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 32- 먹 타령

먹 타령

도정 권상호

  지구의 나이는 얼마나 될까? 박문호 박사에 의하면 46억 년이나 된단다. 지구의 나이를 24시간, 곧 하루로 친다면 인간은 언제 태어났을까? 정오에? 오후 6시쯤? 놀라지 마시라. 11 57.

  인간은 말과 글로써 언어생활을 한다. 말이 먼저 생겼을까, 글이 먼저 생겼을까. 당연히 말이 먼저이다. 그러면 글은 언제 태어났을까. 충격 받지 마세요. 0 3초 전. 그러니까 선사시대와 비교하면 역사시대는 너무나 짧다. 인간은 겨우 3초 전에 만든 글자로 출생신고하고, 글자와 마주하며 살다가, 사망신고까지 글자로 정확히 마친다. 분명히 인간이 만든 글이지만 인간이 글을 지배하는지 글이 인간을 지배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은 긋지 않고는 못 배기는 표현 본능이 있다.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의 행동을 관찰해 보면,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먹는 것으로 알고 입으로 가져가거나 또는 그것으로 마냥 긋는 시늉을 함을 볼 수 있다. 그렇다. 먹고 배부르면 그다음엔 긋기다.

  그림을 뜻하는 ‘畵()’ 자는 본디 ‘그을 획’이었다. 나중에 이 글자가 ‘그림 화’ 자로 쓰이니, ‘劃(그을 획)’ 자를 다시 만든 것이다. 그러하고 보니 ‘긋다’, ‘그리다’, ‘그립다’, ‘글’, ‘금’, ‘글씨’, ‘그림’, ‘그리움’, ‘그늘’, ‘그림자’, ‘그을음’, ‘검다’까지도 어원이 같으리란 생각이 든다.

  금을 긋기 위해서는 먹물이 필요하다. 먹물은 먹을 갈아야 얻을 수 있다. 먹은 그을음으로 만든다. 결국, 금을 그으려면 그을음이 필요한 셈이다.

  나무는 세 번 죽는다. 물이 말라 고사목이 되면서 한 번 죽고, 불을 만나 숯이나 그을음이 되면서 두 번 죽고, 이 숯이나 그을음이 다시 불을 만나면 원래 없던 자리 ‘無()’나 ‘空()’으로 돌아간다. 그을음은 나무가 두 번 죽은 상태이다. 숯과 흑연, 그을음과 다이아몬드는 모두 탄소(C) 원소로 이루어진 물질이다. 타는 온도와 강도는 다르지만, 그 자체로는 영원불변하다. 그을음으로 만든 먹도 불에 타지만 않는다면 영원한 물질이다. 이 영원성 때문에 먹은 다이아몬드처럼 소중하다. 송진을 함유한 소나무 뿌리나 관솔 등을 태워서 만든 그을음은 松烟(송연), 유채나 동백기름 등을 태워서 만든 그을음은 油煙(유연)이다.

  아궁이나 가마 등을 마련해 놓고 재료를 태우면, 그을음이 그 굴뚝에 붙게 되는데 위쪽에 붙는 것일수록 품질이 좋다. 그을음을 채취하여 아주 가는 체로 쳐서 아교풀로 개어 반죽한 다음, 절구에 넣어 다지는데 많이 찧을수록 좋다. 다음은 틀에 넣고 눌렀다가 꺼내면 외형이 완성되는데, 이를 재 속에 넣고서 수분을 서서히 빼내면 먹이 된다. 요즘에는 광물성 그을음 또는 카본 등을 재료로 대량 생산하므로 정품은 드물다.

  게다가 편의 위주로 먹물[墨汁(묵즙)] 사용이 일반화되어 가는데, 여기에는 방부제가 들어 있어 붓이 상할 수 있으므로 글씨를 쓰고 난 다음 반드시 깨끗이 씻어야 한다.

  먹은 말이 없다. 그래서 먹통이다. 먹통이지만 영원하고 변절하지 않기에 그를 墨友(묵우)라 칭하고 오늘도 더불어 살아간다. 말이 없는 먹통인 먹, 그래서 墨(먹 묵)이나 默(조용할 묵)의 발음은 똑같다. 중국 발음도 /mò/로서 성조까지 똑같다.

  먹을 뜻하는 墨(먹 묵)은 ‘黑(검을 흑)+(흙 토)’로 이루어져 있다. () 자를 살펴보면 창이나 굴뚝에 그을음 두 점이 붙어 있다. 창 밑의 土()와 火()는 원래 炎(불탈 염) 자였다. () 자 밑에 土(흙 토)를 더한 것은 그을음을 흙처럼 굳혀야 먹이 되기 때문이다. 접착제인 아교를 녹인 물에 그을음으로 반죽하고 香料(향료)를 섞은 뒤 서서히 굳히면 비로소 먹이 완성된다.

