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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톡톡- 오쇼(OSHO)

오쇼

진리는 하나다. 허위는 그대가 원하는 만큼 많을 수 있다. 종교는 하나다. 둘 일 수도 없다. 진리는 하나이므로. 그러나 철학은 그대가 원하는 만큼 많을 수 있다. 누구나 자기 철학을 가질 수 있다

- OSHO

변화는 곧 삶이고, 삶이 곧 변화라는 것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라. 매 순간 속에서 항상 새롭도록 하라 항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도록 하라. 항상 낡은 것을 과거 속으로 파묻어라. 어제는 어제일 뿐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 OSHO

사랑도 환상이다. 명상도 그러하다. 명상의 장점은 오직 그것이 사랑의 집착에서 그대를 끌어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를 끌어내고 나면 명상도 버려라. 명상도 새로운 환상을 창조한다. 쿤달리니가 올라오고 차크라에서 빛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영적인 것도 어떤 것도 아니다. 한낱 그대의 상상이 만들어 낸 산물일 뿐이다. 진실로 영적인 사람은 가장 평범하다. 그대가 지금 여기에 살아 있음은 존재에게 지금의 그대가 필요한 까닭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다른 누군가가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삶은 단순하다. 그리고 지금 그대의 삶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대가 있을 뿐.

- OSHO

태어날 때 그대는 나무로 태어나지 않는다. 그대는 단지 씨앗으로 태어날 뿐이다. 그대는 그대가 꽃피는 지점까지 성장해야 하며 그 꽃 피어남이 그대에게 만족과 충만을 줄 것이다. 이 꽃 피어남은 권력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돈과도 아무 관계가 없고 정치와도 아무 관계가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대와 관계가 있다. 그것은 개인적인 성장과정인 것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찬양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 OSHO

공기와 육체와의 관계는 사랑과 영혼의 관계와 같다. 그것의 값어치는 무한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거저 얻는다. 사람들은 아직도 너무나 어리석어서 신의 위대한 선물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 강은 바로 옆에서 계속 흐르는데 사람들은 항상 목마르다.

- OSHO

사람들은 이미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상태이다. 완벽이라 함은, 성취해야 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대가 지금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완벽함이 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대 자신을 받아들여라. 그런 받아들임 속에서 열반이 일어난다.

- OSHO

인간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런 삶을 살아야 한다. 자연스런 죽음은 어떤 억제나 어떤 억압도 없이 자연스럽게 산 삶의 절정이다. 마치 동물들이 사는 방식으로, 새들이 사는 방식으로, 나무들이 사는 방식으로 어떤 분열도 없이 산 삶의 절정, 그리고 마치 그대는 없고 삶이 그 스스로 움직이듯이, 그대 쪽에서는 어떤 방해도 하지 않고 자연이 그대를 통해 흐르는 것을 허락한 삶의 절정이다.

- OSHO

종교성은 단지 성장하기 위한 도전을 의미하며 씨앗이 그 표현의 궁극적인 정점에 도달 하는 것, 그리고 수천 개의 꽃을 피워 그 속에 숨겨져 있던 향기를 퍼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 향기를 나는 종교성이라 부른다.

- OSHO

이 순간부터 그대 자신이 삶과 세계의 주체임을 자각하라. 이것이 곧 구도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구도는 자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는 뜻이다.

- OSHO

우리는 다른 어떤 목적 때문에 신을 원한다. 그대 신을 원하는 것은 거짓일 뿐이다.

- OSHO

외부로 부터 내면으로 방향을 바꾸라 그러면 그것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니 그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무엇인가? 그대가 마음속에 있을 때 그대는 외부에 있는 것이다. 그대가 무심 속에 있을 때 그대는 내면에 있는 것이다.

- OSHO

삶에서 그대의 지성과 의식을 높일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사용하라.

- OSHO

신뢰는 확실히 사랑보다 더 높은 가치이다. 사랑은 신뢰 속에 포함되지만, 신뢰는 사랑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대가 "당신을 신뢰합니다"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그대가 사랑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나 그대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 신뢰는 그것과 아무 관계가 없다. 시실, 그대의 사랑은 매우 의심스럽고, 신뢰할 수 없으며, 매우 두려워하고, 항상 경계하고 있으며, 그대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사랑은 거의 탐정이 된다. 그들은 서로를 염탐하고 있다. 만일 사랑이 신뢰의 한 부분으로서 온다면 그것은 아름답다. 왜냐하면 신뢰는 사랑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OSHO

사랑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사랑은 나누어 줌으로써 커지고 그대가 가지고 있으면 죽는 특정한 범주에 속하는 질이다. 그대가 사랑에 대해 인색하다면 사랑은 죽는다. 그러므로 진정한 낭비가가 되라. 누구에게 줄 것인지는 신경 쓰지 말라. "나는 특정한 자질을 가진 특정한 사람에게 사랑을 줄 것이다." 라는 것은 진정으로 인색한 마음이 갖는 생각이다.

- OSHO

진리를 객체(object)로 생각하지 말라. 진리는 객체가 아니다. 진리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여기에 있다.

- OSHO

평범한 삶에 안주하지 말라. 이것은 삶을 거역하는 죄악이다. 위험이 없는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이다.

- OSHO

나는 새로운 시작이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종교의 시작은 아니다. 나는 어떠한 형용사도, 어떠한 경계도 모르는, 오직 영혼의 자유만을, 오직 그대 존재의 침묵만을, 오직 그대 잠재력의 성장만을, 그대 밖의 신이 아닌 오직 그대 자신으로부터 흘러 넘치는 신성만을, 그대 안에 존재하는 그 신성의 경험만을 아는 나는 완전히 새로운 종교성(religiousness)의 시작이다.

- OSHO

진실로 아름다운 사람, 진실로 조화로운 사람은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는다. 만일 길에 바위가 놓여 있다 해도 그것을 거부하려고 하지 말라. 그것을 디딤돌로 사용하라

- OSHO

사람들은 신에 대해 쓰면서 마치 신을 본 것처럼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각자가 쓰는 신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논쟁을 그치지 않는다. 수천년동안 사람들은 신에대해 천국이나 지옥에 대해 논쟁이 오고 있다. 그러나 누구하나 그것이 가설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신을 본 자는 없다. 따라서 누가 나는 신을 보았다 나는 신을 안다. 해도 보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한다 하는 자나 별반 다를 것 없는 헛된 것이다.

