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 43- 피트니스 라이브 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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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tness Live Calligraphy)

도정 권상호

  음악에서 세시봉 열풍과 함께 건강에는 피트니스 열풍이 대단하다. 불어로 ‘아주 좋다.’라는 뜻의 세시봉(Cest Si Bon)은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등을 배출한 1970년대 서울 무교동에 있던 유명 음악 감상실 이름이었다. 그런데 세시봉 가수들이 세대를 초월하여 뜨고 있다. 이 글도 세시봉 맴버의 노래를 들으며 추억에 젖어서 쓰고 있다. 

  피트니스는 영어 ‘fitness’에서 온 말로, 'fit'이 ‘~에 꼭 맞다.’라는 뜻이니 ‘fitness’는 ‘적절함’이란 뜻이 된다. 이 말은 더욱 발전하여 ‘신체가 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건강 상태’라는 의미가 된다. 곧 몸의 컨디션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고 유지하는 일이 피트니스이다. 이 말은 더욱 진화하여 사회적·정신적·식품영양학적·체육과학적 측면은 물론 패션 용어로까지 확장하여 널리 사용되고 있다.

  원래 미국에서는 육체적 건강과 관련하여 정확히는 ‘피지컬 피트니스(physical fitness)’라 하고, 균형이 잡힌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내는 일, 또는 그것을 위한 운동을 가리켰다. 현대인의 무병장수, 건강지향 욕구를 계기로 피지컬 피트니스 운동은 세계적 붐을 타고 있다.

  피지컬 피트니스에 상응하여 정신적인 면에 중점을 둔 피트니스는 ‘마인드 피트니스(mind fitness), 패션에 중점을 둔 피트니스는 ‘피트니스 룩(fitness look)’이라 한다. 호텔이나 클럽 등에서는 고객의 지친 심신을 풀어 주고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피트니스 센터(fitness center, 건강 센터)'를 설치하고 있다. 이곳에 들어가면 훌륭한 체력단련 기구와 사우나 룸 등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면 이 대목에서 서예와 피트니스에 대하여 생각해 볼까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운동에서 최상의 상태, 곧 피트니스를 유지해야 좋은 결과를 가져오듯이, 서예 또한 피트니스 상태에서 최고의 글씨를 쓸 수 있다.

  전통적으로 글씨를 잘 쓸 수 있는 최적의 상태로 구생법(九生法)이라는 것이 있다. 생지(生紙), 생필(生筆), 생연(生硯), 생묵(生墨), 생수(生水), 생수(生手), 생목(生目), 생신(生神) 생경(生景)의 구생(九生)이 그것이다.

  첫째, 생지(生紙)란 글씨가 잘 쓰이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종이를 말한다. 좋은 밭에 좋은 알곡을 기대할 수 있듯이, 먹을 고르게 잘 흡수하고 운필을 유연하게 해 주는 종이가 최고이다.

  둘째, 생필(生筆)이란 끝이 부드러우면서도 허리의 탄력을 잃지 않는 붓을 말한다. 붓을 사람으로 친다면 원기 왕성한 건강한 몸이 생필이다.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붓, 전후좌우 종횡무진으로 내닫는 붓이 최고다. 운전이 편리한 자동차가 좋듯이 운필이 잘 되는 붓이 좋다. 서체에 따라, 개인의 취향에 따라 붓의 好惡(호오)를 달리하겠지만, 문제는 쓰는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잘 따라주는 충직한 붓이 으뜸이다.

  셋째, 생연(生硯)이란 石質(석질)이 푸근하면서도 깐깐함을 잃지 않는 硯面(연면)이 고른 벼루를 말한다. 단계석처럼 이름 있는 중국 벼루는 너무 비싸다. 하지만 우리의 보령 벼루도 전혀 손색이 없다.

  넷째, 생묵(生墨)이란 빛깔이 맑으면서도 윤기가 흐르는 먹을 가리킨다. 일본의 고매원 먹은 윤택하고 묵향도 좋지만, 너무 비싼 게 흠이다. 하지만 우리 먹도 뛰어난 묵색과 묵향에 비하여 값싸고 좋은 것이 있다.

  다섯째, 생수(生水)란 새벽에 새로 기른 맑고 깨끗한 생수를 이른다.