  이제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고체인 먹을 다시 액체로 만들어야 한다. , 먹을 갈아야 한다. 이를 ‘磨墨(마묵)’이라 한다. 마묵은 단순히 먹만을 가는 게 아니라 마음도 동시에 간다. 이를 ‘磨心(마심)’이라 한다. 글씨를 쓰기 전에 벌써 수양에 들어간 것이다.

  초는 자신을 태워 빛을 발하고 소금은 자신을 녹여 맛을 낸다. 태우지도 녹지도 못하는 모래알 같은 자신을 발견하고서는 화들짝 놀라게 된다. 그러면 먹은 어떠한가. 먹은 자신을 갈아 글씨를 낳는다. , 의로운 먹이여. 먹에 대하여 차렷, 경례!

  먹은 紙筆硯(지필연)과 함께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로서 자라나 선비의 친구 반열에 든다.

  먹의 형태는 초기에는 원기둥 모양이었으나 점차 다양한 패션으로 모양을 달리했다. 지금은 모든 먹이 글이나 그림으로 메이크업을 한다.

  먹은 언제 발명되었을까. 후한(後漢)의 위탄(韋誕, A.D. 179253)이 발명했다는 설이 있으나, 이보다 훨씬 전인 은대(殷代)의 갑골문(甲骨文)에서 이미 검거나 붉은 액체를 사용했음이 확인된다. 그러니까 인류는 B.C. 2500년 이전에 벌써 먹을 사용했다. 이때 사용한 먹은 석묵(石墨)으로 짐작된다. 대개 지금과 같이 그을음을 이용하여 만든 먹의 사용은 한대 이후부터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먹 가운데 현재 전해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일본의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된 신라의 먹 2점이다. 이것은 모두 배 모양이며 각각 먹 위에 ‘新羅楊家上墨(신라양가상묵), ‘新羅武家上墨(신라무가상묵)’이란 글씨가 찍혀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때 두 집안에서 이미 상묵(上墨), 곧 좋은 먹을 생산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원말(元末) 명초(明初)의 도종의(陶宗儀, ?~1369)가 쓴 <철경록(輟耕錄)>에는 고구려가 당()에 송연묵(松煙墨)을 보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 고구려 고분에서는 묵서명(墨書銘)이 발견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이미 삼국시대에 양질의 먹이 생산되고 널리 보급되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 후 조선 시대에는 다양한 종류의 먹이 여러 곳에서 제작되었는데, 양덕(楊德)과 해주(海州)의 먹이 가장 유명했다.

 

  먹에 대한 부정적인 면도 있다.

  “이 바보 먹통아!”라고 할 때의 ‘먹통’은 멍청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먹통은 목재나 석재 등을 자르거나 다듬기 위해 줄을 긋는 도구인데, 먹통이 지니고 있는 ‘까맣다’라는 이미지 때문에 먹이 욕을 얻어먹고 있다.

  , “그 친구가 오늘 행사에 먹칠했어.”라고 할 때의 ‘먹칠’은 분위기를 더럽히는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먹의 굴욕이다.

  먹에 대한 가장 모욕적인 말은 속담에 있다.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라는 말은 ‘近墨者黑(근묵자흑)’이란 성어까지 가세하여 먹을 욕되게 한다. 좋지 못한 사람과 사귀게 되면, 그를 닮아 악에 물들게 됨을 이르는 말로서 먹의 입장에서는 “하필 나야?”하고 항변할 수 있는 기분 나쁜 속담이다. 

 

  이 대목에서 고려 말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 선생의 시 '()' 중에서 頷聯(함련)과 頸聯(경련)의 대구를 옮겨 본다.

累經墨齒虧新樣(누경묵치휴신양)

幾沐毫頭學古書(기목호두학고서) 

滴露硏時驚宿鳥(적로연시경숙조) 

和氷洗處動潛魚(화빙세처동잠어)

 

여러 번 먹을 가니 새 모양으로 바뀌고

몇 번이나 붓끝 적셔 옛글을 배웠던고?

이슬로 먹을 갈 때 잠든 새도 놀라고

얼음 녹여 벼루 씻는 곳에 물속 고기도 꿈틀대누나.

 

  부지런히 공부하는 사람을 위해 제 몸을 갉아가며 희생하는 먹의 의로운 모습과, 잠든 새와 물고기의 잠을 깨우는 먹의 살뜰한 경계가 신비롭기까지 하다.

 

  먹의 배필은 역시 벼루이다. 먹이 낭군(郎君)이라면 벼루는 먹을 받아들이는 신부(新婦)이렷다. 먹 군의 부드러운 애무에 벼루 양은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그들의 사랑 끝에는 언제나 윤택한 玉液(옥액)이 매운 향기와 함께 질펀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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