- OSHO

진리는 광대하다. 그냥 광대한 것이 아니라, 하늘만큼이나 광대하다. 전 우주가 진리를 품고 있고 우주는 무제한적이고 끝이 없다. 어떻게 전체의 진리를 그대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대의 손 안에 절대적인 진리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 에고는 그럴 수 있으리라고 착각한다.

- OSHO

비교라는 바로 그 개념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각 개인은 독특하다. 왜냐하면 그와 비슷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개인들이 서로 비슷하다면 비교는 정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비슷하지 않다. 쌍둥이조차도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그대와 똑같이 닮은 사람을 찾아내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독특한 사람들을 비교하고 있으며 그것이 모든 문제를 만들어 낸다.

- OSHO

어느 누구도 우월하지 않으며 어느 누구도 열등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서로 같지 않다. 모든 사람은 독특하다. 평등함은 심리적으로는 잘못된 것이다. 우월과 열등, 평등과 불평등이라는 모든 개념을 버려야 하며 그것들을 독틈함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개인은 독특하다. 단지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라. 그러면 그대는 모든 개인이 다른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독특함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 OSHO

만일 지성이 순수하게 남아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가능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지성이 순수함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단지 교활함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지성이 아니다.

- OSHO

내게 있어서 심각함은 병이다. 그리고 유머 감각은 더욱 인간적이고 더욱 겸손하게 만든다. 유머 감각은 - 내가 보기엔 - 종교성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들 중의 하나이다.

- OSHO

만일 마음과 가슴 사이에 선택의 문제가 있다면, 가슴이 항상 옳다. 왜냐하면 마음은 사회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교육된 것이다. 그대는 마음을 존재계로부터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받았다. 가슴은 오염되지 않았다. 가슴은 순수한 존재이다. 그래서 그것은 감성을 가지고 있다. 가슴의 관점에서 보라. 그러면 모순들이 얼음처럼 녹기 시작할 것이다.

- OSHO

사랑을 주는 것은 참되고 아름다운 경험이다. 왜냐하면 그때 그대는 황제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는 것은 매우 작은 경험이며 거지의 경험이다. 거지가 되지 말라. 최소한 사랑에 관한 한 황제가 되라. 왜냐하면 사랑은 그대안에 있는 다 소모할 수 없는 특질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원하는 만큼 계속해서 줄 수 있다. 사랑이 다 고갈되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며 언 날 갑자기 "맙소사! 더 이상 나누어 줄 사랑이 없다."고 말하게 될까봐 걱정하지 말라.

- OSHO

그대가 안녕과 행복감을 느낄 때 지켜보는 자를 기억하라. 그대가 불행 속에 있을 때, 고통 속에 있을 때 지켜보는 자를 기억하라. 모든 환경 속에서, 모든 분위기 속에서 지켜보는 자를 계속 기억하라. 곧 그대는 지켜보는 자 속에 중심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는 더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 날은 한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날이 될 것이다.

- OSHO

경험은 왔다가 사라진다. 그것에 의지하지 말라. 그대가 기쁨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며, 행복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는 '경험하는 자'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이 의식이 누구인지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 OSHO

세상 모든 사랑을 누릴 수 있는데도 그대가 비참하다면, 그것은 그대가 비참해지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고 불행해지는 것은 그대 선택에 달려 있다. 만일 그대가 행복을 선택한다면, 사랑 또한 그대를 향해 달려올 것이다. 애써 오라고 손짓할 필요가 없다. 물이 아래로 흐르고 불이 위로 피어오르는 자연법칙처럼 사랑이 행복을 향해 흐르기 때문이다.

- OSHO

그들은 붓다나 크리슈나를 아름답게 그려놓아 그대 안에 붓다나 예수, 크리슈나가 되고 싶은 커다란 열망이 일어나도록 만든다. 이 열망이 그대 고통의 근원이다

- OSHO

사랑이란 조건을 없애 주는 과정이다. 사랑이란 그대를 덧씌우고 있는 낡은 틀을 벗기고 새로운 틀을 주지 않는 해방의 과정이다. 만일 사랑이 그대에게 새로운 틀을 준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정치이다.

- OSHO

탐욕은 단순히 그대가 깊은 공허감을 느끼고 있으며, 그래서 가능한 어떤 것으로라도 공허감을 채우기를 바란다는 것을 의미한다.

- OSHO

권위주의적인 사람들은 열등 콜플렉스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서 그들의 우월감을 내세운다. 그들은 그들이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의 말이 법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내면 깊은 곳에서 그들은 매우 열등한 존재들이다.

- OSHO

습관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반복될 뿐이지만, 의식의 세계에서는 반복이란 없다.

- OSHO

만일 그대가 질투없이, 집착없이 사랑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그대가 그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의 행복이 곧 그대의 행복이라면 - 심지어 그가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있고 그래서 그가 행복하더라도 - 그대는 행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그를 너무 사랑하므로 그의 행복이 곧 그대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 OSHO

사랑의 본질은 우정이다. 연인들은 관계가 순조로우면 두려움을 갖기 시작한다. 사랑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안정되면, 만사가 고요해지고 그 모습이 우정을 닮아 간다. 우정은 사랑이라는 빵의 크림이다. 사랑의 정수(精髓)이다. 그러니 진정하라! 염려하지 말라.

- OSHO

탄생과 죽음은, 참된 자아가 길고 긴 영원한 여행을 하는 동안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탄생 이전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죽은 후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참된 중심을 알고 나면 영원성을 깨닫게 되고 그것이 신을 아는 것이다.

- OSHO

성(性)은 삶의 시작이며 죽음은 그 삶의 끝이다. 따라서 성(性)과 죽음은 같은 에너지의 양 끝이며, 한 에너지의 양극(兩極)이다. 그들이 연결되지 않을 리 없다. 아마도 성은 죽음의 단편과 같을 것이며, 죽음은 성의 단편이 합쳐진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 분명히 양쪽 끝에 작용하는 하나의 에너지가 있다.

