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 22- 흙의 노래 불의 춤

흙의 노래 불의 춤

도정 권상호

  흙은 대지의 피부이다. 흙은 흙덩이에서 때론 흙탕물로, 더러는 흙먼지로 변신한다.

  흙이 물과 결혼하면 토양을 이루어 지표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을 길러 낸다. 흙이 불과 결혼하면 그릇을 이루어 삼라만상을 담아낸다. 그러니 흙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다.

  바위가 부서져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되고, 흙이 된다. 흙은 식물을 낳고, 식물은 동물을 살린다. 그렇다. 흙은 생명의 터전이다.

  흙은 자신이 갈라지고 부서짐으로써 남을 살린다. 그러나 남이 죽으면 또 기꺼이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러한 흙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은혜로운 자도 있다. 하늘에는 운룡(雲龍)이 있고, 바다에는 해룡(海龍)이 있고, 땅에는 지룡(地龍. 지렁이)이 있는데, 바로 이 지룡이 흙을 살리는 성자이다.

  흙의 여러 가지 변신 중에 가장 화려한 변신은 아무래도 도자기가 되는 일이다. 흙을 이겨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고 초벌구이를 한다. 다시 유약을 발라 뜨거운 열을 가하면 도자기로 탄생한다. 열 받은 그릇은 원래의 모양보다 작지만 단단하고 찬란한 빛을 발하며, 영생(永生)한다. 흙은 불과 운명적으로 만나는 순간 자신의 몸을 화들짝 낮추고 옴츠린다. 그렇지. 인간도 몸을 낮춤으로 높아질 수 있다. 흙이 열을 극복하면 도자기가 되듯, 인간은 고난을 이기면 성공하게 된다. 만일 살아가다가 열 받는 일이 생기더라도 스트레스로 쌓아 두지 말고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도자기의 교훈이다.

  훌륭한 도예가는 흙에서 구수한 냄새가 난다는 말을 한다. 흙을 만지는 도예가의 손에는 쑥떡 같은 풋풋함과 구수함이 묻어 있다. 그 손길에서 구워져 나온 그릇에는 언제나 구수한 흙냄새가 옥빛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청자(靑瓷)에는 비췻빛 하늘 냄새가, 백자(白瓷)에는 눈빛 흰옷 냄새가 난다.

  금세 불로 일궈낸 그릇으로 맑은 첫새벽의 샘물을 떠 마신다. 그릇으로 태어나 그릇으로서의 첫 구실, 이 얼마나 엄숙한 순간인가.

  굽이치지 않고 흐르는 강물이 어디 있으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마찬가지로 물과 불의 난리를 겪지 않고 만들어지는 도자기도 있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인간도 아픔과 시련을 겪은 만큼 성숙한다. 불을 만난 흙은 아픔을 승화하여 찬란한 빛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그래, 나에게 오는 시련은 단련의 기회이다. 절망의 시점에서도 희망을 노래하자.

  ‘재앙 재()’자를 보면 위에는 내[]가 꼬부라져 있고, 아래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곧 재앙이란 물과 불에서 온다는 뜻이다. 크게 보면 재앙도 필요의 악이다. 우리가 그토록 무서워하는 태풍과 해일도 드넓은 바다에 산소를 불어넣는 일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올해에는 지구촌에 유난히도 물난리와 불난리가 많았지만, 모두가 지구를 살리기 위한 어떤 필연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瓷器)란 물의 반주에 흙이 노래하고, 불이 춤을 추면서 빚어낸 예술작품이다. 부스러기 질흙 태토(胎土)가 물과 불을 차례로 만나 인조 옥()이 되는 이치는 진정으로 우리에게 무언(無言)의 가르침을 준다.

  하늘에는 별, 땅에는 꽃, 가정에는 도자기가 있다. 인간의 시간을 잊고 흙과 불의 시간만으로 살아가는 도공(陶工)이 있기에 영원불변의 인조 옥인 도자기(陶瓷器)가 탄생한다. 귀한 도자기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더라도 허심(虛心)의 미학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나서 죽을 때까지 ‘말’과 ‘그릇’을 사용한다. 그런데 말을 //이라 발음하는 까닭은 할 말은 하되 될 수 있으면 말하지 ‘말라’라는 주의의 뜻이 담겨있다. 그릇을 /그릇/이라 발음하는 이유는 그릇에 담긴 음식은 먹되 ‘그릇’된 짓은 하지 말라는 경계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6천 년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그릇은 인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다. 인간이 불을 다스리는 기술이 늘면서 그릇 만드는 기술도 발전해 왔다. 이는 그릇 용어에 변천을 보면 알 수 있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상태로 300도 정도의 열에 구우면 토기(土器)가 되고, 유약을 발라 구우면 陶瓷器(도자기)가 된다. 도자기도 둘로 구분하면 도기(陶器) 8~900도의 열을 가해 구워진 장독과 같은 것이요, 자기(瓷器) 1,200~1,300도의 열을 가해 구워낸 찻잔이나 백자, 청자 등을 가리킨다.

 

흙이 씨앗을 받을 때

생명의 노래가 들린다

그 노래의 끝은 꽃과 열매.

흙이 열을 받을 때

빛의 잔치가 벌어진다

그 잔치의 끝은 도자기.

 

口 하나는 ‘입 구’

口 둘은 ‘부르짖을 훤()

口 셋은 ‘물건 품()

口 넷은 ‘여러 사람의 입 집()

여러 입이 잡은 짐승 한 마리[]를 보고 있다.

나눠 먹으려면 무엇을 들고 가야할까……. ‘그릇 기()

 

  조개가 진주를 만든다면 인간은 그릇을 만든다. 그릇은 흙에서 와서 깨어지면 또 흙으로 돌아간다. 우리도 흙에서 태어나 흙에서 자란 음식을 먹다가 종래는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점차 흙이 보이질 않는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온통 흙을 뒤덮어 인공사막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노원서예협회 회원들과 함께 경기도 이천 도예촌에 12일로 들려왔다. 도자기에 물감으로 붓글씨를 써 보는 도서(陶書) 체험을 위해서였다. 비단의 글씨는 5백 년 가고, 화선지의 글씨는 천 년 간다고 했다. 아마 도서는 생명이 영원하리라.

 

  이 가을에 생명력이 넘치는 흙 가슴을 가진 사람과 흙 묻은 손으로 차 한 잔 나누며 대화하고 싶다. 그리고 가을 물처럼 고백해야지. 겨울 불처럼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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