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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울타리, 서울
도정 권상호
한반도를 인체에 비유한다면 백두산은 머리가 되고, 두류산에서 출발하여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에 이르는 줄기는 척추가 되며, 소백산맥은 속리산까지가 넓적다리뼈가 되고, 지리산까지는 정강뼈를 이룬다.
그렇다면 서울은 인체로 볼 때, 어디에 해당할까. 아마 명치쯤이 되지 않을까. 명치란 사람의 복장뼈 아래 한가운데의 오목하게 들어간 곳을 가리키며 급소의 하나이다. 명치를 한자로 명문(命門)이라고 하는데, 이는 ‘생명(生命)의 문’이란 뜻이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생명의 문이자, 생명의 근본이다. 따라서 서울이 살면 대한민국이 살고, 서울이 죽으면 대한민국도 죽는다. 그러므로 명치 서울을 명치(明治)해야 한다. 밝게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다.
서울, 내가 1982년 3월부터 서울에 살고 있으니, 올해로 만 30년을 채운 셈이다. 처음에는 생활환경, 자연환경, 일상 언어, 인간관계 등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 무척 고생이 많았다. 그래서 서울이란 ‘서서 울 수밖에 없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서울’이라는 명칭은 신라, 백제, 고구려 등에서 사용한 보통명사로 보인다.
신라의 경우,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의 기록에 보이는 ‘서벌(徐伐) · 서라벌(徐羅伐) · 서나벌(徐那伐) · 서야벌(徐耶伐)’ 등은 신라 초기 도읍지 이름인 동시에 국명이기도 하였다.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三國志)>등에 보이는 ‘사로(斯盧) · 사라(斯羅) · 신로(新盧)’ 등의 국명도 ‘서울’과 같은 음훈(音訓)으로, 서벌 · 서라벌 등의 다른 표기에 지나지 않는다. 곧, ‘서라벌’은 ‘새 벌’의 의미이고 한자로 음차하면 ‘신라(新羅)’가 된다. 또한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에서 서라벌(徐羅伐)을 금성(金城)으로도 표기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쇠벌[鐵原)’이라고 설도 있다.
백제에서는 백제의 서울을 ‘소부리(所夫里)’라 했다. 그리고 ‘소부리’의 ‘소(所)’는 ‘솟 · 솔 · 솟대 · 솔개’의 뜻으로 ‘높다’는 의미이고, ‘부리’는 ‘벌’ 또는 ‘높은 곳’의 의미로 결국, ‘소부리’는 ‘높은 벌’이라는 의미가 된다. 백제의 수도 ‘부여(夫餘)’의 옛 지명을 ‘소부리’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구려의 첫 도읍지 ‘졸본(卒本)’은 본디 ‘솔본(率本)’의 오기로 보고, ‘솔본’ 역시 서울을 가리키는 고구려 사람들의 옛말 중의 하나로 보기도 한다. 솔본은 현재 중국 요녕성(遼寧省) 환인현(桓仁縣)에 있는 오녀산성(五女山城)이다. 솔본의 의미도 ‘서라벌’이나 ‘소부리’와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결국 서울 지명의 유래는 신라의 수도 ‘서라벌’에서 음이 변천하여 서울이 됐다는 설, 백제 때의 ‘소부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 고구려의 수도 ‘솔본(率本)’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 세 가지 이론이 정립(鼎立)하고 있다.
이상의 자료로 서울의 의미를 종합해 보면 ‘서라벌(徐羅伐)’의 ‘서라(徐羅)’, ‘소부리(所夫里)’의 ‘소(所)’, ‘솔본(率本)’의 ‘솔(率)’ 등은 각각 우리말 ‘새 · 수리 · 솟 · 솔’의 음을 빌린 것으로 ‘새롭고 높고 신령하다’는 뜻이고, ‘벌(伐) · 부리 · 본(本)’ 등은 ‘벌판’의 뜻으로 보인다. 따라서 ‘서울’은 ‘새 벌 · 새 벌판 · 신령한 들판’의 뜻으로, 한자어로는 ‘신도(新都) · 상도(上都) · 신도(神都)’라 할 수 있으니, 이를 포괄적으로 말하면 ‘수도(首都)’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울’은 본래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의 중국어 표기는 ‘首尔’(shǒuěr, 셔우얼)이다. ‘首尔’의 우리 한자 발음은 ‘수이’지만 현대 중국 발음으로는 ‘서울’과 가깝고, 의미 또한 괜찮다는 판단에서 2005년 1월 19일 서울시 이명박 시장은 서울의 중국어 명칭을 ‘汉城(한성)’에서 ‘首尔(수이)’로 고친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지명이나 인명 등을 부를 때 현지 발음을 존중해서 적기로 한 규약에 기인한다. 물론 공청회와 여론을 거쳐서 인위적으로 정한 중국어 명칭이라 하겠다.
‘서울’이 ‘서러워서 울다’에서 왔다는 민간 속설이 있는데, 이는 임병양란(壬丙兩亂)과 왜정(倭政)으로 말미암은 상실의 아픔에서 생긴 말이다. 전쟁의 상흔 속에서 백성이 끝까지 믿고 있는 수도가 함락되었다는 사실은 서러워 울 정도를 지나 피를 토할 일이다. 허얼.
또 한 가지 민간 어원설이 있다. 태조 이성계가 수도를 개성(開城)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고자 전국을 찾아다니다가 너무나 지쳐서 지금의 왕십리(往十里) 근처에서 휴식하고 있었다.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한 노인이 지나가다 말고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기에 그쪽으로 가보니 눈[설(雪)]이 신비하게도 성벽처럼 두르고 있었다. 눈이 두른 길을 따라 성벽을 쌓고 도읍을 만든 것이 雪鬱(설울)이다. 곧 雪(눈 설), 鬱(막힐 울)에서 ‘서울’이란 말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또 한 번 웃는다.
서울은 통일신라와 고려 후기 때는 ‘한양(漢陽)’, 조선 시대는 ‘한성(漢城)’, 일제 강점기 때는 ‘경성(京城)’으로 불리다가, 1946년부터는 ‘서울’로 불리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서울’은 어느 시대에나 늘 사용되던 보통명사에서 오늘날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로 고유명사화한 것이다. 1394년 조선 왕조의 정도(定都) 이래로 618년 동안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맡고 있다.
서울, 이제 대한민국의 서울이 아니라 세계 속의 서울로 거듭나고 있다. 1988년에는 하계올림픽, 2000년 서울 코엑스에서는 제3차 아시아 · 유럽 정상회의(ASEM), 2002년 FIFA 월드컵,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 2012년 3월 26~27일 양일간의 세계 50여 개국 정상들과 UN 등의 국제기구 대표가 한자리에 모이는 핵안보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Seoul은 이미 국제적인 대도시로 성장했다.
그러나 서울이 정녕 제 이름값을 하려면, ‘서라벌’ · ‘소부리’ · ‘솔본’이 다스리던 모든 영역의 수도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고구려까지 아우르는 서울이어야 한다. 首尔 이름값을 하려면 세상에 우뚝 서서[首(머리 수)] 너[尔(너 이)]에게 다가가는 수도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영어권에서는 ‘Seoul’을 ‘쏘울(Soul)’로 읽고, 프랑스에서는 ‘Séoul’로 쓰고 스페인어권에서는 ‘Seúl’로 표기하며 모두 ‘쎄울’로 읽는다. ‘Soul of Asia’를 넘어 ‘쎄울’로……. 곧, ‘세상의 울타리’ 역할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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