- OSHO

비판의 소리에 신경 쓰지 말라. 이상하게도 그대가 원하는 것은 항상 하면 안 되는 것이었고, 그대가 원하지 않는 것은 항상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대의 삶이다. 당장 내일 그대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충분히 즐겨라. 이것은 어느 누구의 삶이 아니다. 그대의 부모나 친구의 삶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그대의 삶이다.

- OSHO

존재에는 계획이라는 것이 없다. 계획되어 있지 않는 삶이야말로 무한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그 앞에는 항상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다.

- OSHO

일어나는 모든 것을 깊이 받아들이면 그것은 축복이 된다. 모든 것은 내면의 존재가 침묵을 원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존재의 부름에 응하라.

- OSHO

진정 용기 있는 자는 자신의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것은 단지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공포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자각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수용하라.

- OSHO

우리는 한 존재계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누구에게 상처를 주든 결국은 그대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그대가 좀더 각성하게 되면 그때 그대는 말할 것이다. "맙소사! 이 상처는 내가 나에게 입힌 것이다." 그대는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누군가를 상처 입혔다. 아무도 서로 다르지 않다. 전 존재계는 하나이며 우주적인 단일체이다. 이러한 이해로부터 비폭력이 생긴다.

- OSHO

그대가 분노할 때 그대는 자신을 벌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불타고 있으며, 그대의 가슴과 가슴의 고귀한 자질들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증오로 가득 차 있다.

- OSHO

신은 그대에게 이 모든 위험과 더불어 삶을 준다. 나의 산야스는 이런 도전을 받아들여야 한다. 위험스럽게 사는 것이 나의 산야스에 관한 모든 것이다. 그대가 더 위험스럽게 살고, 그대가 더 많이 모험을 하면, 그대는 더 많이 자라고, 그대는 더 많이 성실해지고, 결정화되고, 그대의 영혼은 칼로 자른 듯이 명료하고 분명한 현상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모호하고, 구름이 끼어 있고, 의심스러운 것으로 남아 있다.

- OSHO

The Rebellious Spirit : 반역적이지 않은 사람은 종교적일 수 없다. 반역은 종교의 근본 그 자체이다. 지혜로운 자는 반역자가 된다. 반역의 사람만이 지혜롭다. 반역이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가 나에게 주입한 모든 것을 과감히 벗어던지는 것이다.

- OSHO

지금,바로 지금이야말로 그대의 유일한 시간이며 지금 바로 여기야말로 그대의 유일한 장소이다. 그대가 '지금 여기'에 있을 때 행복은 자연히 그대를 따라온다

- OSHO

왜 문제를 만드는가? 행복할 때는 행복하라. 그것을 즐기되 동일시되지 말라. 행복해지라고 말할 때 내 말은 그 행복을 즐기라는 뜻이다. 날씨가 바뀌게 그냥 내버려 두라. 아침은 낮이 되고 낮은 저녁이 되며 그 다음에는 밤이 온다. 그대를 둘러싼 분위기가 행복으로 가득차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분위기를 즐겨라. 그 다음에 슬픔이 몰려오면 그것 또한 즐겨라. 나는 즐거움을 가르친다. 어떤 경우가 오든 무조건 즐겨라. 조용하게 앉아 슬픔을 즐겨라.그러면 돌연 슬픔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다. 그 슬픔은 오묘한 평화의 순간이 된다.거기엔 아름다움이 있다. 아무 것도 잘못된 점이 없다.

- OSHO

우리가 비참한 것은 사랑이라는 언어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언어를 잊어버린 것은 우리 자신을 이성과 지나치게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이성이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성은 독점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 그대의 존재 전체에 바짝 들러붙어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성에서 느낌으로 옮겨 가 내면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은 진정 용기 있는 자 - 미친 사람 -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성이, 논리가, 수학이 지배하는 마음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참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태도를 버리는 순간, 내면 속에는 산문이 아니라 시가 자리잡게 된다. 목적이 아닌 놀이가, 돈이 아닌 명상이, 권력이 아닌 검소함과 무소유와 삶의 기쁨이 마음 한 가운데 자리 잡게 될 것이다.

- OSHO

사랑을 그냥 묻어 두거나 계산하지 말라. 아까워하지 말라. 그러면 모두 잃을 것이니. 사랑을 꽃피워 함께 나누라.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다.

- OSHO

기러기는 물에 자신의 그림자를 비추려는 욕망이 없다. 그리고 물은 기러기의 상을 받아들이려는 욕망이나 마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일어난다. 기러기가 날아갈 때면 물은 기러기를 비춘다. 그 반영은 거기 있다. 그 상은 거기 있다. 그러나 물은 비추려는 마음이 없고 기러기도 비춰지려는 갈망이 없다.

- OSHO

모든 것을 걸어라. 도박가가 되라. 모든 것을 내맡겨라. 왜냐하면 다음 순간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왜 신경 쓰는가? 왜 걱정하는가? 위험하게 살라. 즐겁게 살라. 두려움없이 살고 죄책감 없이 살라. 지옥에 대한 두려움없이, 그리고 천국에 대한 탐욕없이 살라. 단지 살아리.

- OSHO

그대의 아이들이 그대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존재계에 속하며 그대가 단지 통로였다는 것을 이해한다며, 그대는 존재계가 아름다운 아이들의 통로로 그대를 선택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는 아이들의 성장과 그들의 가능성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되며 그대 자신을 아이들에게 강요해서도 안된다.

- OSHO

우정은 가장 순순한 사랑이다. 우정은 사랑의 가장 높은 형태이다. 그 속에서는 어떤 것도 요구되지 않으며, 어떤 조건도 없고 단지 주는 것을 즐길 뿐이다. 그는 많은 것을 얻는다.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며 사실 그것은 저절로 일어난다.

- OSHO

과거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 단지 현재에 살라. 그러면 모든 과거도 모든 미래도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니

- OSHO

성숙함은 그대의 삶의 경험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것은 그대의 내적인 여행, 내적인 경험과 관계가 있다.

