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19- 호남별곡

호남별곡(湖南別曲)

 

도정 권상호

시절 좋다 벗님네야 여름휴가 맞이하여

가족 함께 떠나는 길 호남 답사 유람이라.

삼복 지난 철임에도 유난히 매운 염천

하루 세 번 샤워로도 견디기 어려워라.

 

팔월 십삼 십사 일과 광복절 십오일에

무작정 떠나는 길 찻길에 맡겨두고

호남고속도로 따라 무심히 달리던 중

금산사 표지판이 발길을 돌리누나.

 

엄뫼, 큰뫼 모악산은 부악산 어디 두고

호남 일경 금산사를 젖 먹이듯 끌어안네.

오만 가지 야생화로 몸치장 정히 하고

치맛자락 널찍 펼쳐 호남벌판 적시도다.

 

일주문 지나면서 세속 번뇌 씻어내니

수문신장 금강역사 천년 사찰 지킴이라.

보제루 아래 들자 골바람에 더위 씻고

큰 마당 올라서자 미륵전이 압도한다.

 

층마다 다른 현판 필체도 장쾌하며

높디높은 미륵자존 중생 앞길 지켜주리.

육각의 다층석탑 석수 손길 묻어나고

영원한 꽃 석련대 불상은 어디 갔나.

 

정불우헌 칩거하던 태인 들 가로 질러

지는 해 품에 안고 서역으로 달려 볼까.

부안 선경 변산반도 눈앞에 펼쳐지자

갈매기 춤을 추며 길손을 맞이하네.

 

환경이냐 개발이냐 탈도 많던 새만금

오랜 세월 고생 끝에 지도를 바꾸었네.

서해상의 저녁놀은 짧아서 아름답고

채석강 바위들은 길어서 주름 가득.

 

번개탄에 구운 전어 소주잔을 부르고

폭죽 속에 타는 젊음 놀란 모기 몰려온다.

파도소리 사람 소리 시끌벅적 여름 바다

외변산 밤길 따라 민박집 찾아든다.

 

능가산 내소사 예 듣고 이제 보니

봉황이 알을 품고 대숲에 둥지 튼 듯

대웅보전 대들보엔 청룡이 내려오고

안개 낀 천정엔 쌍학이 날아든다.

 

큰 개울 물고기는 수중 발레 공연인데

작은 개울 관현악에 매미들은 합창단

관음봉 바위 병풍 어느 화승 솜씨인가.

시원한 전나무길 발거음도 가벼워라.

 

가던 길 줄곧 가세 배고프면 쉬어 가세.

줄포 시장 잠시 들러 젓갈백반 먹고 가세.

올망졸망 그릇마다 소담스레 누운 젓갈

하고많은 이름 중에 밥 귀신이 웬 말이냐.

 

고창하면 선운사라 굽이굽이 물어가세.

곳곳 널린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일래.

천혜의 복 받은 땅 명사도 많을시고.

여기는 미당생가 저기는 인촌생가.

 

선운사 오르는 길 여름 동백 반겨하고

상사초 꽃잎 위에 내 사랑 얼씨구나.

계곡의 검은 물결 초립동이 달인 약수.

천년기념 송악은 신선의 부채로다.

 

고창읍내 들어서자 판소리 세상이라

신재효 선생에다 김소희 명창일세.

호국 상징 고창읍성 장수 빌며 답성놀이

성문 안에 세운 감옥 선악이 공존일세.

 

친절하고 옹골찬 해설사님 안내에

낯 설이 길일망정 안방처럼 편안하다.

집집이 복분자술에 풍천장어 광고판

예쁘다 고창 처녀 굳세다 이웃 총각.

 

전북을 뒤로하고 전남 담양 넘어가세.

굽이치며 휘는 고개 옥빛호수 품었어라.

백양사 도로표지 어찌 그냥 지나칠까.

해질녘에 들른 가람 청정 속에 번뇌 씻네.

 

어찌하여 천년 고찰 백양이라 이름한고.

저녁예불 소리 속에 나도 없고 너도 없다.

연못 속의 금붕어는 목어 꿈 정진인데

집 떠난 이네 심사 무얼 보고 살아가리.

 

어둑한 밤 길 따라 담양읍 당도하여

주린 배 채우자니 차가 먼저 공양 재촉.

담양 하면 대나무골 대통밥 죽순요리

죽로차 한잔 하고 피곤한 몸 눕힌다.

 

이른 아침 찾아간 곳 죽녹원 대숲이라.

댓잎 맺힌 이슬 먹고 상큼하게 자란 찻잎.

죽죽 솟은 죽림 기상 하늘을 떠받들고

살랑대는 댓잎은 길손 오라 손짓하네.

 

관방제림 좋은 풍치 촌로들의 차 일되고

대를 이은 국수장수 약물계란 별미로다.

인건비 높은 탓에 대시장은 사위지만

죽통부인 내가 안고 청노는 아내 차지.

 

서울 길 멀다 하여 빛고을 외면하랴.

찾은 곳은 망월동 5.18 국립묘지.

민주 횃불 넘실넘실 정의 숨결 새록새록.

참배객의 붉은 시울 나도 가만 눈을 감네.

 

민주 만세 결사 항전 도청으로 모이자.

짧은 외침 뒤로 하고 산화한 시민군들.

여기는 금남로 저기는 충장로

차분히 감아 돌매 눈에 처연 귀에 멍멍.

 

광주하면 비엔날레 아시아선 처음일래.

아름다운 영혼으로 더욱 빛날 한국의 얼.

무등산 고개 넘어 충민사 들르니

전장군의 실천궁행 호령으로 들리나다.

 

오호라 환벽당 푸름을 둘렀구나.

송우암 현판 글씨 살아있는 붓 자국.  

낮잠에서 깨어난 사촌 선생 헛기침에

송강과 서하당의 듬직한 독서성.

 

저 앞은 성산 자락 오른 쪽은 무등산

정자 아래 창계천 고기마다 헤리로다.

조대에선 낚시질 용소에선 뱃놀이

세월을 낚으랴 소에 들어 용 되랴.

 

어느 낯선 지날 손이 가사관에 잠시 들러

시름 잊고 책 읽다가 폐문 시간 잊었네라.

서하당 휘 둘러 식영정에 올라하니

그믐이라 달 없어도 대명천지 맑은 심경.

 

성현은 이 강산을 갈수록 낫게 여겨

적막한 산중에 들고 아니 나왔는데,

홍진에 찌든 이 몸 어느 산천 받아줄까.

식영정 대숲에 앉아 갈 곳 몰라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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