  여섯째, 생수(生手)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 피곤하지 않은 손이다.

  일곱째, 생목(生目)이란 붓털의 섬세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 생기 있는 눈을 가리킨다.

  여덟째, 생신(生神)이란 고요하면서도 여유 있는 정신을 가리킨다. 생수(生手)와 생신(生神)은 고른 영양 섭취와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기대할 수 있다.

  아홉째, 생경(生景)이란 기분이 넘치는 화창한 날씨를 가리킨다.

  이상의 구생(九生)은 최적의 서사(書寫) 조건을 말하는데 이 아홉 가지의 여건이 구비되었을 때, 득의작(得意作)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라이브 서예의 측면에서 보면 구생(九生)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붓 타령, 기분 타령, 날씨 타령을 할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이든 내가 그 분위기에 맞추어 써 나가면 되는 것이다. 조자룡이 무딘 칼을 탓하던가? 이순신이 부족한 군 장비를 탓하던가? 반주 없어 노래 못할까? 바가지 없어 물 못 마실까? 꿩 잡는 것이 매이다. 모든 일의 성패는 ‘네 덕 내 탓’으로 돌려야 한다.

  내가 실천하고 공유하고 있는 서예 퍼포먼스 ‘라이브 서예’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어떤 공식 행사든, 축제든, 잔치든 그 분위기 자체가 ‘피트니스 라이브 서예’를 위한 최상의 자리이다. 그 자리가 라이브 스테이지(live stage)이기 때문이다. 고독한 서재에서 고심하며 모양만 그려낸 글씨는 박제된 서예일 따름이다.

  문제는 붓 꼴림이다. 꼴림의 사전적 의미는 생식기가 성욕으로 인하여 팽창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내가 보는 꼴림은 ‘꼴이 일어남’의 뜻으로 본다. 여기의 꼴은 ‘본때를 보이다.’라고 할 때의 본때와 상통하는 의미이다. 붓 꼴림이란 글씨를 쓰고 싶어 환장한 상태를 말한다. 이때가 이른바 서예 피트니스 상태이다. 이때는 써야 한다. 쓰지 않으면 몸에 병이 생긴다. 정신적 배설에 대한 욕구가 충족된 상태가 진정으로 ‘피트니스 라이브 서예’를 즐길 시간이다. 육체적 배설만큼이나 정신적 배설도 중요하다. 상수도뿐만 아니라 하수도가 막혀도 우리는 죽게 된다.

  그리고 라이브 서예의 장점 중의 하나는 육체적 운동과 정신적 운동이 이상적으로 가미된 예술 활동이라는 점이다. 라이브 서예를 통하여 밸런스가 잡힌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흔히 서예는 정신 운동일 뿐, 육체적인 운동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라이브 서예는 그렇지 않다. 관중 속에서 붓을 잡고, 온몸으로 쓰는 라이브 서예는 3분만 지나더라도 온몸이 땀에 젖는다. 라이브 서예는 붓이란 도구를 통한 육체 단련이기도 하다. 고로 라이브 서예는 마인드 피트니스는 물론 바디 피트니스도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건강 아이콘이다.

  라이브 서예가 국내에서도 해를 거듭하며 인기를 더하고 있는데, 이웃 일본에서는 영화 ‘서도 걸즈(書道 girls)’를 통하여 영화의 주제처럼 ‘서예 재생(再生)’의 붐을 타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는 여러 고등학교 서도부 학생들의 팀워크를 바탕으로 역동적인 라이브 서예를 펼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 속에 풍덩 빠지게 되는 이유는 라이브 서예의 바탕 위에 음악과 무용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히 ‘붓 쇼’ 또는 ‘서예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다.

  심신(心身)의 고른 건강을 위하여 라이브 서예를 권해 본다. 처음에는 누구나 쑥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한다. 이것만은 극복해야 한다. 창피함은 순간이지만 뒤이어 오는 뿌듯한 즐거움은 영원하다. 라이브 서예는 뇌 훈련을 통한 치매 예방은 물론, 적당한 몸 운동도 된다. 배 먹고 이 닦기, 도랑치고 가재 잡기이다. 취미생활의 허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 활동의 키워드……. 라이브 서예가 이제 피트니스의 어젠다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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