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 49- 蛟龍得水(교룡득수)

蛟龍得水(교룡득수)

 

도정 권상호

  신묘한 신묘년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2012년 壬辰年(임진년) 黑龍(흑룡)의 새해가 밝았다. 임진년이라 하면 1592년의 壬辰倭亂(임진왜란)이 떠올라 왠지 마음의 안개를 지울 수 없다. 올해가 임란이 일어난 지 420년이 되는 해이니 7주갑이 되는 셈이다.

  새해의 시작은 태양력의 1 1일부터지만, 엄밀히 말하면 참된 새해는 동짓날 새벽에 떠오르는 해부터이다. 동짓날부터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冬至(동지)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환언하면 陰氣(음기)는 극에 달하고 陽氣(양기)는 가장 저조한 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을 극점으로 해가 조금씩 길어지면서 양기가 돋아나기 시작한다. 따라서 동지는 양기, 곧 태양의 부활일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동짓날이 설날이었다.

  양기의 출발점인 동지가 들어 있는 달이라서 동짓달이라 한다. 그러므로 한 해는 동짓달부터 시작된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周易(주역)>에도 11월을 十二支(십이지)의 첫째인 子月(자월)이라 하여 동짓달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았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작은설 또는 亞歲(아세)라 하였다. 동지에 붉은빛의 팥죽을 먹고 그 속에 태양처럼 밝은 새알심을 나이 수만큼 먹는다. 예부터 음의 기운이 가장 강한 긴 동짓날 밤에 귀신의 활동이 가장 왕성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날 액운을 막고, 귀신을 쫓기 위해 붉은 색깔의 동지팥죽을 쑤어 먹고, 또 집 주변이나 담 위의 여러 곳에 뿌리면서 잡귀나 역병을 물리치고 한 해의 건강을 기원하기도 했다.

  윤극영 작사, 작곡의 ‘설날’이라는 동요에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의 까치설은 작은설이란 뜻이다. 까치는 한자로 鵲(까치 작)으로 쓰며, (참새 작)과 함께 음이 //이고, 그 속에는 ‘작다.’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까치는 색깔에서도 검정 속에 흰색이 들어 있으므로 陰()에서 陽()으로 바뀌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吉鳥(길조)로 여겼다. ‘윷가치’, ‘젓가치’, ‘가치담배’ 등의 ‘가치’도 ‘가지’에서 온 말로 /까치/와 발음이 통하며 ‘작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어쩌면 서양에서 온 성탄절도 동지 축전이나 태양 숭배의 풍속을 이용하여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 아닌가 생각한다. 신약성서 어디에도 예수의 탄생에 관한 날짜 기록은 없다.

  결국, 양력을 기준으로 하면 동지가 까치설이고 동지 다음날이 설날이 되며, 음력을 기준으로 하면 섣달 그믐날이 까치설이고 정월 초하루가 설날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황금 돼지해, 白虎(백호)의 해에 이어 온 壬辰(임진)년을 黑龍(흑룡)의 해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壬辰(임진)의 壬()은 흑색을, ()은 용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은 방위로는 ‘북방’에 해당하고, 오행으로는 ‘물’에 해당한다. 十干(십간)의 방위와 색깔을 살펴보면 甲()과 乙()은 동방 청색, ()과 丁()은 남방 적색, ()와 己()는 중앙 황색, ()과 辛()은 서방 백색이고, 마지막으로 壬()과 癸()는 북방 흑색이다. 이처럼 우리 선조는 해마다 띠에다가 오행의 각 기운과 연결된 靑(), (), (), (), ()의 五方色(오방색)을 입히며 생활하였다.

 

  다음은 龍()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나. 용은 전설상의 네 가지 신령한 동물로 치는 四靈(사령)의 하나이다. 기린, 봉황, 거북, 용이 그것인데, 여기에 白虎(백호)를 더하면 五靈(오령)이 된다. 그중에서도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파충류는 龍(), 최고의 조류는 鳳凰(봉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용과 봉황은 황제나 임금을 상징하곤 했다.

  올해는 임진(壬辰)년 용띠 해이다. (, dragon) 12지 중에서 유일한 상상의 동물이다. 용은 사슴을 닮은 뿔, 토끼를 닮은 눈, 소를 닮은 귀, 돼지를 닮은 코, 악어를 닮은 입, 낙타나 말을 닮은 두상, 뱀을 닮은 몸, 공룡을 닮은 등 갈기, 조개를 닮은 배, 잉어를 닮은 비늘, 호랑이를 닮은 발, 매를 닮은 발톱, 입가에는 긴 수염, 몸에는 81개의 비늘을 갖고 있다고 한다. 목 아래에는 지름 한 자쯤 되는 거꾸로 된 비늘 곧, 역린(逆鱗)이 있는데, 이를 건드리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 용은 날개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고 물속을 드나들며 유유히 헤엄칠 수도 있으며, 코나 입으로 불을 뿜기도 한다.

  용의 모든 신통한 능력은 용의 몸에 지니고 있는 如意珠(여의주)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했다. 이무기가 용이 되려면 반드시 소지해야 할 것이 여의주이다. 사람이 만약 여의주를 얻으면 모든 소원을 이룰 수 있다. 흐미 좋은 거…….

  12지 중에서 용을 뜻하는 진()이란 글자는 본디 ‘떨치다.[()]’의 의미로 용처럼 힘차게 비상하는 모양이다. ()은 달로는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음력 삼월(양력으로는 4), 시간으로는 아침 안개 피어오르는 오전 7시에서 오전 9시 사이이다.

  용의 순우리말은 ‘미르’이다. 미르는 ‘물’의 의미로 농경사회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물이었다. 용이 비 내리기를 비는 말에서 ‘비나이다.’라는 말이 생겼다.

  어릴 때, 서당에서 배운 용의 노래가 기억난다. ‘龍雨龍雨龍龍(용우용우용용), 龍不雨龍龍(용불우용용)’이다. 내용인즉슨, ‘용아 비 내려라. 용아 비 내려라. 용이 비 내려야, 용이 용이지. 용이 비 내리지 못하면, 용이 용일까?’이다. 봉황이 바람을 다스린다면, 용은 비를 다스린다. 그래서 용의 모습은 때로는 파도로, 때로는 안개로, 때로는 구름으로, 때로는 비로 나타난다. 그래서 용은 용하다. 용용 죽겠지롱?

  새해 1 2일 아침 9 30,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여의도 한국거래소(구 증권거래소)에서 ‘蛟龍得水(교룡득수)’라는 신년 휘호를 했다. ‘교룡이 물을 얻는다.’라는 뜻으로 좋은 기회를 잡음을 이르는 말이다. 교룡은 눈썹으로 교미하여 알을 낳는다고 한다. 한국 증권시장이 많은 알을 낳기를 기원한다.

  올해 임진년은 북방, 흑룡, 물의해이다. 4 11일 물의날[]에는 19대 국회의원 선거, 12 19일 물의날[]에는 18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온통 물 개락이다. 우리 모두 물 조심하고, 용꿈을 꿀 것이며 마음속의 여의주를 찾아내자.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

권상호
전각 '흑룡' - 도정 권상호 새김
사진- 여의도 한국거래소(구 증권거래소) 개장 기념 라이브 서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