- OSHO

내게 있어서 불복종은 커다란 혁명이다. 불복종은 모든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복종은 단순히 어떤 것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혹은 그것을 하는 것이 유익한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복종은 그대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 OSHO

그대는 그대가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대가 비구름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비구름은 어디에다 비를 내릴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비구름은 자신의 짐을 덜고자 하며 그 짐벗음은 커다란 구제이다. 그래서 첫번째 비밀은 사랑을 구하지 말며 다른 사람이 그대에게 요구하면 사랑을 주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다리지 말라는 것이다. 단지 주라.

- OSHO

그대가 누구든 간에 그대는 그대다. 그대를 받아들이라. 다른 무엇이 되기를 욕망하지 말라.

- OSHO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언제나 행복할 거야. 어떤 일도 나에게 영향을 줄 수는 없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독립적인 사람이다.

- OSHO

알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사람이 할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 OSHO

그대가 충분이 강해져서 사회속에서도 진짜 얼굴을 갖고 움직이고 싶은 날이 올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에게 달려있다.

- OSHO

죽음은 없다. 그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내 말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대가 그것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죽음은 없다. 단지 생명이 있을 뿐이고 생명은 영원하다.

- OSHO

인간을 인생 안에 놓치 말라, 인생이 인간 안에 있게 하라

- OSHO

두 개의 극성을 가진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마음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긍정에서 부정으로 시시각각 변한다. 마음의 이 두 극은 마치 음극과 양극을 가진 전극과도 같다. 하나의 극으로만 전기가 발생하지 않듯이 인간의 마음 역시 하나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그대가 때로는 환희의 기쁨을, 때로는 암담한 절망을 느끼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암담한 절망의 정도는 환희의 기쁨을 느끼는 정도에 비례한다. 만일 그대가 기쁨의 절정을 맛본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슬픔의 밑바닥까지 추락할 것이다. 더 높이 올라갈수록 더 깊은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이것은 언제나 정비례한다. 올라가는 만큼 내려가고, 슬퍼하는 만큼 기뻐하게 된다.

- OSHO

아름다운 모든 것은 항상 홀로 있을 때 일어난다. 그 어떤 것도 무리지어 있을 때 일어나는 법은 없다. 초월적인 모든 것은 절대적인 고독속에 있을 때만 일어난다.

- OSHO

그대가 살고 있는 이 작은 삶은 낙원으로 바뀔 수 있다. 바로 이 땅이 연꽃낙원이다.

- OSHO

참된 종교는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유익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삶 안에 존재하는 진리를 깨닫는 것은 해방을 향한 축복의 첫걸음이다. 삶을 놓치는 사람은 다른 모든 것도 놓치고 만다

- OSHO

진리는 경험이어서 가르칠 수가 없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고 존재하는 것이다

- OSHO

변화가 곧 삶이고, 삶이 곧 변화라는 것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라. 매 순간 속에서 항상 새롭도록 하라.

- OSHO

사람들은 명사의 세계를 창조하고는 그 속에 갇혀버렸다. 그리고는 나무와 강, 산들과 별들의 세계를 잊어버렸다. 신의 세계는 명사라는 것을 모른다. 단지 동사만을 알 뿐이다. 모든 것이 과정이다. 신은 어느 대상이 아니라, 진행 그 자체인 것이다.

- OSHO

지금 그대는 과학기술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수혜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내일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우리는 상상 가능한 모든 욕망을 실현했지만, 그것들은 우리를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했다. 이제는 채우지 못한 진정한 불만족을 충족시켜야 한다. 참된 불만족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은총이다.

- OSHO

그대가 내면의 빛에 이를 때까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려 들지마라 사회는 자신의 내면의 빛을 깨닫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남을 돕는 이런 해로운 사람들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

- OSHO

어떠한 믿음도,관념도 갖지 말라. 믿어야 할것이란 세상에 없다. 그렇다. "알아야"할건 많지만, 믿어야 할건 없다. 믿음이란 모두 두려움,공포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 OSHO

참사람은 마음놓고 웃고 또 울줄도 안다. 참사람은 행복해 할줄도 불행할 줄도 안다. 그의 불행,그 고통은 하나의 삶이다

- OSHO

집착과 사랑이 하나라는 생각을 떨쳐 버려라. 집착과 사랑은 서로 적이며, 모든 사랑을 파괴하려는 것은 집착이다. 그대가 집착을 키우고 그것에 자양분을 준다면 사랑은 파괴될 것이다. 그대가 사랑을 키우고 사랑에 자양분을 준다면 집착은 저절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사랑과 집착은 하나가 아니다.

- OSHO

자유로운 눈으로 삶을 바라보라. 삶에 대해 어떤 특정한 시각을 갖는 것은 삶에서 멀어지는 지름길이다.

- OSHO

해답이란 없다. 그런데도 마음은 의문들로 가득하다. 의문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 모든 질문들은 본디 인간이 만든것이다. 존재는 아무 해답을 갖고있지 않다 존재는 아무 해답이 없는 완전한 침묵상태이다

- OSHO

종교는 논리가 아니라 시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것은 철학도 아니요, 예술이다

- OSHO

모든 것은 서로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먹고 있으며, 또한 먹히는 존재다. 우리는 한쪽으로는 얻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준다. 우리는 사과를 먹는다. 그러나 어느 날 사과나무는 우리의 육체를 먹을 것이다. 육체는 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OSHO

내일을 생각하지 말고 자유롭게 흘러라. 느긋한 마음으로 혼돈을 즐겨라 -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되는 법이다. 그대가 변화를 받아들이면, 매순간 그대에게 새로운 세계, 새로운 삶이 찾아올 것이다. 그대는 매순간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 OSHO

홀로 있음을 찬양하라, 그대의 순수한 공간을 찬양하라. 위대한 노래가 그대의 마음에서 울려 퍼지리라. 그 노래는 의식의 노래, 명상의 노래일 것이다. 멀리서 홀로 있는 새가 부르는 노래일 것이다. 딱히 누구를 부르는 게 아니라 단지 부르는 것이다. 가슴이 가득 채워져서 부르길 원하기 때문이다. 구름이 가득 채워져서 비를 내리길 원하기 때문이다. 꽃이 가득 채워져서 꽃잎을 열어 향기를 퍼뜨리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대의 홀로 있음이 춤이 되게 하라.

