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 40- 붓의 멋, 먹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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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권상호

  그대, 푹푹 찌는 여름날 오후 한줄기 소낙비의 시원한 대지 사랑의 노래를 들어 보았는가? 어린 시절 칠흑(漆黑) 같은 초가집 안으로 봉창(封窓) 비집고 내리꽂히는 달빛의 오싹한 전율을 느껴 적이 있는가? 잠에서 어렴풋이 깨어나는 순간 문틈으로 새어드는 햇살이 방안의 뽀얀 먼지를 흔들며 머리맡에 쏟아지던 상큼한 순간을 기억하는가?

  눈빛 부드러운 화선지 위에 윤기 넘치는 자국이 소리 없이 번져 나가는 먹울림 역시 영원히 잊을 없는 시각의 오르가슴(orgasme)이다. 서예(書藝) 격조 높은 흑백의 앙상블이다. 낭창낭창하고 튼실하게 생긴 총각 모필(毛筆) 아무와도 한번 잡은 없는 처녀 선지(宣紙)에게 퍼붓는 강렬한 키스! 선지 위에 펼쳐지는 모필 무도회(舞蹈會)! 동지섣달 긴긴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끝없는 붓꼴림! 선지는 끝내 먹물을 함뿍 뒤집어쓰고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이처럼 붓과 종이의 스릴 넘치는 감동적 사랑의 야설이, 지칠 모르고 온몸에 저며 오기에 서예는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 하였고,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혹독할 정도로 먹물에 풍덩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예는 글자를 매체로 하여 표현하는 시공간 예술이다. 음악은 시간 예술, 미술은 공간 예술이지만, 서예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른 종합예술이다. 오케스트라 지휘봉 휘두르듯 붓은 허공을 누비니 서예 행위는 음악을 닮았고, () () 절묘한 조합으로 나타난 서예 결과물은 미술을 닮았다.

 

  인간은 누구나 표현의 본능을 갖고 태어난다. 어린아이에게 색연필을 쥐어 주면 아무 데나 마구 긋고 짓이긴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의 장판이나 벽지가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를 보았는가? 긋거나 쪼지 않고서는 배기는 인간 본능의 자취이다.

  운동장에서는 누구든 공을 있고, 노래방에서는 누구나 노래를 부를 있듯이, 아무나 붓을 잡으면 글씨를 있다. 물론 쓰고 쓰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나 즐겼느냐가 문제 된다. 지고한 (), 지순한 종이 () 더불어 지내다 보면 정신은 어느새 가을 물처럼 맑아지고, 육신은 겨울 눈밭처럼 깨끗해진다.

  붓질은 생활의 리듬이요 먹빛은 사고의 향기이다. 묵향(墨香) 맡을수록 영혼이 깨어난다. 붓을 잡은 손끝을 통하여 온몸에 전해지는 은근하고 지속적인 흥분과 감동은 천금의 놀음차로도 오히려 부족하다.

 

  흑백(黑白) 원시적 대비 효과, 농담(濃淡) 그윽한 유혹, 붓질의 강약(强弱) 운필의 완급(緩急) 빚어내는 하모니... 엄청난 구애(求愛)에도 불구하도 글씨는 쉬이 미소 짓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좋은 글씨를 쓰기 위한 조건으로 구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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