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 48- 라이브 서예는 인생이다.

라이브 서예는 인생이다

 

도정 권상호

  서예는 ‘일회성(一回性)’이라는 점에서 인생과 닮았다. 라이브 서예는 일회성에 현장성(現場性)이 더하여져 순간순간 판단과 선택을 잘해야 하는 현대인의 인생과 너무나 닮았다. 한번 쓴 글씨는 개칠(改漆)할 수 없듯이, 한번 지나간 인생은 돌이킬 수 없다. 그러므로 주어지는 매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온다.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인생삼금’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인생에서 세 가지 중요한 ‘~금’이 있는데, ‘황금 소금 지금’이 그것이다. 라이브 서예는 이 세 가지 중에서 ‘지금’과 관련이 깊다. 시간과 공간이 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보면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에서 써 내려가는 현장 서예가 라이브 서예이다.

  라이브 서예를 즐기기 위해서는 붓과 먹물은 언제나 지니고 다녀야 한다. 그때그때 먹을 직접 갈아서 사용하면 좋지만, 라이브 서예를 위한 많은 양의 먹물을 일일이 갈아서 충당하기란 쉽지 않다. 라이브 서예는 대개 큰 붓으로 크게 쓰는 일이 많고, 즉발적(卽發的)으로 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쉬우므로 먹물을 사서 사용하는 수가 많다. 

  라이브 서예가 주는 감동과 행복은 대단하다. 운동량도 많아서 5분 정도면 1,000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붓을 통하여 손끝에 와 닿는 전율은 가슴을 때린다. 음악과 함께 눈앞에 펼쳐지는 붓 가락의 먹 자취는 눈을 흥분하게 만든다. 혼자 방안에서 부르는 노래보다 많은 청중 앞에서 부르는 노래가 신이 나듯이, 서재에 틀어박혀 혼자서 쓰는 자기 구도적 서예보다 대중 앞에서 펼치는 라이브 서예가 훨씬 더 자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이른바 기파장(氣波長)이 일어나기 때문이리라. 물론 라이브 서예를 처음으로 시도해 볼 때에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여 온몸과 가슴이 떨리겠지만, 몇 차례의 현장 경험을 쌓고 나면 누구나 당당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라이브 서예이다.

  자전거 타기를 배우듯이, 붓을 세우는 연습을 일정 기간 하고 난 뒤에 나만의 글씨체로 덤비면 되는 것이다. 글씨를 잘 쓰고 못 쓰고는 문제 되지 않는다. 용기가 문제이다. 세칭 잘 쓴 글씨는 인쇄체를 잘 따라 쓴 몰개성적 글씨이고, 차라리 못 쓴 글씨가 개성 있는 글씨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러면, 라이브 서예와 닮은 일회성의 인생에 대한 다양한 덕목들을 들어보기로 한다.

  첫째, 인생삼간(人生三間)이 있다. 시간, 공간, 인간이 그것이다. 인간이 살아 있다는 것은 시공(時空)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시간, 공간이라고 할 때에의 ‘간()’ 자를 ‘인간(人間)에게도 붙여놓은 것이다. 인간은 죽음으로서 비로소 시간과 공간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살아서 피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이라면 그 시간 즐겁고, 그 공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그 사람 때문에 오늘 분위기 망쳤어.’라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한다.

  둘째, 인생삼택(人生三擇)이 있다. 학교의 선택, 직업의 선택, 배우자 선택이 그것이다. 조국이나 부모처럼 자기의 선택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있지만, 학교, 직업, 배우자는 자신의 노력으로 선택할 수 있다. 과거의 많은 선택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듯이, 오늘의 내 선택은 나의 미래를 만들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셋째, 인생삼선(人生三先)이 있다. 살아가면서 적극적인 자세로 긍정의 힘을 믿고, 먼저 해야 할 세 가지를 가리킨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먼저’ 하자. 무엇부터 할 것인가? ‘급한 일부터 먼저’, ‘소중한 일부터 먼저’ 하자. 일의 경중(輕重)과 완급(緩急)을 잘 가려서, 확신이 섰으면 그 일부터 먼저 해야 한다. 업무 우선순위를 잘못 판단하여 일을 그르치는 수가 많다.

  넷째, 인생삼중(人生三重)이 있다. 시작, 과정, 결말의 중요성을 말한다. 인생은 일회성이므로 가정(假定)이 없다. 따라서 순간의 판단과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를 끼울 자리가 없다.’라는 말은 시작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격언이다. 처칠은 옥스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고 했으니, 이는 과정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웃는 자가 진정으로 웃는 자’라는 말은 결말의 중요성을 가르쳐주는 격언이다.

  다섯째, 인생삼품(人生三品)이 있다. 하품(下品), 중품(中品), 상품(上品)의 인생으로 없어야 할 사람은 하품이고,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은 중품이며, 꼭 있어야 할 사람은 상품 인생이다. 삼품(三品)을 달리 구분할 수도 있다. 생각 없이 동물처럼 먹고 자며 살아가는 사람은 하품, 배우고 노력하는 사람은 중품, 봉사하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은 상품 등으로 나눌 수도 있다. 선인들은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생활인을 하품,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수련인을 중품, 수행을 통한 ‘달인(達人), ‘도인(道人), ‘진인(眞人)’ 등을 상품으로 보기도 했다.

  여섯째, 인생삼몰(人生三沒)이 있다. 청춘에는 사랑에 빠지고, 장년에는 일에 빠지고, 나이 들어서는 고향에 빠진다는 말이다. 향우회, 동문회 등에 나가보면 주로 50대 이후의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나이가 들수록 고향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고향을 인연으로 하며 만나는 자리가 향우회이고, 또 죽어서 영원히 묻힐 곳이 고향 땅이 아닌가.

  어제저녁에는 서초동 로얄프라자에서 열린 ‘재경 지보면민회 및 초회 송년의 밤 한마음 축제’에 참석했다. 나의 입장에서 이날은 고향의 추억과 붓질의 가락에 동시에 빠지는 날이었다. 평소에 학연(學緣), 지연(地緣)에 대하여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살아왔던 터라 참석하지 않았던 모임이었다. 그런데 서예 퍼포먼스를 한번 보여 달라는 회장(최상호)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는 처지이고, 게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향에 대한 아련한 그림이 일어나, 무용가 노한나양을 데리고 함께 라이브 서예를 펼쳤다.

  내 고향 이름은 ‘지보면(知保面)’이다. 남에게 말로 일러주기에는 다소 쑥스러운 이름이지만, 그곳이 ‘만인의 고향’이니 한번 들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더구나 특산물이 참기름인 점도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한자로 보면 ‘(세상을) 알고 (자신을) 지킨다.’는 참 좋은 의미이다.

  배경 음악이 깔리고, ‘선녀가 춤을 추다가 감고 있던 비단을 던진다. 나무꾼은 ‘예지천보(醴知天保)’라고 썼다. ‘예천군 지보면은 하늘이 보호하나니…….’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협서로는 ‘알찬 지보 힘찬 지보’라고 코믹하게 썼다. 이에 마음이 흔들린 선녀는 치마를 벗어 던져 주며 유혹하고, 이윽고 나무꾼은 치마 위에 난죽(蘭竹)을 친다. 화제(畵題)는 ‘사랑은 나누고, 만남은 뭉치자.’라고 붙인 뒤에 다시 선녀에게 치마를 입혀주고 함께 춤을 춘다.

  예술의 멋과 인생의 맛이 어우러진 향우회. 추억의 만남은 설렘과 기대를 동시에 던져 준다. 예천의 샘물은 끝없이 샘솟고, 지보의 향기는 영원히 흐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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