- OSHO

어떤 전쟁도, 어떤 투쟁도, 질투도, 증오도 필요가 없다. 삶은 너무나 짧고 사랑은 너무나 고귀하다. 그리고 그대의 삶을 사랑과 조화와 기쁨으로 채울 수 있고, 그대의 삶 그 자체를 시(詩)로 만들 수 있는데 그대가 그것을 놓친다면, 그것에 대해 오직 그대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지 다른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 OSHO

진정한 기도는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하는데 말은 필요없다. 진정한 기도는 순수한 침묵이다. 깊은 침묵에 빠지는 것이다. 사실 진정한 기도란 신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존재에게 절하는 것이다. 그것은 말이 아니다. 신은 모든 곳에 있다. 모두가 신이다. 그래서 그대는 깊은 감사와 환희와 즐거움과 사랑을 담아 절을 할 뿐이다.

- OSHO

그대는 그대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각자가 그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그대 앞에 모든 길들을 펼쳐놓아 그대가 보고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올바른 길이 나타날 때면 그대는 즉시 그대 안에 커다란 기쁨이 일어나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이 신호이다. 그것이 그대의 때가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그대가 기다려온 때라는 것을, 이것이 그대의 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 OSHO

집이 없는 것은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자유이다. 그것은 거기 집착이 없음을 의미하며 외부의 어떤 것에도 사로 잡혀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대가 외부로부터 어떤 따뜻함(warmth)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며, 그대 내면에 그대의 따뜻함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대는 따뜻함의 근원을 가지고 있으며 더 이상의 따뜻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대가 집 없이 어디에 있더라도 이상하겠지만 그대는 집에 있는 것이다.

- OSHO

존재계는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그런데 어떤 것도 되돌려줄 방법이 없다. 심지어 감사를 표현할 말조차도 없다. 유일한 방법은 나의 모든 호흡이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도달한 것과 똑같은 의식의 에베레스트에 도달하도록 하는 데 이용되게 하는 것이다.

- OSHO

전체적으로 살아라. 존재계는 그대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 OSHO

마음의 모든 기능은 계속해서 분리하는 것이다. 가슴의 기능은 마음이 전혀 보지 못하는 연결 고리를 찾는 것이다.

- OSHO

그대는 그대 존재의 바로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무지를 아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돈에 대한 욕망, 권력에 대한 욕망, 존경과 명예에 대한 욕망을 통해서 이러한 어둠으로부터 도피한다. 내면에 어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파괴적인 일도 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창조성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창조성은 의식적이고, 깨어 있으며, 빛과 사랑을 가진 그대의 존재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 OSHO

위험 없이는 변화하고 싶어도 변화할 수 없다. 그런 조건 - 위험이 없는 - 하에서는 모든 것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에 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위험이 따라야 변화가 이루어진다. 진정한 이해만 있으면 변화는 저절로 일어난다. 이해는 급진적인 혁명이다. 이것 외에 혁명이란 없다.

- OSHO

느낌은 어떤 것도 정의할 수 없다. 그대가 정의한다면 느낌은 멈춘다

- OSHO

아름다운 모든것은 항상 홀로 있을때 일어난다 그 어떤것도 무리지어 있을때 일어나는법은 없다 초월적인 모든것은 절대적인 고독속에 있을때 일어난다

- OSHO

삶의 진정성은 목적지에 있지 않다. 진정한 것은 그 과정의 아름다움에 있다. 그것은 여행 그 자체다. 모든 것은 여행이며, 흰구름의 길이다

- OSHO

마음 전체가 빛으로 가득할 때 삶은 비로소 하나의 기적의된다. 더 이상 평범한 삶이 아닌, 모든 일들이 비범해지는 특별한 삶으로 바뀐다.

- OSHO

세상을 정복하는 자가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은 자신을 정복하는 자이다.

- OSHO

사랑으로부터, 지성으로부터, 관대함으로부터 나오는 공산주의는 진실한 것이다. 그러나 폭력으로부터 나오는 공산주의는 진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나누어 줄 것을 갖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 OSHO

어느 누구도 섬이 아니다. 이것은 삶의 근본적인 진리들 중의 하나로 기억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쉽게 잊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한 생명력의 일부분이다. 즉 하나의 대양 같은 존재계의 일부분이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뿌리 깊은 곳에서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사랑의 가능성이 생긴다. 만일 우리가 하나가 아니라면, 사랑의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 OSHO

이완하라. 그대가 단지 주시자일 뿐이라는 것만을 기억하라. 육체는 그대가 아니다. 마음은 그대가 아니다. 그대는 단지 하나의 거울이다. 그리고 그대가 거울과 같은 주시 속으로 침잠함에 따라 전 존재는 엄청나게 아름다운 모습을 띄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신성해진다.

- OSHO

스승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홀로 있음의 사람이다. 그래서 스승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연인이다. 그대는 붓다나 그리스도보다 더 위대한 언인을 찾아낼 수 없다. 그들에게 사랑은 이제 너무 질적으로 다른 것이 되어 우정과 공감, 연민의 특성을 지닌다. 열정은 사라졌다.

- OSHO

폭풍의 가장 깊은 중심에 도달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대의 전생애는 변화의 폭풍이며 변하는 상황과 변하는 색채의 폭풍이다. 그러나 그 폭풍의 중앙에는 고요한 중심이 있다. 그것이 그대이다.

- OSHO

삶은 설명될 수 없다. 죽음은 이미 끝이 난 것이지만, 삶은 언제나 여행의 도중에 있기 때문에 설명이 불가능하다.

- OSHO

삶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인 농담이다. 삶은 절대로 심각한 현상이 아니다. 삶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대는 삶을 놓칠 것이다. 삶은 오직 웃음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 OSHO

존재계의 일부가 되라. 그대가 삶과 하나라고 느끼면 삶을 신뢰할 수 있다.분리되었다는 느낌을 버리라. 그저 물방울이 되어라. 바라로 떨어져서 바다와 하나가 되는 물방울이...

- OSHO

겸손하기만 하다면 모든 존재가 당신에게 스승이 된다. 그러나 부처가 곁에 있더라도 전혀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OSHO

회의와 의심이 일어나면, 가슴은 긴장하게 된다. 가슴은 신뢰와의 깊은 어우러짐으로 이완하고, 의심으로 수축하기 때문이다.

