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 21- 사군자(四君子)

사군자(四君子)

 

도정 권상호

  인격적, 학문적으로 훌륭한 지도자급 인물에 대한 명칭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서양에서는 신사(紳士), 동양에서는 군자(君子) 있다. 순우리말로는 선비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겠다. 군자란 본래 덕행과 학식이 높은 사람을 가리킨다. 사실 경제적 사회적 지위도 높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동양인이면 누구나 군자가 되기를 흠모해 왔고, 특히 문인묵객(文人墨客) 삶의 지표를 군자가 되는 것에 두었다. 군자란, 본인에겐 보람과 자부요 남으로부터는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자연을 미치도록 사랑했던 동양인은 실로 다양한 식물 중에서도 (), (), (), ()만을 특별히사군자(四君子)’ 이름 짓고 문학과 회화의 소재로 즐겨 사용해 왔다.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 표방하던 선조는 시와 서예와 그림을 굳이 구분하지 않았는데, 요즈음은 대개 사군자를 문인화에 귀속시켜 제도적으로는 시와 서예로부터 독립해 가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시서화는 점차 분리되어 따로 놀고, 문인화도 서예적인군자문인화 회화적인그림문인화 나누어진 형편이다.

  유교적 분위기가 강했던 낙동강 상류의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생은 경북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입학하자마자 군자연하며 서예와 사군자에 풍덩 빠지기 시작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작 청춘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 () 등한히 하고 서화(書畵)에만 매진했으니 년도 되어 싫증이 남은 당연한 귀결이다.

  더욱 쑥스러운 일은 사군자를 공부하면서도 실물은 보지 못한 있다. 자라면서 대나무나 국화 정도만 보았지, 매화와 난초는 적이 없었다. 따라서 사군자를것이 아니라 추측으로 그렸을 뿐이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난초와 매화를 구경하러 삼남(三南) 물론 제주도까지 달려가곤 했다. 채란(採蘭) 위해 시골 야산을 헤맨 시절도 있다. 쪽팔림은 순간이요 실력은 영원하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것으로 매우는 것이다. 앉아서 우두망찰할 것이 아니라 현장을 뛰어다니며 오감으로 직접 느껴 보자. 특히 비파는 중국의 소주 항주에 가서야 비로소 실물을 접했다. 순간 이전에 관념적으로 그린 비파가 얼마나 쑥스러웠는지 모른다. 돌이켜 보면 그때부터 사군자를 다시 공부하게 되었다.

 

속에 암향(暗香) 흘러 괴이하여 나섰더니

눈인지 꽃인지 분간키 어려워라

때마침 벌이 오가니 매화가 분명코나.

 

  여기의 매화(梅花) 설중매(雪中梅). 청정무구(淸淨無垢) 백매(白梅) 시샘하여 눈이 내린 지도 모를 . 봄이 왔기에 매화가 피는지 매화가 피었기에 봄이 왔는지도 없는 . 매화를 가리켜 보춘(報春, 봄을 알림) 또는 춘신(春信, 봄의 소식)이라고 부르는 보면 매화가 피어야 봄이 오는가 보다. 매화는 백화(百花) 앞서 이른 봄에 홀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발산한다. 매화는 품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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