念念(염념)해 볼만하다.

 

富貴有爭難下手(부귀유쟁난하수) 부귀는 다툼 있어 손대기 어렵지만,

林泉無禁可安身(임천무금가안신) 자연은 금함이 없으니 심신이 편안하다.

採山釣水堪充腹(채산조수감충복) 산나물 캐고 물고기 잡아 배를 채우고

詠月吟風足暢神(영월음풍족창신) 풍월을 읊조리자 화창해지는 이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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