- OSHO

살며 사랑하라. 그리고 전체적이며 강렬하게 사랑하라. 그러나 결코 자유에 반대하지 말라. 자유는 궁극의 가치로 남아 있어야 한다.

- OSHO

시간은 세가지 시제 - 과거, 현재, 미래 - 로 이루어진다고 생각되는데, 이는 잘못이다. 시간은 오직 과거와 미래로 이루어진다. 현재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삶이다. 그래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이 순간에 사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 과거는 단지 기억들의 집합이며 미래는 단지 그대의 상상이며 그대의 꿈이다. 실재는 지금 여기이다.

- OSHO

가슴은 이중성을 초월한다. 가슴은 사물을 명료하게 보며, 사랑은 가슴의 자연스런 특징이다. 거기 어떤 것도 훈련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 사랑은 대조물(counterpart)로서 중오를 갖지 않는다.

- OSHO

남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나는 너를 지배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진정한 사람은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는다. 자유야말로 사람의 본래적 권리이므로

- OSHO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인간은 법과 질서가 없어도 살 수 있다. 사랑이 그들의 법이 되고 이해심이 그들의 질서가 될 것이다

- OSHO

나무가 활력의 에너지로 차고 넘치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꽃들은 일종의 부산물이자 사치품이다. 그대 안에 에너지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으면, 그 에너지는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영성을 얻는 것은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영성은 완전한 사치품이다. 그대의 생명력이 차고 넘치면, 금잔화와 같은 꽃이 내면에 피어오른다.

- OSHO

그대가 장미꽃을 감상할 줄 안다면, 마당의 나무와 산들, 강, 별들과 달을 향유할 줄 안다면, 그대가 사람들과 함께 즐거울 수 있다면, 그대는 그렇게 돈에 집착하지는 않을 것이다. 집착은 우리가 축제의 언어를 잊었을 때 일어난다. 그러므로 돈은 그대의 유일한 자랑거리가 되었다. - 그대의 삶은 그렇게 공허하다.

- OSHO

완벽한 제자가 되면 그대는 스승이 될 것이다.

- OSHO

느낌과 이성이 균형을 이룰 때, 인간은 자유로워진다. 바로 그러한 균형 속에 자유와 평정과 고요와 침묵이 있다.

- OSHO

겸손하라. 그러면 아무도 그대를 모욕하지 못한다. 에고를 버려라. 그러면 누구도 그대에게 상처를 줄 수가 없다.

- OSHO

그대가 세상이다 오직 그대만이 존재할 뿐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것은 단지 거울 일 뿐이다. 사념이나 기분을 통해서 세상을 보지 말라 맨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맨 귀로 세상을 들어보라. 그대와 세상사이에 마음을 개입시키지 말라.

- OSHO

만약 그대가 죽음을 받아들였다면 두려움은 없다. 만약 그대가 삶에 집착한다면 그때는 모든 두려움이 거기 있다.

- OSHO

사람들은 기쁨은 항상 뒤로 미루면서 슬픔은 뒤로 미루는 법이 없다. 그리고 죽음이 찾아올 때 당황한다. 슬프고 비참한 삶만을 살아왔을 뿐 기쁨의 삶은 항상 미루어왔기 때문이다.

- OSHO

집을 찾는 사람들은 항상 절망에 빠지며 결국에는 이렇게 느낄 것이다. "우리는 속아 왔다. 삶이 우리를 속였다. 어쨋든 삶은 우리에게 집을 찾고자하는 욕망을 주었다. 그러나 거기 집은 결코 없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남편을 찾고, 아내를 찾고, 아이를 낳고..... 그는 가족을 만드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심리적인 집이다. 그는 건물이 아니라 거의 살아 있는 실체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종류의 생각은 그대에게 불행을 낳는다. 왜냐하면 어느날 그대는 함께 살아온 남편이, 그리고 함께 살아온 아내가 낮선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50년을 함께 살고도 낯설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반대로 그것은 깊어졌다.

- OSHO

사회를 개인보다 더 중요하게 만들려는 어떠한 철학적 체계도 위험천만하다. 그것은 개인을 죽일 것이다. 그리고 실체로서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은 개인이다. 사회란 것은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 OSHO

그대의 마음을 더 자각하라. 그러면 마음을 자각하는 가운데 그대는 그대가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혁명의 시작이다. 그대는 높이 더 높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대는 더 이상 마음에 붙잡혀 있지 않다. 마음은 바윗덩이와 같은 작용을 하여 그대를 아래로 끌어 내린다. 마음은 그대를 중력의 장(場) 안에 붙잡아 둔다. 그대가 더 이상 마음에 묶여 있지 않게 되는 순간 그대는 붓다장(buddhafield)으로 들어간다.

- OSHO

그대의 명상이 꽃피기 시작할 때, 그대의 몸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하지는 않으리라. 다만 그대가 사라지리라. 푸른 하늘로 사라지는 향과 푸른 하늘로 사라지는 장미향과 같이.... 그대는 우주의 일부가 되리라.

- OSHO

"지금의 내가 무엇이든 그것은 나의 선택이다. 과거가 아닌 현재의 선택이다. 그것은 이 순간의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것을 바꾸고 싶다면 그것을 바꾸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의 자유이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어떤 사회적 강요도, 어떤 국가도, 어떤 역사도, 어떤 경제도, 어떤 무의식도 나를 막을 수 없다. 만약 내가 그것을 바꾸기로 결심했다면 나는 그것을 바꿀 수 있다."

- OSHO

사랑은 그대로 하여금 신뢰가 가능한 지점에 도달하는 것을 도와준다. 사랑이 없다면 신뢰는 가능하지 않다. 사랑은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다리와 거의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다리이다. 만일 그대가 사랑을 이용할 수 있다면 사랑은 그대를 신뢰에 이르게 해준다. 그러나 사랑이 없다면 그대는 신뢰에 직접 이를 수 없다. 사랑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랑은 수단이며, 그 목적지는 신뢰이다.

