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 37- 생명 사랑

생명 사랑

도정 권상호

  송지선 아나운서의 자살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지난 몇 해 동안 우리 사회에는 충격적인 자살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 서울 마포대교에서 투신했던 유태흥 전 대법원장, 안상영 전 부산시장,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 박태영 전남지사, 톱스타 최진실과 그의 동생 최진영, 세계적 패션모델 김다울, 한류스타 1세대인 박용하, 모델 장자연, 배우 이은주, 가수 유니, 탤런트 안재환, 행복전도사 최윤희 부부, 올해 들어서만 4명의 학생과 교수 1명이 목숨을 잃은 카이스트, 여러 명의 대학 강사, 십자가 자살의 택시 운전사, 심지어 중고등학생에서부터 70, 8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남녀노소 지위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리하여 우리 사회는 가히 '자살 신드롬'에 빠졌다.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생명(生命)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어 생명존중에 대한 각인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 등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지도자층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아 큰 걱정이었는데, 알고 보니 OECD 국가 중 '자살률 세계 1'라는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2009년의 경우, 자그마치 인구 10만 명당 31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생의 꽃인 20, 30대 사망원인의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은 슬픔을 넘어 경악으로 다가온다.

  이 시점에서 자살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국회에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조성법이 통과된 이후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자살 예방 사업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이것은 정부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전문가를 비롯하여 각계각층 전문가는 물론 온 국민이 대오각성(大悟覺醒)하여 자살 예방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생명(生命)이란 ‘살 생()’에 ‘명령 명()’ 자를 쓴다. 신으로부터 ‘살라고 명령을 받은 것’인데, 자살(自殺)을 선택한다는 것은 신의 명령을 거역한 행위이다. 생명을 토박이말로는 ‘목숨’이라 한다. 산다는 것은 ‘목[식도(食道)]’을 축이고, ‘숨[기도(氣道)]’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식도로 음식을 먹고, 기도로 호흡해야 살 수 있는데, 이 둘 중 어느 하나를 끊어도 죽게 마련이다. 자살(自殺)이란 ‘스스로 제 목숨을 끊는 일’이다. ‘죽을 살()’ 자를 보면 ‘벨 예() + 벗길 출() + 몽둥이 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소름끼치는 끔찍한 글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할까. 지도층 인사들의 잇따른 죽음을 보면서, 그들은 왜 그토록 허무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는가를 성찰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그들의 심적 나약성만 탓한다면, 그 원인을 죽은 자에게 돌리는 것으로 앞으로 일어날 또 다른 희생을 예방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면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첫째,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말자. 한국인들의 사고 특성 중의 하나는 옆의 사람을 도우미로 생각하지 않고, 감시자로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는 주변인에 대하여 쓸데없이 지나치게 간섭하고 평가하기를 좋아한다. 쉽게 흑백 논리에 빠지고 호불호(好不好)를 분명하게 그어서 판단하려고 든다. 숨어 있는 장점을 찾아서 덕담을 주고받기보다는 단점을 들추어내기에 습관이 되어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오직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만이 요구된다.

  둘째, 주변 사람을 경쟁자로 생각하지 말자. 지나친 경쟁 풍토는 인간 개개인의 개성을 말살시킨다. 나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면 남을 깎아내리기 일쑤이다. 나와 ‘다름’을 ‘틀림’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서로의 역할 분담 대신에 비교 우위를 선택하다가 보면 각자의 개성은 말살되고 상대방은 결국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나약한 채송화는 채송화대로 씩씩한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다 존재 이유가 있다.

  셋째, 물질적 가치만큼 정신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자. 우리나라가 후진국에서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의 문턱에 다다르게 한 ‘한강의 기적’ 그늘에는 돈을 모든 가치의 중심에 두는 버릇이 생겼다. 물질적 가치를 정신적 가치 위에 두고, 돈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는 배금주의에 빠져들면, 사회는 빈부 갈등을 넘어 양극화로 치닫게 된다. 좋은 성적과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잡는 이유가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한 불행한 인생으로 치닫게 된다. 물질은 한계가 있고, 그 목적이 좌절되면 좌절과 패배감에 빠지게 마련이다.

