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20- 이슬 받아 먹 갈고

이슬 받아 갈고

 

도정 권상호

  구름은 높이 올라가고 개울물은 맑게 내려가는 보니 가을이 오나 보다. 백로(白鷺)만큼이나 깔끔한 백로(白露) . 특히 백로 무렵은 이슬방울처럼 포동포동하게 살찐 포도가 맛을 자랑하여 침샘이 솟구치는 계절이다.

  백로(白露) 되자 걷어붙였던 소매를 내려도 소매 밑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 지독하게 비가 많았던 여름, 끔찍이도 태풍 피해가 컸던 여름이 꼬리를 감추고 있다.

  밤낮의 일교차가 심해지면 하늘과 대지가 갈등하기 시작한다. 밤새 뜻밖의 서늘함에 목을 옴츠리는 대지를 하늘이 슬쩍 안는다. 천지의 비밀스런 사랑으로 옥액(玉液) 맺히는 때가 바로 백로 철이다.

  풀잎에 맺힌 그렇게 많은 이슬이 아침 햇살에 영롱하게 비치는 정경은 세상의 보석을 부끄럽게 만든다. 순간 발칙한 생각이 드는데,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대지의 꽃들을 사랑하고 갔구나! 하늘의 별군과 땅의 꽃양도 연애질을 하는구나. 가을 안개는 바로 그들의 홑이불이로구나. 오곡백과가 익어 가는데, 저희들도 있으랴. 저렇게 영롱한 이슬들을 사랑의 흔적으로 남겨놓다니…….

  이슬 중에서도 비온 뒤에 맺히는 비이슬은 별로다. 밤사이에 내리는 밤이슬이 그래도 낫다. 천하가 태평할 때에 하늘에서 내린다고 하는 달콤한 이슬이 감로(甘露)인데 최상품이다. 아마 감로는 모든 식물의 열매를 충실하게 맺게 주는 백로 즈음의 아침이슬을 두고 이른 말일 것이다. 감로는 모든 생물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그래서 술은 감로주(甘露酒), 차는 감로차(甘露茶), 물은 감로수(甘露水) 최고로 치는 것이다. 부처의 가르침을 비유하여 감로법우(甘露法雨) 하는데,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온갖 번뇌와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깨달음의 열매를 맺게 주기에 감로(甘露) 비유하여 말한 것이리라.

  내게는 승로연(承露硯)이라 명명한 벼루가 하나 있다. 승로반(承露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명명한 벼루이다. 승로반은 하늘에서 내리는 장생불사의 감로수를 받아먹기 위하여 만들었다는 쟁반이다. 그렇다면 승로연이란 백로 절후의 꼭두새벽 감로를 따서 먹을 벼루가 되는 것이다. 알갱이 자체가 다이아몬드와 똑같은 탄소 성분이라 영원불변하지만, 감로로 승로연에 갈아서 쓰는 글씨는 영원에다가 생기까지 불어넣는 작업이다.  

  지난해 여름 널따랗게 붓글씨를 있는 제법 넓은 별장이 생겼다. 도봉산 무수골의 무수산방(無愁山房) 그것이다. 물론 나의 명의로 되어 있는 집은 아니지만. 앞에는 마당이 있고, 마당가를 작은 시내가 두르고 있다. 지우들과 더불어 속마음 없이 세상 얘기를 터놓을 수도 있다. 앙증맞은 텃밭도 있고, 밭두렁에는 넘어 보이는 해묵은 은행나무도 지킴이처럼 우뚝 있다. 서울 안의 외딴 시골집이라 무섭기까지 하다. 비가 내릴 때나 낙엽이 때면 우수수 하는 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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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
秋夕 祭床(추석 제상)

  두어 달 내내 비만 오더니 오랜만에 음력 팔월 하늘에 초승달이 걸렸다. 저 달이 둥글어지면 추석이다. 한가위다. 한
추석(秋夕)은 한가위, 중추, 중추절, 가배일로 부르기도 하며, 음력 8월 15일에 치르는 명절로서 설날 다음으로 한국인에게 전통적으로 깊은 뜻을 지니고 있는 명절이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햅쌀과 햇과일로 조상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며, 특히 송편은 추석에 먹는 별미로 들 수 있다. 추석에는 고향을 방문하는 전통이 있다. 이때문에 전국민의 75%가 고향을 방문하여 추석이 되면 전국의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열차표가 매진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민족대이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추석 전날과 다음날까지 3일이 공휴일이다. 단, 일요일이 연휴와 겹치더라도 공휴일이 연장되지 않는다.

祭床(제상)이란 제상제물을 차려놓은 상. 제물을 진설하는 데는 복잡한 격식이 있다. 모두 5줄로 진설되는데, 신위 쪽에서 첫째 줄이 반갱줄, 둘째 줄이 적줄, 셋째 줄이 탕줄, 넷째 줄이 포혜줄, 맨 끝줄이 과실줄이다. 한 사람만 제사지내는 경우를 단설(單設), 내외를 함께 제사지내는 경우를 합설(合設)이라 한다.

  한 많은 여인네들은 저 달을 보며 한을 삭이곤 했다. 그래서 달과 여인에 관련한 속담이 많다. ‘초승달은 잰 며느리가 본다.’는 말이 있다. 초승달은 떴다가 곧 지기 때문에 부지런한 며느리만이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슬기롭고 민첩한 사람만이 미세한 것을 살필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렷다. ‘옷은 시집올 때처럼 음식은 한가위처럼’이란 말은 옷은 시집올 때 가장 잘 입을 수 있고 음식은 한가위에 가장 잘 먹을 수 있다는 말이렷다. 저 초승달이 지고나면 별이 총총 빛난다.
그리고 태양이 남성이라면 달은 아무래도 여성에 해당한다.
송편은 대표적인 추석음식이다. 전하는 말로는 송편을 예쁘게 잘 빚어야 시집을 잘 간다고 하여, 여성들은 예쁜 손자국을 내며 반월형의 송편에 꿀·밤·깨·콩 등을 넣어 맛있게 쪄냈으며 이때 솔잎을 깔아 맛으로만 먹은 것이 아니고 후각적 향기와 시각적인 멋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