- OSHO

사랑은 한 줄기 강물이다. 사랑은 언제나 강물처럼 흐른다. 그러한 움직임이 바로 강물의 생명이고 사랑의 생명이다. 강이 흐름을 멈추면 고여 썩고 만다. 그것은 더 이상 강이 아니다. 그러나 뭔가 허전하다고 생각지 말라. 허전함은 사라의 속성이다. 완전하지 않기때문에 사랑이 좋은 것이다. 뭔가 빠져 있다면 그대는 그것을 채우려고 할 것이 아닌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두 세계가 만났는데 어떻게 딱 들어 맞을 거라고 기대하는가? 그런 기댜가 좌절과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서로 맞지 않다고 걱정하지 말고 조화와 조율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 이것이 사랑의 방법론이다.

- OSHO

삶은 불안하다 사랑 또한 불안하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이 바로 삶과 사랑이다. 삶이 안정적인 순간은 오로지 그대가 죽을 때뿐이다. 그때는 모든 것이 확실해진다. 삶은 하나의 기적이다. 그대 역시 단순한 기적이다. 그대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오히려 살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더 많지 않은가? 이렇듯 그대가 삶의 불안정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기뻐할 때 성숙이 그대를 찾아올 것이다.

- OSHO

바람과 비와 태양의 햇살을 두려워하지 말고 즐겨라. 삶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성숙해지는 것은 그대가 날마다 새로운 것을 흡수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수용은 그대가 문을 열때 가능한 것이다.

- OSHO

명상은 돈으로 살 수 없으며, 사랑도 살 수 없고, 우정도 살 수 없으며, 감사도 살 수 없다. 그러나 아무도 이러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

- OSHO

사랑과 자유, 이것이 인간이 가진 문제의 전부이다. 사랑과 자유, 이것이 인간의 언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말이다. 사랑을 선택하고 자유를 버리는 일은 쉽다. 하지만 그로인해 그대는 항상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고, 결국에는 그 욕망이 사랑마저 산산조각 낼 것이다. 어느 날 그대는 사랑을 떠나고 자유를 향해 돌진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 없이 자유롭기만 한다면 또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랑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은 영혼의 호흡과도 같다. 역설을 선택하라. 모순, 그대로를 받아들여라. 사랑이 자유를 , 자유가 사랑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하나가 아니라 둘 다 선택하라. 사랑 속으로 뛰어들고, 그 속에서도 자유로움을 유지하라.

- OSHO

어느 누구도 그대의 공허감을 채워 줄 수 없다. 자신의 공허감과 조우(遭遇)해야 한다. 그걸 안고 살아가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 OSHO

삶은 흐르고 있다. 그것은 강이며, 끊임없는 흐름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정적(靜的)인 것으로 생각한다. 오직 사물들만이 정적이다. 오직 죽음만이 변하지 않고 있다. 삶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삶이 많을 수록 더 많은 변화가 있다. 풍부한 삶에는 매순간 엄청난 변화가 있다.

- OSHO

시인이 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한 방법이다. 시인이란 삶을 사랑하고, 삶을 경외하고, 삶과 진실한 관계를 맺는 자이다.

- OSHO

에고에 있어서 홀로 있음은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니다. 오직 누군가를 복종시킬 때, 그리고 "내가 그대보다 더 높고, 그대보다 더 크다."라고 말할 때를 즐긴다. 에고는 결코 홀로 있음을 즐기지 못한다. 홀로 있을 때 에고를 가지고 있어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 OSHO

자유 속에 살고 있는 독립적이고 완전히 자율적인 존재만이 진리의 경험에 이를 수 있다.

- OSHO

만일 그대가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면 삶은 그대에게 더 많은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삶은 결코 그대가 꿈꾸는 대로 되지 않는다. 혼란스럽지 않고 싶다면 고정관념을 버려라. 혼란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혼란으로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살아 있는 삶이다.

- OSHO

지혜로운 자는 순간순간을 산다. 그의 삶은 하늘에 떠가는 흰구름처럼 자유롭다. 목적을 향해 가지도 않고, 어느 곳에 머물지도 않는다

- OSHO

연민의 첫 번째 대상은 바로 자신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우정을 맺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단지 우리는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헛된 꿈을 꾸고 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가능성도 사라진다.

- OSHO

주어라, 보답으로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 때에 그것은 비즈니스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은 비즈니스가 아니다

- OSHO

전체적으로 살아라. 그리고 강렬하게 살아라. 그래서 매 순간이 황금처럼 빛나게 하고 그대의 전 생애가 빛나는 순간들의 연속이 되게 하라. 그러한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마이다스의 손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 황금처럼 빛나게 된다.

- OSHO

진리에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적은 지식이 있는 사람이며 가장 커다란 친구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 OSHO

명상이란 무엇인가? 명상의 핵심은 주시다. 명상은 모험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이 명상이다. 명상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거기엔 아무 행위도 없다. 사념도 없고 감정도 없다. 명상 속에서 그대는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순수한 기쁨이다. 아무런 행위도 없이 존재할 때 이 순수한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또는 모든 곳에서 온다. 이 기쁨은 다른 원인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 아니다. 존재자체가 기쁨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 OSHO

희망의 덫에 걸려 들지 말라. 자신의 밖에서 구원의 손이 뻗칠 거라는 생각에 붙들리지 말라. 누구도 그대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리니, 만족은 속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OSHO

감각을 찾으면 찾을 수 록 그대는 점점 더 무감각해진다. 감수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감각에 대한 욕망을 버리라. 감각을 구하지 말라. 대신 감수성을 구하고 그리고 좀 더 민감해지라.

- OSHO

창조성은 누군가를 지배하려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 하는가?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그대는 결코 누군가를 지배하려하지 않으며 누군가에 의해서 지배 받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자유는 단지 조금 더 깨어 있는 바로 그 맛이다.

- OSHO

나는 종교성을 하나의 특질로 본다. 그것은 조직의 회원권이 아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내적인 경험이다.