  넷째, 자살의 큰 원인 중의 하나는 아무래도 대화의 부족에 있다고 본다.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인간 사이의 대립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용기 있는 대화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 대화를 통하여 서로의 편견과 차이를 인정할 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서 대화는 전화나 화상을 통한 대화가 아니라 얼굴을 직접 보면서 나누는 오프라인 대화를 말한다.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대화 시간은 더욱 짧아진다.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대화가 없는 20대를 가리켜 ‘Q(Quiet) 세대’라고 불렀다. 가족 간의 대화, 부부간의 대화, 직장에서의 대화 시간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다섯째,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접하며 살아가자. 문화란 내 영혼을 담는 질그릇이다. 문화와 예술을 통하여 즐거운 시간과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 나가면 이 사회는 살만한 가치 있는 곳이 된다. 문화와 예술은 영혼의 산소와 같다. 메마른 삶은 생각의 사막화를 가져오고, 끝내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우울증은 가지고 있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문화 예술을 통한 인간적인 접촉을 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세상은 이어지는데, 인간관계는 단절되고 있다.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한 이래로 인간은 휴식의 밤을 잃어버리기 시작했고, 바보상자 TV와 마주하는 순간부터 가족의 해체가 시작되었다. 게다가 PC, 휴대전화기, 스마트폰(smartphone), 트위터(twitter), 페이스북(Facebook) 등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물밀 듯이 들어오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 기계적 동물이 되어 버렸다.

  손안의 세계는 무한히 넓어졌지만, 손밖의 세상은 좁아졌다. 손 밖의 세상은 개개인 모두가 작은 섬을 이루고 살고 있다. 그리하여 스마트폰의 이용이 일반화되면서 이들을 가리켜 ‘스마트 아일랜드(Smart Island)족’이라 부른다. 그들은 첨단 기기인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소통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고립된 섬을 만들고 있다.

  수렵, 농경사회에서의 인간이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는데, 21세기 IT 사회에서의 인간이란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타인과 단절되고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일러 ‘나홀로족’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가족 수보다 더 많은 집을 지어도 집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나홀로족의 증가로 MBC 특집 ‘고독사’에서는 2010년 한 해에만 아무도 찾아가지 않은 시신이 757구에 달했다 한다. 이른바 가족과 이웃의 무관심 속에 생을 마감하는 고독한 죽음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고독사는 그렇다 치고, 문제는 자살률의 증가에 있다.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인간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자살률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OECD는 지난 5 24(현지시각), 창설 50주년을 기념해 각국의 생활환경과 삶의 질을 측정해 수치화한 ‘행복지수(The Better Life Index)’를 발표했다. 이 지수는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주거, 취업, 소득, 교육 등 11개 항목을 평가했다.

  각 항목의 평균 점수에서 1위는 호주가 차지했고, 그 뒤를 캐나다와 스웨덴, 뉴질랜드, 미국, 노르웨이, 덴마크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은 34개 회원국 가운데 26, 일본은 19위를 차지했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한국은 교육, 치안, 취업 등에선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공동생활(community), 일과 생활의 조화, 주거, 소득 등에선 최하위 그룹에 속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0년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58개국 중 23위였다. 그나마 31, 27위에서 매년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꼴찌를 향하여 순위가 내려가야 할 자살률은 매년 증가 추세에 있고, 급기야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이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한다.

  이리하여 최근 자살률 증가에 따른 사회문제를 사회운동 차원에서 함께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구성된 단체가 있으니, ‘생명사랑문화운동본부’(공동대표 안종주·김훈수)이다. 지난 5 13일 국회본관에서 많은 명사를 모시고 창립식과 함께 ‘생명사랑캠페인’ 선포식을 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단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이기에’라는 내용을 라이브 서예 퍼포먼스로 펼쳐 보였다. 이 또한 예술 실천을 통한 생명 사랑 실천의 하나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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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05301550311115&ext=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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