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자료

[살며 사랑하며―강옥순] 소설은 아름다워라

[살며 사랑하며―강옥순] 소설은 아름다워라
국민일보 사설칼럼 
 
인기 드라마 시청률이 30%를 넘게 되면 사람들의 귀가시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나는 동아일보에 연재되던 최명희의 '혼불'을 읽기 위해 집으로 달음박질쳤다. 정과 끌로 한 자 한 자 새긴 문장, 나무토막 하나에도 혼을 불어넣는 작가의 치열함이 농축된 작품. '내가 만일 소설을 쓰게 되면 이런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상도 하지, 무섭게만 보이던 사천왕상이 이 작품을 읽은 후 친근하게 느껴지다니.

황석영의 '장길산'에서 발견한 '성(性)'의 아름다움. 길산의 투박한 손이 묘옥의 등을 받치며 나누는 숲속의 정사, 어느 시가 어느 그림이 그처럼 아름다울 수 있으랴. 덥석부리 사내 강포수의 품에서 비로소 남자의 몸을 알게 되는 '토지'의 악역 귀녀의 회한과, '태백산맥'의 정하섭과 소화가 나누는 사랑의 전율은 어떠한가.


배가 고파 허겁지겁 음식을 먹다 보면 문득 '토지'의 환이가 떠올라 수저질을 늦추게 된다. 윤씨부인과 동학접주 김개주 사이에서 태어난 기구한 사내. 며칠을 굶은 상황에서도 찬밥덩이를 천천히 씹는 그를 바라보며 지리산 노인은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본다. 화전민 움막에서 죽음을 맞는 별당아씨가 가물가물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인다. "봄까지 살아서 당신을 위해 진달래화전을 부쳐 주고 싶었어요." 그 이후로 봄날 만나는 진달래꽃은 언제나 내겐 화전(花煎)이다.

맵싸한 파리 숙녀인 양 코끝을 쳐들던 조앙 마두. 칼바도스 잔을 든 그녀의 날씬한 허리가 '개선문'의 그림자를 가렸던가. 전쟁의 혼돈에, 파리의 환락에 자신을 내던진 그녀는 결국 정부(情夫)가 쏜 총에 최후를 맞는다. 유대계 독일 망명객인 의사 라비크와 동유럽에서 온 그녀는 죽음의 자리에서야 비로소 프랑스 말을 벗어던지고 서로의 모국어로 사랑을 고백한다. 라비크는 독일어로, 조앙은 러시아어로. 그러나 두 사람은 충분히 알아듣는다. 나 역시 그 장면에서 독일어, 러시아어를 생생하게 들었다.

레마르크의 다른 작품인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 '폭력의 미학'을 발견했다면 너무 나가는 건가. 안개 낀 철도역 주변, 전선에서 돌아오는 병사들과 후방 사람들 간에 시비가 붙는다. 생사를 함께 나눈 동료를 위해 날리는 주먹, 그것은 싸움이 아니라 상황윤리였다. 그의 유작 '그늘진 낙원'은 그림에 대한 안목을 일깨워준 책이다. 그리운 이름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그의 주인공마다 애인이면 했었지.

'삼국지'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남자와는 이야기를 섞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들 소녀시절엔 헤르만 헤세가 척도였다. 갑자기 교실 문을 밀치고 들어와 "얘, 너 데미안 몇 번 읽었니?" 다짜고짜 묻던 무학여고 2학년 5반의 김인주, 그애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치근거리던 녀석을 최인훈의 '광장'을 읽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색하게 만든 기억도 있네. 아아, 소설은 아름다운 추억이어라.

강옥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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