- OSHO

마음으로부터 오는 사랑은 언제나 사랑증오(lovehate)이다. 그것은 두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한 단어이다. "사랑증오" - 하이픈으로도 나눌 수 없다. 그러나 그대의 가슴으로부터 오는 사랑은 모든 이중성을 넘어선다. 모든 사람이 사랑과 증오를 넘어선 사랑을 찾고 있다. 그러나 그가 마음으로 찾고 있기 때문에 그는 불행하다. 모든 연인이 좌절과 기만과 배신을 느끼지만 아무에게도 잘못이 있지 않다. 실제로는 그대가 잘못된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 OSHO

붓다처럼 장터 속으로 걸어가라. 세상에서 살라.... 세상은 그대를 풍요롭게 하리라. 관계는 그대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는 거울과 같다. 그대는 다른 존재의 거울 속에서 그대의 얼굴을 본다.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보기란 매우 어렵다. 그대는 자신의 얼굴을 보기 위해 다른 사람, 즉 거울이 필요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보다 더 좋은 거울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 OSHO

서로 맞지 않다고 걱정하지 말고 조화와 조율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 이것이 사랑의 방법론이다.

- OSHO

마음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즉 이것이 옳거나 아니면 그 반대가 옳다. 마음이 관련된 한, 그리고 마음의 논리와 마음의 합리성이 관련된 한 둘 다는 옳을 수 없다. 만일 마음이 "이것 아니면 저것" 이라면 가슴은 "양쪽 모두"이다. 가슴은 어떤 논리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대신에 감성과 지각을 갖는다. 가슴은 단지 둘이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실제로 그것들은 둘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두 개의 다른 방향에서 보여진 하나의 현상이다.

- OSHO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대 자신에 대한 판단을 멈추는 것이다. 판단하는 대신에 모든 불완전함과 나약함과 실수투성이인 그대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라. 그대 자신이 완벽해 지기를 요구하지 말라. 그것은 단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며 그대는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그대는 결국 하나의 인간일 뿐이다.

- OSHO

단지 주시자가 되라. 어떤 것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그 순간에 매달리지 말며, 어떤 것이 비참하다는 이유로 그 순간을 밀어 내지 말라. 그렇게 하지 말라. 그대는 여러 삶 동안 그렇게 해오고 있으나 아직 성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성공하지 못 할 것이다. 저 너머의 세계로 가는 유일한 길은 초연하게 존재하는 것이며, 어떤 것에도 동일시 되지 않고 이 모든 변하는 현상들을 지켜볼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다.

- OSHO

선택의 문제가 있을 때마다, 가슴 대신에 머리가 선택되어서는 곤란핟. 가슴은 존재계와 그대와의 관계이며, 머리는 사회와 그대와의 관계이다.

- OSHO

인간은 열정적으로 깨어 있거나 열정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각성이든 사랑이든 그런 열정에 이르게 되기 전에. 중요한 것은 열정이지 각성이냐 사랑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열정, 전적인 열정이다

- OSHO

신은 창조적인 사람을 사랑한다. 익명의 집단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고, 사회에, 역사에, 종족에, 종교에, 교회에 함몰되어 버린 사람들은 신과 친해질 수 없다

- OSHO

철학은 수 많은 답변을 하면서도 단 하나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철학자는 나는 모른다고 말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은 것이다.

- OSHO

나에게 있어서의 영성은 순수한 개인성을 필요로 한다. 영성은 어떠한 종류의 의존도 허용하지 않는다. 영성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하나의 자유를 창조해낸다. 영성은 결코 군중 속에 있지 않으며 언제나 홀로 있다.

- OSHO

삶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만 발전한다. 결코 아는자가 되지말고 늘 배우는 자가 되어라.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항상 열어 두어라

- OSHO

성을 억누르기 위하여 성기를 자르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성은 성기속에 있지 않다. 모든 감각의 중추는 마음속에 있다. 마음이 그대의 세상이다. 명상으로 가면 마음 또한 사라진다. 마음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무심으로 볼 수 있다.

- OSHO

삶, 사랑, 웃음, 그리고 빛 (Life, Love, Laugh and Light)...이것을 나는 인생의 '4L' 이라 부른다.

- OSHO

사람들은 자유를 사랑하지만 아무도 책임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유와 책임은 함께 온다. 그들은 서로 떨어진 수 없다.

- OSHO

시인이란 오로지 실제와 시적인 관계를 통해서 그 실체를 파악하는 사람이다. 사랑은 시인에게만 일어나고, 신은 시인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아주 작은 일상의 삶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천진무구한 사람만이 신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은 삶의 아주 작은 부분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 OSHO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햇살이 비치면 비치는 대로, 모든 것을 반갑게 맞이하라. 가슴을 열고 만물의 생명과 조율하는 순간 그대는 더 이상 갇힌 자가 아니다. 문을 연다는 것은 그만큼 예민해진다는 것이다.

- OSHO

주위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다 우연임을 볼 수 있다. 그대의 전 생애는 우연적이다. 그대는 단지 위안을 얻고 싶어서 거기에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실상 어떤 의미도 없다. 오직 깨달은 자만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 뿐 어느 누구도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은 무의식적인 한 우연의 일치로만 살 뿐이다. 그의 삶은 단지 우연의 일치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무의식적인 사람의 삶은 우연적인 삶이다.

- OSHO

진정한 책임은 그대 자신의 가능성, 그리고 그대의 지성과 각성에 대한 것이며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 OSHO

죽음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 없다. 죽음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삶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 죽음이다. 그런데 이처럼 필연적인 것에 대해 왜 걱정하는가?

- OSHO

동양은 가난하고 기아인 채로 있다. 서양은 충분한 기술과 과학, 풍요함이 있지만 중요한 내부의 것을 놓치고 있다. 새로운 인간이 지구상에 필요하다. 둘 다를 수용하는, 과학적이면서 신비적인, 물질과 정신을 모두 긍정하는 새로운 인간, 그제서야 우리는 양쪽이 다 풍요로운 한 인간성을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 OSHO

그대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미묘한 소유욕의 물결이 있다. 말해지지는 않았지만 거기에는 "이제 당신은 나의 소유물이며 누구도 당신을 사랑해서는 안됩니다."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신뢰 속에서는 그대가 신뢰하는 사람을 소유하는 문제는 없다. 반대로 그대는 "나를 소유해 달라. 에고로서의 나를 파괴하고, 내가 사라져서 그대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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